창간호(2025.6.) l 퀴어 연구의 위치 l 기획 주제
한국에서 안전한 퀴어 연구에 도착하기
전원근
퀴어 연구 하기의 안전
지난 계엄 사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로 남은 사건이 있다. 그것은 슈퍼히어로물 바디슈트를 입은 통통한 40대 초반의 아저씨가 국가인권위와 중국대사관 앞에서 벌인 ‘정의로운’ 반달리즘 행위였다. 충격적인 페티시적 이미지에 이끌려 찾아보니 그는 나와 동갑이었고, 미국 장교 행세를 하는 등 ‘군플’을 즐기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혐중 실천에 사용한 캡틴 아메리카 방패가 쿠팡의 중국산 제품이었다는 등의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우리는 이 캡틴의 형상이 특수하거나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퀴어문화축제 반대편과 탄핵 반대 집회에서 목격되었던 성조기와 군복들이라는 계보가 있기 때문이다. 이 계보 속에서 퀴어는 ‘척결’의 대상인 간첩, 빨갱이, 페미, 무슬림, 중국공산당까지 이어지는 반국가 세력의 일부로 배치된다. 한국의 치안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하면서도 퀴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은 안전이 궁극적으로 누구의 것인지를 묻게 만든다. 국뽕 콘텐츠에서 이야기하듯, 밤에 혼자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나 주인이 부재한 카페 테이블 위의 노트북과 스마트폰이 K-치안의 우수함을 드러낸다고 할지라도, 게이 군인이 우리 아들들을, 남자 며느리와 여자 사위가 우리 가족을, 트랜스여성이 우리 공간을, 퀴어 클럽이 우리의 보건 체계를, 퀴어문화축제가 나라를 망친다고 가정되는 사회에서 퀴어들은 이중의 안전담론 속에 몸 둘 바를 모르게 된다.

출처: 유튜브
생각해 보면 계엄 사태는 서로가 무언가에 맞서 무언가를 지키는 것을 행하는 것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래된 국가 안전보장의 어휘들로 발화될 때 헌법 질서를 넘어서는 거대한 폭력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우리는 목격했다. 이 안전의 담론들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이슈들을 원초적 힘의 문제, ‘내전과 위생’의 문제로 탈정치화시킨다. 즉 안전을 정의(definition)하는 행위를 통해 ‘정의’(justice)가 실천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한국 사회에서 그 정의 방식은 지난 수십 년간 반퀴어적이고 혐오적인 방식이 되어 왔다. 우리는 반퀴어 담론이 ‘안전’의 깃발 아래, 즉 전통적 질서, 남자와 여자의 구분, 가정과 아이들, 국민의 건강과 보건, 반공 자유주의와 표현의 자유, 재생산과 미래, 심지어 깨끗한 청정 자연을 지키는 수사 아래 집결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퀴어한 신체들은 자주 ‘사회’에 대한 위협, 테러리스트 신체로서 재현되어 왔다. 반사회적인 인종 혹은 인간의 아종으로서 퀴어. 푸코가 이야기하듯이 근대사회의 통치는 이러한 적대적 인종주의적 재현에 기반해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담론을 작동시키고, 안보는 지켜질 영역 바깥으로 퀴어를 내몬다. 그런 의미에서 탄핵 반대 집회에 앞장섰던 ‘세이브 코리아’는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상징적인 반퀴어 국가안보 담론의 형태일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성소수자/퀴어 연구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안전’과 마주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퀴어 연구를 표방하고 발표하는 행위는 연구자의 자발적인 커밍아웃으로 여겨지며, 그럴 때 이 사회는 발표 내용이 아니라 발표자가 얼마나 도착(倒錯)적인 인물인가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따라서 한국에서 퀴어 연구를 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연구자가 사회적 낙인과 혐오에 대한 리스크를 짊어짐을 뜻한다. 한편, 한국에서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를 더 한다는 것은 ‘성공’에 대한 가족과 주변인들의 기대와 지원을 한 몸에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러한 투자로 얻어진 학위로 더 안전한 삶을 영위하리라는 믿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퀴어 연구를 한다는 것은 주변의 기대를 배신하는 행위가 된다. 다시 말해 이상한 비주류 학제에 발을 들임으로써 기꺼이 나 자신을 위태롭고 취약하게 만드는 행위이며, ‘옷 따위를 거꾸로 입는’ 도착(倒着)적 행위이다. 그렇다고 ‘안전’은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아무리 이 사회에서 안전이 특정한 어휘들로 정의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모든 삶과 생명의 기본적 조건으로서 모두가 공유하고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재화로 커머닝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안전한 퀴어 연구에 어떻게 도착(到着-arrival)할 수 있을까?
