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2025.6.) l 퀴어 연구의 위치 l 기획 주제
명멸과 응시
김민조
간극
나는 국어국문학과를 다녔다. 내가 다닌 학과는 국어국문학이 국어학과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으로 나뉘어 있었고, 현대문학은 다시 시와 소설과 희곡으로 나뉘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를 전공한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선택하면 자연스럽게 시를 전공하는 사람이 되는 식이었다. 이공계의 ‘랩(lab)’에 대응하는 ‘방’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우리는 제각기 ○○○ 교수님 방 제자로 불렸다. 한국의 국문과 대학원은 대체로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학부 때 미친 듯이 연극반 활동을 했던 죄로 나는 2010년 ‘희곡방’에 들어갔다.
수업 시간에 희곡 작품에 대해 발표하면 원우들은 대체로 미안하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다니는 내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죄송하지만 제가 희곡은 잘 몰라서…’ 라는 서두였다. 시/소설도 쓰고 희곡도 썼던 채만식, 김지하, 최인훈 같은 작가들로 발표하면 상대적으로 반응이 좋았다. 희곡방 선배들은 그런 상황에 이미 익숙했다. 그러니까 학위논문 발표회에서 ‘소품’이라고 안 쓰고 ‘오브제(objet)’라고 쓴 이유가 뭐냐, 겉멋으로 쓴 거 아니냐 라는 코멘트를 심사위원에게 들어야 하는 상황 말이다. 지도교수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희곡만 하지 말고 영화 시나리오도 연구하고, 텔레비전 드라마 방송대본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순(純)문학이라는 울타리에 갇히지 말라는 뜻이었다.
마이너 전공의 설움에 대한 토로가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나는 연극이 천하에 잡스럽기 짝이 없는 예술이라는 지도교수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문학은 언어라는 매체 안에서 순수하게 완성된다는 관념을 버리고, 언어가 공간과 육체와 빛과 타자들(관객)과 천하에 잡스럽게 얽어지며 만들어내는 어떤 것을 연구하고 싶었다. 안 위베르스펠트는 희곡을 ‘구멍 뚫린 텍스트’라고 불렀다. 완성되어 있지만 완성되지 않은 텍스트. 공간과 육체와 빛과 타자들이 들어오는 구멍을 열어놓고 기다리며 매번 다르게 상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향해 미끄러지는 텍스트. 나는 그것이 제법 퀴어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정작 대학원 과정을 다니는 기간 동안 한국의 퀴어희곡이나 퀴어연극에 대해 연구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 스스로 퀴어이고, 학내 퀴어 동아리가 배포한 무크지를 읽으며 대학을 다녔고, 친구들과 그렇게 퀴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국문과 대학원에서 퀴어연극을 연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 시절 내 개인의 삶과 연구자로서의 삶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커밍아웃에 대한 두려움, 퀴어 연구는커녕 젠더 연구도 한때의 유행일 뿐 문학 연구의 ‘본령’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국문과 대학원의 분위기, 한국 퀴어연극을 다루는 선행 연구(자)의 결핍, 아니 일단 한국에 퀴어연극이 얼마나 있어? 하는 의구심 등등.
발견
박사과정을 수료하기 직전, 연극계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다. 2018년이었다. 나는 운 좋게 ‘연극비평집단 시선’이라는 30대 연극 비평가들의 동인제 그룹에 필진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기성 평론지에서 다루지 않는 소극장 연극을 찾아다니는 동안 미투 운동이 연극계에 일으킨 지각변동을 실감할 수 있었다.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퀴어연극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연극반 활동을 하던 대학 시절에 왜 나는 이런 연극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나 생각했다.
