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2025.9.) l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 l 신진연구
'여성 인권 보호'를 내세우는 트랜스젠더 혐오, 그 국제적 연결망을 추적하기
「한국 TERF 세력의 모순적 위치 설정과 자기 정당화 전략:
글로벌 반(反) 트랜스 운동과 관계 맺기」 (2024)
김지은
신진연구 코너에서는 최근 출간된 성소수자/퀴어 관련 학위논문을 소개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우선, 신진연구자 소개 코너에 글을 싣도록 도와주신 웹진 『도착』의 편집팀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 글에서는 연구 관심사, 학위논문 작성 과정, 앞으로의 진로 계획 등을 허심탄회하게 나눠보고자 한다. 나는 퀴어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혐오정치, 글로벌한 우경화 현상, 트랜스 배제적 래디컬 페미니즘(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 안티 젠더 운동(anti-gender movements)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연구에 관심이 있다. 2024년 2월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에서 「한국 TERF 세력의 모순적 위치 설정과 자기 정당화 전략: 글로벌 반(反)트랜스 운동과 관계 맺기」라는 논문을 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석사과정 동안 같은 대학교 아시아여성학센터의 ‘인종과 젠더’ 연구 프로젝트에 학생연구원으로 참여했으며, 졸업 후부터는 석사급연구원으로 함께하고 있다. 현재는 인종을 둘러싼 타자화와 혐오의 정치가 일본, 한국, 대만에서 어떤 식으로 논의되고 있는지를 톺아보는 리뷰 논문을 집필 중이다.
내가 석사논문을 통해 핵심적으로 조명하고자 했던 점은 반 트랜스 담론이 페미니즘적 수사를 통해 구축되는 양상이었다. 특히 ‘여성 권리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움으로써 자신들의 운동을 정당화하려는 혐오정치 세력들이 어떻게 상호 연결되어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국제적인 역학 관계를 만들어 가는지, 그 과정이 어떻게 위험한 정치적 효과를 생산해 내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했다.
다종다양한 혐오정치 중에서도 반 트랜스 정치를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2010년대 중반부터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전개되어 온 페미니즘 논의에 활발히 참여했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2015년에 시작된 “페미니즘 리부트”는 나를 비롯한 많은 한국 여성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게 한 중요한 계기였지만, 동시에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트랜스 배제적 주장을 정당화하는 담론을 대중화시킨 배경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라인 공간뿐만 아니라 교내 여성학 연계전공 수업에서도 자칭 ‘페미니스트’들의 트랜스 혐오 발언들을 마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상황은 한편으로 나의 분노를 자극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혐오’에 관한 근본적인 궁금증을 품게 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서 두드러지게 된 트랜스 배제적 페미니스트들의 혐오 정동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기인한 걸까? 반 트랜스 담론이 이토록 급격하게 확산한 요인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페미니즘의 언어를 전유한 혐오정치에 대해 ‘페미니스트’로서 비판적으로 개입할 수 있을까? 쉽사리 풀리지 않는 의문들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또 ‘단순하고 간편한’ 혐오 발언들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2021년 여성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2년 간의 석사과정은 막연한 의문들을 연구 질문으로 구체화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학위논문에서는 2018년 이후 한국 TERF 세력의 조직화 시기에 초점을 맞춰, 이들이 국제 TERF 단체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서구 페미니즘’과 ‘서구 사회’라는 범주의 의미를 어떻게 자의적으로 규정해 나갔는지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국내·외 TERF 세력이 온라인에 업로드했던 문헌 자료에 대한 담론 분석을 진행했다.
