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25.6.)]비판적 퀴어 연구의 구축과 과제 (上)

창간호(2025.6.)  l  퀴어 연구의 위치  l  라운드테이블

비판적 퀴어 연구의 구축과 과제 (上)


본 라운드테이블은 2024년 7월 19일 성소수자 대학원생/신진연구자 네트워크가 개최한 제1회 학술대회 "한국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과거, 현재, 미래"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정성조 오늘 라운드테이블은 <비판적 퀴어 연구의 구축과 과제>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근래에 퀴어, 성소수자 연구로 박사논문을 쓰고 졸업하신 선생님들께서 어떤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연구를 해오셨는지, 그리고 현재 퀴어 연구의 중요한 쟁점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네 분의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역사문제연구소의 김대현 선생님, 트랜스/젠더/퀴어 연구소의 루인 선생님,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오혜진 선생님,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임동현 선생님입니다.

먼저 박사논문을 준비하시면서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셨는지 여쭙는 것으로 이야기를 열어보려 합니다. 속해 계신 학제마다 문제의식을 벼리는 방식도 달라질 텐데요. 퀴어 연구 혹은 성소수자 연구라는 영역과의 연관 속에서 본인의 연구를 어떻게 위치시키고 계셨는지도 함께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김대현 선생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역사학을 전공하시면서 해방 이후 25년 정도 동안 반사회성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식으로 한국 사회에 자리 잡았는지 연구하셨는데요. 박사논문의 문제의식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대현 안녕하세요, 김대현입니다. 박사논문을 3분 안에 이야기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웃음). 저는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이자 인권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역사학 출신의 연구자인 거죠. 한국사로 퀴어를 쓰느라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고 보니, 절대로 퀴어‘만’ 가지고는 논문을 쓸 수 없었던 사정이 존재했습니다. 그렇게 쓸 수 있었으면 참 좋았겠지만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이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제가 반사회성이라고 했던 게 뭐냐 하면, ‘뭘 할 것 같은 자들’을 잡아넣는 거예요. 개연성 처벌이라고 하죠.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 같은 거죠. 예전에는 사상범을 주로 얘기했어요. 그런데 살펴보니 ‘우범소년’, 그러니까 범죄를 저지를 것 같은 소년을 말하는데 지금도 <소년법>에 존재하는 법 규정이고요. 그다음에 과거 존재했던 <윤락행위등방지법>에 성매매할 것 같은 여자, ‘요보호 여자’라는 개념이 존재합니다.1 이런 것들을 보안처분이라고 하는데요. 이 보안처분의 원류 중의 하나가 나치 독일의 동성애자 거세 조치였습니다. 연관이 되어 있는 거죠. 이렇게 반사회성이라는 게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연구하는 것이 하나의 줄기였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퀴어를 충분히 다루기 어려우니 더 살펴본 지점이 있는데요. 이렇게 반사회성을 가진 사람, 보안처분의 대상으로 상정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병리화 됩니다. 타자화, 병리화, 대상화가 되는데, “이 사람들은 뭔가 하자가 있기 때문에 처벌할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을 위한 복지를 해야 된다”는 논리로 개연성 처벌을 했던 거예요. 복지란 원래 더 너르게, 요보호 아동처럼 더 너른 대상으로 복지를 하면 좋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복지가 스리슬쩍 처벌로 넘어가고, 사법이 공법으로 넘어가면서 더 너르게 처벌하는 식으로 복지적 사법이 나타나게 되죠. 

여기에는 병리화의 논리가 들어가게 됩니다. 대표적인 게 “잘못 태어나서 그렇게 됐다”는 거고, 두 번째는 “잘못 길러져서 그렇게 됐다”는 거고요. 전자가 우생학이고, 후자가 정신분석학입니다. 둘 다 퀴어를 탄압하는 데 아주 요긴하게 사용됐던 학문이거든요. 그런 부분이 당시 반동성애 이데올로그들에서 굉장히 많이 나타났고, 이를 추적해 보니까 저 두 가지의 학지를 만나게 된 거죠. 결국 이러한 전체적인 지형을 살펴보면서 성 규범이라는 말이 들어가게 되었고, <성 규범의 지식·제도와 반사회성 형성>이라는 제목으로 퀴어를 묻힌 역사학 박사논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정성조 김대현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퀴어라는 존재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는 문제, 그 기원을 여러 측면에서 밝히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비슷한 고민이 있으실 것 같아 이어서 여쭤보겠습니다. 루인 선생님께서는 예전부터 국가의 폭력이나 범주의 문제에 천착해 오셨는데요. 관련해서 선생님의 연구를 어떻게 위치시키고 계신 지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루인 제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떻게 실패하고 망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논문 쓰기가 망한다”는 이야기에 가까워요. 사실 저는 제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가 하는 고민을 주야장천 하고 있어요. RISS와 도서관을 폭파하는 게 저의 과업이고요(웃음). “왜 실패했는가?” 이건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기는 합니다. 

