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25.6.)]한국에서 퀴어 이론/번역하기: 경계적 존재가 살아남고 살아가는 그저 한 가지 방법

창간호(2025.6.)  l  퀴어 연구의 위치  l  기획 주제

한국에서 퀴어 이론/번역하기

경계적 존재가 살아남고 살아가는 그저 한 가지 방법

전혜은

 

 

“한국에서 퀴어 이론을 한다는 것, 성소수자/퀴어 의제와 관련한 번역 작업을 한다는 것”의 의미에 관한 글을 요청받았을 때 사실 나는 내가 그런 주제를 쓸 만한 자격이 못 된다고 생각해서 한 번 거절했었고, 지금도 조심스럽다. <한국에서/한국을 연구하기>라고 하면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조건을 날카롭게 인식하면서 글로벌과 로컬의 복잡한 지식 생산 지형에 비판적으로 개입하고 자신이 몸담은 공동체와 사회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 이론을 벼려 가는 훌륭한 연구자의 모습이 떠오르기 마련이고, 그런 롤모델에 맞는 분들이 퀴어 학계에 꽤 계시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나는 ‘한국에서 왜 퀴어 이론/번역을 하는가’란 질문에 내가 내놓을 수 있는 답이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밖에 없다는 걸 새삼 깨닫고 부끄러웠다.

한편으로 내가 이론과 번역에 천착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려면 내 삶을 지배해온 가난과 질병의 악순환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 가난한데 아파져서 매일 출근해야 하는 일자리에선 몇 번 쓰러지고 잘린 다음에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를 떠돌다 그마저도 아프면 못 하게 되고, 외부 일정 하루 나갔다가 아파져서 한두 달을 날려버리고, 교통비조차 없어 세미나 하러 가지 못하고, 누굴 만날 약속을 잡으면 나머지 나날은 식비를 최대한 줄여야만 하루 쓸 돈이 생기는 그런 일들이 이십여 년째 반복되는 동안 집 안에서 번역하고 글 쓰고 줌(zoom)으로 강의하는 일거리로 어찌어찌 연명하게 된 것뿐이다. 또한 왜 동시대 운동에 참여하는 대신 혼자 틀어박히게 되었는가에 답하려면 성폭력 생존자로서의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학부 시절 연애폭력 가해자 중 한 명이 졸업 후 퀴어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해서 여성주의 행사와 퀴어 행사마다 마주치게 된 이후로 단체 활동도 행사 참여도 포기하게 된 일, 그리고 여러 성폭력과 혐오폭력 경험이 내게 남긴 대인공포, 광장공포, 우울, 이십여 년째 매달 PMS 기간마다 들이닥쳐 현재에 대한 감각을 진탕 흔들어 놓는 플래시백 폭풍, 지금도 깊이 잠들지 못하고 전등과 소리를 켜놓지 않으면 매일같이 살해당하거나 칼에 찔리는 악몽을 꾸는 등의 지겨운 흔적들로 인해 어느 순간 집 밖에서 여러 사람과 부대끼며 하는 일들에서 물러나게 된 것뿐이다. 서울에서 못 버티고 지방으로 되돌아온 다음엔 퀴어와 페미니즘 관련 학술 행사 대부분이 서울에서 오프라인으로만 열리는 상황에서 매번 기차 타고 올라갈 돈과 기력이 없어 학문적 교류를 점차 포기하게 되었고 말이다.1