퀴어 연구에 안전하게 도착하기
여기에 안전과 퀴어 연구 사이의 근본적인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 퀴어 연구자는 한편으로는 '안전'한 영역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 미지의 길을 탐색하는 리스크를 짊어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여 퀴어 연구에 안전하게 도착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과제는 특히나 어려운 도전이 되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퀴어 연구를 위한 제도적 인프라가 현저히 부족하여, 안전한 연구 환경 확보의 책임이 전적으로 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한 전략적 방법들이 존재해 왔는데, 첫 번째는 공식적인 연구 주제나 영역을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설정하고, 퀴어 연구는 이른바 '곁다리'로 은밀하게 진행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가 바로 그러한데, 박사과정 진학 당시 한국 성소수자의 사회사라는 주제로 연구계획서를 제출했다가 여러 교수의 반려와 우려에 부딪혔고, 결국 주제를 전환하고 퀴어 연구는 비공식적이고 개인적인 과제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방법은 한국 사회의 제약에서 벗어나 해외에서 공부하는 것인데, 이는 상당한 재정적 여유와 언어능력, 그리고 운까지 겸비해야 하는 만큼 모두에게 열린 선택지라 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아카데미에 진입한 연구자들에게만 해당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세 번째이자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안전한 퀴어 연구가 가능한 대안적 인프라를 연구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며 연구를 지속하는 것이다. 2000년대와 2010년대 한국 사회에서 대학원생으로서 퀴어 연구를 한다는 것은 마치 제도권 교육 바깥의 안전 가옥을 찾아 헤매는 고난의 여정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들은 결코 고립된 '섬'으로 존재하지 않았고, 오히려 바다 밑으로 서로 긴밀하게 이어진 '군도'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퀴어 이론이나 젠더&섹슈얼리티를 다루는 수업들, 정기적인 세미나 모임과 같은 소규모 학술 네트워크에서부터 퀴어문화축제, 성소수자 인권포럼과 같은 대규모 행사는 물론, 북페어와 도서관의 젠더/섹슈얼리티 코너, 퀴어친화적 독립서점, 실험적인 퀴어미술 전시와 다양한 영화제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일시적 공간들은 퀴어 연구자들이 서로 만나고, 자유롭게 호흡하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귀중한 인프라로 기능했다. 이러한 시공간들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제도적 아카데미에 소속되지 않은 다양한 독립 연구자나 활동가, 작가와 앨라이, 비수도권 연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학벌주의와 지역주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넘어 교류할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수많은 모임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과정에서도, 연구자들은 서로의 불안과 고민을 나누고 위로하면서 점차 안전한 연구 공동체를 일궈낼 수 있었다.
2019년 대학원생들의 자발적이고도 열정적인 노력으로 설립된 <성소수자 대학원생/신진연구자네트워크>('성연넷')는 비록 가장 늦게 등장했지만, 현재는 가장 큰 규모와 견고한 기반을 갖춘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했다. 이 자리를 빌려 성연넷을 오늘날의 위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 준 모든 동료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지난 시간 동안 수많은 대학원생과 신진연구자, 활동가와 비연구자들이 상호 지지와 연대의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연구를 발표하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았으며, 귀중한 학술 정보를 교환하고 평생의 동료이자 친구를 만들어갔다. 한국에서 퀴어 연구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학문적 성취를 넘어, 자신의 안전을 지키면서도 동료 연구자들의 안전을 위해 함께 연대하고 투쟁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모두 불안정하고 위험한 길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도, 서로의 안전을 세심하게 살피고 보호하는 과정을 통해 한국의 퀴어 연구는 지금의 발전된 모습에 이를 수 있었다. 앞으로 성연넷이 보다 체계적인 '학회'의 형태로 성장하더라도, 세 번째 전략의 계보를 이어 다양한 구성원들의 안전을 서로가 돌보며 확보해 나가는 역할은 반드시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2023년 인터넷 커뮤니티 ‘reddit’에는 “퀴어 인프라의 다른 예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라는 질문이 올라왔고, 재치있는 답변들이 이어졌다. 이중에는 도서관, 작은 장신구 가게, 체육관, 미용실, 문화적 아카이브, 작은 커피숍과 중고품 가게, ‘스바루 대리점’(미국에서 레즈비언들이 선호한다고 알려진 자동차 브랜드) 등의 예시가 있었다. 출처: 레딧
퀴어한 안전에 도착하기
마지막으로 우리가 학회라는 제도적 형태를 구성하여 안전을 확보한다고 할 때, 우리가 도착하고자 하는 '안전'이 어떠한 안전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아마도 그것은 기존에 정의된 안전보장의 어휘들과는 달라야 할 것이다. 우리가 기존의 제도적 틀과 인프라를 활용하고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과정과 방식은 퀴어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안전에서 배제되게끔 하는 규범과 질서와 제도들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뒤틀고 변형시키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야 한다. 즉 안전을 정의하는 대심문관의 의도를 역으로 심문하며, '안전'을 퀴어링하면서 우리의 안전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현대사회에서 '안전'과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인프라들의 약속이 실제로는 기대를 배반하고 불평등을 낳으며, 폐허를 만드는 결말로 이어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안전'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도구로 활용되어 왔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한국의 퀴어 연구는 우리가 벗어나고자 하면서 확보하고자 하는 '안전'이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 고민해야 하는 숙제를 동반한다.