제가 다뤘던 주제는 한국에서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을 어떻게 모색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기록을 쭉 살펴보는 작업을 했는데요. 가장 고민했던 건, 아마 퀴어 연구로 논문을 쓰시는 분들이라면 비슷한 고민을 하실 텐데, “사람들이 알고 있는 걸 어떻게 모른다고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저는 제가 이 부분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니까 트랜스젠더퀴어와 페미니즘 사이의 관계와 관련해서, 어떤 지점에서는 사람들이 이미 다 안다고 가정하고 있는데, 사실 무엇을 안다고 인식하는지, 그래서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거나 논의가 완료되었기에 그다음을 논의해야 한다고 믿음으로써 트랜스젠더퀴어와 페미니즘 사이의 관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는가를 질문하는 것을 설득할 것인가가 저의 주요 고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98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의 시대적 변화를 탐색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라는 측면을 어떻게 논의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충분히 답했는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과 관련한, 현재 시점에서 가장 큰 질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이미 안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모른다고 이야기하면서 다시 알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 그러한 딜레마 사이에서 어떻게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을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만들 것인가? 그런 고민을 했습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고민이라 이렇게 두서없이 말씀드리게 됩니다.


정성조 낯설게 만들면서 동시에 익숙하게 만들기라는 작업이 퀴어 연구의 중요한 문제라는 말씀이군요. 이와 관련해서는 뒤에서 이어질 질문에서 퀴어 정치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오혜진 선생님께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한국 문학에서 나타나는 여성과 퀴어의 시민권과 관련해서 여러 문제를 검토하고 계시는데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선생님의 연구를 어떻게 위치시키고 계신지요?


오혜진 저는 올해 초 <포스트페미니즘 시대 한국 여성문학·퀴어문학 연구―2010년대 이후 시민권 담론과 소수자정치>라는 긴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아직도 제 논문 제목을 외우지 못해서 말할 때 꼭 보고 읽어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 문학장에서 여성 문학과 퀴어 문학이 가부장적이고 이성애규범적인 한국 문학장의 분위기를 단번에 바꿀 수 있는 새로운 흐름처럼 부상했는데요. 제 문제의식은 ‘정말 페미니즘과 퀴어 정치학이 그와 같은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급진성을 충분히 담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이른바 ‘여성 서사 열풍’이 불었는데요. 그 여성서사의 주인공으로는 대부분 수도권에 거주하며 대학 교육 이상을 받았고, 화이트칼라 직종에 종사하는 중산층 여성이 등장해요. 그래서 이즈음의 ‘여성 서사’라는 것이 중산층의 에토스를 재생산하는 데 특화된 장치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퀴어문학 역시 그러한데요. 최근 퀴어문학은 예전처럼 성소수자를 범죄자나 사회 부적응자로 묘사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세속적인 욕망을 지닌 채 제도권 안으로, 즉 정상성의 틀로 편입하려고 애쓰는 모습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여성 정치나 퀴어 정치학과 같은 소수자 정치가 한편으로는 평등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적인 계급화를 고착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두 가지의 모순적인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적 평등’과 ‘성적 시민권’ 또는 ‘퀴어 시민권’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시민권 정치’라는 건 그저 “동성애자도 시민으로 인정해라”라는 뜻일 수도 있지만, 시민권을 구성하는 이성애규범적 제도와 사회를 퀴어링하는 것도 시민권 정치의 일환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실은 ‘성적 시민권’이라는 단어를 논문 제목에 쓰고 싶었는데요. “성적 시민권이라는 단어는 박사논문 제목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성적이다. 좀 그렇다.”라는 일부 의견이 있어서 지금과 같은 제목이 됐습니다(웃음).

저는 박사논문을 쓸 때뿐만 아니라 국어국문학과에 속해 있는 내내 “너는 연구를 하는 거냐 활동을 하는 거냐” 하는 질문을 계속 받았어요. 물론 세련된 연구자들이야 그런 질문을 하지 않지만, 소위 ‘전통적인’ 연구자들이 그런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편으로는 활동가들한테 미안한 마음도 들었는데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은 왜 활동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면서, 연구와 활동의 이분법을 흔들어보려는 저만의 야심을 키우게 됐어요. 제 논문 자체가 국문학, 여성학, 퀴어 정치학과 운동 현장이라는 여러 분야에서 골고루 영향을 받았고 또 골고루 쓰임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걸 ‘간학제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아무튼 제 논문이 꼭 국문학 카테고리에 배치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습니다.


