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2025.9.) l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 l 대담
동료와 퀴어함을 찾아 가기
퀴어영화 연구그룹
이번 퀴어영화 연구그룹과의 대담은 2025년 8월 9일 토요일에 진행되었다.
서동민 한국성소수자/퀴어연구학회 웹진 《도착》 2호에 실릴 대담에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호의 기획 주제는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입니다. 이 주제를 중심으로 이런저런 글들을 모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퀴어 영화 비평의 특정한 실천을 보여주고 있는 퀴어영화 연구그룹의 두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저는 진행과 함께 대담을 하게 될 웹진팀 서동민이라고 합니다. 먼저 각자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문아영 퀴어영화 연구그룹의 구성원인 문아영이라고 합니다.
문우 저 또한 퀴어영화 연구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우라고 합니다.
서동민 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웹진 《도착》에서 기획 주제 관련한 원고 제안을 선생님들께 먼저 드렸었는데요. 그 이후 지난 학술대회 때 문아영 선생님과 만나 이야기를 잠시나마 나눴었어요. 문아영 선생님께서 형식적이거나 어려운 글의 원고보다는 함께 대화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셨고요. 이에 웹진 편집팀에서 기획을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영 선생님과 나눈 잠깐의 대화에서 기억이 났었던 것이, 저희가 각각의 학교에서 퀴어 영화를 공부하게 된 어떤 경위들 혹은 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물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는 중앙대에서 영화 이론을 공부하고 있고요. 이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 중인데 퀴어 영화 연구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된 지는 얼마 안 됐었던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이런저런 영화에 대한 담론들을 공부하다 보니까 공간이라는 것이 화두가 되었던 측면이 있었고, 다큐멘터리의 공간이 퀴어한 장소들, 제작자들과 만나게 되면서 어떻게 재현되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구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퀴어 영화 연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요. 퀴어 연구 자체의 담론은 많은데 퀴어 영화 연구를 동시대에 같이 하고 있는 무언가의 담론 활동이 활발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퀴어영화 연구그룹이 비슷한 시기에 결성되었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래서 너무 흥미롭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저는 보통 학교 코스웍에서 제공해 주는 시네페미니즘의 연장선 속에서 젠더나 퀴어이론이 어떻게 변주되는지에 대한 담론적인 자양분들만 얻은 채로 퀴어 연구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 같은데요. 선생님들 각각은 어떤 학술적인 경로로 퀴어 영화 연구에 이르게 되었는지 다양하게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문아영 저 같은 경우는 제가 그 퀴어예술매거진 《them》 2호에 필진으로 합류하면서 「퀴어영화를 찾아다니는 일: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퀴어 단편영화를 중심으로」라는 글을 썼어요. 제가 어떻게 퀴어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됐고 퀴어 영화를 찾으려고 어떤 경로들을 다녔는지를 썼죠. 제가 퀴어 영화를 접했던 시기는 퀴어 블로그를 통하거나 영화를 불법 다운로드해서 보는 시대였다고 할까요? 그랬기 때문에 저도 불법 다운로드 혹은 해적질을 하면서 영화들을 관람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볼 수 있는 영화들에 한계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후에는 영화제를 찾게 됐었요. 퀴어 영화제나 여성 영화제의 존재를 알게 됐고 그곳에서 퀴어 영화들을 상영한다는 걸 알게 되어서 찾아가게 됐죠.
영화 공부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말씀드릴게요. 저는 원래 학부 때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주로 현대 문학을 공부했었고, 현대 문학에서도 젠더에 관심을 두고 있었죠. 제가 당시에 학보사 일을 했었는데요. 여러 꼭지 중에 영화를 분석하는 그런 기사들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제가 문화부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하다 보니까 영화가 재미있는 거예요. 이전까지는 퀴어 영화를 찾아보면서도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좋다거나 재밌어서 본 게 아니었거든요. 그러니까 영화 공부를 하고 싶어서 퀴어 영화를 본 게 아니고, 순전히 어떤 나의 재미를 위해서 보던 거였어요.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것들을 더 전문적으로 해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게 됐어요. 하지만 제가 학부 때 다니던 학교에서는 영화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학교 밖의 학제나 공간 등을 찾게 됐죠. 제가 학부에 입학했을 때 당시 막 페미니즘 리부트가 성행하고 있었고 여성 영화 담론이 많이 있었던 시기였어요. 이후 당시에 활발히 활동하던 페미니스트 영화ㆍ영상인 모임 “찍는 페미”라는 곳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곳의 행사팀에서 일을 하면서 ‘이제 좀 영화에 가까이 있을 수 있을까?’ 혹은 ‘영화 공부를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찍는 페미”는 영화 공부를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활동가 단체잖아요. 물론 그 활동들에는 만족하지만 상영회나 행사들을 다니면서도 동시에 좀 더 뭔가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들을 계속했었어요. 그런데 “찍는 페미”에서 활동을 같이 했고 현재 서울여성독립영화제 집행위원이자 계간 영화잡지《프리즘 오브》 편집장인 안정윤 님이 한양대에서 이미 공부를 하고 계신 상황이었어요. 당시 제 주변에는 이렇게 대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요. 대학원을 다니면서 연구자를 직업적으로 꿈꾸는 일에 대해서 처음 접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직업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고, 그런 진로를 설정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때 진지하게 대학원을 염두에 두고 고민했고, 그것이 지금 제가 있는 한양대 연극영화학과에 들어오게 된 배경이 됐죠.
