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25.6.)]비판적 퀴어 연구의 구축과 과제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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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퀴어 연구의 구축과 과제 (下)


본 라운드테이블은 2024년 7월 19일 성소수자 대학원생/신진연구자 네트워크가 개최한 제1회 학술대회 "한국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과거, 현재, 미래"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정성조 자료집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마지막 질문이 바로 퀴어 연구의 논의의 장을 분과나 학제에 갇히지 않고 어떻게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임동현 선생님께서 자연스럽게 논점을 제기해 주셨네요. 방금 말씀해 주신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고 싶은데요. 특히 현재 퀴어 정치를 어떻게 볼 거냐 하는 질문에 있어서 한 가지 쟁점은 규범이라든지 욕망 혹은 운동의 경로와 같은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또 역사적인 관점에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으신 것 같습니다. 예컨대 연속으로 볼 것인지 단절로 볼 것인지,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여기에 아까 논의했던 탈식민주의적 관점을 퀴어 연구에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와 같은 질문이 함께 제기되는 것 같아요. 사전에 요청한 질문은 아니지만, 이러한 측면을 연결해서 이야기를 나눠주실 수 있으실까요? 마지막 질문과 연결된 문제이기도 해서 함께 말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김대현 탈식민 얘기가 나와서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제 전공이 한국사니까 탈식민이란 게 너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박사학위 논문을 작년 8월에 쓰고 졸업했는데요. 여기 계신 모든 분이 기존의 학제에서 어떻게 퀴어를 쓸지 많이 고민하면서, 또 지긋지긋해하면서 임하고 계실 거예요. 저도 그게 아주 싫으면 그만뒀을 텐데, 여러분이나 저나 지긋지긋하면서도 그만두지 않고 있는 것은 애증의 관계, 즉 나름대로는 자기가 속한 학제를 내심 좋아하기 때문이겠죠. 그럴 때 사유해야 할 것은 “내가 지금 처한 이 학제라는 제약을 어떻게 의미 있게 할 것이냐”인 것 같아요. 특히 퀴어를 다루는 데 있어서요. 정말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나가야 하겠죠. 하지만 구질구질해도 나름의 의미가 있으니까 그에 맞춰서 퀴어를 어떻게든 써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역사학에서 탈식민주의, 그러니까 민족주의라고 하면 지금 21세기에는 일정한 거부감이 들잖아요. 왜냐하면 민족주의야말로 ‘원조’ 정체성 정치니까요. 흔히 오해되듯이 성소수자/퀴어가 정체성 정치인 게 아니고, 민족주의야말로 정체성 정치죠. 그런데 민족주의를 정체성 정치로 설명하지 않고 제국-식민 위계 내지는 냉전 위계라고 설명하는 것은 지금도 유의미한 문제의식이거든요. 즉 어떤 역사적인 사료(material)나 사건이 있을 때 그것을 둘러싼 서사는 다양할 수 있고, 그것은 끊임없이 시대에 따라 갱신되어야 하는 문제죠. 그래서 저는 제국-식민 위계와 같은 구조적인 심급을 기존의 연구사에서 많이 끌어들여 왔던 것 같아요. 탈식민 구조도 마찬가지고요. 

사실 역사 이론 혹은 사회 이론에서 구조라는 건 되게 올드한 거잖아요. 포스트구조주의, 행위자 이론 이런 쪽으로 넘어가고 있기도 하고요. 구조라는 것에도 물론 맑스적인 의미의 구조도 있고 베버적 의미의 구조도 있고요. 모두가 아시다시피 재작년에 윤석열 대통령‘님’께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희대의 얘기를 하셔서요(웃음). 그렇다면 “구조가 있다”라는 얘기를 하기 위해 19세기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냐 하는 시대적인 상황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구조를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가. 

제가 속한 학제를 실천적으로 써먹은 방식을 소개해 드릴게요. 안동에서 퀴어에 대해 강의를 할 일이 있었어요. 보수의 심장에서 퀴어를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했을 때, 저는 사학도니까 일단 제국-식민 위계를 얘기했어요. 왜냐하면 제국-식민 위계는 한국사를 모르는 사람도 대충은 알고 있거든요. 일제는 나쁘고 독립운동가는 멋있다는 것 말이죠. 나아가 그 위계엔 이런 인식이 깔려 있는데, 즉 같은 근대라도 제국의 근대와 식민의 근대가 다르기 때문에 총독부가 철도 깔아줬다고 우리가 즐거워할 필요가 없다는 거잖아요.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순사에게 고문당해 죽은 것을 팔자 사나운 결과라고 취급하면 안 된다는 것, 이런 합의가 있단 말이에요. 그걸 활용하는 거죠. 그리고 그건 심지어 헌법 전문에 쓰여 있어요. 3.1운동에 대한 언급이 나오니까.

그다음에는 냉전 위계가 있고, 마찬가지로 헌법 전문에 4.19가 언급되죠. 냉전 위계도 마찬가지인 게, 남영동에서 고문당해 돌아가시는 분은 팔자가 사나워서가 아니라 냉전 위계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거죠. 여기서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구조를 설명하면서 ‘죄’와 ‘책임’의 심급을 나누거든요. 이를테면 “고문한 경관은 죄인이야. 그에 비했을 때 박정희를 찍었던 사람은 죄인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은 시대의 구조에 대한 책임이 있어.” 이렇게 말해볼 수 있겠죠. 제국-식민 위계도 마찬가지예요. 말하자면 조선총독부나 일본군‘위안부’를 징모·이송했던 사람들은 ‘죄’가 있지만, 평범한 재조 일본인 같은 사람들은 죄가 있다고는 할 수 없어도 책임은 있다고 얘기할 수 있어요. 이렇게 얘기한 다음에 “세상에는 그런 구조들과 함께 이성애-비이성애의 위계와 시스젠더-트랜스젠더 위계가 있어요. 이성애자인 여러분들은 죄가 없죠. 그런데 책임은 있으세요.” 이렇게 얘기하면 좀 알아들으세요. 왜냐하면 그게 굉장히 친숙한 설명틀에서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이에요.

이런 방식이 올드해 보이기는 해도, 사실 퀴어라는 건 어떤 도구로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특정한 도구로만 편하게 설명되는 게 아니라, 세상 모든 도구로 다 설명이 되어야 하는 거죠. 최근 동성 부부 피부양자 자격 인정 판결문도 결국은 헌법으로 설명을 한 거잖아요.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은 헌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그럴 때 우리가 뭔가 감동을 받잖아요. 묘한 고전적인 감동이요. 그런 것이 실은 안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그런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고, 새로운 주제가 고전적인 틀로 설명될 때 가져올 수 있는 어떤 미쁨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런 식으로 제 학제를 써먹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설명 방식이 유일하거나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도 퀴어가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제 활동과 연구의 핵심 동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성조 임동현 선생님께서 이어서 말씀해 주시겠어요? 선생님께서는 박사논문에서 “퀴어 이론의 지방화가 필요하다”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조금 전에 김대현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 보이는데요.