정성조 시민권과 관련한 여러 쟁점을 제기해 주셨는데요. 특히 최근 퀴어의 욕망이 이를테면 소비주의적이거나 비정치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에 대해 언급해 주셨습니다. 임동현 선생님은 게이 커뮤니티가 온라인 매체를 통해서 형성되어 온 과정을 분석하시면서 이러한 문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고 계신데요. 이어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임동현 저는 커뮤니케이션 학제에서 문화 연구를 전공했습니다. 박사논문 이전부터 제가 가졌던 문제의식은 연구나 언론에서 나오는 담론이 게이 커뮤니티를 충분히 잘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거였어요. 저는 어렸을 때 종로나 이태원에서 이른바 ‘데뷔’라는 걸 하고 재미있게 살았어요.2 석사 과정에 들어가고 좀 우울해지면서 잘 안 나가게 되기는 했지만요. 지금까지도 그때 친구들하고 굉장히 많이 어울려 노는데요.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라는 책을 보면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3 내가 게이였기 때문에 다른 계층의 사람들과 많이 어울릴 수 있는 일정한 기회 구조가 있었다는 이야기요. 그런 면에서 저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다양한 계층의 친구를 만나면서, 앞서 말한 담론들과 제가 실제로 만나는 게이 친구들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제 동성 커플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대법원이 인정했잖아요.4 제가 속해 있는, 평범한 게이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 그 소식이 공유됐어요. 그런데 한 친구가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제발 이러지 좀 마. 나대지 마.” 우리가 듣기에는 굉장히 충격적이지만, 그런 사람도 사실 많죠. “적당히 회사에서 숨기고 잘 알아서 살고 싶은데, 왜 이렇게 드러내냐.” 부모님하고 뉴스 보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기사가 나오면 괜히 민망하고, 옛날에 한 번 걸린 적도 있어서 싫다는 거예요. 이건 물론 그 친구가 다른 면에서도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이야기기도 하지요. 어쨌든 그런 점에서 우리가 퀴어 커뮤니티를 좀 해부하고 쪼개서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말하자면 ‘피해자’로서의 게이 남성들에게도 굉장히 다양한 면모가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람시가 헤게모니 이론을 이야기하잖아요. 퀴어 커뮤니티의 문화를 문화적 헤게모니 투쟁의 한 과정이라고 한다면, 우리 내부의 분절적인 측면을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겠지요. 오늘날의 퀴어 문화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적어도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디지털 미디어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는데요. 그런 점에서 어떤 종류의 상징 권력이 이 안에서 나타나고, 그 권력의 자장 안에서 퀴어 커뮤니티 내부가 다시 한번 위계화되는 문제를 이제는 지적해야 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물론 해외에는 관련 논의가 많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어떤 면에서 현장의 실제 목소리를 적나라하게 쓰는 데 대한 주저함이 있기도 합니다. 제 경우에는 심사위원 선생님들께서, “너 이렇게 쓰면 다른 게이들한테 욕먹지 않니” 하고 걱정도 해 주셨는데요. 저는 감수하겠다고 하고 썼어요. 실제로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성조 제게는 네 분이 하신 연구가 공유하는 문제의식이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주요하게는 퀴어 커뮤니티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 같습니다. 퀴어나 여성 운동에 대해 말하자면, 선생님들께서 앞서 이야기해 주신 것처럼 저희는 연구자로서 관찰하기도 하지만 활동가 혹은 당사자로서 직접 참여를 하기도 하죠. 거기에서 오는 어떤 긴장과 때로는 모순이 있을 텐데요. 그렇다면 퀴어 혹은 퀴어 커뮤니티의 정치적 성격에 관한 문제가 여러 측면에서 제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을 이어 가보겠습니다. 원래 드리려고 했던 질문은 이렇습니다. 한국에서 본격화하고 있는 퀴어 정치 의제를 둘러싸고 퀴어 연구, 특히 비판 이론의 전통 속에 있는 것으로서 퀴어 연구가 지금 어떤 경향을 보인다고 생각하시나요? 또, 최근에 주목하고 계신 현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답해주셔도 좋고요. 혹은, 지금까지 말씀해 주신 커뮤니티의 정치적 성격과 관련하여 선생님들께서 연구와 활동을 함께 하시면서 느끼게 되는 어떤 거리감이 있을 텐데요. 그러한 고민을 나누어주셔도 좋겠습니다.