최근의 탄핵 반대 집회는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 도심 집회에 열광적으로 나와 기도하고, 목청 터져라 외치고, 눈물을 흘리고, 심지어 자해하기까지 하는 정동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 간절한 행동이 무엇보다도 자기 생활세계의 안전을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퀴어 연구가 다룰 수 있는 연구의 영역은 확장된다. 이들에게 공포를 가지고 오는 것은 이상적인, 혹은 '평범한' 삶의 불가능성이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방식, 서로 관계 맺고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삶의 방식을 상대화시키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만성적인 긴축 정치와 경제위기, 모든 이를 지치게 만드는 서바이벌의 경쟁사회, 그리고 미래를 낙담할 수 없게 만드는 불평등과 기후 위기 등으로 이성애규범적인 삶의 양식이 불가능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방식으로 관계 맺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이상적 삶의 불가능성을 직관적으로 지각하게 하고 방어기제를 불러온다. 중산층-이성애규범적 삶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 대신, 입으라는 옷을 입지 않고 날뛰는 퀴어들이 나라를, 가정을, 나를 망하게 하는 원인으로 전도된다. 그리고 퀴어들의 형상은 그동안 자신들의 삶을 위협해 왔다고 가정된 또 다른 역사적 타자들의 형상들과 교환되며 혐오의 정동 경제를 강화한다. 애초에 혐오는 무엇인가에 대해 습득된 공포이며 안전을 갈망하게 만드는 방어기제이다. 따라서 생득적인 것도 고정적인 것도 아니며, 오히려 역사적이고 우연적이며 사회적이다. 소련 붕괴와 탈냉전으로 커다란 적을 잃어버린 극우 정치가 새로운 원동력으로 호모포비아를 찾아낸 것처럼, 너무나 개인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과 생리적 반응들은 사실 역사적 사건과 반복된 수행 속에서 형성된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반공 이데올로기, 정상 가족 중심의 생존주의와 젠더 규범이 어떻게 성소수자 혐오와 결합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다. 그리고 이들이 안전을 갈구하는 이러한 정동의 형태들이야말로 우리가 아무리 성소수자 인권과 차별 금지를 외쳐도 제도화로 이어지지 않게 막고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다시 2025년 봄의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목격된 캡틴 아메리카로 돌아가 보자. 대중 앞에 히어로 슈트를 입고 기꺼이 퍼포먼스를 할 만큼, 그는 무엇을 그렇게 지키고 싶었을까? '자유민주주의'? 대통령? 자신의 남성성? 아니면 "the American Way"(캡틴 아메리카 테마곡의 제목)? 그런 거창한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단지 극우 남성 동지들 사이에서 자신을 인정받고 싶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특정한 남성성과 시민됨이 어떻게 안전 담론과 결합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동시에 그 표현이 군복과 캡틴 아메리카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상기시킨다. 포비아는 특정한 드레스 코드[어휘/관념/관습]를 통해 자신이 역사적 부산물임을 스스로 드러낸다. 그렇다면 우리가 안전을 요구할 때는 어떠한 ‘옷’을 입어야 할까? 아마도 우리는 기왕의 안전을 추구하는 드레스들을 도착적으로 재구성하고 퀴어한 안전에 도착할 것이다. “…어떤 사유가 사유를 사유하는가, 어떤 설명이 설명을 설명하는가, 어떤 연결이 연결을 연결하는가가 문제이다. … 어떤 생각들이 생각들을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 퀴어 연구는 사회를, 환경을, 관계들과 안전을 포함한 다양한 담론과 관습들을 다른 방식으로 보게끔 만든다. ‘안전’ 또한 퀴어링 되어야 하며, 이 가운데 우리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는 방법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 가고자 하는 안전한 인프라가 어떠한 형태가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성소수자/퀴어 연구와 친척관계에 있는 다양한 연구의 흐름들을 경유해서 몇 가지 단순한 원칙을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먼저 그 안전의 확보는 순수한 영역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배제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안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자주 특정한 질서에 근거한 순수함의 공간에 대한 요청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퀴어가 배제되어 온 역사는 바로 그 요청들이 사실은 차이에 대한 폭력과 비안전의 결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두 번째로 우리는 서로에 대해 친절해져야 한다. ‘성소수자’와 ‘퀴어’ 내부에는 너무나 다양한 차이들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은 젠더와 장애, 인종과 계층, 질병과 정치적 지향성 등이 교차하는 가운데 구성되며 LGBTQ의 단 하나의 문자로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연구의 영역이나 학제, 연구의 스타일과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너와 나의 조건과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의 안전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에 위협을 가하는 행위를 지양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안전한 퀴어 연구가 제도화를 통해 단숨에 이룩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정형화된 어떤 특정한 형태로 도래하지 않을 것임을 아는 것이다. 다양한 실험들을 거쳐야 하며, 실수도 실패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메시아나 유토피아가 도래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우리가 그것에 도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에서 부산물처럼 생산되는 차이와 효과들 자체가 우리에게 더 중요한 안전의 자원이 될지도 모른다.