임동현 연결된다고 생각은 했는데요. 도발적인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아서(웃음). 그러니까 일종의 괴리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한류 연구를 많이 하거든요. 제가 어깨너머로 보면, ‘한류 현상’이라는 걸 설명할 때도 그렇고 『퀴어돌로지』1 같은 책에서도 K-pop을 퀴어와 엮어서 설명하기도 하잖아요. 한편으로는 한국 문화를 탈식민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고, 거기에는 제국주의적인 면이 상당히 있다는 말도 하고요. 한류 연구에서 논쟁적인 주제이긴 하지만, 제국주의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동시에 우리의 문화, 특히 저는 자의식에 대해 굉장히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요. 한국 대중문화에서 헤게모니가 마이크로셀러브리티로 일정하게 이양되면서 상당히 강한 자의식을 가진 한국 게이 남성들이 많이 있고, 그 사람들이 인스타에서 일정한 헤게모니 같은 것을 갖게 됩니다. 제가 동남아시아에 여행을 가서 그곳의 게이 커뮤니티를 방문해 보면 굉장히 놀라게 됩니다. 그런 연구가 있잖아요. 새로운 인종주의가 동남아시아에서 탄생하고 있다는 거요. 동아시아인들이 마치 새로운 백인처럼 이해가 된다는 거죠.2 그러한 인종주의를 만들어내는 데 한류나 과거의 ‘쿨 재팬’ 이런 것들이 일조하고 있는 측면이 있고요. 그런 맥락에서 우리 연구자들은 그 안에서의 탈식민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그 탈식민이라는 게 이제 앞에서 말한 제국-식민 위계하고 결이 같지는 않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퀴어 이론의 지방화’에서 얘기하는 탈식민이 단순히 “그냥 우리 상황은 미국에서 연구자들이 한 것과 달라”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제게는 그게 잘 와닿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그것이 실제로 연구에서 어떤 식으로 다른지 설명이 그리 충분하지 않다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는 너무나 미국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까 프라이드 얘기가 나왔는데요. 저는 프라이드가 조금 이상한 방식으로 한국에서 수용되었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적인 맥락이 어떤 초국적인 맥락과 크게 유리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이런 괴리를 좀 좁혀나가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퀴어 이론의 지방화라는 것이 그냥 단순히 “이것과는 달라.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적용할 수 없으니까, 우리는 그 이론을 내팽겨치자”는 아니잖아요. 예를 들면 아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판결이나 동성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는데요. 오혜진 선생님께서도 어떤 선형적인 서사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셨잖아요. 그런 사건이 발생하면 제게 비추어 보게 돼요. 저희는 전임 교수가 될 가능성이 굉장히 요원하고 저는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각오를 하고 있어요. 아마 많은 분께서 같은 각오를 이미 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랬을 때 저는 너무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 남자친구는 공무원이에요. 공무원이라서 “절대 그 안에서 나는 들킬 수 없어” 이런 관념이 있고, “그럼 나의 자리는 어디 있는 것인가, 나는 지역 가입자로서 평생의 한을 갖고 죽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도 하고요. “에이섹슈얼은 또 그 안에서 어디에 있지?” 이런 것들을 자꾸만 이제 상상을 하게 돼요.

최근에 친족에 관한 논의를 정성조 선생님하고 했어요. 친족에 관한 국내 논의가 해외 연구와 어떤 방식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가족 같은 친구가 있는데요. 서로 마음먹기로는, 그런 농담 많이 하잖아요. “나중에 늙으면 같이 우리 퀴어 마을을 건설해서 우리끼리 모여서 살자.” 이런 걸 많이 하고. 실제로 그런 꿈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막연하지만. 그런데 그런 바람이 실제로 얼마나 실현 가능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보수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인데요. 그러니까 우리가 “친족 체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상상하자”, “이런 종류의 대안적인 친밀성이 있다” 같은 얘기를 함에도, 가족과의 애증 같은 개인적인 경험을 덧대어보면 “대안적인 친밀성이 혈연관계로 맺어진, 유년기부터 이제 양육되어 오는 그런 과정에서 형성된 것들, 돌봄을 어느 정도로 대체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사실 한편으로는 들고요.

결론적으로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한국은 달라”라든지 “한국은 건강보험조차도 이제 됐는데 무슨 그런 비판을 해”라는 식으로 양쪽에서 환영받지 못하게 되기도 하죠. 그런데 저는 우리가 단계적으로 혹은 선형적으로 밟아가야 하는 비판적인 과정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그러니까 탈식민주의적인 맥락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무언가 건너뛰고, 반면교사를 삼아 건너뛰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식으로 생각해 보게 돼요. 내가 앎으로서 갖고 있는 윤리를 삶에서 100% 실천하지 못한다고 해도 연구자로서 밀고 나갈 수 있는 먼 지점이 있고, 그것이 연구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분이 활동가와 연구자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고 계시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저는 활동보다는 연구에 좀 치우쳐 있는 사람이다 보니까. 제 입장에서는 그런 걸 한계까지 밀고 나가게 됐을 때 누군가가 “그러면 네가 말하는 이제 대안적인 상상은 뭐냐”라고 묻는다면 저도 사실 명확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가 그런 것들을 급진적으로 비판해 나가는 것이 탈식민적인 맥락에서 비판적 퀴어 연구를 한다는 것의 의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성조 항상 부딪히는 고민인 것 같네요. 오혜진 선생님께서 이어서 말씀해 주시겠어요?