서동민 입학하실 때부터 퀴어 영화 연구를 하실 학업 계획을 갖고 계셨던 건가요?
문아영 네. 저는 처음부터 이제 여성 영화와 퀴어 영화 연구를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들어온 거였어요. 지금 있는 학교의 김청강 교수님께서 젠더 연구를 하고 계시고 저 또한 이러한 연구를 기대하면서 들어왔어요. 그런데 학과에 실제로 젠더와 페미니즘에 관한 수업이 많지는 않아요. ‘영화와 젠더 연구’라든지 아니면 ‘한국 여성 영화 연구’ 라는 두 개의 수업이 개설되어 있죠. 물론 다른 수업들도 듣지만 이러한 수업을 중점에 두고 공부를 했습니다.
문우 저희가 서로 나이는 모르지만 약간 세대가 다른 것 같긴 한데, 저도 인터넷 해적질을 하면서 퀴어 콘텐츠를 다운 받아 보면서 개인적인 관심사를 채우면서 살아왔습니다. 저는 the L word라는 피디 박스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되게 많은 걸 다운 받고 보면서 성장해 왔구요. 학부 때까지도 대부분은 관심사로 퀴어 영화를 찾아보는 편이었고, 대학원도 국문과 소속이어서 영화 연구를 해야겠다라고 생각해서 들어간 건 아니었어요. 사실 가볍게 들릴 수 있지만 덕질을 하다가 들어간 게 대학원이었고요. 들어가 보니까 저희 학교에 영화 연구를 할 수 있는 토대가 있었고, 저희 선생님이 젠더, 섹슈얼리티, 페미니즘을 베이스로 영화 연구를 하시는 분이었어요. 그 밑에서 공부를 하면서 <사방지>라는 영화로 논문을 쓰고 싶어졌던 거고요. 당시에는 퀴어 영화 연구가 지금만큼 많이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아서 이걸 어떤 범주에서 맥락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을 했고, 처음에는 에로 영화의 맥락에서 접근을 하려고 했었는데, 그게 또 녹록치는 않았어요. 1980년대 에로 영화를 토대로 자료를 열심히 찾으러 돌아다니다 보니까 퀴어하게 읽을 수 있는 영화들을 몇 편 같이 찾게 되면서 이걸 퀴어 영화의 맥락에서 한번 써보자라고 했던 것이 석사학위논문이었고요. 그래서 「1980년대를 퀴어링하기」라는 논문을 쓰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는 계속 퀴어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아무래도 국문과 베이스로 영화 연구를 하다 보니까 영화학에서 하는 것처럼 미디어 이론 같은 방법론에는 해박하지 못해서 서사 분석을 주로 하고요. 국문과 소속이다 보니 대학원 수업 자체가 한 학기에 영화 수업은 하나 정도 열리는 식이기도 하고, 부족함을 많이 느끼긴 하는데 퀴어 영화 연구는 계속 할 것 같기는 합니다.
서동민 공통적으로 나온 얘기가 수업에 대한 것들이었거든요. 이런 건 좀 재밌는데요. 저희 코스웍에도 두루뭉술한 ‘문화 연구’라는 카테고리가 수업의 이름으로 하나 있고, 젠더나 섹슈얼리티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과목명은 ‘영화와 젠더’라는 과목 하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제 코스웍을 마쳐가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요. 수업에 대한 갈증이 아마 다들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저 같은 경우에는 수업을 열어달라고 했었거든요. ‘영화와 젠더’라는 수업이 있는데, 석박사 과정을 하는 7학기 동안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교수님께 찾아가서 얘기하니 수업이 열렸던 경험이 있어요. 다들 코스웍에서의 수업을 통해 퀴어 연구를 위한 양분이 충분하게 공급된다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해요. 거의 혼자 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수업이 안 열리니까. 결국 연구는 혼자 한다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요. 다들 과정은 수료하셨고, 저는 이제 수료를 앞두고 있는 입장이니까, 어떻게 헤쳐나가셨는지도 조금 궁금하네요.
문아영 저도 이런 이야기를 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운이 좋게도 제가 들어간 첫 학기에 ‘영화와 젠더 연구’ 수업이 열렸어요. 제가 딱 하고 싶은 공부부터 먼저 시작하게 된 거죠.