김대현 저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10여 년째 일을 하고 있는데요. 박사논문을 3분 안에 소개한 데 이어서 이번에는 지난 10년의 역사를 7분 안에 이야기하게 되겠네요(웃음). 임동현 선생님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게이들한테 욕 먹지 않겠느냐”고 하셨는데요. 종로와 이태원은 게이 커뮤니티 혹은 게이 게토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저는 거기에 대한 설명을 할 때 꼭 성매매 집결지라는 말을 붙이거든요. 실제로 장소적인 연관성이 있기에 ‘보갈’이라는 말이 ‘갈보’를 뒤집은 표현으로 쓰이고, 서로 ‘년’이라고 부르는 관습이 지금까지 이어졌으니까요. 비규범적 여성성을 가진 당사자로서 스스로와 서로를 그렇게 말하게 되는 문화와 정체성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정작 이런 설명을 게이 당사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사실 모르겠어요. 반성매매 페미니스트들과 같이 일을 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요. 그분들이 제게 이렇게 물어보셨어요. “김대현 선생님은 알고 지내는 게이가 있어요?” 바로 그 전 주에 이태원에서 신나게 놀았었는데 말이죠(웃음). 아무튼 활동과 연구 사이에는 이런 일정한 간극 같은 게 있죠.

제가 가진 문제의식은, 말하자면 지금 한국 운동판에서 퀴어를 둘러싼 연대의 지형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어요. 관련해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신 정성조 선생님께서 열심히 써주시겠지만, 제 나름대로 운동판에서 겪었던 대로 말씀드리자면 실은 간단한 이야기예요. 어떤 ‘사건’을 통해서 거기에 함께 있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폐지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2012년 제정되던 당시에 성소수자 단체들이 열심히 점거 농성을 했어요.5 한국에서 최초로 ‘성별정체성’에 기반한 차별금지 조항이 법문화된 조례였지요. ‘성적지향’에 기반한 차별금지 조항이 처음 포함된 건 국가인권위원회법인데, 이 법이 만들어지던 2000년에도 단식 투쟁을 했어요. 당시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이런 분들과 동성애자인권연대가 같이 굶었단 말이죠.6 그렇게 운동판에서 서로를 확인하는 경험이 너무 중요하다는 거죠. 그리고 그게 어떤 사건으로서, 각자에게 명토박힌 경험으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똑같이 사고를 해본 거예요. 과거에 누가 퀴어랑 같이 있었는가, 누가 퀴어와 비슷한 방식으로 나란히 병리화 되었는가. 당대 사람들이 동성애를 이상하게 본 것처럼 성매매 여성이 이상하고, 자위행위 하는 사람이 이상하다고 보았던 거죠. 한국의 반동성애 이데올로그도 그렇고,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푸코가 열심히 연구한 것처럼, 저렇게 열거되는 사람 간의 공통점이 뭐냐 하면 이성애 생식을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성적 낙인이 깔리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환대라는 건, 연대라는 건 언제나 상호적이고 서로를 발견함을 통해서 마련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어요. 제 연구는 퀴어와 함께 함부로 나열된 존재를 둘러싼 정치가 도대체 뭐였는지에 대한 탐구였거든요. 이런 방식으로 역사 논문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퀴어를 주체로서 분석하지는 않은 거고, 퀴어를 둘러싼 어떤 낙인을 분석한 셈이 되는데요. 그에 대해 처음에는 열등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러니까 보통 운동사를 쓸 때, “거기에 누가 있었고, 열심히 활동했고…” 이렇게 하면 멋있는 서사가 되는 거잖아요. 독립운동사처럼요. 그렇게 쓸 수 없었던 게 굉장히 섭섭하기도 했는데요. 지나고 보니, “아니다. 이런 재현도 퀴어를 둘러싼 훌륭한 재현일 수 있고, 조금 더 고차원적인 윤리를 가진 재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판적 퀴어 연구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인구군으로서 퀴어를 다루는 거랑 방법론으로서 퀴어를 다루는 게 다르잖아요. 예를 들면 인구군으로서 퀴어를 다루는데 안 퀴어한 연구일 수도 있는 거고, 인구군으로서 퀴어를 다루지는 않는데 퀴어한 연구가 될 수도 있는 거죠. 그런 부분이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석사 과정 때 원재연 선생님이라고, 연세대 사회학과에서 질적 연구를 전공하고 가르치셨던 분께서 “본인의 정체성에 너무 밀접한 연구 주제를 택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처음에는 좀 이해가 안 되기도 했는데, 말씀하신 요체는 이렇습니다. 연구라는 것은 결국 내가 아니라 남을 다루는 일이자 남을 직면하는 일이라는 것이며, 나를 설명하게 되더라도 남을 초대하는 형태로 연구가 구성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어요. 제게는 굉장히 인상적으로 남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성소수자 억압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가 저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반드시 다른 사람이 얽혀 있음을 보게 된 거죠. 그 사람들과 성소수자와의 관계가 무엇인지, 그것을 둘러싼 억압의 형식이 어떤 것인지를 탐구하고자 했던 것이 제 연구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의 착상은 현재의 퀴어 운동판과 그 연대의 구도에서 나왔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정성조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특히 인상 깊게 다가오네요. 역사 연구를 하는데 그것이 어떤 퀴어 주체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연구를 연구자이자 활동가로서 현재의 여러 쟁점과는 어떤 식으로 연결하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김대현 선생님께서 뒤에서 추가로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루인 선생님께도 비슷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최근에 루인 선생님께서 하시는 블로그에서 한 글을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자긍심이라는 용어에 관한 것이었어요. 자긍심은 퀴어 정치에서 굉장히 중요한 용어이고, 프라이드(pride)에 관한 논의가 이미 많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이 용어를 한국의 맥락에서 재의미화할 수 있을지, 포스트콜로니얼 관점에서 어떻게 보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쓰셨어요. 이를 아까 말씀하셨던, 낯설게 하기도 하고 또 익숙하게 하는 퀴어 연구의 맥락에서 퀴어 커뮤니티의 정치라는 문제와 연결해서 논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루인 생각하고 있던 답변이 있었는데 새로운 질문을 받고 까먹어버렸네요. 말씀하신 자긍심에 관한 글에 담긴 고민은 프라이드에 관한 이야기나 그 개념이 지역에 따라서 어떻게 재의미화되고 다른 언어로 생산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쓰이는 프라이드와 러시아에서 쓰이는 프라이드, 한국에서 쓰이는 프라이드가 다 같은 개념이냐 하면, 용어의 철자만 같지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지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무지개 굿즈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편인데요. 한국에서 이게 “내가 이렇게 잘났다”는 의미로 쓰이는 걸까요? 아니면 길을 걷다가 마주칠 수 있는, 오늘 하루가 힘들었을 누군가에게 예기치 않은 마주침을 통해 잠시라도 반가움이 들기를 바라는 어떤 신호일까요? 