오혜진 지금 두 분 말씀을 들으니까, 제가 고민해 왔던 두 가지가 생각나는데요. 하나는 임동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퀴어 정치의 초국적성과 보편성을 계속 인식해야 하는 흐름이 있죠. 연구하다 보면 제일 많이 듣게 되는 게 “한국은 아직 거기까지는 안 됐어”라는 말입니다. 동성혼 법제화든 뭐든 ‘인권 선진국’이라고 하는 다른 국가들의 상황과 비교하면서 “한국도 언젠가 그렇게 되겠지”, “한국은 아직 그렇게까지는 안 됐어”라는 식으로 한국을 시간적 타자 혹은 후발주자로 위치시키는 말을 많이 듣게 되죠.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본능적으로 반발심이 들어요. 어떤 의미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되지만, 그렇게 시간을 단선적이고 선형적으로 묘사하는 방식 자체에 대해 심문하는 것이 후기식민의 정치학이기도 하잖아요. 저는 ‘탈식민주의’와 ‘후기식민주의’라는 용어를 구분해서 사용하는데요. 말하자면 탈식민은 아직 되지 않았고 영원히 불가능한 과제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탈식민을 미완의 과제로서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역사 감각 자체는 후기식민적인 것이죠. 그런 후기식민지로서 한국의 정치적, 역사적 감각을 생각하면서 ‘진보 운동’이라고 일컬어지는 소수자 운동의 흐름과 그 성격을 사유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동성혼 법제화와 혼인평등은 참 중요하지만 모든 나라가 동성혼 법제화를 했던 그 방식 그대로 한국도 따라가야 하는 건 아니겠죠. 대만의 경우는 정민우 선생님께서도 많은 연구를 하셨지만, 동성혼이라는 의제가 중국과의 체제 경쟁 속에서 대만의 민주주의적 우월성을 보여줄 수 있는 의제로서 동성혼이 부각될 수 있었던 거고요.3 또 미국의 경우에는 인종차별, 성차별, 성소수자 차별, 이것들을 미국이 단계론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로서 그런 정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동성혼 의제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이걸 먼저 질문해야 하겠죠. “한국은 아직까지 동성혼이 안 됐잖아, 인권 의식이 아직 그만큼 발달하지는 않았으니, 앞으로 몇 년 후에나 될까...” 이렇게 시간 경쟁, 속도전으로 이해하는 방식에 저는 항상 의구심이 들어요. 그래서 퀴어 정치의 보편성과 초국적성을 의식하면서도 동시에 후기식민지로서 한국이 지닌 특수성과 지정학적인 맥락을 꼭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에 대해 말하자면요. 여기, 이 학술대회 행사장에서 제가 지금 아주 조금 외로운데요. 그건 제가 문화예술을 전공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 학술대회가 사회과학 전공자들 위주라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이건 퀴어 연구 씬에서 제가 느껴온 외로움과도 상통합니다. 말하자면, 퀴어 문화예술 연구가 약간…, 어떻게 해야 도발적이지 않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웃음). 조금은 잔챙이 취급당한다고 할까요? 제가 종종 퀴어 관련 행사에 참여할 때면, “지금 현실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도 안 되고 현안으로 처리해야 될 의제가 많으므로, 미디어 혹은 예술적 재현과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은 덜 급하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라고 보는 암묵적인 시선이나 감각들이 감지됩니다. 제가 어떤 토론회 자리에 가면 자주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한국 미디어에서는 퀴어가 이렇게나 많이 나오고, 퀴어 문화가 되게 발달한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이렇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면서 마치 문화예술에 그 책임이 있는 양 혹은 문화예술이 현실을 과장하고 있다는 듯한 추궁 어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건 문화예술을 현실에 대한 ‘반영’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인 거죠. 그럴 때마다 저는 “현실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현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문화예술이라고 생각하고, 현실을 만드는 욕망을 분석하는 것이 곧 문화예술 연구라고 생각한다”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데요. 이 문제를 퀴어 연구 씬에서도 좀 진지하게 다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행사가 계속 열린다면 재현예술 연구로서의 퀴어 연구가 제기하는 질문들을 좀 더 진지하게 고려해 달라고 건의하고 싶네요. 


정성조 주최 측으로서 모종의 책임을 느끼게 되네요. 앞으로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다는 제안으로 이해하겠습니다(웃음). 루인 선생님께서 추가로 해주실 말씀이 있을 것 같은데요.


루인 오혜진 선생님 말씀을 듣고 떠올랐는데요. 다들 그러시겠지만, 봄쯤 되면 그 직전에 나왔던 학위 논문을 싹 검색하시잖아요. 1년에 50편, 많을 때는 100편 정도의 퀴어와 관련한 학위 논문이 나오는데요. 상당한 지분이 문학이거나 미술이거나, 말하자면 예술의 비중이 제일 큽니다. 올해 초, 성연넷에서도 그와 관련한 자료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하셨지요.4

그런데 그런 주제가 왜 이런 장에서는 덜 이야기되는가와 관련한 고민들, 어떤 지식이나 논의는 더 많이 다루어지고 어떤 것은 덜 다루어지거나 그냥 있는 것으로 끝나는 것과 같은 질문들, 그리고 어떤 학제의 연구들이 더 의미 있는 연구로서 먼저 선택받는가 혹은 먼저 채택되는가와 같은 그런 고민을 공유하게 될 때,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약간 기분이 오묘했습니다. 다들 여기서도 저기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위치에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학제가 대학원만 따지면 가장 환대받으면서 공부를 했던 사람이라 “잘못되었구나”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웃음). 저의 석사논문이나 박사논문이나 다 한국에서 몇 안 되게 이런 주제를 환대해 주는 곳에서 나온 것이어서, 제게는 어떻게 질문들을 더 만들어 나갈 것인가 하는 고민도 들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퀴어 연구를 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없습니다. 정확하게는 할 수는 있는데, 충분히 환대받으면서 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죠. 늘 어느 학과를 갈 것인가와 같은 질문거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내가 공부하고 싶은 전공 분야와 내가 퀴어 연구를 환대받으면서 할 수 있는 학제 사이에 엄청나게 큰 간극이 있을 때, 그렇다면 어디를 가야 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 있기도 합니다. 또 그런 질문들 속에서 어떻게 더 다양한 지식을 생산하거나 어떻게 이야기하고 공부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걸 또 배울 수 있을 것인가와 같은 고민거리들이 있기도 하고요. 최근에 한 선생님이 퀴어와 관련한 연구를 제도 내에서 할 수 없어서 개별적으로 다들 습득해야 하는 이 상황에 대한 고민거리를 공유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 고민들, 그러니까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탈식민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제가 가장 관심 있는 분야 중에 하나는, 논문에서는 못 다루고 과업처럼 남아 있는 건데, 한국에서 퀴어 지식이 어떻게 생산됐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라고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대현 선생님께서 계속 1960년대, 70년대, 80년대 관련한 작업을 해주고 계시기도 하고, 박차민정 선생님께서 해주고 계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지식이 혼종되고 섞여 있고 단 한 번도 한국이 고립되어서 의제가 생산된 적이 없는 상황이 있죠. 예컨대 90년대 퀴어 운동만 해도 계속해서 미국에 있거나, 일본에 있거나, 대만에 있거나 했던 다른 나라 퀴어 활동가나 공부 노동자와 교류하면서 지식을 생산해 왔던 역사가 있습니다. 

이렇게 언제나 뒤섞인 형태로 지식이 생산됐던 역사 속에서 탈식민적 지식을 구축한다는 것, 이론의 지역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또한 무엇일까와 같은 질문들이 사실 더 어려워지기도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게 “그래서 쉽다”가 아니라 훨씬 더 어려워지기도 하는 그 측면들, 사실 퀴어 학제에서 퀴어 연구하기가 더 어려운 측면이 있고, 페미니즘 연구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뭐 외국에서나 그렇지 한국은 다르지 않냐”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이미 너무 오래된 이야기이지 않느냐”라고 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질문과 고민거리가 늘 존재합니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 드는 고민들, 무언가를 쓰면 쓸수록 괴로워지는 고민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습니다.