전원근
퀴어 이론과 인간-너머의 비판적 관점들을 통해 사회학적 연구가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들에 관심이 있다. 현재 제주에서 생활하면서 다종적 모빌리티의 관점에서 섬과 연안의 문제, 영토성과 기지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여기서 군복은 실제 군인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군인은 그들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무지개행동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2025)의 『극우 리포트: 성소수자 혐오에서 내란 옹호까지』는 반퀴어를 축으로 형성된 극우 정치에 대한 최신의 분석을 보여준다.↩
김항의 『내전과 위생』은 현대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을 내전과 위생이라는 메커니즘으로 설명한다. “내전은 사람들에게 ‘너는 누구냐’고 다그치는 심문의 영원한 반복을 통해 ‘적’을 색출하는 정치적 폭력이다. 그렇게 색출된 온갖 특정 형상은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위생 장치의 제거 대상이 된다. 내전과 위생의 이 결합은 인간이 저 특권적 자리를 차지함과 동시에 유지해온 폭력의 수행이다.” 김항(2024), 『내전과 위생』, yeondoo, 29쪽. ↩
2023년과 2024년 제주퀴어문화축제의 반대편에서는 제주의 청정자연에 대비하여 성소수자를 이항대립적 오염으로 설정한 표어들이 등장하였다.↩
김항은 현대 사회에서 배제의 정치를 역사적 구성물로서 대문자 인간의 안전을 위해 비인간(non-human)을 식별하고 몰아내는 대심문관의 비유를 통해 설명된다.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연구와 인종주의 연구 또한 보편적 ‘인간’의 구성이 식민주의와 젠더&섹슈얼리티, 장애, 계급적 차별 등을 경유해 여러 비인간들을 생산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것을 지적한다. 김항(2024), 『내전과 위생』, yeondoo.↩
Stephens와 Martinez-San Miguel이 편집한 Contemporary Archipelagic Thinking은 섬을 고립된 개체가 아닌 역사지리적 형성체이자 군도의 연결망으로 보는 비판적 섬 연구 관점을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과 퀴어 생태학에 따라 Andersson은 베를린의 다양한 소수자 나이트 라이프 공간들을 기존의 ‘게이버후드’나 게토의 개념 대신 이성애규범적 격자 밖에 형성된 군도의 형상으로서 분석한다. Stephens, M. S. M., & Martínez-San Miguel, Y. (Eds.)(2020), Contemporary Archipelagic Thinking: Toward New Comparative Methodologies and Disciplinary Formations, Rowman & Littlefield; Andersson, J.(2023), "Berlin's Queer Archipelago: Landscape, Sexuality, and Nightlife," Transactions of the Institute of British Geographers, 48(1), 100-116.↩
한편 명시적인 퀴어친화적 인프라로 생각되는 것들에 대한 비판도 있다. Bain과 Podmore는 캐나다의 사례를 통해 무지개와 같은 LGBTQ+ 상징들이 도시 인프라 디자인에 과도하게 사용되면서, 성소수자 이슈를 상징적 영역에 제한하고 신자유주의적 장소 브랜딩 도구로서 활용되는 한편, 실질적인 퀴어친화적 인프라 구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석하기도 하였다. Bain, A. L., & Podmore, J. A.(2025), "Rainbow Infrastruggles: The Infrapolitics of LGBTQ2S surplus visibility in suburban infrastructure." Journal of Urban Affairs, 47(2), 428-450. ↩
아메드, 사라(2023), 『감정의 문화정치』, 시우 역, 오월의봄.↩
해러웨이, 도나(2016), 『트러블과 함께하기』, 최유미 역, 마농지, 27쪽, 65쪽.↩
창간호(2025.6.) l 퀴어 연구의 위치 l 기획 주제
한국에서 안전한 퀴어 연구에 도착하기
전원근
퀴어 연구 하기의 안전