그래서 저는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시네페미니즘의 계보에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알 법한 영화들도 저는 여전히 잘 모르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계속 공부를 하고 있어요. 학부 때 영화를 공부하거나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도 했고 영화를 많이 보는 시네필도 아니었거든요. 저는 정말 남들이 다 봤다고 말하는 영화들도 잘 알지 못하는 채로 영화 공부를 시작한 거였어요. 그런 와중에 첫 학기부터 영화와 젠더에 관한 수업을 들었던 터라 만족감이 컸었죠. 그런데 시네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어떤 과목을 배우고 가르친다는 것이 한 학기 내에 마무리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보니까, 배우는 과정은 굉장히 만족스러웠지만 관련한 수업에 대한 갈증이 여전히 남아있어요. 그래서 지난 학기에는 조혜영 선생님께서 가르치시는 ‘영화와 젠더 연구’ 수업을 청강해서 듣기도 했어요.
그리고 4학기 차에는 앞서 말씀드렸던 ‘한국 여성 영화 연구’ 과목을 수강했어요. 그때 박남옥과 홍은원, 최은희 등을 시작으로 여성 영화 감독의 계보를 처음으로 배웠죠. 수업을 들으면서 정말 즐거웠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수업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게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인데 당연하게도 한 학기 내에 모두 소화하기 어려운 내용들이잖아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이 코스웍 내에서 채워질 수 있는 구조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보통은 제가 따로 공부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가끔 저에게 주어지는 지면들이 있을 때 주로 요구되는 주제가 페미니즘과 퀴어이다 보니 사실 글을 쓰면서 제일 많이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이 외에는 학교 바깥에서 열리는 강의를 듣거나 미디어 연구 및 영상문화 기획 집단 “프로젝트 38”의 손희정, 심혜경, 조혜영 선생님께서 뭔가 하신다는 소식이 있으면 찾아가서 듣고 있어요. (웃음) 최근에는 “프로젝트38”의 팟캐스트 ‘38페이지’ 중에서도 고전 페미니즘 영화를 선정해서 이야기하는 ‘페미니스트 필름 클래식’ 코너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즐겨 듣고 있죠.
문우 저도 비슷할 것 같은데요. 제가 석사 과정부터 지금까지 도합 12년을 학교에 있었는데, 수업을 다 듣고 찾아본 건 아니지만 퀴어 영화나 콘텐츠와 관련해서 열린 학과 수업으로 기억에 남는 건 김경태 선생님이 ‘퀴어영화론’, ‘퀴어문화론’이라는 제목으로 수업을 두 학기 동안 하신 것, 그리고 손희정 선생님이 ‘영화, 문화, 젠더’라는 수업을 한 학기 진행하신 정도인 것 같아요. 그 외에는 영화 수업에 한 주, 두 주 이런 식으로 끼어들어가는 식이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코스웍 안에서 충족하기보다는 학교 안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랑 스터디를 꾸리거나 그런 식이어야 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사실 쉽지는 않았던 것 같긴 해요.
젠더나 섹슈얼리티, 퀴어 이론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은 많은데 그 안에서 영화 연구를 하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고요. 그래서 대부분은 젠더/섹슈얼리티 이론을 공부하자 아니면 학교에서 요구하는 어떤 책들을 읽어나가자는 식으로 모임이 운영되었던 것 같아요. 또 제가 운영하는 모임들은 대부분 유흥의 길로 빠졌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못하였습니다. (웃음) 그래서 결국은 저도 아영 님처럼 바깥에서 듣는 학회 아니면 외부 강의 쪽에 많이 참여했던 것 같고요. 그것도 영화 수업보다는, 젠더나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다른 퀴어 이론 수업들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서동민 그렇죠. 확실히 젠더 연구 혹은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영화 연구를 하는 건 비교적 영화 이론이나 영화 연구 안에서는 보편적인 어법에 해당되는 것 같은데요. 수업 안에서 퀴어 영화 연구는 약간 딸림 상품 같다는 느낌이 가끔 든다는 거죠.
페미니즘 수업에서 한 주나 두 주 정도, 많으면 세 주 정도 할당되는 식으로요. 그래서 그런 지점을 공유해 보니까 다들 비슷한 실정에서 공부하고 계셨다는 것을 느끼면서 반갑기도 하네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도 재밌을 것 같은데요. 아까 문우 님이 언뜻 지나가면서 얘기해 주시긴 하셨지만, 문우 님의 석사학위 논문은 옛날 한국 영화나 시대를 퀴어링 하시는 작업이었잖아요. 〈사방지〉라는 영화부터 시작해서 한국의 에로 영화의 지점들에 대해 작업하신 것 같은데, 그 많은 작업들을 도대체 언제 다 보셨는지도 사실 좀 궁금하기는 했었고요. 좀 더 중요한 질문은 영화를 퀴어링하는 것, 그러니까 명시적으로 퀴어 영화가 아니더라도 과거에 존재했던 영화적 사료들을 퀴어링하는 작업들이 문우 선생님께, 또는 저희 모두에게도 중요한 태도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각각의 작품들의 퀴어함을 읽어내시는 방법이 있으시다면요?