정성조 네 분 선생님의 고민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퀴어 연구에 대한 공동의 고민과 논의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나아가게 되네요. 아까 오혜진 선생님께서 성연넷이 문학이나 재현과 관련된 연구를 더 환대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는 제안도 해 주셨는데요. 실은 그런 고민이 오래전부터 있었거든요. 왜냐하면 성연넷에서 월례발표회 같은 행사를 오랫동안 해왔는데, 자발적으로 발표 신청을 해달라고 하면 사회과학 연구만 많이 들어오는 거예요. 그런데 루인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실제로 학위 논문이나 실제로 나오는 논문의 양을 보면 문학이나 재현 연구가 훨씬 많죠. 이 격차는 뭘까? 왜 성연넷은 사회과학자들만 있는 것 같은 인상을 풍기는가? 이런 고민이 내부적으로도 있었다는 말씀을 좀 드리면서, 관련하여 세 번째 질문으로 이어 가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연구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학제가 다르니까, 계시는 위치에 따라서 모종의 긴장을 더 느끼는 경우도 있을 테고, 아무튼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가 어떻게 서로의 연결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 혹은 이런 연결이라는 것이 과연 필요하기는 한 건지, 우리가 이런 논의를 함께 만든다는 것이 어떤 측면에서 중요할지, 이런 고민을 나누는 것으로 라운드테이블을 마무리해 보면 좋겠습니다. 어떤 분께서 먼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오혜진 퀴어 연구가 학술장을 어떻게 퀴어링할 수 있냐, 이런 질문인데요. 공부하면서도 계속 느꼈던 거지만, 저는 박사논문을 쓰고 나서 정말 많은 ‘현타’를 경험하게 됐어요. 퀴어 연구로 박사논문을 썼는데 그 이후에는 전혀 퀴어하지 않은 시간이 펼쳐집니다. 박사논문을 썼으면 이제 소논문 몇 편을 써야 취직을 할 수 있고, 어디에 얼마만큼 실적을 내야 되고, 이런 것들이 정말 하나도 퀴어하지 않아요. 그런 데에 투입되는 시간과 압박을 지금도 느끼고 있는데요. 다른 퀴어 연구자들은 이 과정을 어떻게 경험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아카데미의 위계적 구조와 세팅을 퀴어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모두 가지고 계시겠지만, 사실 그보다는 거기에 적응하기에 바쁘거든요. 그래야만 내 연구를 가시화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장 자체가 저는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한풀이를 다 할 수는 없지만, 어떤 학술대회에 퀴어 관련 발표가 한 꼭지 있다고 치죠. 특히 국문과 학술대회에는 다른 여러 주제의 발표들이 있기 때문에 항상 그 학회의 맨 마지막에 여성, 페미니즘, 퀴어 발표들이 배치되고요. 가끔 해외 연구자라도 오면 마치 정해놓은 듯이 제가 호출돼요. ‘토종 퀴어’나 ‘토착 정보원’처럼 “네가 한국의 상황을 외국 학자들한테 브리핑해 줘라”라는 식으로 호출될 때도 정말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이거 다 너무 퀴어하지 않고, 너무 식민주의적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데 사실 타협한 적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한테 어떤 모멸감, 퀴어 수치심과는 다른 모멸감 같은 게 조금씩 축적되는 게 느껴져요. 이런 것들을 다 같이 연대해서 좀 반대하고 뒤집어엎고 싶어요(웃음). 

그 밖에도 아카데미를 만드는 여러 가지 제도들이 있잖아요. 학술지, 학술제도, 심사위원 뭐 이런 것들이 있죠. 그런 제약에 대해 아까 김대현 선생님께서는 “의미 있게, 가치 있게 만들어라”라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사실 저는 박사논문을 쓰면 그 이후에는 다른 가능성도 있을 줄 알았고, 있기를 바랐거든요. 그런데 지금 정말 답이 없는 상태라서요. 저는 퀴어 연구자들이 모인다면 그런 고민을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퀴어 연구, 한국의 퀴어 정치 상황, 퀴어문학을 다루는 논문을 썼는데 이것을 어떻게든 영미권에서 발행되는 국제 학술지에 넣기 위해서 다 영어로 번역하고, 그 과정에서 ‘K-맥락’ 다 탈락되고, 그런 식으로 실적을 올려야 하는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타협을 적게 하면서 다르게 바꿀 수 있을까요? 그런 고민을 절실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루인 오혜진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까 떠올랐는데요. 아마 많은 분이 비슷한 고민을 하실 텐데요. 학술대회에 가시면 ‘활동가’로 불리실 거고요. 활동판에는 ‘연구자’로 불리실 거예요. 학술대회에 갔더니 갑자기 “현장을 알고 계시니까 현장에 대해서 좀 설명을 해 주시라”는 소리를 듣고, 활동판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연구자는 현실을 모른다”고 욕을 먹습니다. 한편으로는 퀴어 공부 노동자는 연구자가 아니라는 의도적 언설일 가능성이 있고, 또 퀴어 지식은 학제에서 생산될 수 없다는 인식이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이런 태도와 반응 사이에서 “난 누구지?”라는 고민을 하는데요. 사실 여기서 드는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논의 가능한 장을 만들 것인가”입니다.

그래서 2024년 올해 성연넷에서 행사를 한다고 했을 때 꼭 ‘학술대회’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고, 학술대회로 제목을 달아주셔서 매우 감사하기도 했는데요. 그러니까 연구의 중요성에 관한 걸 듣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어떤 발표를 하거나 토론했을 때 “와 새로운 게 있고, 요즘 중요한 걸 다루었네”라고 하는 코멘트가 아니라 이 연구를 어떻게 더 정확하고 정교하게, 그리고 지금 맥락에서 어떻게 토론 가능한 방식으로 가져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깊은 개입들이 늘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걸 받지 못하고 “와 그렇군요” 하고 끝나버리거나, “좋은 연구 했습니다”, “잘 배웠습니다”라고 하는 경우가 있죠. 물론 이만큼이면 매우 환대받은 경우죠. “그런 거 왜 하냐”부터 시작해서 “이상한 거 한다”, “욕만 안 먹으면…” 이런 모든 상황까지요. 