논문의 2장과 3장에서는 여러 국가의 TERF 조직들이 어떻게 서구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안티 젠더 운동과 조우하고 있는지, 한국의 주요 TERF 세력은 서구 사회의 TERF 조직들과 어떤 실질적 접점을 만들어왔는지 추적했다. 그중에서도 “Women’s Declaration International(국제여성선언)”이라는 국제 TERF 단체와 그 ‘한국지부’의 활동 양상에 주목함으로써, 이들이 손을 잡게 된 과정이 한국 TERF 세력의 정치적 주장과 입지를 정당화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들여다보았다. 한편, 논문 4장에서는 온라인상의 한국 TERF들이 어떤 담론적 전략을 통해 ‘서구/미국/영국 페미니즘’과 ‘한국 페미니즘’이라는 범주 사이의 경계를 자의적으로 구분 지으며 자신들의 독자적 위치를 설정하려 했는지 분석했다. 이들은 분명 서구의 반 트랜스, 반 젠더 담론에서 자료, 논리 구조, 운동 전략 등을 차용해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구의 논의를 무조건 신봉하거나 복제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TERF 정치의 구성과 그 문제점을 비판한 국내·외 논문들은 기존에도 있었지만, 내 연구는 ‘한국’ 사회의 TERF 문제를 ‘국제적인’ 안티 젠더 운동과 반 트랜스 정치의 맥락 내부에 배치해서 읽어내려 한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한 사회에서 펼쳐지는 TERF 운동의 지향점이 여타 지역들과의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조형된다는 것을 밝히는 동시에, TERF식 혐오정치가 왜 위험한지를 더욱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기에 의의가 있다.
사실 이렇게 연구 의의를 구체화할 수 있게 되기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특히 내 정치적 입장을 명확하고도 설득력 있게 써 내려가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례로 TERF라는 용어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기반해 연구를 전개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규명할 필요가 있었다. 나 역시 ‘이들을 트랜스 배제적 래디컬 ‘페미니스트’라고 호명해도 괜찮은 것일까?’ ‘오히려 페미니즘의 의미를 왜곡해서 전달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자료들을 분석해 나가면서, 특정한 형태의 담론을 단순히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다’라고 일축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든, 이론적으로든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우리의 규정과는 무관하게, 반 트랜스 논리가 여성에게 ‘유익’하다고 믿으며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글로벌한 안티 젠더 운동에 연료를 공급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미 활발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TERF의 관점을 그저 ‘가짜 페미니즘’으로 치부하고 저 멀리 치워놓는다면, 반동적(reactionary) 정치와 일부 자칭 ‘페미니스트 운동’ 사이의 복잡한 연결고리를 간과하게 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TERF라는 용어에 기반해 이번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용어의 문제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리부트로부터 거의 10년이 지나간 이 시점에 한국 TERF를 비판하는 연구가 아직도 유효한가?’라는 의구심도 내가 답해야 할 숙제였다. 역시 여러 고민이 들었으나, 논문을 마무리 지으면서는 그러한 연구가 여전히 시의성이 있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현재도 국제적인 트랜스 혐오는 시스젠더 여성의 인권과 안전에 호소하는 수사를 통해 정당화의 구실을 찾아가고 있으며, 세계 곳곳의 TERF들은 여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여성 혹은 자칭 ‘페미니스트들’이 직접 트랜스젠더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증언하는 모습은 글로벌한 반 트랜스 정치에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한’ 자원들을 더해준다. 트럼프 2기 정부와 최근 영국 대법원의 반 트랜스, 반 젠더 기조가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영미권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소위 ‘생물학적 여성’만을 ‘진짜 여성’으로 인정하고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젠더 개념 자체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실재하며, 보수 우파 개신교계 세력이 TERF식 논리를 활용하여 퀴어 혐오를 정당화하는 모습까지 포착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적 현실에 지속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앞으로도 사회적 소수자를 겨냥한 혐오정치의 글로벌한 역동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 예컨대, TERF에 관한 분석을 더 확장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 TERF 세력의 ‘조직화’가 약화한 것처럼 보이는 2020년대 중반에 국내 TERF 담론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띠고 있으며, 여성 청년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2010년대 이후 한국 TERF들이 생산한 담론은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한국의 경우처럼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서구 TERF 조직과의 협업을 통해 반 트랜스 운동이 전개된 사례가 있는가? 