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25.6.)]용주골 투쟁: 실패와 무력감의 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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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골 투쟁

실패와 무력감의 광장에서

손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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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 투쟁은 성공하기 어려운 싸움이라고들 한다. 잘하면 보상을 받을 수는 있겠으나 물리력과 법적 논리로 무장한 채 밀려 들어오는 재개발 과정 자체를 막아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이겨야 본전인 지난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성매매 집결지 강제폐쇄에 저항하는 성노동자들의 투쟁은 더욱 그렇다. 파주시장이 파주시의 성매매 집결지인 ‘용주골’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한 2023년 1월 이후로, 파주시청은 행정력을 동원해 갖은 방법으로 용주골 성노동자들의 생존 기반을 해체하고 있다. 여기서 갖은 방법이란 단순히 단속의 강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파주시청은 공무원과 파주 시민을 동원해 용주골 골목들을 행진하고 둘러보면서 용주골의 성노동자들을 압박하는 ‘여행길(여성이 행복한 길)’1, 용주골 출입을 감시하면서 손님을 차단하는 ‘올빼미’ 활동을 각각 낮과 밤에 진행하고 있다. 또한 용주골의 업소들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 오래전에 시청 주도로 설치되었던 펜스들이 민원 유도를 위해 강제로 철거되었고, 업소 바로 앞에는 CCTV들이 설치되었다. 최근에는 시세 이상의 값으로 용주골의 건물들을 사들이는 ‘거점 매입’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렇게 사들인 건물 중 하나는 ‘성평등 파주’라는 반성매매 교육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용주골에 연대하러 갈 때마다 점점 더 많은 건물이 허물어져 없어지고 있었다. 거점 매입이 시작된 이후부터는 건물주들이 시청에 협조하게 되면서 더 빠른 속도로 건물들이 허물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시청의 지속적인 압력에 적지 않은 성노동자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용주골을 떠나고 있었다. 좋지 않은 상황인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용주골 투쟁에 참여하고 연대하고 있는 이들 중에 앞으로 상황이 점점 나빠질 것이라고 어렴풋이나마 생각하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행정대집행을 막기 위해 철거 대상으로 지목된 업소 안에서 버티고 있는데 사람을 배치하지 못한 바로 옆 건물이 부서지는 것을 보면서 별다른 행동을 할 수 없었을 때, CCTV 설치를 저지하기 위해 성노동자 한 분이 건물 4층 높이의 전봇대 위를 영하의 날씨에 맨몸으로 올랐는데 공무원들이 이분을 보호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 때처럼 어떠한 무력감이 느껴지는 순간마다 이러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하나의 장면이 있다. 용주골에 연대자들이 처음으로 모였던 날, 여행길 행사에 항의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하고 골목 끝에서 다른 연대자들과 피켓을 들고 여행길 행렬을 기다리고 있었을 때였다. 용주골의 성노동자 자치조직인 자작나무회의 구성원들은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여행길 행렬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여행길 행렬은 자작나무회와 연대자들을 마주하자마자 바로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어떠한 충돌이나 아수라장도 없이 조용히 발걸음을 돌릴 뿐이었다. 그 순간 연대자들은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면서 행렬을 뒤쫓으며 항의했다. 의도하거나 계획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거의 모두가 용주골에 처음 와본 이들이었음에도, 여행길 행렬이 자신들 앞에 무릎 꿇은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지나치려 하자 연대자들은 순식간에 뛰쳐나갔다. 나는 이날 이후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득달같이 용주골으로 향했다. 다른 연대자들에게도 꼭 이날이 아니더라도 몸이 먼저 반응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순간들은 각자의 몸에 어떠한 의무감, 책임감 같은 것을 새겨두었고 이것들은 각자에게 서서히 쌓였다. 다행히 큰일이 없는 날이면 <용주골 성노동자 지킴이 농성장>2에서 주방 이모들이 해주신 비건 반찬들로 식사도 하고, 펨 부치 농담을 하루 종일 하기도 하고, 서로의 이상하고 내밀한 이야기들을 꺼내 보이기도 했다. 용주골은 이상한 연대자들에게도 소중하고 중요한 공간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몇 번이고 용주골을 지키려고 모였다.