그랬을 때 ‘퀴어 연구’라고 불리는 것을, 혹은 퀴어와 관련한 이론이나 논의를 생산하는 것을 그저 칭찬을 받거나 욕을 먹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논쟁하고 토론 가능한 장에 위치시켜서 언어를 만들 것인가? 또한 우리는 그것에 실패하거나 논의를 충분히 다루지 못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안전하게 실패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낼 것인가? 이 두 가지가 매우 중요하게 필요한 작업이지 않는지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조금 잘못된 발언을 했을 때 “아, 역시 퀴어 연구는 별로야”라는 식으로 평가받을까 봐, 마치 내가 퀴어 연구의 모든 것을 대표하는 사람인 것처럼, 무언가 제일 잘해야 될 것 같고 이상한 소리하면 안 될 것 같고 하는 식의 이야기 말고요. 좀 잘못된 발언을 해도 괜찮은 장, 논의를 만들기 위해 좀 더 안전하게 실패할 수 있고 안전하게 잘못 말할 수 있는,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확장되는 논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장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 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이걸 ‘제도화’라고 말하려니 굉장히 이상하긴 하네요. 사실 많은 분들이 “제도화한다”는 말에 약간의 저항감과 “이걸 어떻게 하지?”라는 부담감을 느끼고 계시는데요(웃음). 이렇게 결론을 내리면 안 될 것 같고요. 지난 6월에 한국여성학회에서 40주년 기념으로 학술대회를 했는데요. 제도화와 관련해서 굉장히 심란한 고민을 나누는 자리였어요. 사람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제도화된 지 꽤 오래되기도 한 상황에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에 관한 고민이요. 우리도 그런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비판적이고, 저항적이고, 도발적인 이야기들을 어떻게 해야 가장 도발적이면서도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향하지 않게끔 논의의 장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정성조 선생님들께서 하신 말씀을 들으니, 저도 여러 고민이 듭니다. 학술대회에 갔을 때 퀴어 연구가 여러 학제에서 배치되는 전형적인 방식은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으실 거예요. 저는 이것이 일종의 토큰과 비슷하게 느껴지는데요. 이를테면 “우리에게도 소수자에 관한 비판적인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다양성을 보여주는 토큰으로 퀴어 연구가 배치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도화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이번 학술대회를 조직하는 과정에서도 했던 실은 오래된 고민입니다. 어떻게 하면 연구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 또, 방금 말씀해 주신 것처럼 논쟁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이면서도 안전한 학술장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이런 고민이요. 저는 개인적으로 결국에는 우리에게도 저널이 필요한 게 아닌지 고민했습니다.

이전의 맥락으로 잠깐 돌아가 볼까요? 이번 학술대회의 진행과 관련해서 취소된 세션이 하나 있어서 양해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세션은 『퀴어 코리아』의 연구 윤리 위반 문제와 팔레스타인 문제를 지식 생산과 지정학적 위계라는 측면에서 연결하면서,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퀴어 연구의 위치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고민해 보는 세션이었습니다. 패널 측 사정으로 취소된 해당 세션의 문제의식이 실은 아까 말씀해 주신 고민과 느슨하게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져요. 우리가 한국에서 어떤 현상들에 대해 비판적인 논의를 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 이를 더 넓게 글로벌한 지식 생산의 구조 속에 배치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요. 또, 거기에서 발생하는 강제된 규범은 무엇일까요? 이런 고민을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앞으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조금 길어졌는데, 이어서 말씀해 주시겠어요?


임동현 이 질문을 통해 제가 얻어가고 싶었던 것은 어떤 공통된 공감이라고나 할까요? 오혜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그런 식으로 호출이 되고, 다양한 검열 같은 것을 경험한 거예요. 사실 강의를 하게 돼도 관련한 강의가 별로 없죠. 저 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미디어 산업 관련한 강의도 하게 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하고 싶은 강의는 그게 아닌 거죠. 또 제가 하고 싶은 종류의 강의가 아닌데 강사로 지원하게 될 때 자기 검열도 하게 되는 거예요. “내가 되게 급진적인 사람으로 보이겠다.”(웃음) 물론 급진적인 생각을 하는 건 맞지만, 교수님들께서는 학생들에게 분란을 키우는 내용을 가르치다가 시끄러워질까 봐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제가 이런 주제를 연구했다는 것만으로도, 사실 지원자가 많고 자리는 워낙 없으므로 뭔가 위축되는 것이 있고요. CV를 적어서 낼 때도 저는 해온 게 성소수자 연구밖에 없으니까 그런 점에 대한 고민이 있죠.

그러다 보니까 제도화에 양가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생산의 측면에서도 굉장히 필요하고요. 예를 들면 한국문화연구학회라는 학회가 있는데요. 한국에서 문화연구는 학제마다 약간 분리되어 있는데 영화 연구 등, 이 학회를 간학제적인 학회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가 한동안은 좀 지지부진했거든요. 학술지도 등재지로 만들려고 했었고요. 물론 이런 것도 말 그대로 퀴어하지 못한 것일 수 있는데요. 어쨌든 그 제도적인 조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재정적 기반이 없게 되잖아요. 우리도 학술지를 내고 하려면 결국에는 연구재단의 지원도 받아야 할 텐데요. 어쨌든 그런 경험을 해보니, 거기는 그나마 전임교원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니까 다양한 경제자본, 사회자본을 투여해서 지금은 등재후보지까지 만드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성연넷이 일정하게 그런 역할을 자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연구자가 없지는 않잖아요. 학술단체라든지 활동가 단체라든지 다 있고, 활동과 연구가 엮여 있기도 하고요. 제 인상에는 굉장히 파편화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규모가 작을수록 더 파편화될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해요. 학술장 안에서는요. 돈이 순환이 잘 안되니까 알음알음할 수밖에 없고요. 그래서 제도적인 것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한편에 있습니다. 그랬을 때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죠. 여기 계시는 분들이 “우리에게 학술지가 필요하다”고 기본적으로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학술지를, 궁극적인 목표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제일 최소한의 목표라고 해야 할까요? 나중에 Sexualities처럼 조금 더 너른 범위로 받을 것인지 그런 부분도 나중에 생각을 해보아야겠지만요. 이런 점에 대해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성조 아까 제가 저널 얘기를 꺼내기도 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확인하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루인 선생님께서 이번 행사를 학술대회로 확장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시기도 하셨었는데요. 포럼이라고 하면 여러 의미에서 작아 보여서일까요? 아무튼 학술대회로 아예 정착시켰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 주셨어요.