연극은 필연적으로 퀴어한 장르다. 남자로 지정된 역할을 여자가 하기만 해도 성별 이분법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대학극은 실상 그런 균열과 진동이 더 많이 일어나는, 아니 일어났어야 하는 공간이었다. 프로연극처럼 작품에 등장하는 여자 수, 남자 수에 맞춰 배우를 모집하는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연극을 하고 싶다고 모인 학생들의 성비와 남성 중심적인 기성 희곡의 성비는 항상 어긋났고, 자주 크로스젠더 캐스팅이 일어났다. 하지만 <바람의 화원>(2008)마냥 여장한 남자를 여자가 연기하는 트랜스한 놀이의 가능성이 대학 시절의 우리에게 이미 풍부하게 주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포착하여 ‘퀴어한 연극’으로 만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니까 간극은 여기에도 있었던 셈이다. 내 안의 퀴어는 연극반에 도착하지 못했고 대학원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인생은 아름다워>(2010) 같은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렸고 <캐롤>(2015) 같은 영화를 보러 다녔다. 내 삶과 극장과 대학원 사이에는 투명한 분할선이 그어져 있었던 것이다. 퀴어가 연기될 수 있는 대상인지 아닌지, 퀴어가 연구될 수 있는 대상인지 아닌지를 가로지르는 선이었다. 어떤 용감하고 현명한 퀴어들은 내가 우두커니 서 있을 때 이미 그 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그 선은 2018년이 되어서야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바닥에 내던져진 그물처럼 깔려 있던 과거의 기억을 돌아보며 그제야 내가 대학에서 만들었던 연극과 대학원에 읽었던 희곡에 얼마나 많은 ‘구멍’이 뚫려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2023년부터 한국퀴어연극아카이브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며 다른 이들도 그런 구멍 뚫린 기억들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이는 반대 성별을, 어떤 이는 젠더리스한 사물을, 어떤 이는 인외종을 연기하면서도 그 실천에 잠재된 퀴어한 가능성들을 지나쳐 보냈다고 했다. 퀴어연극은 그렇게 선을 넘어간 시점에 뒤돌아보았을 때 덧마루에 붙은 야광별처럼 점점이 발견되곤 했다. 그런 발견을 통해 비로소 한국 퀴어연극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단지 아무것도 없는 암흑으로 상상되었던 1980년대의, 2000년대의, 1930년대의 시공간 속에서도 야광별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명멸
박사논문 주제를 1990년대 이후의 한국 퀴어연극으로 정하고 나서 연구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출간된 연극 잡지와 비평집을 샅샅이 뒤지거나 빅카인즈에 호모, 게이, 레즈비언, 동성애, 이반, 외설, 공연음란죄 같은 키워드를 넣고 하루 종일 검색을 돌리면 그 당시에 상연되었던 퀴어연극에 대한 정보를 건져낼 수 있었다. 나는 1990년대에 ‘퀴어 문제’를 다루거나 젠더프리 캐스팅을 하거나 복장 전환을 하거나 심지어 퀴어 당사자가 직접 출연하는 연극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사실에 흥분을 느꼈다. 그러나 내가 찾아낸 자료의 대부분은 원전에서 떨어져 나온 귀퉁이 같은 파편적인 자료이거나 호모포비아적인 시선에 의해 왜곡되어 있거나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하는 ‘소문’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연극은 확실히 소문으로 남는 장르이다. 조명이 꺼지면 그때 거기에 있었던 연극은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한국연극을 연구하는 선배들은 텅 비어 있는 원본의 자리에 접근하는 우회로를 만들기 위해 소문의 집을 짓곤 했다.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를 교차 검증하고, 현전하는 자료들로부터 추론될 수 있는 최선의 가설들을 세우고, 2000년대부터 국문학계에 수용되기 시작한 문화 연구의 방법론을 차용하여 텍스트보다 두꺼운 콘텍스트를 구축하는 식으로.
하지만 퀴어연극을 연구하는 작업은 그런 우회로를 경유하더라도 자꾸만 벽에 부딪혔다. 퀴어연극은 한 시대의 타임라인에 예기치 못하게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아니, 이 사람들이 누군데 갑자기 나타나서 이런 공연을 올렸지? 그리고 다 어디로 가버렸지? 그런 의문들이 속절없이 반복되었다. 매번 다른 극단, 다른 극장, 다른 작가, 다른 배우들… 출현의 맥락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전사(前史)와 후일담이 잘려 나간 실 토막들. 그래서 내가 수집한 한국 퀴어연극의 목록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째서 이런 주기와 패턴으로 밤하늘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지 알 수 없는 별들의 무리를 관측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가 절실하게 바라는 것은 그 해독하기 어려운 별자리를 함께 읽어가는 동료를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2010년대를 거치며 한국희곡이나 연극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희곡 전공은커녕 국문과마저 사라지고 있는 형편이고, 연극 학회나 비평계의 세대 구조는 역피라미드 형태로 수렴하고 있다. 대학이라는 기업은 연극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사람보다는 ‘문화콘텐츠’를 가르칠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 석사과정 시절 지도교수가 해주었던 조언이 침울한 예언으로 변질되어 가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는 기분이다. 한국 퀴어연극은 2018년 이후 하나의 씬(scene)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했지만, (간)학제적인 차원의 연구 역량을 필요로 하는 이 흥미로운 대상은 여전히 학술대회 특집이나 연구소에서 주최하는 콜로키엄, 아니면 현장 연극인들이 기획하는 좌담회 등을 통해 단속적으로 조명받고 있을 뿐이다.