문우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제가 석사 논문을 쓰던 시기가 너무 오래전이어 가지고 약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요. 그때는 한국영상자료원에 자주 다니면서 잡지를 찾아보거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레즈비언, 게이, 호모, 이런 키워드를 검색하면서 어떤 작품이 퀴어한 영화인지 감이 오는 것들 중심으로 VHS들도 한 번씩 보고 그런 식으로 찾았던 것 같아요. 석사논문이 1980년대를 퀴어하게 읽어보는 작업이기는 했는데요.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은 거의 동시대 작업이어서 대부분은 명확하게 퀴어 영화로 나오는 영화들을 다루고 있는 것 같긴 해요. 이제까지 쓴 글들은 <비밀은 없다>랑 <위켄즈>, <경성학교>, <기담>을 다뤘고, 지금 준비하고 있는 글도 <경성학교>랑 <유령>, <아가씨>를 다루는 작업이라서 <기담>을 빼면 명확하게 퀴어 영화로 불리는 작품들인데요. <기담>은 어머니에 대한 딸의 퀴어한 사랑을 읽는 방식으로 독해해서 사실 이게 왜 퀴어한 작품인지 설득을 못해서 투고에서 떨어진 적이 있기도 하고, 여전히 제 독해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제 눈에는 자연스럽게 그런 감정들이 보이더라고요. 1980년대 영화를 다룰 때도 그렇고, 퀴어들에게 달려 있는 센서 같은 거 있지 않나요? 퀴어 아이라고 해야할지, 그런 센서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된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퀴어하고 미묘한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감지하게 되는 그런 감각이요. 퀴어 로맨스도 일종의 장르물이기도 하고, 특히 백합같이 청소년기에 미묘한 감정선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보다보니 더 발달되는 퀴어 아이 같은 게 있다는 생각도 하고… 네, 너무 이상한 대답이죠? (웃음)
서동민 사실 아영 님 말씀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결국 영화 연구에서 퀴어나 젠더 연구는 역사쓰기의 작업과 뗄 수 없는 느낌이기도 한 것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한양대에서 열린다는 ‘한국 여성 영화 연구’라는 과목이 이 두 영역을 교차하는 수업인 것 같기도 한데요. 저도 너무 들어보고 싶은 수업이기도 하고요. 아영 님도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영화라든지 혹은 터울을 갖고 있는 옛날 영화라든지 마주하게 되는 영화들에 대해서 퀴어함을 읽어내시는 방법이 있다면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아영 저는 현재 석박사통합과정을 수료한 상태라서 석사 학위 논문을 쓰지는 않았고 학술 논문을 한 편 썼는데요. 「퀴어 독립 다큐멘터리를 통해 바라본 노년 성소수자의 공간 만들기: <홈그라운드>와 <두 사람>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동시대 퀴어 영화에 관한 논문을 작성했어요. 당시 여러 영화제에서 퀴어 영화를 관람하면서 생긴 문제의식을 다루고 싶어서 작성한 글인데, 사실 처음 써본 논문이고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두 영화를 모두 보신 분들은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텐데, 노년의 성소수자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페미니즘과 퀴어 지리학의 관점에서 두 영화를 어떻게 볼 수 있을지 연구했어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건 아직 논문이 출판된 건 아니라서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질병과 낙인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요. 해당 작품이 소수자의 질병과 낙인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퀴어하게 분석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앞서 수업에 대한 내용에서 하나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저는 대학원 과목이 반드시 페미니즘과 퀴어에 관한 수업이 아니더라도 학기 말에 제출하는 과제를 페미니즘과 퀴어를 주제로 작성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는 페미니즘과 퀴어에 관한 내용이 커리큘럼에 전혀 담겨있지 않은 수업에서도 자주 여성 영화와 퀴어 영화 혹은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의 관점에서 페이퍼를 작성해 왔거든요. 그런데 이런 부분은 주로 해당 수업이 어떤 주제 혹은 방법론을 다루고 있는지 그리고 교수자의 관점에 따라 허용되는 범위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한국영화사 수업에서는 한국 영화에 대한 과제를 작성하게 되는 데, 그 안에서도 본인의 관심사인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을 접목할 수 있다면 이후 해당 주제를 발전시키는 데 스스로 큰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껏 저는 수업에서 자기소개를 하거나 관심 분야를 이야기할 때면 매번 여성 영화와 퀴어 영화를 연구하고 싶다고 말해왔어요. 감사하게도 같은 수업을 듣는 분들과 교수자 분들도 좋게 바라봐 주셨고요. 제 관심 분야가 페미니즘과 퀴어라서가 아니라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정확히 있다는 점을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주변에 있었어요. 덕분에 아예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저의 연구 주제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혹은 이런 주제로 과제를 제출해도 될지 등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페미니즘과 퀴어를 비롯한 서로의 연구 주제를 존중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여러모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서동민 재미있네요. 어떤 의미에서 코스웍 과정에서 수업을 듣는다는 게 해당 방법론을 연습하는 것이기도 할 텐데요. 퀴어 영화라는 소재나 연구 대상은 사실 그렇게까지 과목이나 방법론의 제약을 받지 않는 느낌도 있는 것 같아요.