저는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퀴어락은 여섯 개의 성소수자 단체와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고요. 그러면서 저는 2021년쯤부터 프라이드 플래그, 그러니까 무지개 깃발이나 굿즈들을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사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 사려고 해서 재고가 없어졌거든요. 이런 걸 안 사던 사람도 사고 그랬던 거죠.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5년째 악성 재고처럼 쌓였던 물품이 다 나갔다고 할 정도였는데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러한 굿즈를 착용한다는 건 “내가 정말 이 시대의 잘난 퀴어다”라고 자랑하려는 건 아니겠죠. 이는 누군가가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하는가 하는 문제로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계속 죽어 나가고, 그에 대해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떤 식의 말 걸기를 하고자 하는가”라는 개념으로서 자긍심을 이해한다면, 이 용어와 개념은 지역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겠죠. 이를테면 서울에서 쓰이는 자긍심과 제주에서 쓰이는 자긍심, 또 최근에 퀴어문화축제가 처음으로 열린 대전에서 쓰이는 자긍심은 또 다를 것입니다. 

이렇게 무언가가 의미화되는 방식의 차이에 대해 더 많은 고민하는 일이란 지식을 생산하는 방식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기도 합니다. 이는 제게 가장 큰 고민거리이기도 하고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저는 운이 좋게도 몇 년째 퀴어 이론 수업과 섹슈얼리티 이론 수업을 하고 있는데요. 수업에서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대학원에서 공부한다고 해서 특권적인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는 거예요. 첫째로 저는 공부 노동자일 뿐인데, 공부한다고 잘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지요. 공부 노동자라는 말은 공부를 안 하면서 연구자라고 주장하지 말자는 이야기, 그러니까 적어도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에 8시간 정도는 공부하고 있는지, 연구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지, 정말 노동자로서 살고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원이나 특정 학제에서 하는 공부를 굉장히 특권화된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다른 사람이나 운동에서 누군가가 하는 이야기를 굉장히 얕은 혹은 잘못된 고민으로 여기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성찰은 지식을 위계화시키는 문제가 있는 태도를 재생산하지 않기 위한 고민인 거죠.

인터뷰 연구를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제일 많이 하는 고민은 이런 거죠. “이걸 어떻게 풀지? 이걸 어떻게 분석하지? 이 이야기를 다 못 담아내겠는데?” 말하자면 서로 다른 지식과 지식 사이에 엄청난 경합들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성실하고 정교하게 담아낼 것인가가 제게는 가장 중요한 고민거리이자 질문인 것입니다. 이를테면 사람들 사이에서 쓰이는 의미의 차이와 변형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퀴어 운동과 커뮤니티라고 불리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저만 모를 수도 있지만요. 아무튼 그것과 퀴어 연구를 한다는 것 사이에서 제기되는 또 다른 질문은 “타자가 존재하는가”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와 친한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장하거나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이야기하거나 그런 공동체를 만들 때, 그곳에 나와 완전히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을 타자로서 존중하면서 존재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 말입니다. 나와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쟤는 틀렸어, 잘못됐어”라며 많은 사람이 SNS에서 하듯 계정을 폭파하라고 요구하는 ‘캔슬 문화’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는 데 실패하면서도 또 이야기할 수 있는 ‘다른 사람으로서의 타자’ 말입니다. 나의 확장된 누군가로서의 타자가 아니라, 나와 완전히 다른 존재로서의 타자가 이야기를 걸 수 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존재하는가?