한국 TERF 세력과 보수 우파 개신교계의 반동적 정치학은 어떤 지점에서 맞물리고 공명하며, 또 어떤 지점에서 갈라지는가? 등 여전히 풀리지 않은 연구 질문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분석의 범위를 더 넓힌다면, TERF 이외의 다양한 극우·보수 정치 세력들에 주목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한국 사회 내에서 어떻게 젠더, 섹슈얼리티, 페미니즘 등을 공격하고 제거의 대상으로 삼는지, 그러한 양상이 전 세계적인 극우화의 흐름 및 안티 젠더 운동과 어떻게 실질적·담론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작업도 흥미로울 듯하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더욱 날카롭게 벼리기 위해 내년 중으로 미국 대학의 젠더학/사회학 박사 과정에 지원해 볼 계획이다. 미국에서 직접 글로벌 극우화와 안티 젠더 운동의 동학을 관찰함으로써, 그러한 움직임이 한국 및 동아시아의 혐오정치 세력과 어떻게 조우하게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사실 석사 졸업 후인 2024년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는 상당히 정신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했던 것 같다. 가까운 이들을 영영 떠나보냈던 일들, 12.3 내란과 그 이후의 정치적 파장, 전 세계적 우경화와 빗발치는 국제 전쟁 소식들로 인해 ‘미래’를 구상하는 것이 상당히 힘겨웠다. 수많은 혼란 속에서 ‘연구’를 하는 것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계속 되묻기도 했다. 여전히 뾰족한 답은 없다. 하지만 우울감과 회의감이 마음속에 차오를 때마다, 결국 나를 다시 붙들어준 것은 사랑하는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던 동료 연구자들이었다. 그래서 웹진 『도착』이라는 창구를 통해 더욱 다양한 분야의 퀴어 페미니스트 연구자들과 연결될 수 있기를, 더 든든한 학술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함께 흔들리고 연대할 수 있는 동료들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김지은
여성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학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다양한 혐오정치와 안티 젠더 운동, 전 세계적 극우화의 흐름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데 관심이 있다.
2호(2025.9.) l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 l 신진연구
'여성 인권 보호'를 내세우는 트랜스젠더 혐오, 그 국제적 연결망을 추적하기
「한국 TERF 세력의 모순적 위치 설정과 자기 정당화 전략:
글로벌 반(反) 트랜스 운동과 관계 맺기」 (2024)
김지은
신진연구 코너에서는 최근 출간된 성소수자/퀴어 관련 학위논문을 소개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우선, 신진연구자 소개 코너에 글을 싣도록 도와주신 웹진 『도착』의 편집팀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 글에서는 연구 관심사, 학위논문 작성 과정, 앞으로의 진로 계획 등을 허심탄회하게 나눠보고자 한다. 나는 퀴어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혐오정치, 글로벌한 우경화 현상, 트랜스 배제적 래디컬 페미니즘(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 안티 젠더 운동(anti-gender movements)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연구에 관심이 있다. 2024년 2월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에서 「한국 TERF 세력의 모순적 위치 설정과 자기 정당화 전략: 글로벌 반(反)트랜스 운동과 관계 맺기」라는 논문을 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석사과정 동안 같은 대학교 아시아여성학센터의 ‘인종과 젠더’ 연구 프로젝트에 학생연구원으로 참여했으며, 졸업 후부터는 석사급연구원으로 함께하고 있다. 현재는 인종을 둘러싼 타자화와 혐오의 정치가 일본, 한국, 대만에서 어떤 식으로 논의되고 있는지를 톺아보는 리뷰 논문을 집필 중이다.
내가 석사논문을 통해 핵심적으로 조명하고자 했던 점은 반 트랜스 담론이 페미니즘적 수사를 통해 구축되는 양상이었다. 특히 ‘여성 권리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움으로써 자신들의 운동을 정당화하려는 혐오정치 세력들이 어떻게 상호 연결되어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국제적인 역학 관계를 만들어 가는지, 그 과정이 어떻게 위험한 정치적 효과를 생산해 내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했다.