이제 퀴어영화 연구그룹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지금까지 저마다 각자 어떤 식으로 공부해 왔고 어떤 식으로 연구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려주셨어요. 이러한 맥락에서 퀴어영화 연구그룹을 만들게 된 구체적인 배경이나 계기가 궁금합니다. 개인 연구가 아니라 공동체를 꾸리려고 한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제 입장에서는, 단순히 영화그룹이 아니라 그사이에 연구가 붙어 있는 게 흥미롭기도 하고요.
문우 아영 님이 잘 말씀해 주실 것 같아서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제가 너무 허술하게 대답할 것 같아서요. (웃음) 저는 사실 아영님 제안을 받고 재밌겠다고 생각해서 시작을 하게 된 거라 사실 공동체를 만들었다는 데엔 크게 방점은 못 찍을 것 같아요. 사실 공동체라고도 생각을 잘 못하고 있다가 질문을 주셔서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는데요. 끈끈한 의미의 공동체까지는 잘 모르겠고, 식상한 말이긴 하지만 느슨한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퀴어 영화를 연구하는, 저희가 다 아는 선생님들이 몇 분 계시잖아요. 그분들도 저희가 학회에 오며가며 이곳저곳에서 뵙고 인사도 하긴 하는데, 이미 선생님들한테는 나름의 커뮤니티가 이미 있는 것 같고. 그게 어떻게 보면 그분들의 공동체겠죠?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다른 세대의 공동체로 저희가 새로운 모임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였고요. 그런 지점에서 느슨한 의미의 공동체라는 건, 연구자들이 다 한 번쯤은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외롭다는 생각을 할 텐데, 끈끈하게는 아니더라도 느슨하게 서로 어떤 연구를 하는지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허브나 네트워크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인 것 같아요.
문아영 비슷한 이야기인데요. 말씀드린 것처럼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 보면 서로의 관심사를 알게 되잖아요. 그런데 페미니즘과 퀴어 관련해서 관심이 있는 동기와 학우들이 있어도 그 수가 굉장히 적고, 제가 석박사통합과정이라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과정을 하고 있다 보니까 같은 관심 분야를 공유하던 분들은 졸업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고 계신 상황이에요. 그리고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다는 것도 수업 내에서 흥미를 느끼는 일과 별도의 스터디를 꾸리는 일 그리고 혼자서 글을 쓰고 그걸 발표하는 일은 조금씩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랬을 때 학교에서 같이 뭔가를 더 하고 싶은 사람을 찾는 게 조금 어렵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학교 밖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동료를 찾아보자고 생각했죠.
문우 저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거 같은데요? (웃음)
문아영 아니에요. 문우 님은 저에게 큰 도움을 주고 계세요. (웃음)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는 학술 논문은 한 편 정도 썼지만 《프리즘 오브》에서 가끔 글을 기고하고 있어요. 퀴어 영화에 대해서 쓰기도 했지만 퀴어 영화가 아닌 영화들도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의 관점에서 쓴 글이 많아요. 글을 쓰다 보면 정말 공부가 많이 돼요. 저는 어떤 주제와 형식으로 글을 써달라고 청탁이 와도, 가능하면 당시에 제가 관심을 두고 있던 주제와 스타일을 함께 시도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왔거든요. 저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기회인 거죠. 그런데 이런 기회를 기다리기만 하는 게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전부터 동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보니 퀴어영화 연구그룹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성격상 저는 재미있고 멋있어 보이는 일이 있으면 그걸 직접 해봐야 하거든요.
구성원으로 계신 문우 님과는 서로 얼굴과 이름 정도만 아는 사이였고 아마 문우 님은 훨씬 더 저를 잘 모르셨을 거예요. 왜냐하면 제게 문우 님은 과거에 『한국퀴어영화사』 시리즈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이미 책에 필자로 참여하시고 활발하게 퀴어 영화에 대해 연구하는 분이셨거든요. 이후로 저는 오랜 시간 문우 님의 글을 읽어 왔고 그런 이유로 제가 퀴어영화 연구그룹 일을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해요. 문우 님을 사람 대 사람으로는 잘 알지 못해도 어떤 글을 쓰는 분인지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에 이 작업을 계속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어떤 믿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다짜고짜 페이스북으로 “안녕하세요 문우 님. 저 예전에 한 번 세미나에서 인사드렸던 문아영이라고 합니다. 이런 행사가 있다고 하는 데 혹시 같이 가실래요?” 이런 식으로 연락을 드려서 만나게 됐어요. 그리고 그날 제가 구상하고 있던 퀴어영화 연구그룹에 대한 기획안을 프린트한 걸 보여드리면서 제안을 드렸고, 문우 님이 승낙해 주셔서 만들어진 그룹이에요.
서동민 그때 제안 받으셨을 때 문우 님은 어떠셨어요?
문우 저는 근데 말씀 주신 것처럼 꾸준히 글을 쓰고 그런 사람이 아니어서요. 되게 게으르기도 하고요. 약간 자신이 없어서 조금 고민을 하다가, 아영 님이 게을러도 될 것 같이 말씀하셔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서동민 문우 님이 이 연구 그룹에 대해서 느슨함이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아영 님 말씀 들어보면 느슨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온도 차이가 좀 재밌는데요.
