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2025.9.) l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 l 신진연구
웃음의 틈으로 말하기
「퀴어 코미디와 수치심의 정동 정치 :
국내 퀴어 유튜브 및 팟캐스트 콘텐츠와 구독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2024)
김시언
신진연구 코너에서는 최근 출간된 성소수자/퀴어 관련 학위논문을 소개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나는 언제나 경계에 끌려왔다. 나와 타인의 경계, 몸과 몸의 경계, 억압과 저항의 경계, 허용 및 합의와 금기의 경계. 퀴어 이론과 퀴어 실천을 잇는 접점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겠다. 한국어의 ‘경계’는 영어로는 ‘border’이자 ‘vigilance’이다. 긋는 선이면서도 동시에 감시인 것이다. 내가 석사 논문에서 퀴어 코미디를 탐구하게 된 것도 이 경계의 감각에서 출발했다. 퀴어 코미디는 ‘말할 수 있음’과 ‘말해서는 안 됨’ 사이, 웃음과 수치심 사이에서 우리가 어떻게 경계를 흔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해 열릴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브 세즈윅(Eve Kosofsky Sedgwick)은 수치심을 세계와의 접촉면에서 발생하는 정동으로 본다. 세즈윅의 분석에 따르면 애초에 나에게 관심을 불러 일으킨 대상만이 나에게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나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수치의 순간은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열어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나 역시 이 통찰을 따라, 퀴어 코미디에서 농담이 어떻게 수치심과 맞물리며 퀴어한 공동체를 상상하게 하는지를 추적했다. 특히 자조적 농담이 지닌 힘—자기 자신을 웃음의 대상이자 주체로 만들며, 동시에 타인을 웃게 만드는 힘—에 주목했다. 그 웃음은 절대 안전하지 않다. 언제든 실패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시도와 도박을 통해, 퀴어 주체는 경계의 틈을 조금씩 벌린다. 농담은 그렇게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우리’를 만들어낸다.
이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는 바로 ‘정치적 올바름’과 ‘당사자성’이다. 오늘날 퀴어 정치 담론에서 이 두 개념은 정치적 운동과 담론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중요한 기제인 동시에, 때로는 강력한 경계처럼 작동한다.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누가 어떤 농담을 할 ‘자격’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가늠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퀴어 코미디는 종종 그 경계를 어지럽히고 흐릿하게 만든다. 농담은 말 그대로 예측 불가능한 경로로 흘러들며, 때로는 ‘당사자성’의 경계를 의도치 않게, 혹은 의도적으로 넘나든다. 나는 이것이 위험함과 동시에, 퀴어 주체에게 지속적인 감각 조정과 즉흥적인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행위자성을 연다고 본다. 웃기고 웃는 퀴어 주체들에게 농담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접촉의 장을 열고, 경계 위에서 관계 맺기를 시도하게 하는 실험이 된다.
내가 논문을 쓸 당시 가장 자주 떠올렸던 감정은 ‘크린지(cringe)’였다. 크린지는 미국 인터넷 밈(meme)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과한 자기 노출, 과한 열정, 진심 어린 말투에서 발생하는 이차적 민망함을 뜻한다. 관계를 맺고 싶다는 욕망과 ‘내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동시에 작동하는 그 민망함, 그 수치. 세즈윅은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이론에서 빌려 온 “우울증적 위치(depressive position)”라는 개념을 통해, 주체가 자신의 모순과 상처를 통합하면서 양가적인 관계성의 공간을 상상하는 것—그가 말하는 ‘회복(reparation)’—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퀴어 코미디는 바로 그 양가성과 모순을 포기하지 않은 채, 수치심을 안고 타자에게 다가가는 실천이라는 의미에서 회복적일 수 있다.
이 논문에 ‘수치심의 정동 정치’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퀴어 코미디는 꼭 전복적이지도 않고, 꼭 위로하지도 않는 정동들—피로, 무기력, 자조, 분노, 수치심—을 퀴어한 삶의 재료로 삼는다. 퀴어 코미디는 대단한 담론이나 전략 이전에, 그저 그런 감정들을 나누는 아주 작고 개인적인 실천에서 시작된다. 굳이 덧붙이자면, 퀴어 코미디는 일부 코미디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내가 경험한 가장 강력한 웃음은 무대가 아니라 일상의 틈에서 나왔다. 친구들과 나눈 카톡 대화, 어색한 술자리, 담배 한 대를 나누는 짧은 순간 속에서 우리는 함께 망신당하고, 함께 웃었다. 그것들은 어쩌면 아무것도 바꾸지 않지만, 다음 날을 살아갈 힘이 되어 준다. 그 유쾌함이, 아무리 잠깐이고 쓸모없어 보여도, 퀴어한 친밀성을 가능하게 한다.