지난 계엄 사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로 남은 사건이 있다. 그것은 슈퍼히어로물 바디슈트를 입은 통통한 40대 초반의 아저씨가 국가인권위와 중국대사관 앞에서 벌인 ‘정의로운’ 반달리즘 행위였다. 충격적인 페티시적 이미지에 이끌려 찾아보니 그는 나와 동갑이었고, 미국 장교 행세를 하는 등 ‘군플’을 즐기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혐중 실천에 사용한 캡틴 아메리카 방패가 쿠팡의 중국산 제품이었다는 등의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우리는 이 캡틴의 형상이 특수하거나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퀴어문화축제 반대편과 탄핵 반대 집회에서 목격되었던 성조기와 군복1들이라는 계보가 있기 때문이다. 이 계보 속에서 퀴어는 ‘척결’의 대상인 간첩, 빨갱이, 페미, 무슬림, 중국공산당까지 이어지는 반국가 세력의 일부로 배치된다. 한국의 치안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하면서도 퀴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은 안전이 궁극적으로 누구의 것인지를 묻게 만든다. 국뽕 콘텐츠에서 이야기하듯, 밤에 혼자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나 주인이 부재한 카페 테이블 위의 노트북과 스마트폰이 K-치안의 우수함을 드러낸다고 할지라도, 게이 군인이 우리 아들들을, 남자 며느리와 여자 사위가 우리 가족을, 트랜스여성이 우리 공간을, 퀴어 클럽이 우리의 보건 체계를, 퀴어문화축제가 나라를 망친다고 가정되는 사회에서 퀴어들은 이중의 안전담론 속에 몸 둘 바를 모르게 된다.
출처: 유튜브
생각해 보면 계엄 사태는 서로가 무언가에 맞서 무언가를 지키는 것을 행하는 것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래된 국가 안전보장의 어휘들로 발화될 때 헌법 질서를 넘어서는 거대한 폭력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우리는 목격했다.2 이 안전의 담론들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이슈들을 원초적 힘의 문제, ‘내전과 위생’3의 문제로 탈정치화시킨다. 즉 안전을 정의(definition)하는 행위를 통해 ‘정의’(justice)가 실천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한국 사회에서 그 정의 방식은 지난 수십 년간 반퀴어적이고 혐오적인 방식이 되어 왔다. 우리는 반퀴어 담론이 ‘안전’의 깃발 아래, 즉 전통적 질서, 남자와 여자의 구분, 가정과 아이들, 국민의 건강과 보건, 반공 자유주의와 표현의 자유, 재생산과 미래, 심지어 깨끗한 청정 자연4을 지키는 수사 아래 집결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퀴어한 신체들은 자주 ‘사회’에 대한 위협, 테러리스트 신체로서 재현되어 왔다. 반사회적인 인종 혹은 인간의 아종으로서 퀴어.5 푸코가 이야기하듯이 근대사회의 통치는 이러한 적대적 인종주의적 재현에 기반해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담론을 작동시키고, 안보는 지켜질 영역 바깥으로 퀴어를 내몬다. 그런 의미에서 탄핵 반대 집회에 앞장섰던 ‘세이브 코리아’는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상징적인 반퀴어 국가안보 담론의 형태일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성소수자/퀴어 연구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안전’과 마주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퀴어 연구를 표방하고 발표하는 행위는 연구자의 자발적인 커밍아웃으로 여겨지며, 그럴 때 이 사회는 발표 내용이 아니라 발표자가 얼마나 도착(倒錯)적인 인물인가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따라서 한국에서 퀴어 연구를 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연구자가 사회적 낙인과 혐오에 대한 리스크를 짊어짐을 뜻한다. 한편, 한국에서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를 더 한다는 것은 ‘성공’에 대한 가족과 주변인들의 기대와 지원을 한 몸에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러한 투자로 얻어진 학위로 더 안전한 삶을 영위하리라는 믿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퀴어 연구를 한다는 것은 주변의 기대를 배신하는 행위가 된다. 다시 말해 이상한 비주류 학제에 발을 들임으로써 기꺼이 나 자신을 위태롭고 취약하게 만드는 행위이며, ‘옷 따위를 거꾸로 입는’ 도착(倒着)적 행위이다. 그렇다고 ‘안전’은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아무리 이 사회에서 안전이 특정한 어휘들로 정의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모든 삶과 생명의 기본적 조건으로서 모두가 공유하고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재화로 커머닝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안전한 퀴어 연구에 어떻게 도착(到着-arrival)할 수 있을까?