공동체라고 제가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퀴어영화 연구그룹이 지금 발행해오고 있는 글들을 보면 되게 재밌는 점이 많아요. 〈정년이〉 대담부터 시작해서 가장 최근에는 〈럭키 아파트〉에 대한 개별 비평 내지 진단이 발행되었어요. 그런데 이제 중간중간 대담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 기록을 발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함께 대화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퀴어영화 연구그룹의 느슨함과도 좀 상통하는 것 같기도 한 것 같아요.
실제로 퀴어영화 연구그룹의 활동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얘기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정기 모임이 있는지 아니면 계획 중인 프로그램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좀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문아영 일단 단체의 이름이 퀴어영화 연구그룹이지만, 제가 연구라는 단어를 넣은 것은 스스로 퀴어 영화에 대해 잘 알아서가 아니라 앞으로 계속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하고 싶은 마음으로 붙인 거예요. 게다가 단체의 구성원 모두가 연구자인 건 아니거든요. 현재 퀴어영화 연구그룹에는 총 4명의 구성원이 있는데, 대담에 참여하고 있는 저와 문우 님은 퀴어 영화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이지만, 다른 구성원인 한오하 님은 디자이너이자 아트디렉터로 활동하고 계시고, 또 다른 구성원인 고석영 님은 개발자로 일하고 계신 분이에요. 단체의 홍보 이미지와 MD 파일 제작을 오하 님께서 해주신다면, 웹사이트에 관련된 전반적인 일은 석영 님이 맡아주고 계세요.
그리고 글을 쓰거나 대담을 진행하고 편집을 하는 등 원고에 대한 모든 일은 저와 문우 님이 담당하고 있어요. 주로 제가 기획을 하고 문우 님께 조언을 구하거나 피드백을 받는 식으로요. 그런데 이 외에 원고 발행과 홍보처럼 이 글을 과연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오하 님과 석영 님이 정말 큰 역할을 해주고 계세요. 실제로 저는 처음부터 단체의 이름은 퀴어영화 연구그룹이지만 반드시 연구자들만 함께 할 수 있는 그룹으로 국한해서 글을 발행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함께 공부할 사람을 찾고 싶어서 만든 그룹이지만 여기에서 나오는 모든 글이 연구의 형태를 띠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재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만약 제가 계속 연구를 하게 된다면 학술 활동은 어차피 지속해야 하는 일인데, 그것과 똑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 이 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금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발행된 글들도 그런 형식을 띠고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연구자가 아닌 사람들, 특히 단체의 구성원인 오하 님과 석영 님이 보실 때도 이해가 되고 잘 읽히는 글이어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에요.
이 외에 현재 퀴어영화 연구그룹의 활동이 느슨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저희가 비온뒤무지개재단의 ‘2024 이창국퀴어연구지원사업’을 수행 중이기 때문이에요. 지원 사업을 신청할 때부터 함께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모두 연구자는 아니었고, 감독과 작가, 활동가, 관객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퀴어 영화에 관한 이들의 지식과 기억, 감정을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기록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글이 발행된 것이기도 해요.
서동민 개인적인 궁금함인데요. 오하 님과 석영 님은 퀴어영화에 대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인가요? 동료 분들의 간단한 소개를 덧붙여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문아영 오하 님은 저와 퀴어예술매거진 《them》이라는 잡지를 같이 만들고 계신 아트 디렉터님이세요. 퀴어 예술에 관심이 많으시고 이미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분이죠. 석영 님은 오하 님께서 소개해 주셔서 만나 뵙게 되었는데 영화를 매우 좋아하시는 분이고요.
서동민 재밌네요. 남은 질문들을 살펴보면, 우선 학술 공동체가 아니었죠? 그럼에도 너른 의미에서의 공동체를 운영하면서 겪는 어려움이나 보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떠신가요? 공동체를 운영하면서 겪는 어려움이나 뿌듯함이 있을까요?
문아영 저는 다른 건 아니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단체를 만들 때부터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지원 사업에 선정되지 않아도 저는 지금처럼 단체를 운영할 생각이었어요. 저의 사비를 들여서라도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기획들을 실현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다행히 지원 사업에 붙게 된 거죠. 그런데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까 당연하게도 생각한 것처럼 일이 굴러가지 않고,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게 되었어요. 바깥에서 봤을 때는 몇 개월에 걸쳐서 띄엄띄엄 원고가 발행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단체 안에서는 기획과 섭외 그리고 편집이 계속 반복되는 지난 1년을 보냈죠. 지금까지 3개의 대담과 4개의 비평을 발행했고 앞으로 인터뷰 원고 1개가 더 나오면 지원 사업이 끝이 나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후반부에 가서는 너무 무리한 일정이었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정말 무리했던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지금처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어쨌든 지원 사업은 마감이 있는 일이기 때문에 주어진 기간 안에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이 지원받은 예산만큼이나 도움이 되었거든요.