지금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저도 잘하지 못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는 고민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질문은 커뮤니티(혹은 운동)에 관한 이야기와 이론에 대한 이야기 사이에 놓여 있는 긴장에서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민망한 건, 아마 여기 계신 분들께서 이와 관련해서 많이 고민하고 계실 것이기 때문인데요. 이따 질의응답 시간에는 도망가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웃음).


정성조 이론과 현실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연구의 의미란 무엇이며 연구자의 태도란 어떠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는데요. 특히 퀴어 연구가 타자를 다루는 것이라고 할 때, 그러한 지식의 생산이 어떻게 또 다른 타자화로 이어지지 않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해 주신 것 같습니다. 

오혜진 선생님께서는 아까 박사논문을 심사할 때 성적 시민권이라는 개념 사용의 곤란함이 있었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실은 제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저는 군대 내 동성애혐오와 남성성에 대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석사논문을 썼는데요. 심사위원 선생님 한 분께서 너무 ‘르포’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연구자의 학술적 글쓰기로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은 거죠. 저는 이게 퀴어에 대한 지식이 기성 학계에서 어떤 식으로 읽히는가에 관한 문제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요. 선생님께서는 퀴어 정치와 연구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오혜진 저는 대학원을 2000년대 후반부터 다니면서 식민지기 조선 문학을 오랫동안 공부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공부했던 건 통치성에 관한 문제였던 것 같아요. 식민지 문학을 공부하면서 식민 권력에 대한 분석을 주로 했죠. 특히 일본 제국은 식민지를 어떻게 지배하는가? 식민지 조선의 민중은 그 지배에 포섭되기도 하지만, 또 어떻게 그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저항의 전략을 짜는가? 이런 질문들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어요. 

박사논문도 원래는 그런 주제로 쓰려고 했어요. 지금 발표되고 있는 동시대 문학을 학위논문의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거든요. 그 책들은 아직도 서점에서 ‘상품’의 형식으로 유통되고 있고, 제가 동료들의 연구와 경합하거나 갈등하는 입장에 서게 되기도 할 텐데, 그런 맥락에서 동료들의 이름을 학위논문에 박제하는 것도 부담스러웠죠. 그래서 “저는 식민지 문학으로 논문 쓸게요.”라고 선생님들께 말씀드렸더니, 그분들이 “아무도 너에게 그런 걸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 거 하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 너는 원래 하던 걸 해라” 이러시는 거예요. 동시대 문학 분석은 ‘현장 비평’의 영역에서 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걸로 졸업논문을 쓰게 됐습니다.

그런데 퀴어 정치학과 관련해 2000년대 후반부터 제가 목격해 왔던 것들을 돌이켜보자면요. 어제 동성 부부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 판결도 있었지만, 차별금지법, 동성혼 법제화, 생활동반자법, 학생인권조례, 이렇게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제도의 형성과 정비가 퀴어운동의 주요한 흐름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모든 퀴어운동이 전부 그런 흐름으로 갔던 것은 아니지만, 대중적인 응집력을 가졌던 흐름은 주로 성소수자의 시민권을 법·제도로 보장하기 위한 운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법·제도를 통해서 성소수자가 가시화될 수 있다는 건 되게 고무적인 일이죠. ‘성소수자’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게 아니어서 인구 파악도 되지 않는 집단을 법·제도의 대상으로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동시에 “왜 우리가 성소수자를 혐오하면 안 되는 거지? 왜 우리가 성소수자를 존중해야 하는 거지?”라는 질문에 대해, 예전에는 “그들도 인간이잖아. 너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 다 같은 인간이잖아” 같은 식으로 인정에 호소했다면, 이제는 성소수자도 법적 권리가 있다는 식으로 사회적 몫을 주장할 수 있게 됐죠. “성소수자도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있다. 성소수자도 노동할 권리가 있고,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즉 ‘권리의 주체’로서 성소수자를 표상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런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어요. 그럼, 그 ‘권리’는 누가 준 걸까? 권리가 없는 존재는 어떻게 될까? ‘권리를 가질 권리’는 어떻게 생기는 걸까? 이런 질문들이 항상 있었어요. ‘권리를 가진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서 제도에 계속 들어가야 하는 모순에 대해 생각해 온 거죠. 