다종다양한 혐오정치 중에서도 반 트랜스 정치를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2010년대 중반부터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전개되어 온 페미니즘 논의에 활발히 참여했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2015년에 시작된 “페미니즘 리부트”는 나를 비롯한 많은 한국 여성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게 한 중요한 계기였지만, 동시에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트랜스 배제적 주장을 정당화하는 담론을 대중화시킨 배경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라인 공간뿐만 아니라 교내 여성학 연계전공 수업에서도 자칭 ‘페미니스트’들의 트랜스 혐오 발언들을 마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상황은 한편으로 나의 분노를 자극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혐오’에 관한 근본적인 궁금증을 품게 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서 두드러지게 된 트랜스 배제적 페미니스트들의 혐오 정동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기인한 걸까? 반 트랜스 담론이 이토록 급격하게 확산한 요인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페미니즘의 언어를 전유한 혐오정치에 대해 ‘페미니스트’로서 비판적으로 개입할 수 있을까? 쉽사리 풀리지 않는 의문들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또 ‘단순하고 간편한’ 혐오 발언들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2021년 여성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2년 간의 석사과정은 막연한 의문들을 연구 질문으로 구체화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학위논문에서는 2018년 이후 한국 TERF 세력의 조직화 시기에 초점을 맞춰, 이들이 국제 TERF 단체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서구 페미니즘’과 ‘서구 사회’라는 범주의 의미를 어떻게 자의적으로 규정해 나갔는지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국내·외 TERF 세력이 온라인에 업로드했던 문헌 자료에 대한 담론 분석을 진행했다.
논문의 2장과 3장에서는 여러 국가의 TERF 조직들이 어떻게 서구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안티 젠더 운동과 조우하고 있는지, 한국의 주요 TERF 세력은 서구 사회의 TERF 조직들과 어떤 실질적 접점을 만들어왔는지 추적했다. 그중에서도 “Women’s Declaration International(국제여성선언)”이라는 국제 TERF 단체와 그 ‘한국지부’의 활동 양상에 주목함으로써, 이들이 손을 잡게 된 과정이 한국 TERF 세력의 정치적 주장과 입지를 정당화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들여다보았다. 한편, 논문 4장에서는 온라인상의 한국 TERF들이 어떤 담론적 전략을 통해 ‘서구/미국/영국 페미니즘’과 ‘한국 페미니즘’이라는 범주 사이의 경계를 자의적으로 구분 지으며 자신들의 독자적 위치를 설정하려 했는지 분석했다. 이들은 분명 서구의 반 트랜스, 반 젠더 담론에서 자료, 논리 구조, 운동 전략 등을 차용해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구의 논의를 무조건 신봉하거나 복제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TERF 정치의 구성과 그 문제점을 비판한 국내·외 논문들은 기존에도 있었지만, 내 연구는 ‘한국’ 사회의 TERF 문제를 ‘국제적인’ 안티 젠더 운동과 반 트랜스 정치의 맥락 내부에 배치해서 읽어내려 한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한 사회에서 펼쳐지는 TERF 운동의 지향점이 여타 지역들과의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조형된다는 것을 밝히는 동시에, TERF식 혐오정치가 왜 위험한지를 더욱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기에 의의가 있다.