게다가 퀴어영화 연구그룹은 보통의 학술 공동체와는 조금 다른 구성을 띠고 있는 단체이기 때문에 이제 곧 지원 사업이 종료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단체를 계속 운영하고자 했을 때, 어떤 구심점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가 지금의 고민이에요. 그래서 이런 점을 해소하려면 구성원 간에 어느 정도의 친밀함이 바탕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서동민 구성원들끼리의 친밀함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문아영 네. 일적으로 가까워질 수도 있겠지만, 개개인 간의 친밀함이 조금 두텁게 쌓여야지 활동을 어느 순간 잠시 멈추더라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서동민 얘기를 들어보면 들어볼수록 느슨하지 않고 정말 바쁜 공동체라는 것이 느껴지는데…….
문아영 앞으로 느슨해질 거예요. (웃음)
서동민 부디 그랬으면 좋겠네요. 《도착》이 한국성소수자/퀴어연구학회 웹진이다 보니 이런 질문도 드려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학술 공동체를 지향하시는 것은 아니시지만, 그래도 연구를 하고 계시는 두 선생님께 앞으로의 관심 영역이나 요즘 관심 가는 연구 주제나 이런 것들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셔도 좋을 것 같거든요. 있으신가요?
문우 저는 이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에요. 불구이론을 중심으로 한국 대중문화에서 퀴어 재현과 장애 재현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그런 교차적인 관계를 살펴보려고 하고 있고요.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시기로 찾아보고 있는데, 사실 이 두 개가 교차하는 작품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서 어떤 텍스트를 선택해야 하는지부터 일단 고민 중이에요. 꼭 다루고 싶은 꼭지는 이제 HIV/AIDS 재현인데 한국 영화 쪽에서는 그게 너무 없잖아요. 그래서 그런 걸 조금 고민 중입니다.
문아영 저도 지금 준비하고 있는 주제가 HIV/AIDS 연구이고 저는 학술 논문으로 작성하고 있어요. 저 또한 이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해야 하는데, 현재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동시대 여성 영화와 퀴어 영화를 중심으로 분석을 하고 있어요. 이 시기의 영화를 영화 연구와 문화 연구, 정동 연구의 관점에서 다층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서동민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응원하겠습니다. 마무리 질문으로 준비되어 있었던 건, 퀴어 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관람객들 혹은 퀴어 영화를 연구하는 동료 연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인데요. 또는 퀴어영화 연구그룹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남겨주시고 대화를 마무리해도 좋을 것 같아요.
문아영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퀴어영화 연구그룹이 지금까지 발행한 글들을 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저희가 발행한 글들에 정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든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거든요. 물론 제가 쓴 원고를 볼 때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마저도 글이 많이 읽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퀴어영화 연구그룹의 글을 재미있게 읽으신 분이 계신다면 SNS 혹은 메일로 감상을 남겨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이 외에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저를 퀴어 영화 연구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퀴어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과 앞으로도 함께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해나가고 싶어요.
문우 저희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지원 사업도 종료됐고, 저희도 이제 아마 논문 준비를 할 거라서 한동안 어쩌면 휴지기가 있을 수도 있는데요. 그럼에도 어떤 초청비나 원고료에 기대를 가지지 않고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으신 분이 계신다면……. (웃음) 저희에게 메일을 주시면 그래도 재밌는 걸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서동민 알겠습니다. 대화 여기까지 할게요. 감사합니다.
문아영
퀴어영화 연구그룹 구성원. 퀴어영화에 관한 다양한 글을 기획하고 발행한다. 퀴어예술매거진 《them》의 에디터로 퀴어웹툰에 관한 인터뷰와 대담을 기획했다. 사랑하는 동료들과 서울여성독립영화제를 만들고 있으며, 여성영화와 퀴어영화를 관람하고 연구한다.
이문우
퀴어영화 연구그룹 구성원. 주로 한국퀴어영화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써왔다. 최근에는 교차성의 관점에서 장애와 퀴어 재현을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불구 이론을 공부하며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서동민
웹진 《도착》 편집위원. 중앙대 영화영상이론 박사과정 중에 있으며 다큐멘터리와 퀴어 영화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다.
문아영(2022), 「퀴어영화를 찾아다니는 일: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퀴어 단편영화를 중심으로」, 퀴어예술매거진 『them』 2호, 91~97.↩
이문우(2017), 「1980년대를 퀴어링하기: 한국영화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학위 청구논문.↩
문아영(2023), 「퀴어 독립 다큐멘터리를 통해 바라본 노년 성소수자의 공간 만들기: <홈그라운드>와 <두 사람>을 중심으로」, 『문학과 영상』, 24(2), 427-456. ↩
김경태 외(2020), 『한국퀴어영화사』, 담담프로젝트.↩
2호(2025.9.) l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 l 대담
동료와 퀴어함을 찾아 가기
퀴어영화 연구그룹
이번 퀴어영화 연구그룹과의 대담은 2025년 8월 9일 토요일에 진행되었다.