그래서 가시화와 제도화, 가시화와 규범화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는 소수자 정치의 향방에 집중하게 됐습니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좋은 법을 만드는 방식의 운동은 좋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선형적이고 발전론적인 서사를 상정하게 되죠. “언젠가 될 것이다. 이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이 인정됐으니까 동성혼 법제화도 시간문제다. 미국도, 대만도 했으니 이제 한국 차례다.” 그런 발전론적이고 목적론적인 접근이 만연해져요. 이때 성소수자의 권리는 점점 신장되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사실 그 모든 의제가 굉장히 서구 중심적인 발달사를 따라가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가 식민지 시기의 문학을 공부해온 사람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 발전론적인 서사로 다 수렴되지 않는, 한국 소수자 운동의 후기식민성과 지정학적 맥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거든요. 하다못해, 가시화를 위한 필수적인 미션처럼 여겨지는 ‘커밍아웃’ 같은 것들도 저는 좀 어색해요. 이게 과연 유교 국가에서 MBTI I로 자라온 내향적인 나에게 맞는 정치인가?(웃음)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는데 내가 막 나대면서 “저 성소수자예요”라고 말하는 게 되게 이상하단 말이죠. 

아무튼 저는 퀴어 정치가 향하고 있는 제도화와 규범화의 흐름에 대해 비판적으로 개입하고 싶었어요. 여기서 난제는 이게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않는 연구라는 것이죠. 퀴어혐오 세력한테는 “거봐, 퀴어 정치에 문제가 많네” 이런 빌미를 줄 수 있죠. 또 지금 퀴어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독려와 응원을 해도 모자랄 판에 계속 비판만 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겠고요. 더 성장해야 하는 퀴어 정치에 자꾸 찬물을 끼얹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죠. 최근 퀴어문화축제를 둘러싼 논쟁이 그렇게 전개됐던 것처럼요. ‘비판적 퀴어 연구’라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비평과 연구의 의의라는 게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면 저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정성조 퀴어 정치의 양가적인 측면에 대해서 고민을 나눠주셨네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서 한쪽 발씩 걸치고 있는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삐딱하게 보는 역할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 텐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얘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임동현 선생님께서 혹시 이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처음에 드렸던 질문은, 한국에서 본격화하고 있는 여러 퀴어 정치의 의제를 둘러싸고 퀴어 연구가 어떤 비판적인 경향이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보시는지, 또 어떤 논의들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여쭙고자 했습니다.


임동현 여기에 대해서는 앞에서 오혜진 선생님 말씀해 주신 거에 너무너무 많이 공감해서 크게 덧붙일 얘기는 없다고 생각하고요. 한편으로는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 학술대회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신 걸 보고 깜짝 놀랐거든요. 백종륜 선생님하고 최근에 나눈 이야기인데요. 제가 석사 과정에 입학했을 즈음에 대학원에 퀴어 연구를 하는 분들 많이 들어왔을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후배들 보면 지금은 재생산이 잘 안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이게 완전히 좁은 시야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깜짝 놀랐고요.

어쨌든 비판적 연구라고 하면 몇 가지 주제 영역이라고 할까요? 영역을 나누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먼저 정체성, 우리가 흔히 안 좋은 의미로 말하는 정체성 정치가 아니라 아까 말씀하신 퀴어 정치의 양가적인 측면의 한 부분으로서 인권이나 사회운동 다루시는 분들이 한편에 있고요. 미디어나 재현 이런 쪽으로 하시는 분들도 최근에 많이 생겨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 성소수자 개인에 대한 인류학적인 조사 같은 것도 굉장히 많이 있는 것 같고, 지역적인 맥락 등의 교차성도 많이 이야기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과거에는 역사적 담론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잘 없었는데, 김대현 선생님 연구처럼 지금은 그런 부분까지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다 개별적인 의제로 들어와 있는 거죠. 물론 그 안에서 연구자 간에 상당한 견해차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께서 다 알고 계실 거예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로는 우리가 이런 의제 하나하나에 저마다 관심이 있고, 말하자면 취약한 환경에서도 재생산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실제로 공통적인 대화의 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어느 정도로 형성되어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크거든요. 예를 들면 저는 커뮤니케이션 학제에서 공부하니까 논문을 낸다면 주로 <미디어, 젠더 & 문화>나 <한국언론학보> 이런 저널을 고려하게 됩니다. 간학제적이라고 해봐야 한국문화연구학회에서 나오는 <문화연구> 정도가 되겠죠. 그런데 그건 등재지가 아니라서 또 애매한 부분이 있죠.7 동기가 있어야 하는 측면이 있으니까요. 그런 거 제외하고 나름대로 자신이 속한 학제 안에서 보았을 때는 선택지가 많지 않죠. 학제나 기성학회 안에 퀴어를 다루는 연구회 같은 게 있느냐를 보면 그런 것도 없고요. 이렇게 놓고 보면, 제가 앞서 많다고도 말씀드렸지만, 사실은 커다란 학술장 안에서 우리는 한 줌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주제 영역들이 다 분리되어 있지만 우리는 이런 의제를 엮어서 이야기해야 할 부분인 것 같거든요. 그런 문제의식 안에서 성연넷 학술대회도 조직되었을 거로 생각하고요. 이런 행사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더 잘 벼려야 할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하겠죠.