한국 퀴어연극을 전공하는 연구자가 대학 내의 어느 학과에서 무슨 강의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경험상 내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와 주는 사람들은 연극학 쪽이 아니라 퀴어학 쪽 사람들이었다. 연극학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한국 퀴어연극에 대해 이야기하면 낯설고도 익숙한 반응을 겪게 될 때가 많다. “죄송하지만 제가 퀴어는 잘 몰라서...” 아마도 이런 일을 나만 겪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한국 퀴어영화사를 집필하는 작업에 참여하신 선생님을 내 발표에 토론자로 모신 적이 있었는데, 학회가 끝난 후 그 선생님께서 씁쓸한 투로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영화 쪽에서는 자기를 안 부르고 퀴어 쪽에서만 부른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퀴어학이 대안적이고 비판적인 학문으로서 존재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제도권 교육이 수립한 분과 학문의 체계를, ‘학과’와 ‘전공’과 ‘방’이라는 고립된 트랙을 횡으로 가로지르며 천하에 잡스럽기 짝이 없는 지식장을 만들어가는 일. 나는 과거에 퀴어연극을 만들었던 사람들과 지금 우리들의 처지가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래오래 밝게 빛나지 못하고 불규칙한 주기와 패턴으로 어두운 하늘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별들. 그렇게 우리들은 저쪽과 이쪽에서 서로를 응시하며 명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김민조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 현대희곡을 전공했다. 2018년부터 연극비평과 드라마터지를 병행하며 동시대 퀴어-페미니즘, 장애, 비인간 연극의 물결이 겹쳐지며 나아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한국퀴어연극아카이브에서 과거의 퀴어연극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아키비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정신장애인 연극 단체 미친존재감에서 아무거나 하고 있는 중이다.
창간호(2025.6.) l 퀴어 연구의 위치 l 기획 주제
명멸과 응시
김민조
간극
나는 국어국문학과를 다녔다. 내가 다닌 학과는 국어국문학이 국어학과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으로 나뉘어 있었고, 현대문학은 다시 시와 소설과 희곡으로 나뉘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를 전공한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선택하면 자연스럽게 시를 전공하는 사람이 되는 식이었다. 이공계의 ‘랩(lab)’에 대응하는 ‘방’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우리는 제각기 ○○○ 교수님 방 제자로 불렸다. 한국의 국문과 대학원은 대체로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학부 때 미친 듯이 연극반 활동을 했던 죄로 나는 2010년 ‘희곡방’에 들어갔다.
수업 시간에 희곡 작품에 대해 발표하면 원우들은 대체로 미안하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다니는 내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죄송하지만 제가 희곡은 잘 몰라서…’ 라는 서두였다. 시/소설도 쓰고 희곡도 썼던 채만식, 김지하, 최인훈 같은 작가들로 발표하면 상대적으로 반응이 좋았다. 희곡방 선배들은 그런 상황에 이미 익숙했다. 그러니까 학위논문 발표회에서 ‘소품’이라고 안 쓰고 ‘오브제(objet)’라고 쓴 이유가 뭐냐, 겉멋으로 쓴 거 아니냐 라는 코멘트를 심사위원에게 들어야 하는 상황 말이다. 지도교수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희곡만 하지 말고 영화 시나리오도 연구하고, 텔레비전 드라마 방송대본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순(純)문학이라는 울타리에 갇히지 말라는 뜻이었다.