저는 성소수자 인권포럼이라는 활동가들과 연구자들이 만나는 자리를 기획하는 일을 7~8년 정도 해왔는데요. 그러면서 느꼈던 것은 이런 거예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어떤 종류의 ‘수요’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감을 못 잡았던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오늘의 학술대회가 그 궁금증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겠고요. 또 다른 한편에서는 말씀해 주신 여러 문제의식을 오늘 참여하신 많은 분께서 공유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종류의 집단적인 결의를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김대현 다들 제도적인 부분을 말씀해 주셨는데요. 저는 개인 차원에 관한 얘기도 필요할 것 같아요. 저도 박사논문 쓰고 나서 똑같은 얘기를 들었어요. 박사논문을 퀴어 묻은 걸로 쓰고 난 다음에 한 50명에게 같은 얘기를 들었어요. “이제는 퀴어 갖고 쓰지 마. 학계 커리어에 유리하지 않아.” 제가 유리하지 않다는 걸 몰라서 박사논문으로 썼겠어요?(웃음) “이제는 그거 하지 말아라. 이제는 포기해라.” 그런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내가 이 학제에 베푼 내 나름의 환대가 전혀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 것, 상호 호혜적인 관계가 전혀 생산되지 않는 것에 대한 짜증이 납니다. 그래서 “박사논문 쓰고 난 다음부터가 진짜 시작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도 저는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박사논문을 쓰고 난 다음에 얻은 것은 뭐냐 하면, 저는 제 연구 주제에서만큼은 확실한 효능감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희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는 내 공부를 하면서 이 공부가 얼마나 유의미하고 유익한지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알고 있다”라는 어떤 자의식 같은 게 있거든요. 제가 갖고 있는 편향도 있을 거예요. 저는 공부가 원래 좋았던 사람이 아니에요. 공부가 어떻게 재밌어요? 클럽 가서 노는 게 훨씬 재밌지(웃음). 저는 공부가 재밌다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는 사람이에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공부는 필요하니까 하는 거죠. 저는 공부가 필요해서 했기 때문에, 제게는 공부의 필요성에 대한 감수성이 굉장히 높은 거죠. 이건 내가 꼭 알아야 되겠으니까, 박사논문을 쓰는 식인 거죠.

그런 이유가 하나 있을 것이고, 두 번째는 어쨌든 그래도 퀴어 연구자들은 현장에서 퀴어를 많이 만나는 사람일 확률이 높을 것 같아요. 제가 박사논문 쓰고 난 다음에 클럽에 가서 평소 알던 친구와 “나 박사 됐어” 그랬더니, “박사가 뭐야?” 그래요. 그래서 “박사는 몸들이 안 좋고, 감이 많이 떨어져”라고 답했어요(웃음). 그러니까 연구자가 아닌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게 어찌 보면 자기 현장이 있다는 것이고, 그 현장을 바라보고, 눈에 잡히는 뚜렷한 인구군을 보고 뭔가를 쓸 수 있다는 게 사실 굉장히 중요하죠. 특히 사학자로서는 되게 중요한 게, 내 말과 설명이 어떻게 들릴지를 상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인구군이 있다는 게 큰 강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학자 중에는 과거를 덕질하면서 남한테 “넌 이게 안 재밌니?” 이런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저는 이게 왜 재밌고 필요한지에 대한 숙고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공동체를 함께 만든다고 했을 때, 사실은 상호 돌봄의 장이 필요할 텐데요. 저는 결국 자기돌봄의 기본치가 갖춰지지 않으면 상호 돌봄도 불가능한 것 같고요. 연구자로서 자기돌봄이 되려면 결국은 내 연구에 대한 확고한 동기부여가 있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게 너무 붙어 있을 때는 또 문제가 되겠죠. 임동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연구 주제나 문제의식과 실제로 접하는 연구 대상들이 어느 정도는 미끄러져야 하는 거죠. 연구 주제가 완벽하게 전유할 수 있는 대상은 애초에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을 조심해야 하는 건 맞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 연구 주제나 연구 대상을 통해서 내가 얻는 효능감이 누구한테 설명할 필요도 없이 나한테는 매우 확고해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앞으로 버텨나가야 할, 수많은 상호 호혜적이지 않은 단체와 학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수적인 어떤 게 아닌가 하고요. 그런 효능감을 얻는 데 성공하거나 혹은 얻는 데 실패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상호 돌봄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신자유주의적인 개인화의 논리인 것 같기도 하지만, 제 체감으로는 현실이 그렇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루인 학술대회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린 건 연구포럼이 작아 보여서는 아니고요. 이미 성소수자 인권포럼5이라는 행사안에서 연구포럼을 하고 있으니, 별도의 학술대회로 이름을 가져가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성연넷이 워낙 오랫동안 활동을 해오셨는데 그 성과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가면 좋지 않겠느냐는 고민도 있었어요. 

다른 한편으로 문득 드는 생각은, 왜 제도화나 학술지에 글을 쓰는 일은 퀴어하지 않은가와 같은 질문도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형식은 퀴어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내용을 어떻게 꾸리는가는 또 다른 이야기잖아요. 제도나 학술지처럼 무언가를 만드는 일, 즉 시스템 그 자체가 퀴어하지 않은 것인지 질문해 보고 싶었어요. 오히려 그 내용이나 운영 방식 같은 것들을 다르게 만드는 게 중요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정성조 여러 의견을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퀴어 연구의 장을 어떻게 같이 만들어 갈 수 있을지 많은 고민과 의견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궁금하신 점이 많으실 것 같아요. 플로어에서도 질문을 받아보겠습니다.


질문 1 저는 식민지 시기의 섹슈얼리티와 남성성에 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들었던 가장 큰 고민은 현재 쓰고 있는 섹슈얼리티나 퀴어라는 용어를 과거 식민지 시기에 소급해서 적용해 사용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변태성욕자’나 LGBT 인구 집단에 포섭될 수 있는 대상에 관한 연구를 넘어서 섹슈얼리티와 퀴어 연구를 어떻게 더 확장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그러한 이론적 도구는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는데요. 특히 오늘날 사용하는 퀴어나 섹슈얼리티라는 단어와 부합할 수 있는 대상은 이미 싹싹 긁어서 연구가 되고 있다고 보이는데, 이럴 때 어떻게 연구를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박사논문을 쓰시면서 구하신 답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질문 2 제가 하는 연구 주제는 인문학 분야에서도 많이 안 하는 주제라 선생님들 말씀에 공감이 갔습니다. 또한 저는 지방 대학에서 연구하고 있어서 어려운 부분도 있어요. 이런 고민을 어떤 식으로 해결해 나가고 계신가요? 또한, 다른 고민을 하고 계신다면 어떤 고민인가요?


질문 3 저도 루인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학과 안에서 환대받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게 정말 필요했다”, “이 주제를 꼭 써줬으면 좋겠다.” 이런 소리를 들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트랜스젠더 연구를 하겠다고 하면 교수님들께서는 “나는 그에 대해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가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많이 없는 것 같다.” 이런 소리를 많이 하십니다. 그래서 대학원생끼리 같이 세미나라도 하거나 공부하고자 찾아보면 서로 주제에 맞는 관심사를 가진 사람도 거의 없어서 동료를 구할 수 없고,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러한 조건을 어떻게 헤쳐나가셨나요?


질문 4 저는 공부하면서 같은 퀴어를 연구하거나 같은 무언가를 연구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학계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과학이라 하더라도 데이터만으로 퀴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잖아요. 저는 퀴어를 이해할 때 인문학이라든가 정치라든가 역사라든가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느끼는데요. 제가 이런 말을 저희 지도교수님께 드렸더니 “혹시 천천히 석사가 되고 싶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러한 고민과 관련해서 어떻게 공부를 지속해 오셨나요?