용주골 투쟁에는 반복적인 무력감의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성노동자라는 이유로 발언의 자격조차 얻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이 느껴지는 상황에서 찾아오는 무력감은 동시에 연대자들이 용주골의 주민들과 강하게 연결되는 순간이 된다. 자작나무회의 꿇어앉은 무릎, 전봇대 위로 오른 성노동자의 맨몸, 바로 옆집이 철거되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 어느 성노동자의 집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성평등 파주’ 따위를 지었다는 소식이 전해져온 것. 이러한 순간들을 목격한 연대자들은 ‘함께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무거운 감각을 느끼게 되지만, 이는 순식간에 연대자들을 용주골이라는 공간에 얽혀 있는 삶의 흔적들과 연루시키며 이들에게 책임감을 불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라는 점, 상황이 좀처럼 좋아지지 않으리라는 예감은 오히려 연대자들로 하여금 이 자리에 머물게 하는 이유가 된다. 무력감 속에서도 계속해서 이곳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감응의 힘이 이 투쟁을 지속시키고 있다.

 

2

용주골 투쟁 현장에서 어떠한 구체적인 행위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매달리기, 무릎 꿇기, 소리 지르기, 뛰쳐나가기, 계속 머무르기,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목격하기. 이러한 것들이 정치적인 사건으로 명명되기 위해서는 이를 의미화할 수 있는 틀이 필요하지만, 정치와 연대를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간의 ‘이성적’이고 ‘전략적’인 합의로 보는 틀을 통해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어려움은 이러한 틀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붙어 있는 어떠한 감정을 설명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어떤 느낌이 드는지보다 그 기획에 사람들이 얼마나 헌신하는지, 또 기획에 헌신하는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동일시하고 있는지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3

그러나 용주골 투쟁 현장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시피, 몸의 구체적인 감각과 정동적 경험, 정동적 실천은 어떠한 순간에 정치적인 것이 될 수 있다.4 나흘간 진행되었던 동절기 행정대집행5이 끝나던 지난해 11월 28일, 용역들이 퇴근 시간에 맞춰 철수하던 순간 우리가 지키려던 업소 하나를 끝내 지켜냈다는 생각에 업소 안팎에 있던 모두가 서로를 안고 박수를 치며 환호를 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때 한 해가 마무리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관련 예산이 소진되어 한 해의 행정대집행이 28일부로 끝이 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 순간을 계기로 용주골에서의 경험들이 내 몸에 아로새겨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따라서 용주골이라는 공간이 끝끝내 없어지더라도 그 흔적을 내 몸에서 찾아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는 용주골 투쟁이 단순히 성공과 실패로, 또한 그 성공과 실패를 각각 공간의 온전한 보존과 공간의 완전 철거로 치환하는 식의 논의로는 충분하게 이야기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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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8일, 나흘 간의 행정대집행이 마무리되던 날의 사진. 용역들이 철수하던 순간, 30호 집을 지켜냈다는 생각에 환호하고 박수 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조예지


각자의 삶에 흐르고 있는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의 원인을 서로가 완전히 지워줄 수는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들, 그리고 거기서 오는 고통을 없던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방법이나 그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는 함께 스치며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 정체성의 결속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순간의 감응, 잠깐의 공명 같은 것을 통해서 투쟁에 연루된 정치적 주체는 목적이나 “합의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실용적 측면들을 상상해 내는 일”이 아니라 “바로 연대 자체를 몸으로 만들어가는 과정”들에 연대하고 헌신한다.6 연대는 어떠한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함께 조응하고 머무르며 책임지는 방식 그 자체를 통해서 정치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요한 것은 목적이나 전제 조건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의 현재에 존재하는 순전한 중간성(mediality)”, 즉 분명한 언어로 의미화할 수는 없으나 이미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순간이다.7