논문에서 충분히 강조하지 못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퀴어 코미디는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연구는 국내 퀴어 코미디 사례들에 대한 수사 분석과 수용자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현장의 목소리들을 따라가며, 농담은 종종 실패하고, 위험하고, 부끄럽다는 점을 반복해서 확인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점이 코미디를 더욱 퀴어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수치를 판돈으로 걸고, 웃음을 통해 관계를 시도하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경계를 실험하는 일상의 코미디언들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내 부족한 연구가 그런 실험에 대한 작은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 졸업 이후의 다소 경계적인 위치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소속의 이름 없이, 다만 손에 잡히는 감각들을 따라가며 다시 경계를 살핀다. 요즘의 관심은 ‘언어’의 경계로 옮겨왔다. 퀴어 이론이라는 서구의 이론적 언어와 내가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퀴어한 감각 사이의 울퉁불퉁한 지형들, 그 어긋남과 접촉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자연스럽게 문화 간, 언어 간, 국가 간의 경계를 넘는 탈식민 퀴어 이론이나 초국가적 퀴어 연구로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동시에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든 공동체를 만들고 감각하는 일에도 여전히 마음을 둔다. ‘크린지’하게 말하자면, 나는 아직 경계 위에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어정쩡함’ 자체가 지금 내가 가진 가장 퀴어한 방법론일지도 모른다.
김시언
미디어와 언론정보학을 전공하고, 문화연구를 하고 있다. 퀴어 이론을 자원으로, 가장 수치스러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실천들과 그 실천이 열어젖히는 세계 만들기의 가능성과 위험을 따라간다. 실천과 이론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감각에 끌리며, 언제나 동료와 공동체를 찾고 있다.
Sedgwick, Eve Kosofsky(2003), Touching Feeling: Affect, Pedagogy, Performativity.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Tomkins, Silvan(1995), Shame and Its Sisters: A Silvan Tomkins Reader. eds. Eve Kosofsky Sedgwick and Adam Frank,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Originally published as Affect, Imagery, Consciousness, 4 Vols., 1962–1991.) ↩
Sedgwick, Eve Kosofsky(2007), “Melanie Klein and the Difference Affect Makes”, South Atlantic Quarterly, 106(3), 625–642.↩
2호(2025.9.) l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 l 신진연구
웃음의 틈으로 말하기
「퀴어 코미디와 수치심의 정동 정치 :
국내 퀴어 유튜브 및 팟캐스트 콘텐츠와 구독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2024)
김시언
신진연구 코너에서는 최근 출간된 성소수자/퀴어 관련 학위논문을 소개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나는 언제나 경계에 끌려왔다. 나와 타인의 경계, 몸과 몸의 경계, 억압과 저항의 경계, 허용 및 합의와 금기의 경계. 퀴어 이론과 퀴어 실천을 잇는 접점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겠다. 한국어의 ‘경계’는 영어로는 ‘border’이자 ‘vigilance’이다. 긋는 선이면서도 동시에 감시인 것이다. 내가 석사 논문에서 퀴어 코미디를 탐구하게 된 것도 이 경계의 감각에서 출발했다. 퀴어 코미디는 ‘말할 수 있음’과 ‘말해서는 안 됨’ 사이, 웃음과 수치심 사이에서 우리가 어떻게 경계를 흔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해 열릴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브 세즈윅(Eve Kosofsky Sedgwick)은 수치심을 세계와의 접촉면에서 발생하는 정동으로 본다. 세즈윅의 분석에 따르면 애초에 나에게 관심을 불러 일으킨 대상만이 나에게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다.1 다시 말해, 나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수치의 순간은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열어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나 역시 이 통찰을 따라, 퀴어 코미디에서 농담이 어떻게 수치심과 맞물리며 퀴어한 공동체를 상상하게 하는지를 추적했다. 특히 자조적 농담이 지닌 힘—자기 자신을 웃음의 대상이자 주체로 만들며, 동시에 타인을 웃게 만드는 힘—에 주목했다. 그 웃음은 절대 안전하지 않다. 언제든 실패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시도와 도박을 통해, 퀴어 주체는 경계의 틈을 조금씩 벌린다. 농담은 그렇게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우리’를 만들어낸다.