마이너 전공의 설움에 대한 토로가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나는 연극이 천하에 잡스럽기 짝이 없는 예술이라는 지도교수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문학은 언어라는 매체 안에서 순수하게 완성된다는 관념을 버리고, 언어가 공간과 육체와 빛과 타자들(관객)과 천하에 잡스럽게 얽어지며 만들어내는 어떤 것을 연구하고 싶었다. 안 위베르스펠트는 희곡을 ‘구멍 뚫린 텍스트’라고 불렀다. 완성되어 있지만 완성되지 않은 텍스트. 공간과 육체와 빛과 타자들이 들어오는 구멍을 열어놓고 기다리며 매번 다르게 상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향해 미끄러지는 텍스트. 나는 그것이 제법 퀴어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정작 대학원 과정을 다니는 기간 동안 한국의 퀴어희곡이나 퀴어연극에 대해 연구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 스스로 퀴어이고, 학내 퀴어 동아리가 배포한 무크지를 읽으며 대학을 다녔고, 친구들과 그렇게 퀴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국문과 대학원에서 퀴어연극을 연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 시절 내 개인의 삶과 연구자로서의 삶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커밍아웃에 대한 두려움, 퀴어 연구는커녕 젠더 연구도 한때의 유행일 뿐 문학 연구의 ‘본령’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국문과 대학원의 분위기, 한국 퀴어연극을 다루는 선행 연구(자)의 결핍, 아니 일단 한국에 퀴어연극이 얼마나 있어? 하는 의구심 등등.
발견
박사과정을 수료하기 직전, 연극계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다. 2018년이었다. 나는 운 좋게 ‘연극비평집단 시선’이라는 30대 연극 비평가들의 동인제 그룹에 필진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기성 평론지에서 다루지 않는 소극장 연극을 찾아다니는 동안 미투 운동이 연극계에 일으킨 지각변동을 실감할 수 있었다.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퀴어연극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연극반 활동을 하던 대학 시절에 왜 나는 이런 연극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나 생각했다.
연극은 필연적으로 퀴어한 장르다. 남자로 지정된 역할을 여자가 하기만 해도 성별 이분법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대학극은 실상 그런 균열과 진동이 더 많이 일어나는, 아니 일어났어야 하는 공간이었다. 프로연극처럼 작품에 등장하는 여자 수, 남자 수에 맞춰 배우를 모집하는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연극을 하고 싶다고 모인 학생들의 성비와 남성 중심적인 기성 희곡의 성비는 항상 어긋났고, 자주 크로스젠더 캐스팅이 일어났다. 하지만 <바람의 화원>(2008)마냥 여장한 남자를 여자가 연기하는 트랜스한 놀이의 가능성이 대학 시절의 우리에게 이미 풍부하게 주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포착하여 ‘퀴어한 연극’으로 만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니까 간극은 여기에도 있었던 셈이다. 내 안의 퀴어는 연극반에 도착하지 못했고 대학원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인생은 아름다워>(2010) 같은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렸고 <캐롤>(2015) 같은 영화를 보러 다녔다. 내 삶과 극장과 대학원 사이에는 투명한 분할선이 그어져 있었던 것이다. 퀴어가 연기될 수 있는 대상인지 아닌지, 퀴어가 연구될 수 있는 대상인지 아닌지를 가로지르는 선이었다. 어떤 용감하고 현명한 퀴어들은 내가 우두커니 서 있을 때 이미 그 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그 선은 2018년이 되어서야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바닥에 내던져진 그물처럼 깔려 있던 과거의 기억을 돌아보며 그제야 내가 대학에서 만들었던 연극과 대학원에 읽었던 희곡에 얼마나 많은 ‘구멍’이 뚫려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2023년부터 한국퀴어연극아카이브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며 다른 이들도 그런 구멍 뚫린 기억들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이는 반대 성별을, 어떤 이는 젠더리스한 사물을, 어떤 이는 인외종을 연기하면서도 그 실천에 잠재된 퀴어한 가능성들을 지나쳐 보냈다고 했다. 퀴어연극은 그렇게 선을 넘어간 시점에 뒤돌아보았을 때 덧마루에 붙은 야광별처럼 점점이 발견되곤 했다. 그런 발견을 통해 비로소 한국 퀴어연극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단지 아무것도 없는 암흑으로 상상되었던 1980년대의, 2000년대의, 1930년대의 시공간 속에서도 야광별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명멸
박사논문 주제를 1990년대 이후의 한국 퀴어연극으로 정하고 나서 연구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출간된 연극 잡지와 비평집을 샅샅이 뒤지거나 빅카인즈에 호모, 게이, 레즈비언, 동성애, 이반, 외설, 공연음란죄 같은 키워드를 넣고 하루 종일 검색을 돌리면 그 당시에 상연되었던 퀴어연극에 대한 정보를 건져낼 수 있었다. 나는 1990년대에 ‘퀴어 문제’를 다루거나 젠더프리 캐스팅을 하거나 복장 전환을 하거나 심지어 퀴어 당사자가 직접 출연하는 연극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사실에 흥분을 느꼈다. 그러나 내가 찾아낸 자료의 대부분은 원전에서 떨어져 나온 귀퉁이 같은 파편적인 자료이거나 호모포비아적인 시선에 의해 왜곡되어 있거나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하는 ‘소문’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연극은 확실히 소문으로 남는 장르이다. 조명이 꺼지면 그때 거기에 있었던 연극은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한국연극을 연구하는 선배들은 텅 비어 있는 원본의 자리에 접근하는 우회로를 만들기 위해 소문의 집을 짓곤 했다.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를 교차 검증하고, 현전하는 자료들로부터 추론될 수 있는 최선의 가설들을 세우고, 2000년대부터 국문학계에 수용되기 시작한 문화 연구의 방법론을 차용하여 텍스트보다 두꺼운 콘텍스트를 구축하는 식으로.