퀴어 연구에 안전하게 도착하기
여기에 안전과 퀴어 연구 사이의 근본적인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 퀴어 연구자는 한편으로는 '안전'한 영역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 미지의 길을 탐색하는 리스크를 짊어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여 퀴어 연구에 안전하게 도착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과제는 특히나 어려운 도전이 되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퀴어 연구를 위한 제도적 인프라가 현저히 부족하여, 안전한 연구 환경 확보의 책임이 전적으로 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한 전략적 방법들이 존재해 왔는데, 첫 번째는 공식적인 연구 주제나 영역을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설정하고, 퀴어 연구는 이른바 '곁다리'로 은밀하게 진행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가 바로 그러한데, 박사과정 진학 당시 한국 성소수자의 사회사라는 주제로 연구계획서를 제출했다가 여러 교수의 반려와 우려에 부딪혔고, 결국 주제를 전환하고 퀴어 연구는 비공식적이고 개인적인 과제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방법은 한국 사회의 제약에서 벗어나 해외에서 공부하는 것인데, 이는 상당한 재정적 여유와 언어능력, 그리고 운까지 겸비해야 하는 만큼 모두에게 열린 선택지라 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아카데미에 진입한 연구자들에게만 해당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세 번째이자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안전한 퀴어 연구가 가능한 대안적 인프라를 연구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며 연구를 지속하는 것이다. 2000년대와 2010년대 한국 사회에서 대학원생으로서 퀴어 연구를 한다는 것은 마치 제도권 교육 바깥의 안전 가옥을 찾아 헤매는 고난의 여정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들은 결코 고립된 '섬'으로 존재하지 않았고, 오히려 바다 밑으로 서로 긴밀하게 이어진 '군도'처럼 연결되어 있었다.6 퀴어 이론이나 젠더&섹슈얼리티를 다루는 수업들, 정기적인 세미나 모임과 같은 소규모 학술 네트워크에서부터 퀴어문화축제, 성소수자 인권포럼과 같은 대규모 행사는 물론, 북페어와 도서관의 젠더/섹슈얼리티 코너, 퀴어친화적 독립서점, 실험적인 퀴어미술 전시와 다양한 영화제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일시적 공간들은 퀴어 연구자들이 서로 만나고, 자유롭게 호흡하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귀중한 인프라로 기능했다. 이러한 시공간들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제도적 아카데미에 소속되지 않은 다양한 독립 연구자나 활동가, 작가와 앨라이, 비수도권 연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학벌주의와 지역주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넘어 교류할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수많은 모임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과정에서도, 연구자들은 서로의 불안과 고민을 나누고 위로하면서 점차 안전한 연구 공동체를 일궈낼 수 있었다.
2019년 대학원생들의 자발적이고도 열정적인 노력으로 설립된 <성소수자 대학원생/신진연구자네트워크>('성연넷')는 비록 가장 늦게 등장했지만, 현재는 가장 큰 규모와 견고한 기반을 갖춘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했다. 이 자리를 빌려 성연넷을 오늘날의 위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 준 모든 동료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지난 시간 동안 수많은 대학원생과 신진연구자, 활동가와 비연구자들이 상호 지지와 연대의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연구를 발표하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았으며, 귀중한 학술 정보를 교환하고 평생의 동료이자 친구를 만들어갔다. 한국에서 퀴어 연구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학문적 성취를 넘어, 자신의 안전을 지키면서도 동료 연구자들의 안전을 위해 함께 연대하고 투쟁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모두 불안정하고 위험한 길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도, 서로의 안전을 세심하게 살피고 보호하는 과정을 통해 한국의 퀴어 연구는 지금의 발전된 모습에 이를 수 있었다. 앞으로 성연넷이 보다 체계적인 '학회'의 형태로 성장하더라도, 세 번째 전략의 계보를 이어 다양한 구성원들의 안전을 서로가 돌보며 확보해 나가는 역할은 반드시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2023년 인터넷 커뮤니티 ‘reddit’에는 “퀴어 인프라의 다른 예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라는 질문이 올라왔고, 재치있는 답변들이 이어졌다. 이중에는 도서관, 작은 장신구 가게, 체육관, 미용실, 문화적 아카이브, 작은 커피숍과 중고품 가게, ‘스바루 대리점’(미국에서 레즈비언들이 선호한다고 알려진 자동차 브랜드) 등의 예시가 있었다. 7 출처: 레딧
퀴어한 안전에 도착하기
마지막으로 우리가 학회라는 제도적 형태를 구성하여 안전을 확보한다고 할 때, 우리가 도착하고자 하는 '안전'이 어떠한 안전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아마도 그것은 기존에 정의된 안전보장의 어휘들과는 달라야 할 것이다. 우리가 기존의 제도적 틀과 인프라를 활용하고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과정과 방식은 퀴어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안전에서 배제되게끔 하는 규범과 질서와 제도들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뒤틀고 변형시키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야 한다. 즉 안전을 정의하는 대심문관의 의도를 역으로 심문하며, '안전'을 퀴어링하면서 우리의 안전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현대사회에서 '안전'과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인프라들의 약속이 실제로는 기대를 배반하고 불평등을 낳으며, 폐허를 만드는 결말로 이어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안전'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도구로 활용되어 왔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한국의 퀴어 연구는 우리가 벗어나고자 하면서 확보하고자 하는 '안전'이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 고민해야 하는 숙제를 동반한다.