이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는 바로 ‘정치적 올바름’과 ‘당사자성’이다. 오늘날 퀴어 정치 담론에서 이 두 개념은 정치적 운동과 담론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중요한 기제인 동시에, 때로는 강력한 경계처럼 작동한다.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누가 어떤 농담을 할 ‘자격’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가늠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퀴어 코미디는 종종 그 경계를 어지럽히고 흐릿하게 만든다. 농담은 말 그대로 예측 불가능한 경로로 흘러들며, 때로는 ‘당사자성’의 경계를 의도치 않게, 혹은 의도적으로 넘나든다. 나는 이것이 위험함과 동시에, 퀴어 주체에게 지속적인 감각 조정과 즉흥적인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행위자성을 연다고 본다. 웃기고 웃는 퀴어 주체들에게 농담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접촉의 장을 열고, 경계 위에서 관계 맺기를 시도하게 하는 실험이 된다.
내가 논문을 쓸 당시 가장 자주 떠올렸던 감정은 ‘크린지(cringe)’였다. 크린지는 미국 인터넷 밈(meme)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과한 자기 노출, 과한 열정, 진심 어린 말투에서 발생하는 이차적 민망함을 뜻한다. 관계를 맺고 싶다는 욕망과 ‘내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동시에 작동하는 그 민망함, 그 수치. 세즈윅은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이론에서 빌려 온 “우울증적 위치(depressive position)”라는 개념을 통해, 주체가 자신의 모순과 상처를 통합하면서 양가적인 관계성의 공간을 상상하는 것—그가 말하는 ‘회복(reparation)’—이 가능하다고 말한다.2 퀴어 코미디는 바로 그 양가성과 모순을 포기하지 않은 채, 수치심을 안고 타자에게 다가가는 실천이라는 의미에서 회복적일 수 있다.
이 논문에 ‘수치심의 정동 정치’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퀴어 코미디는 꼭 전복적이지도 않고, 꼭 위로하지도 않는 정동들—피로, 무기력, 자조, 분노, 수치심—을 퀴어한 삶의 재료로 삼는다. 퀴어 코미디는 대단한 담론이나 전략 이전에, 그저 그런 감정들을 나누는 아주 작고 개인적인 실천에서 시작된다. 굳이 덧붙이자면, 퀴어 코미디는 일부 코미디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내가 경험한 가장 강력한 웃음은 무대가 아니라 일상의 틈에서 나왔다. 친구들과 나눈 카톡 대화, 어색한 술자리, 담배 한 대를 나누는 짧은 순간 속에서 우리는 함께 망신당하고, 함께 웃었다. 그것들은 어쩌면 아무것도 바꾸지 않지만, 다음 날을 살아갈 힘이 되어 준다. 그 유쾌함이, 아무리 잠깐이고 쓸모없어 보여도, 퀴어한 친밀성을 가능하게 한다.
논문에서 충분히 강조하지 못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퀴어 코미디는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연구는 국내 퀴어 코미디 사례들에 대한 수사 분석과 수용자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현장의 목소리들을 따라가며, 농담은 종종 실패하고, 위험하고, 부끄럽다는 점을 반복해서 확인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점이 코미디를 더욱 퀴어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수치를 판돈으로 걸고, 웃음을 통해 관계를 시도하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경계를 실험하는 일상의 코미디언들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내 부족한 연구가 그런 실험에 대한 작은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 졸업 이후의 다소 경계적인 위치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소속의 이름 없이, 다만 손에 잡히는 감각들을 따라가며 다시 경계를 살핀다. 요즘의 관심은 ‘언어’의 경계로 옮겨왔다. 퀴어 이론이라는 서구의 이론적 언어와 내가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퀴어한 감각 사이의 울퉁불퉁한 지형들, 그 어긋남과 접촉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자연스럽게 문화 간, 언어 간, 국가 간의 경계를 넘는 탈식민 퀴어 이론이나 초국가적 퀴어 연구로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동시에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든 공동체를 만들고 감각하는 일에도 여전히 마음을 둔다. ‘크린지’하게 말하자면, 나는 아직 경계 위에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어정쩡함’ 자체가 지금 내가 가진 가장 퀴어한 방법론일지도 모른다.
Sedgwick, Eve Kosofsky(2003), Touching Feeling: Affect, Pedagogy, Performativity.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Tomkins, Silvan(1995), Shame and Its Sisters: A Silvan Tomkins Reader. eds. Eve Kosofsky Sedgwick and Adam Frank,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Originally published as Affect, Imagery, Consciousness, 4 Vols., 1962–1991.) ↩
Sedgwick, Eve Kosofsky(2007), “Melanie Klein and the Difference Affect Makes”, South Atlantic Quarterly, 106(3), 625–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