하지만 퀴어연극을 연구하는 작업은 그런 우회로를 경유하더라도 자꾸만 벽에 부딪혔다. 퀴어연극은 한 시대의 타임라인에 예기치 못하게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아니, 이 사람들이 누군데 갑자기 나타나서 이런 공연을 올렸지? 그리고 다 어디로 가버렸지? 그런 의문들이 속절없이 반복되었다. 매번 다른 극단, 다른 극장, 다른 작가, 다른 배우들… 출현의 맥락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전사(前史)와 후일담이 잘려 나간 실 토막들. 그래서 내가 수집한 한국 퀴어연극의 목록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째서 이런 주기와 패턴으로 밤하늘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지 알 수 없는 별들의 무리를 관측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가 절실하게 바라는 것은 그 해독하기 어려운 별자리를 함께 읽어가는 동료를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2010년대를 거치며 한국희곡이나 연극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희곡 전공은커녕 국문과마저 사라지고 있는 형편이고, 연극 학회나 비평계의 세대 구조는 역피라미드 형태로 수렴하고 있다. 대학이라는 기업은 연극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사람보다는 ‘문화콘텐츠’를 가르칠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 석사과정 시절 지도교수가 해주었던 조언이 침울한 예언으로 변질되어 가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는 기분이다. 한국 퀴어연극은 2018년 이후 하나의 씬(scene)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했지만, (간)학제적인 차원의 연구 역량을 필요로 하는 이 흥미로운 대상은 여전히 학술대회 특집이나 연구소에서 주최하는 콜로키엄, 아니면 현장 연극인들이 기획하는 좌담회 등을 통해 단속적으로 조명받고 있을 뿐이다.
한국 퀴어연극을 전공하는 연구자가 대학 내의 어느 학과에서 무슨 강의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경험상 내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와 주는 사람들은 연극학 쪽이 아니라 퀴어학 쪽 사람들이었다. 연극학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한국 퀴어연극에 대해 이야기하면 낯설고도 익숙한 반응을 겪게 될 때가 많다. “죄송하지만 제가 퀴어는 잘 몰라서...” 아마도 이런 일을 나만 겪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한국 퀴어영화사를 집필하는 작업에 참여하신 선생님을 내 발표에 토론자로 모신 적이 있었는데, 학회가 끝난 후 그 선생님께서 씁쓸한 투로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영화 쪽에서는 자기를 안 부르고 퀴어 쪽에서만 부른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퀴어학이 대안적이고 비판적인 학문으로서 존재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제도권 교육이 수립한 분과 학문의 체계를, ‘학과’와 ‘전공’과 ‘방’이라는 고립된 트랙을 횡으로 가로지르며 천하에 잡스럽기 짝이 없는 지식장을 만들어가는 일. 나는 과거에 퀴어연극을 만들었던 사람들과 지금 우리들의 처지가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래오래 밝게 빛나지 못하고 불규칙한 주기와 패턴으로 어두운 하늘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별들. 그렇게 우리들은 저쪽과 이쪽에서 서로를 응시하며 명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김민조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 현대희곡을 전공했다. 2018년부터 연극비평과 드라마터지를 병행하며 동시대 퀴어-페미니즘, 장애, 비인간 연극의 물결이 겹쳐지며 나아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한국퀴어연극아카이브에서 과거의 퀴어연극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아키비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정신장애인 연극 단체 미친존재감에서 아무거나 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