최근의 탄핵 반대 집회는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 도심 집회에 열광적으로 나와 기도하고, 목청 터져라 외치고, 눈물을 흘리고, 심지어 자해하기까지 하는 정동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 간절한 행동이 무엇보다도 자기 생활세계의 안전을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퀴어 연구가 다룰 수 있는 연구의 영역은 확장된다. 이들에게 공포를 가지고 오는 것은 이상적인, 혹은 '평범한' 삶의 불가능성이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방식, 서로 관계 맺고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삶의 방식을 상대화시키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만성적인 긴축 정치와 경제위기, 모든 이를 지치게 만드는 서바이벌의 경쟁사회, 그리고 미래를 낙담할 수 없게 만드는 불평등과 기후 위기 등으로 이성애규범적인 삶의 양식이 불가능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방식으로 관계 맺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이상적 삶의 불가능성을 직관적으로 지각하게 하고 방어기제를 불러온다. 중산층-이성애규범적 삶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 대신, 입으라는 옷을 입지 않고 날뛰는 퀴어들이 나라를, 가정을, 나를 망하게 하는 원인으로 전도된다. 그리고 퀴어들의 형상은 그동안 자신들의 삶을 위협해 왔다고 가정된 또 다른 역사적 타자들의 형상들과 교환되며 혐오의 정동 경제8를 강화한다. 애초에 혐오는 무엇인가에 대해 습득된 공포이며 안전을 갈망하게 만드는 방어기제이다. 따라서 생득적인 것도 고정적인 것도 아니며, 오히려 역사적이고 우연적이며 사회적이다. 소련 붕괴와 탈냉전으로 커다란 적을 잃어버린 극우 정치가 새로운 원동력으로 호모포비아를 찾아낸 것처럼, 너무나 개인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과 생리적 반응들은 사실 역사적 사건과 반복된 수행 속에서 형성된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반공 이데올로기, 정상 가족 중심의 생존주의와 젠더 규범이 어떻게 성소수자 혐오와 결합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다. 그리고 이들이 안전을 갈구하는 이러한 정동의 형태들이야말로 우리가 아무리 성소수자 인권과 차별 금지를 외쳐도 제도화로 이어지지 않게 막고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다시 2025년 봄의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목격된 캡틴 아메리카로 돌아가 보자. 대중 앞에 히어로 슈트를 입고 기꺼이 퍼포먼스를 할 만큼, 그는 무엇을 그렇게 지키고 싶었을까? '자유민주주의'? 대통령? 자신의 남성성? 아니면 "the American Way"(캡틴 아메리카 테마곡의 제목)? 그런 거창한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단지 극우 남성 동지들 사이에서 자신을 인정받고 싶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특정한 남성성과 시민됨이 어떻게 안전 담론과 결합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동시에 그 표현이 군복과 캡틴 아메리카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상기시킨다. 포비아는 특정한 드레스 코드[어휘/관념/관습]를 통해 자신이 역사적 부산물임을 스스로 드러낸다. 그렇다면 우리가 안전을 요구할 때는 어떠한 ‘옷’을 입어야 할까? 아마도 우리는 기왕의 안전을 추구하는 드레스들을 도착적으로 재구성하고 퀴어한 안전에 도착할 것이다. “…어떤 사유가 사유를 사유하는가, 어떤 설명이 설명을 설명하는가, 어떤 연결이 연결을 연결하는가가 문제이다. … 어떤 생각들이 생각들을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9 퀴어 연구는 사회를, 환경을, 관계들과 안전을 포함한 다양한 담론과 관습들을 다른 방식으로 보게끔 만든다. ‘안전’ 또한 퀴어링 되어야 하며, 이 가운데 우리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는 방법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 가고자 하는 안전한 인프라가 어떠한 형태가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성소수자/퀴어 연구와 친척관계에 있는 다양한 연구의 흐름들을 경유해서 몇 가지 단순한 원칙을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먼저 그 안전의 확보는 순수한 영역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배제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안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자주 특정한 질서에 근거한 순수함의 공간에 대한 요청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퀴어가 배제되어 온 역사는 바로 그 요청들이 사실은 차이에 대한 폭력과 비안전의 결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두 번째로 우리는 서로에 대해 친절해져야 한다. ‘성소수자’와 ‘퀴어’ 내부에는 너무나 다양한 차이들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은 젠더와 장애, 인종과 계층, 질병과 정치적 지향성 등이 교차하는 가운데 구성되며 LGBTQ의 단 하나의 문자로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연구의 영역이나 학제, 연구의 스타일과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너와 나의 조건과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의 안전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에 위협을 가하는 행위를 지양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안전한 퀴어 연구가 제도화를 통해 단숨에 이룩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정형화된 어떤 특정한 형태로 도래하지 않을 것임을 아는 것이다. 다양한 실험들을 거쳐야 하며, 실수도 실패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메시아나 유토피아가 도래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우리가 그것에 도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에서 부산물처럼 생산되는 차이와 효과들 자체가 우리에게 더 중요한 안전의 자원이 될지도 모른다.