정동을, 세계를 읽고 해석하고 반응하는 독해의 한 양식8이라고 이해할 때, 용주골 투쟁에서 느껴지는 정동은 지금의 세계에서 용주골과 그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규정되고 있으며 이러한 규정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구체적이고 정확한 답을 내리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응답할 수 있게 한다. 폭력적인 방식으로 용주골의 사람들을 침묵시키고 계속 실패하게 만드는 세계 속에서, 용주골에 모여서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자리를 지키면서 삶을 계속 살아 나가기 위한 조건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실천을 통해 용주골 투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세계를 포기하지 않고 다른 감정적 방식으로 응답하고자 한다. 상처를 안고도 세계와의 관계를 지속하려는 태도, 그러니까 이러한 세계 속에서도 계속 살아보겠다는 애착은 기존의 틀로는 포착되지 못하는 것이지만 삶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자 윤리적 관계 맺기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러한 실천은 세계가 부서지는 가운데에서 작고 미미해 보일 수 있으나 당장의 가시적인 변화나 확실한 성공만이 저항이고 정치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항이나 정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감정들과 투쟁의 잔여들이 세계와 다른 방식으로 관계 맺을 수 있는 경로를 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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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골이 결국에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가 용주골에서 만들었던 순간들까지 사라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나는 용주골에서 만들어진 그 정동적 순간들을 통해서 지금의 운동과 투쟁에 건넬 수 있는 중요한 말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용주골 투쟁은 무력한 상황을 당장 해결하고 타파할 수 있는 정치적 프로그램을 제시해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왜 계속해서 무력감 속에 함께 머무르고자 하는지를 보여준다.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현장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투쟁은 우리 주변에 많지 않다. 오히려 무력감과 절망이 지천으로 널려있어 발에 채는 곳이 더 많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자부심과 성공의 경험으로 설명하는 탄핵 광장에서조차 수많은 무력감과 실패가 있었고 이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광장을 성공의 경험으로만 기억하는 이야기는 퇴행과 실패의 경험을 성공의 서사 속에 포섭하면서 사실상 그것을 광장 바깥으로 밀어내고 광장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나 용주골은 이미 광장이었다. 용주골의 사람들 앞에 나타난 순간들이 정치적인 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성공하고 승리할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이 사람들을 오히려 그곳에 머무르게 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광장으로 호명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다. 사람들이 용주골에서 실패의 감각을 바탕으로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읽어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광장에 있던 이들의 몸에 새겨진 것으로서 결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손숙영

서울대학교 여성학협동과정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용주골 투쟁, 미아리 텍사스 투쟁에 연대하면서, 여성학 연구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려고 한다.

  1. 여성이 행복한 길이라는 이름의 행사가 열렸던 첫 번째 날, 여행길 행렬은 ‘여성인권 지킴이’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한 손에는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보라색의 풍선을 들고 행진했다. 이는 용주골의 성노동자들이 단지 용주골이라는 공간에서만 쫓겨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2. 갑작스러운 행정대집행에 대응하기 위해, 용주골 현장 연대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성노동자 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가 2024년 1월경 개소했다. 농성장은 9월경까지 이어지다, 파주시의 압박을 받은 건물주의 요구로 더 이상 해당 건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폐쇄되었다. 폐쇄 전까지 농성장은 연대자들에게 또 다른 집이 되어주었다.

  3. 벌렌트, 로렌(2024), 『잔인한 낙관』, 박미선·윤조원 역, 서울: 후마니타스. 412-413쪽.

  4. 벌렌트, 로렌(2024), 『잔인한 낙관』, 박미선·윤조원 역, 서울: 후마니타스, 464-465쪽.

  5. 동절기 강제퇴거 혹은 강제철거는 한겨울에 맨몸으로 집에서 쫓겨나는 것을 의미하므로 최소한의 인도적 차원에서 통상적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서울시에서는 ‘동절기 강제철거 금지 원칙’을 만들어 따르고 있다. 그러나 파주시의 경우 해당 원칙은 서울시 지역에만 해당되는 내용이라며 동절기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다.

  6. 벌렌트, 로렌(2024), 『잔인한 낙관』, 박미선·윤조원 역, 서울: 후마니타스, 464-465쪽.

  7. 벌렌트, 로렌(2024), 『잔인한 낙관』, 박미선·윤조원 역, 서울: 후마니타스, 464-465쪽.

  8. 허성원(2023), “퀴어, 정동, 자유─신자유주의 시대의 자유와 정치에 대한 퀴어 비평”, 『안과밖:영미문학연구』, (55): 113-153, 1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