질문 5 공부하면서 ‘퀴어 운동판’을 얘기할 때 여기는 가방끈이 긴 사람들밖에 없다는 혐의를 받게 되고, 공부를 하다 보면 사람끼리 “내가 학문장 안에서 실질적으로 무슨 도움과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얘기를 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이 본 것 같아요. 김대현 선생님께서 “필요하니까 하는 것”이라고 하신 그 말씀에서도 많은 생각이 드는 것 같고요. 공부라는 것이 실질적인 것, 현실이라는 것과 전혀 대비되지 않는 퀴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오늘날 한국의 학문장 안에서의 퀴어 연구에 있어서 퀴어함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정성조 여러 질문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 질문 가운데 답변이 가능하신 부분에 답해주시면서 마무리 발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대현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간단히 하자면요.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이런 것은 1990년 이후의 용어잖아요. 그전에는 그런 용어가 그런 방식으로 쓰이지 않았거나 그런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죠. 저는 박사논문에서 퀴어라는 용어는 국문·영문 초록에만 넣고 본문에는 ‘비규범적 젠더·섹슈얼리티 실천’이라고 썼어요. 어떻게 보면 편하게 넘어간 거죠. 퀴어라는 말이 그 나름의 역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사례를 설명할 때 ‘퀴어’를 쓰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 저 말에 깔린 중요한 문제의식인데, 잘 지적해 주신 것 같아요.

퀴어 연구자들의 학술 공동체 얘기가 나왔는데요. 한편으로 저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지점이, “퀴어 연구자끼리 모이면 즐겁기만 할까?”라는 생각을 해요(웃음). 제가 살면서 느낀 게, 퀴어라 할지라도 사람은 다 남이거든요. 너무 공감하시죠? 같은 게이라고 할지라도 다 다르잖아요. 우리끼리 모인 여기에서 커뮤니티성이 알아서 피어오를 것 같지만, 실은 전혀 아니잖아요. 1부터 35까지 같더라도, 36이랑 37이 다르다는 것 때문에 더 틀어질 수 있는 게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같은 퀴어야”, “같은 동성애자야”, “같은 연구자야”, “같은 성소수자야” 라는 데에 너무 큰 기대를 걸고, 무언가 엄청난 공동체성이 피어오를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서로 철저히 다르기 때문에, 일견 서로가 조금 같아 보여도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한다는 거고, 이런 맥락 속에서 연구 공동체든지 멤버십이든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루인 이전의 어떤 시기에 대해서 “많은 걸 이미 썼다”라고 하시면서 “다 긁어 나갔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는 게 핵심이 아니라면 저는 그때부터 진짜 할 이야기가 많아진다고 보게 되거든요. 이미 발굴된 자료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다시 해석하는 작업이 가능할지 고민하면서부터 진짜 내가 설 수 있는 입장이 생기고 해석의 힘이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쩐지 희망편인 것 같기는 한데요(웃음). 현실은 더 괴롭죠.

얼마 전에 아는 분과 만나서 “옛날에 연구했던 사람들이 최고로 좋았겠다”라는 이야기를 했어요(웃음). 모든 게 새로운 얘기일 테니까요. 내가 하려고 하면 “이미 누군가 다 해둔 이야기를 어떻게 새로운 것처럼 말을 하지?” 같은 괴로움이 있죠. 그런데 앞선 작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 필요하다고 봐요. 학술장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필요가 있을 텐데요. 저는 새로운 지식을 계속해서 습득하는 것과 더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 지식을 질문으로 체화시키는 거라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게 중요한 동시에 그것을 질문하는 방식으로서 어떻게 체화시키고 새로운 질문을 생산해 내는가가 중요하다는 거죠. 체화된 질문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그냥 지식 자랑이 되면서 고립되거나, “그런 게 있어. 무언가 있더라” 하는데 논리는 전개가 안 되고 계속 겉돌기만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오혜진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김대현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잘 해주셨는데요. 저도 논문에서 ‘LGBT’, ‘성소수자’, ‘퀴어’를 다 다른 의미로 썼어요. 그리고 성적 욕망, 성적 행위, 성적 정체성도 다 다른 뜻이잖아요. 이 용어들이 어떤 의미로 어떻게 사용되는지, 어떨 때 포괄적으로 사용되고 언제 분화되는지 질문하는 것부터가 연구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그걸 연구 주제로 삼으셔야 할 것 같고요.

두 번째, 세 번째 질문은 상통하는 질문 같아요. 사실 저도 국어국문학과에서 젠더·섹슈얼리티를 연구하니까 확실히 배경지식의 부족함을 많이 느꼈어요. 제가 여성학적 연구의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고 느낄 때도 많았고요. 퀴어 정치학과 관련된 서적들도 한국에 별로 없을뿐더러 그것들에 접근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국문과에서 젠더·섹슈얼리티를 연구하는 방식이 결국에는 페미니즘과 퀴어 연구에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거든요. 퀴어 연구를 하는 데 정도(正道)는 없는 것 같아요. 자신이 지금 몸담은 곳에서 공부한 것들을 퀴어링하고 그것들을 다른 자원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퀴어 연구의 퀴어성이란 무엇인가?’ 이건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이기도 하네요. ‘퀴어 연구’란 단지 연구 대상을 ‘성소수자’라는 인구 집단으로 잡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마지막 질문에서 논의했던 것처럼 아카데미 장 자체를 퀴어링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까지를 포괄하는 게 퀴어 연구의 퀴어성 같거든요. 최근 퀴어 연구가 서구 아이비리그의 백인 부자 엘리트들이 선점한 영역이 됐다는 문제의식도 나오고 있죠. 한국은 퀴어 연구가 그 정도로 제도화되고 전임 교수가 나오고 하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진단들이 시기상조처럼 느껴질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아카데미에 종사하면서 갖게 되는 계급성 같은 게 있잖아요. 그에 관한 질문을 계속하는 것도 전 퀴어 연구의 퀴어한 면모라고 생각합니다.


임동현 두 번째, 세 번째 질문은 비슷한 것 같아요. 저희가 퀴어 연구를 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사실 하다 보면 각자의 연구 주제는 다 세부적이어서 공통된 주제를 공유하는 연구자를 딱 만나기란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공부는 어떤 면에서 혼자 해야 하는 것인데 거기서 오는 좌절이 있죠. 제게도 그랬던 때가 있었는데요. 그렇게만 생각하면 좀 괴롭더라고요. 사실 그 외에도 제가 공통으로 할 수 있는 공부는 있고, 그런 게 제게 도움이 되는 경험도 많았어요. 이제 좀 좋게 풀어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질문해 주신 분의 지도교수님께서 그렇게 늦게 석사가 되고 싶냐는 식으로 말씀하셨다고 했는데요. 이게 정말 어려운 문제 같아요. 모르겠습니다. 어느 정도 굉장히 타협해 나갈 수밖에 없는 사정들이 다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중에는 굉장히 간학제적인 공부하고 싶으신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제 성연넷에서 그런 역할을 많이 해주셔야 하는 게 아닐까요?(웃음)


정성조 아까부터 숙제를 많이 주시네요(웃음).