그리고 학계에 붙어 있는 동안 ‘아프고 가난한데 왜 대학원에 와?’, ‘아프고 가난하다면서 무슨 이론을 해?’ 같은 반응을 자주 받았는데(이해할 수 없지만 ‘이론을 하다니 건방지다’는 소리도 간간이 들었다), 사실 이론에 끌린 건 어릴 때부터 뭐든 순응하지 못하고 납득할 이유를 찾던 내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건강 문제로 인해 내게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성학 대학원 진학은 학부 때부터의 소망이기도 했지만, 대학 입학 직후부터 내내 일하다가 결국 건강을 잃고 일할 수 없게 되니 ‘좋은 대학 다니고 돈 벌어오는 착한 딸’이었다가 ‘쓸모없는 짐’으로 좌천된 상황에서 ‘이럴 거면 하고 싶은 일을 하다 죽자’는 생각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대학원에서도 돈 없고 아파서 휴학을 반복하며 졸업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사실 내 관심사를 공부할 거면 유학 가는 편이 좋았겠지만, 도저히 유학 준비 자금-생계비-학비-병원비를 같이 벌 방법이 없었고 만에 하나 간다 해도 건강 문제를 뒷받침할 자원이 없었기에 포기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유학을 포기하면 오히려 이론과 텍스트 분석이 연구 방법 중에서는 저렴한 축에 속했다. 질적 방법론 연구는 사람을 만나러 다니기 위해 돈과 기력이 필요하지만, 책과 논문은 학교 도서관을 통해 무료로 볼 기회가 있었고, 예측 불가능하게 아픈 몸에 맞춰 작업 속도를 조절하려면 혼자 일하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물론 유학도 다녀오지 못한 채 한국에서 학위도 늦게 딴 사람이 이론을 붙들고 있다는 건―그것도 아픈 사람의 느린 작업 속도로―경제적으로 회생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퀴어 이론 산책하기』는 아직 출판 부수가 다 안 팔려서 ‘군형법 92조의 6’을 ‘92조 6항’으로 잘못 쓴 부분을 못 고쳤다. 잘못된 정보를 전파해서 죄송합니다). 한참 박사논문을 못 쓰고 있을 때 내 상황을 대강 들은 한 교수님이 네가 독거노인이 되면 도시락 봉사로 한번 방문해 주겠다는 농담을 건넸던 것처럼, 나는 연구 대상은 될 수 있을지언정 연구 동료나 연구 주체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존재였나 보다. 하지만 내겐 통증과 증상에 휘둘리면서도 가급적 지속 가능하게 일할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아프고 가난하고 취약한 삶은 ‘어쩔 수 없음’으로만 이뤄진 것 같던 경로에서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이라면 지나쳤을 다른 방향으로 나를 열어줬다. 정밀 검사할 돈도 없어 진단명도 못 찾은 증상들로 아파하면서 꾀병 취급받아 온 경험은 나를 비가시적 장애와 만성질환에 대한 페미니즘적 논의의 탐구로 이끌었고, 퀴어와 페미니즘 이론・운동・공동체에서의 비장애 중심성에 대해 자각하게 해 주었다. 이는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긍심』2 과 피엡즈나-사마라신하의 『가장 느린 정의』3를 포함해서 퀴어-장애-페미니즘을 중심에 둔 교차성 운동과 연구들을 번역하고 탐구하고 소개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지배적 분류 체계에서 인정받는 명확한 범주에 맞지 않아 자기 자신을 설명할 언어도 없이 고립되는 체현들에 대한 고민은 인식가능성의 매트릭스에 대한 버틀러의 비판을 장애 문제로 확장하게 해 주었다. 지금도 아직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퀴어 이론과 장애학을 연결하는 작업과 퀴어 장애학 관련서들의 번역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런 맥락에서 내가 퀴어 이론과 번역에 천착하게 된 데에는 퀴어이자 아픈 사람으로서의 경험이 얽혀 있고, 아픈 퀴어로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얽혀 있다. 다른 사회적 소수자 운동들에서 나온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퀴어 이론은 사회 부정의에 맞서 현재의 세상 모습을 유지하는 지배적 가치체계와 인식틀을 해체하는 매우 저돌적인 담론적 저항 실천으로서 발전해 왔다. 내가 퀴어 이론을 통해 세상을 읽어내고 부정의에 대항하고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방법을 배웠다면, 이는 또한 아프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사회에 참여하는 한 가지 방법과도 맞닿아 있다. ‘침대에서 운동하기’의 계보는 수많은 아프고 장애가 있는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이어져 내려온 중요한 장애 운동 유산 중 하나다.4 내가 밖에서 왕성하게 관계 맺으며 활동할 수 없는 사람이니만큼, 내 현실 그리고 다른 소외된 이들의 현실을 뒷받침할 이론을 공부하고 소개하고 언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언어를 제공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 내가 사회에 연결되고 조금이라도 사회에 기여할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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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 내가 퀴어 이론과 번역에 천착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려면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구축하는 지배적인 이분법 틀 안팎과 사이를 방황하며 언어를 주워 담고 그때그때 입수 가능한 언어로 나-타자-세계에 대한 설명을 재구성해 온 퀴어 여행자로서의 경험이 큰 지분을 차지한다. 「‘아픈 사람’ 정체성」5에서 내비쳤듯 아픈 사람으로서의 내 삶이 컨디션이 정적이지 않고 어떤 하나의 범주로 깔끔하게 설명하기 어려워 계속 의심받고 자책하며 굴러왔듯이, 퀴어로서의 나도 그런 경계성(liminality)으로 얼기설기 바느질되어 있다.