전원근
퀴어 이론과 인간-너머의 비판적 관점들을 통해 사회학적 연구가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들에 관심이 있다. 현재 제주에서 생활하면서 다종적 모빌리티의 관점에서 섬과 연안의 문제, 영토성과 기지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여기서 군복은 실제 군인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군인은 그들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무지개행동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2025)의 『극우 리포트: 성소수자 혐오에서 내란 옹호까지』는 반퀴어를 축으로 형성된 극우 정치에 대한 최신의 분석을 보여준다.↩
김항의 『내전과 위생』은 현대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을 내전과 위생이라는 메커니즘으로 설명한다. “내전은 사람들에게 ‘너는 누구냐’고 다그치는 심문의 영원한 반복을 통해 ‘적’을 색출하는 정치적 폭력이다. 그렇게 색출된 온갖 특정 형상은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위생 장치의 제거 대상이 된다. 내전과 위생의 이 결합은 인간이 저 특권적 자리를 차지함과 동시에 유지해온 폭력의 수행이다.” 김항(2024), 『내전과 위생』, yeondoo, 29쪽. ↩
2023년과 2024년 제주퀴어문화축제의 반대편에서는 제주의 청정자연에 대비하여 성소수자를 이항대립적 오염으로 설정한 표어들이 등장하였다.↩
김항은 현대 사회에서 배제의 정치를 역사적 구성물로서 대문자 인간의 안전을 위해 비인간(non-human)을 식별하고 몰아내는 대심문관의 비유를 통해 설명된다.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연구와 인종주의 연구 또한 보편적 ‘인간’의 구성이 식민주의와 젠더&섹슈얼리티, 장애, 계급적 차별 등을 경유해 여러 비인간들을 생산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것을 지적한다. 김항(2024), 『내전과 위생』, yeondoo.↩
Stephens와 Martinez-San Miguel이 편집한 Contemporary Archipelagic Thinking은 섬을 고립된 개체가 아닌 역사지리적 형성체이자 군도의 연결망으로 보는 비판적 섬 연구 관점을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과 퀴어 생태학에 따라 Andersson은 베를린의 다양한 소수자 나이트 라이프 공간들을 기존의 ‘게이버후드’나 게토의 개념 대신 이성애규범적 격자 밖에 형성된 군도의 형상으로서 분석한다. Stephens, M. S. M., & Martínez-San Miguel, Y. (Eds.)(2020), Contemporary Archipelagic Thinking: Toward New Comparative Methodologies and Disciplinary Formations, Rowman & Littlefield; Andersson, J.(2023), "Berlin's Queer Archipelago: Landscape, Sexuality, and Nightlife," Transactions of the Institute of British Geographers, 48(1), 100-116.↩
한편 명시적인 퀴어친화적 인프라로 생각되는 것들에 대한 비판도 있다. Bain과 Podmore는 캐나다의 사례를 통해 무지개와 같은 LGBTQ+ 상징들이 도시 인프라 디자인에 과도하게 사용되면서, 성소수자 이슈를 상징적 영역에 제한하고 신자유주의적 장소 브랜딩 도구로서 활용되는 한편, 실질적인 퀴어친화적 인프라 구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석하기도 하였다. Bain, A. L., & Podmore, J. A.(2025), "Rainbow Infrastruggles: The Infrapolitics of LGBTQ2S surplus visibility in suburban infrastructure." Journal of Urban Affairs, 47(2), 428-450. ↩
아메드, 사라(2023), 『감정의 문화정치』, 시우 역, 오월의봄.↩
해러웨이, 도나(2016), 『트러블과 함께하기』, 최유미 역, 마농지, 27쪽, 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