임동현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공부를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를 찾고, 또 간학제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오늘 라운드테이블의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가 간학제적인 비판 연구로서의 고민이었잖아요. 그런 식으로 풀어갈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어느 정도 타협해 가면서 찾을 수밖에 없겠다 싶어요. 그리고 이러한 고민에는 퀴어 연구가 굉장히 힘들다는 걸 떠나서 한국 학술장의 근본적인 문제가 많이 투입된 것 같기도 해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기가 참 어렵네요.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연구자로서 이렇게 돈 없는 상황을 살면서 보람을 찾아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연구자들이 자의식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오래 하려면 자의식을 버리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내 연구는 이 커다란 학술 생태계에 하나의 톱니바퀴에 불과하다.”(웃음) 이런 생각을 해요. “내가 이렇게 써두면 어딘가에 써먹히겠지.” 저는 그냥 이 정도의 생각으로 하거든요. 내 연구가 너무 중요하고, 이런 걸 사람들이 보고 도움이 됐으면 좋겠고. 그렇게까지 하면 자기만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퀴어 연구에서 퀴어라는 게 무엇이냐라고 했을 때 그건 그냥 하나의 관점인 것 같아요. 퀴어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교수님들이나 다른 분과에 계신 분들도 구조주의라고 하면 대충은 아시면서 퀴어 이론은 잘 모르시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게 모든 연구자가 상식처럼 알아야 하는 하나의 중요한 인식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단순히 섹슈얼리티 연구로 국한되는 것도 아니고요. 푸코주의적이라고 말하실 수도 있지만 거칠게 말하면 저는 “이런 식으로 통치당하지 않는 법”에 관한 연구라고 보는데, 저희가 여기에서 합의를 보고 커다란 장을 조성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해요.

첫 번째 질문자분께서 말씀하신 고민도 그러한 학술장 안에서 다양한 논의를 통해 풀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컨대 김대현 선생님께서는 제가 석사논문으로 했던 노년 게이 남성 연구에 대해서 일정한 비판을 하시면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잖아요. 그런 식으로 같은 자료를 놓고도 다른 방식으로 끊임없이 퀴어링해 나가는 방법이 있겠죠. 그러니까 제가 연구 담론으로서 만들어낸 하나의 주장도 어떤 순간에는 하나의 권력처럼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 나가는 것이 오늘날 퀴어 연구에서 퀴어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성조 마지막 마무리를 너무 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실 퀴어 정치나 퀴어 운동이 마주하고 있는 어떤 벽하고도 비슷하게 느껴요. 무슨 말이냐 하면, 성소수자 운동이 한국에서 민주주의, 시민사회, 인권, 평등 같은 개념에 대해서 다양한 재구성 작업을 해왔는데요. 그런 기여에도 불구하고, “그때 너네가 뭘 했는데? 너희는 없었잖아?”와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기도 하죠. 그런 양상이 오늘 저희가 이야기한 퀴어 연구가 전체 학계의 지식 생산의 장 안에서 해온 기여가 비가시화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도 보여요. 이런 문제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하는 과제가 주어져 있는 것이죠. 김대현 선생님께서는 같이 있으면 괴로울 수 있다고도 말씀하셨지만요. 어떤 거리감을 우리가 같이 만들어 가는 작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와주신 분들께서도 함께 고민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대현

연세대학교 글로벌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운영위원, 가족구성권연구소 운영위원. 여성과 성소수자를 아우르는 한국사회 성적 억압의 역사적·제도적 성격 규명에 관심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게이남성 돌봄이 위치한 다층적 풍경」(공저), 「서울가정법원의 소년법원적 기원과 비인간화의 기술 : 소년비행 및 이혼 조정에 적용된 '치료적 사법'을 중심으로」, 「일본의 사회사업에서 미국의 사회사업으로 : 1950~60년대 결혼상담소와 ‘우생결혼’ 담론의 교차」, 저서로 『세상과 은둔 사이』(오월의봄, 2021), 공저로 『원본 없는 판타지』(후마니타스, 2020), 『불처벌』(휴머니스트, 2022) 등이 있다.


루인

공부노동자이자 블로거로서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와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의 역사를 다시 쓰고, 이를 통해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을 이론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혜진

문학평론가. 서사·표상·담론의 성정치를 분석하고 역사화하는 일에 관심 있다.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포스트페미니즘 시대 한국 여성문학·퀴어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단독, 2019), <연구자의 탄생>(공저, 2022), <원본 없는 판타지>(공저, 2020),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공저, 2018) 등이 있다. 대학에서 문학비평 및 문화이론을 강의한다.


임동현

문화연구를 전공했다. 대학에서 섹슈얼리티, 미디어 문화 등을 주제로 강의하며 인천대 인문학연구소에서 일한다. 섹슈얼리티와 미디어가 얽히는 다방면의 문화 현상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정성조

사회학 연구자.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며,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차별경험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다. 성소수자/퀴어연구 학술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관심이 많다.

  1. 연혜원 기획, 스큅, 마노, 상근, 권지미, 김효진, 윤소희, 조우리, 한채윤, 김지현, 루인.   (2021), 『퀴어돌로지: 전복과 교란, 욕망의 놀이』, 오월의봄.

  2. 예를 들어, Kang, Dredge Byung’chu (2017), "Eastern Orientations: Thai Middle-Class Gay Desire for “White Asians”." Culture, Theory, and Critique, 58(2): 182-208.

  3. Jung, Minwoo (2024), "Imagining Sovereign Futures: The Marriage Equality Movement in Taiwan." Social Movement Studies, 23(4): 462-478.

  4. 성소수자 대학원생/신진연구자 네트워크는 ‘한국 성소수자 연구 아카이브’ 연구팀을 꾸려 2021년까지 발표된 한국 성소수자 관련 연구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였고, 그 결과를 2024년 성소수자 인권포럼에서 발표하였다. 발표 내용은 보완을 거쳐 다음 논문으로 출판되었다. 이혜민, 박정은, 전원근, 김종빈, 이호림, 정성조 (2024), "한국 성소수자 연구 동향과 과제: 체계적 문헌고찰 및 텍스트 분석." 『경제와사회』, (143): 303-341.

  5. 성소수자 인권포럼은 무지개행동이 2008년 발족한 이후 매년 개최해온 포럼이다. 이 포럼은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취지로 시작하였으며, 학술적 논의나 문화적 영역에 대한 논의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