늘 퀴어 가족이 갖고 싶었고 퀴어 커뮤에 속하고 싶었지만 거듭 실패한 중심에 섹스가 있고, 부치처럼 생겨놓고 깁도 잘 못하는 실패자에서 에이 스펙트럼에 속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대학에 와서 겨우 만난 커뮤니티들과 운동 담론에서조차 나 같은 사람들은 있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 늘 겉돌았던 경험들, 바이섹슈얼에서 팬섹슈얼로, 팬로맨틱으로 나 자신을 설명할 언어들을 찾아간 이십 년간 겪었던 그 모든 엉망진창인 관계들,

누군가와 사귀어 안정된 생활공동체를 만들기엔 어정쩡한 내 퀴어 체현들만큼이나 골칫거리였던 아픈 몸 상태와 경제적 곤란,

도무지 나 자신이 여성 같지 않았고 내 몸이 늘 이질적이었지만, 트랜스젠더들이 겪는다는 젠더 디스포리아는 훨씬 극심한 고통이라는데 나처럼 몸을 유령 취급하는 방식은 디스포리아까지는 아니지 않을까 고민하며 젠더 정체성을 섣불리 다르게 말할 수 없던 시절에서, ‘젠더퀴어’나 ‘논바이너리’라는 이름이 나 같은 사람도 접근 가능한 이름임을 비로소 알게 되기까지의 그 모든 방황,

이에 더해 신경다양성 운동을 나중에 접하고서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인간관계를 도통 읽지 못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던 조각난 장면들에 개연성이 생기기 시작했지만,6 신경다양인과 장애인이라는 이름을 쓰기에는 신경전형인과 비장애인처럼 기능하는 측면도 있는 데다 이런 이름들이 겪는 노골적인 차별과 억압을 비껴간 주제에 내가 감히 관계성을 주장해도 될지 여전히 고민 중인 이름들까지,

이처럼 서로 얽히고설키며 나란 사람을 이루는 수많은 경계적 체현이 나를 퀴어 이론들로 이끌었다. ‘liminal’이란 표현 그대로, 내 존재의 모든 것이 문턱에 걸려 있었다. 분명 ‘문턱’으로 불리는 공간은 명확하게 이름 붙여진 범주들보다 훨씬 더 넓고 광대한데도, 지배적 인식장에서 이 공간은 그저 문 ‘안’과 ‘밖’이라는 범주를 구분하기 위해서만 가시화될 뿐 항상 왜곡되고 텅 비어 보인다. 사실은 이분법적 범주에 맞지 않는 모든 존재가 밀려와 바글거리는 곳임에도. 그 수많은 실존이 유령 취급받고 그 수많은 목소리가 침묵 당하는 그 공간이 내가 느끼기에 내 거주지였다.

주로 명확한 이름과 집단적 정체성의 역사가 있는 성소수자들이 퀴어 이론을 만들어왔기에 이런 논바이너리한 체현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이론화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런 문턱 공간의 삶 또한 현실‘들’ 중의 하나임을 배운 것도 퀴어 이론을 통해서였다. 언젠가 다른 연구자가 ‘무성애’에 관해 쓴 글을 읽었는데, 내가 이전 글에서 고민했던 ‘비성애’란 용어7를 겨냥해 당사자가 아닌 학자들이나 쓰는 말이라고 일축한 걸 보았다.8 하지만 이는 누가 당사자냐 비당사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 사람에겐 ‘무성애’라는 이름이 그 사람의 현실에 충분했던 것뿐이고 내게는 유성애/무성애라는 구분이 에이 스펙트럼이라는 큰 우산 범주 아래서 내가 경험하고 겪어온 나의 현실을 담아내기에 매우 애매한 이름이었던 것뿐이다. 스스로를 퀴어로 정체화하는 이들조차도 자신이 이해 못 하는 이름이 있다면 그건 그런 이름으로 자신을 감각하고 고민하는 다른 퀴어들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라는 것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차이는 서로에게 불투명하게 남아 있으니까.