사실 이렇게 연구 의의를 구체화할 수 있게 되기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특히 내 정치적 입장을 명확하고도 설득력 있게 써 내려가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례로 TERF라는 용어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기반해 연구를 전개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규명할 필요가 있었다. 나 역시 ‘이들을 트랜스 배제적 래디컬 ‘페미니스트’라고 호명해도 괜찮은 것일까?’ ‘오히려 페미니즘의 의미를 왜곡해서 전달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자료들을 분석해 나가면서, 특정한 형태의 담론을 단순히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다’라고 일축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든, 이론적으로든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우리의 규정과는 무관하게, 반 트랜스 논리가 여성에게 ‘유익’하다고 믿으며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글로벌한 안티 젠더 운동에 연료를 공급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미 활발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TERF의 관점을 그저 ‘가짜 페미니즘’으로 치부하고 저 멀리 치워놓는다면, 반동적(reactionary) 정치와 일부 자칭 ‘페미니스트 운동’ 사이의 복잡한 연결고리를 간과하게 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TERF라는 용어에 기반해 이번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용어의 문제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리부트로부터 거의 10년이 지나간 이 시점에 한국 TERF를 비판하는 연구가 아직도 유효한가?’라는 의구심도 내가 답해야 할 숙제였다. 역시 여러 고민이 들었으나, 논문을 마무리 지으면서는 그러한 연구가 여전히 시의성이 있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현재도 국제적인 트랜스 혐오는 시스젠더 여성의 인권과 안전에 호소하는 수사를 통해 정당화의 구실을 찾아가고 있으며, 세계 곳곳의 TERF들은 여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여성 혹은 자칭 ‘페미니스트들’이 직접 트랜스젠더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증언하는 모습은 글로벌한 반 트랜스 정치에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한’ 자원들을 더해준다. 트럼프 2기 정부와 최근 영국 대법원의 반 트랜스, 반 젠더 기조가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영미권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소위 ‘생물학적 여성’만을 ‘진짜 여성’으로 인정하고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젠더 개념 자체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실재하며, 보수 우파 개신교계 세력이 TERF식 논리를 활용하여 퀴어 혐오를 정당화하는 모습까지 포착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적 현실에 지속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앞으로도 사회적 소수자를 겨냥한 혐오정치의 글로벌한 역동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 예컨대, TERF에 관한 분석을 더 확장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 TERF 세력의 ‘조직화’가 약화한 것처럼 보이는 2020년대 중반에 국내 TERF 담론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띠고 있으며, 여성 청년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2010년대 이후 한국 TERF들이 생산한 담론은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한국의 경우처럼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서구 TERF 조직과의 협업을 통해 반 트랜스 운동이 전개된 사례가 있는가? 한국 TERF 세력과 보수 우파 개신교계의 반동적 정치학은 어떤 지점에서 맞물리고 공명하며, 또 어떤 지점에서 갈라지는가? 등 여전히 풀리지 않은 연구 질문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분석의 범위를 더 넓힌다면, TERF 이외의 다양한 극우·보수 정치 세력들에 주목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한국 사회 내에서 어떻게 젠더, 섹슈얼리티, 페미니즘 등을 공격하고 제거의 대상으로 삼는지, 그러한 양상이 전 세계적인 극우화의 흐름 및 안티 젠더 운동과 어떻게 실질적·담론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작업도 흥미로울 듯하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더욱 날카롭게 벼리기 위해 내년 중으로 미국 대학의 젠더학/사회학 박사 과정에 지원해 볼 계획이다. 미국에서 직접 글로벌 극우화와 안티 젠더 운동의 동학을 관찰함으로써, 그러한 움직임이 한국 및 동아시아의 혐오정치 세력과 어떻게 조우하게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사실 석사 졸업 후인 2024년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는 상당히 정신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했던 것 같다. 가까운 이들을 영영 떠나보냈던 일들, 12.3 내란과 그 이후의 정치적 파장, 전 세계적 우경화와 빗발치는 국제 전쟁 소식들로 인해 ‘미래’를 구상하는 것이 상당히 힘겨웠다. 수많은 혼란 속에서 ‘연구’를 하는 것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계속 되묻기도 했다. 여전히 뾰족한 답은 없다. 하지만 우울감과 회의감이 마음속에 차오를 때마다, 결국 나를 다시 붙들어준 것은 사랑하는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던 동료 연구자들이었다. 그래서 웹진 『도착』이라는 창구를 통해 더욱 다양한 분야의 퀴어 페미니스트 연구자들과 연결될 수 있기를, 더 든든한 학술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함께 흔들리고 연대할 수 있는 동료들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김지은
여성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학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다양한 혐오정치와 안티 젠더 운동, 전 세계적 극우화의 흐름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데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