▶ 비판적 퀴어 연구의 구축과 과제 (下) 읽기

 

김대현

연세대학교 글로벌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운영위원, 가족구성권연구소 운영위원. 여성과 성소수자를 아우르는 한국사회 성적 억압의 역사적·제도적 성격 규명에 관심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게이남성 돌봄이 위치한 다층적 풍경」(공저), 「서울가정법원의 소년법원적 기원과 비인간화의 기술 : 소년비행 및 이혼 조정에 적용된 '치료적 사법'을 중심으로」, 「일본의 사회사업에서 미국의 사회사업으로 : 1950~60년대 결혼상담소와 ‘우생결혼’ 담론의 교차」, 저서로 『세상과 은둔 사이』(오월의봄, 2021), 공저로 『원본 없는 판타지』(후마니타스, 2020), 『불처벌』(휴머니스트, 2022) 등이 있다.


루인

공부노동자이자 블로거로서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와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의 역사를 다시 쓰고, 이를 통해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을 이론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혜진

문학평론가. 서사·표상·담론의 성정치를 분석하고 역사화하는 일에 관심 있다.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포스트페미니즘 시대 한국 여성문학·퀴어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단독, 2019), <연구자의 탄생>(공저, 2022), <원본 없는 판타지>(공저, 2020),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공저, 2018) 등이 있다. 대학에서 문학비평 및 문화이론을 강의한다.


임동현

문화연구를 전공했다. 대학에서 섹슈얼리티, 미디어 문화 등을 주제로 강의하며 인천대 인문학연구소에서 일한다. 섹슈얼리티와 미디어가 얽히는 다방면의 문화 현상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정성조

사회학 연구자.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며,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차별경험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다. 성소수자/퀴어연구 학술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관심이 많다.

  1. 1961년 제정된 〈윤락행위등방지법〉은 “윤락행위를 방지하여 국민의 풍기정화와 인권의 존중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했다. 이 법은 “성행으로 보아 윤락행위를 하게 될 현저한 우려가 있는 녀자”를 요보호 여자로 분류하고, 국가가 설치한 보호지도소는 이들에 대한 조사, 보호, 직업알선, 그밖에 “기타 선도보호사업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일”을 수행했다. 〈윤락행위등방지법〉은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됨에 따라 폐지되었다.

  2. ‘데뷔’는 게이들이 쓰는 은어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은 뒤 게이 커뮤니티로 나가는 일을 가리킨다.

  3. 에리봉, 디디에 (2021), 『랭스로 되돌아가다』, 이상길 역. 문학과지성사.

  4. 2024년 7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소성욱 씨가 김용민 씨의 동성 배우자로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달라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심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라며 ‘동성 동반자’라는 표현을 판결문에 명시하였다.

  5.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서울시민 9만 7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 주민발의로 제정되었다. 발의된 조례안의 원안 통과가 불확실해지자,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은 2011년 12월 14일부터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해당 조례는 19일 본회의를 통과하여 이듬해 1월 26일 공포되었다. 한편 2024년 4월 26일,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서울시의회는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조희연 당시 서울시교육감은 이에 대응하여 무효확인소송 및 집행정지를 대법원에 제출하였고, 2024년 7월 23일 대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무효확인소송에 대한 판단이 나올 때까지 서울학생인권조례의 효력이 유지되고 있다.

  6. 2000년 12월 28일, 국가보안법폐지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을 요구하는 인권활동가 16인이 명동성당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가라! 국가보안법, 오라! 국가인권위원회”를 외치며 독립성 있는 국가인권기구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했다. 단식 농성은 미적지근하던 민주당을 움직였고, 이듬해 4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찬성 137표, 반대 133표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1년 11월 25일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당시 단식 농성에 참여했던 동성애자인권연대는 2015년 단체명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로 변경하여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 단체의 이호림 활동가는 12·3 내란 이후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을 요구하며 2025년 3월 시작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의장단 단식 농성에 참여하였다. 한편 2022년에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이종걸 활동가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로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39일간 단식 농성을 이어갔다.

  7. 한국문화연구학회가 발간하는 <문화연구>는 2025년부터 KCI 등재학술지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