나는 이 이해 불가능성을 차별과 배제로의 귀결이 아니라 각기 다른 현실을 인정하는 열린 결말로 안내해 줄 언어를, 불투명한 것을 불투명한 대로 설명할 언어를, 내가 도무지 맞출 수 없는 틀을 전제 조건이 아닌 심문 대상으로 탐구할 이론을, 그래서 이렇게 늘 어딘가 사이에 끼어 있어서 ‘나는 레즈비언이다’ 같은 멋진 커밍아웃은 하지 못하고 그렇게 확신에 찬 단단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꿔 나가는 운동에 합류하기 어려운 그런 체현들이 있을 자리도 마련해 주는 이론을 찾고 읽다가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시스젠더 이성애 규범적이고 가부장적인 지배적 문화 각본은 물론 퀴어 문화의 주류 담론―남성/여성, 남성적/여성적, 동성애/이성애의 이분법이 아직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고 유성애 중심적인―에서도 자주 ‘비현실’의 자리로 밀려나는 다른 현실들에 언어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이처럼 당사자들의 ‘나 여기 있다’는 선언 말고는 모든 언어가 계속 모래에 파묻히는 듯한 모호한 곳에서, 숟가락으로 굼뜨게 모래알을 퍼내고, 다른 곳에 쓰이던 이론적 도구들을 가져와 재조립해서 여기에 맞을 다른 용도를 개발하려 애쓰는 일이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작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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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퀴어 이론/번역에 매진했다고 거창하게 말하기엔 성과가 별로 없어 부끄러울 뿐인데, 작업 속도가 너무 느리다 보니 이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순간이 올는지 잘 모르겠다. 매번 통증에 찌들어 이번 작업을 끝으로 실명하면 어쩌나 두려움 속에서 일하면서 내 눈이 언제까지 보일지, 생계비도 못 버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이걸 하는지, 내가 내년에도 살아서 계획한 번역서와 이론서와 논문들을 다 낼 수 있을지, 겨울에 했던 우리개 암 표지 검사 결과가 안 좋았는데 암이라도 걸리면 동물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늘 막막한 걱정들이 내 흐리고 얼룩덜룩한 시야처럼 앞을 가리고 있다.

더욱이 이 글을 쓰는 동안 고질적인 혈연 가족 문제가 또 터지고(이 나이까지 연을 못 끊어서 전혀 퀴어 라이프스럽지 않은 인생…) 갑작스레 이사 가야 할 상황이 터지면서 생계 불안과 주거 불안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우리개 양치시키다 입술 안쪽에서 종양 덩어리를 발견해서 글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더 모르게 되었다. 그저 왓슨이 살아있을 때까지는 나도 살아야지 하는 생각만 붙들고 있었으나 좀 전에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예비 선정에 떨어진 걸 확인했고 올해 생계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돈 한 푼 없는데 지금 내 앞에는 당장 개 산책 이외의 모든 시간을 쏟아 부어 매진해야 하는 일들이 쌓여 있고, 그 일들은 죄다 출간 전까지 돈 없이 일해야 하는 번역서 작업과 돈 내고 투고해야 하는 논문 작업 같은 것뿐이다. 생계를 유지하려면 한 학기에 강의 3개는 뛰어야겠지만 내 몸 상태로는 한 번에 1개도 겨우 버티는데, 지난 학기까지 강의했던 곳은 강사법 3년 제한으로 끝났고 다음 학기 강사 지원한 곳은 어찌 될지 모른다. 지금부터 내년까지 정기적으로 돈 들어올 곳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역시 만성 우울러답게 내가 죽는 게 가장 저렴한데 하는 생각이 몸 곳곳을 파고들지만 당장 오늘 죽을 게 아니라면 마감은 쳐야 한다.

이것도 ‘아프고 가난한 주제에 퀴어 이론/번역을 한다는 것’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일까. 가난하고 주변화된 사람들은 ‘너는 사례로서만, 연구 대상으로만 쓸모 있을 뿐 연구 주체는 될 수 없다’는 취급을 계속 받고 연구 주체로 살아 있을 길은 계속 가로막힌다.

이 글을 쓰는 내내 개인적 악재가 터져서 글이 신파로 빠지지 않도록 계속 지우고 고치고 하느라 마감 시한을 훌쩍 넘기는 폐를 끼치고 말았는데, 이제는 진짜로 글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원래는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그 시간 동안 내가 쓰고 번역하는 글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다”는 말로 끝내고 싶었으나 지금은 그마저도 욕심 같고. 그나마 이 글의 쓸모를 찾자면 대학 진학을 계기로 서울로 올라온 지방 출신 퀴어가 가난, 주거 불안, 성폭력과 각종 혐오폭력이 뒤엉킨 위태로운 삶 속에서 건강을 잃은 뒤 가난하고 아픈 ‘주제에 감히 이론 한다고 나대는’ 연구자로 살아가려 애쓰는, 여러모로 딱 맞는 자리가 없는 경계적 위치에서 지식노동자로 살아가는, 어떤 한국적 맥락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민족지적 사례로라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전혜은

퀴어 페미니즘 장애학 연구자. 단독 저서로 《섹스화된 몸: 엘리자베스 그로츠와 주디스 버틀러의 육체적 페미니즘》(2010)과 《퀴어 이론 산책하기》(2021), 공저로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2018)를 썼고 《망명과 자긍심》(2020), 《가장 느린 정의》(2024)를 함께 번역했다. 아픈 사람, 퀴어, 장애, 행위성,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쓰고 번역하고 강의한다.

  1.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온라인 강연이나 세미나의 기회도 열렸지만, 여전히 학술대회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술 행사가 오프라인만 고집하고 있으며 온오프 동시 진행을 열어 놓는 행사에서도 음향 관리가 안 되어 소리 전달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자막을 지원하지 않는 경우는 더 많다. 따라서 지방 거주자 그리고/또는 아프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퀴어 학술 교류의 접근성 문제가 심각하다.

  2. 일라이 클레어(2020), 『망명과 자긍심: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 전혜은, 제이 옮김, 서울: 현실문화.

  3.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2024), 『가장 느린 정의: 돌봄과 장애정의가 만드는 세계』, 전혜은, 제이 옮김, 서울: 오월의봄.

  4. 프리다 칼로, 글로리아 안잘두아, 오드르 로드, 이브 코소프스키 세즈윅 등 유명한 퀴어/유색인/페미니스트들도 이 계보에 속해 있고, 내가 공역한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나 요한나 헤드바 등 좀 더 명시적으로 아프고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퀴어/페미니즘/계급/인종/장애 운동을 진행하는 이들이 이 계보를 장애 운동의 일환으로 가시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요한나 헤드바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Johanna Hedva, “Sick Woman Theory”, 2020. 한글 번역본인 요한나 헤드바, 「아픈 여자 이론」은 off-magazine.net/TRANSLATE/hedva.html에서, 원문은 여기서 다운받을 수 있다. https://www.kunstverein-hildesheim.de/assets/bilder/caring-structures-ausstellung-digital/Johanna-Hedva/cb6ec5c75f/AUSSTELLUNG_1110_Hedva_SWT_e.pdf)

  5. 전혜은(2018), 「‘아픈 사람’ 정체성」. 전혜은, 루인, 도균,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 서울: 여이연, 115-161.

  6. 돌이켜보니 웃기게도 초-중-고-대-대학원까지 모든 단체 생활에서 왕따를 겪긴 했지만 이게 내 신경다양적 측면 때문인지 아니면 퀴어라서, 가난하고 아픈 사람이라서 겪게 된 것인지 구별 불가능하게 얽혀 있어 이에 대해서는 좀 더 개인적인 탐색이 필요할 것 같긴 하다. 어쨌든 난 ‘이상한 애’였다.

  7. 전혜은(2018), 「장애와 퀴어의 교차성을 사유하기」, 전혜은, 루인, 도균,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 서울: 여이연. 68-69쪽, 각주 49.

  8. 한편 그 연구자 분은 내 글과 내 글에서 인용했던 학자들의 논의를 상당 부분 가져오면서도 마치 자기가 오롯이 생각한 것처럼 교묘하게 주장을 펼치시고는 내 글에서 딱 한 가지 사례만 인용 표시로 가져오셨던데, 이런 식의 애매한 전유는 퀴어 학계에서 간간이 드러나던 문제이긴 하다. 더 심하게는 내가 강의했던 내용을 아무 말도 없이 자기 석사논문의 이론적 배경 부분에 고스란히 써놓곤 내가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자 적반하장으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한 사람도 있었다(그 사람도 퀴어였다). 어쨌든 당시 내가 알게 된 건 나 말고도 이런 일을 겪는 비정규직 지식노동자들이 꽤 많다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픈 주장이 남이 이미 언급했던 논의나 아이디어와 겹칠 때 어떻게 선행연구를 제대로 인정하고 인용하면서 그걸 보완하고 확장하는 방향으로 내 주장을 개진할 것인가’하는 연구 윤리에 대한 논의와 자정이 퀴어 학계에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