서동민 한국성소수자/퀴어연구학회 웹진 《도착》 2호에 실릴 대담에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호의 기획 주제는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입니다. 이 주제를 중심으로 이런저런 글들을 모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퀴어 영화 비평의 특정한 실천을 보여주고 있는 퀴어영화 연구그룹의 두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저는 진행과 함께 대담을 하게 될 웹진팀 서동민이라고 합니다. 먼저 각자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문아영 퀴어영화 연구그룹의 구성원인 문아영이라고 합니다.
문우 저 또한 퀴어영화 연구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우라고 합니다.
서동민 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웹진 《도착》에서 기획 주제 관련한 원고 제안을 선생님들께 먼저 드렸었는데요. 그 이후 지난 학술대회 때 문아영 선생님과 만나 이야기를 잠시나마 나눴었어요. 문아영 선생님께서 형식적이거나 어려운 글의 원고보다는 함께 대화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셨고요. 이에 웹진 편집팀에서 기획을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영 선생님과 나눈 잠깐의 대화에서 기억이 났었던 것이, 저희가 각각의 학교에서 퀴어 영화를 공부하게 된 어떤 경위들 혹은 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물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는 중앙대에서 영화 이론을 공부하고 있고요. 이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 중인데 퀴어 영화 연구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된 지는 얼마 안 됐었던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이런저런 영화에 대한 담론들을 공부하다 보니까 공간이라는 것이 화두가 되었던 측면이 있었고, 다큐멘터리의 공간이 퀴어한 장소들, 제작자들과 만나게 되면서 어떻게 재현되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구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퀴어 영화 연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요. 퀴어 연구 자체의 담론은 많은데 퀴어 영화 연구를 동시대에 같이 하고 있는 무언가의 담론 활동이 활발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퀴어영화 연구그룹이 비슷한 시기에 결성되었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래서 너무 흥미롭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저는 보통 학교 코스웍에서 제공해 주는 시네페미니즘의 연장선 속에서 젠더나 퀴어이론이 어떻게 변주되는지에 대한 담론적인 자양분들만 얻은 채로 퀴어 연구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 같은데요. 선생님들 각각은 어떤 학술적인 경로로 퀴어 영화 연구에 이르게 되었는지 다양하게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문아영 저 같은 경우는 제가 그 퀴어예술매거진 《them》 2호에 필진으로 합류하면서 「퀴어영화를 찾아다니는 일: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퀴어 단편영화를 중심으로」1라는 글을 썼어요. 제가 어떻게 퀴어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됐고 퀴어 영화를 찾으려고 어떤 경로들을 다녔는지를 썼죠. 제가 퀴어 영화를 접했던 시기는 퀴어 블로그를 통하거나 영화를 불법 다운로드해서 보는 시대였다고 할까요? 그랬기 때문에 저도 불법 다운로드 혹은 해적질을 하면서 영화들을 관람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볼 수 있는 영화들에 한계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후에는 영화제를 찾게 됐었요. 퀴어 영화제나 여성 영화제의 존재를 알게 됐고 그곳에서 퀴어 영화들을 상영한다는 걸 알게 되어서 찾아가게 됐죠.
영화 공부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말씀드릴게요. 저는 원래 학부 때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주로 현대 문학을 공부했었고, 현대 문학에서도 젠더에 관심을 두고 있었죠. 제가 당시에 학보사 일을 했었는데요. 여러 꼭지 중에 영화를 분석하는 그런 기사들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제가 문화부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하다 보니까 영화가 재미있는 거예요. 이전까지는 퀴어 영화를 찾아보면서도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좋다거나 재밌어서 본 게 아니었거든요. 그러니까 영화 공부를 하고 싶어서 퀴어 영화를 본 게 아니고, 순전히 어떤 나의 재미를 위해서 보던 거였어요.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것들을 더 전문적으로 해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게 됐어요. 하지만 제가 학부 때 다니던 학교에서는 영화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학교 밖의 학제나 공간 등을 찾게 됐죠. 제가 학부에 입학했을 때 당시 막 페미니즘 리부트가 성행하고 있었고 여성 영화 담론이 많이 있었던 시기였어요. 이후 당시에 활발히 활동하던 페미니스트 영화ㆍ영상인 모임 “찍는 페미”라는 곳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곳의 행사팀에서 일을 하면서 ‘이제 좀 영화에 가까이 있을 수 있을까?’ 혹은 ‘영화 공부를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찍는 페미”는 영화 공부를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활동가 단체잖아요. 물론 그 활동들에는 만족하지만 상영회나 행사들을 다니면서도 동시에 좀 더 뭔가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들을 계속했었어요. 그런데 “찍는 페미”에서 활동을 같이 했고 현재 서울여성독립영화제 집행위원이자 계간 영화잡지《프리즘 오브》 편집장인 안정윤 님이 한양대에서 이미 공부를 하고 계신 상황이었어요. 당시 제 주변에는 이렇게 대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요. 대학원을 다니면서 연구자를 직업적으로 꿈꾸는 일에 대해서 처음 접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직업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고, 그런 진로를 설정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때 진지하게 대학원을 염두에 두고 고민했고, 그것이 지금 제가 있는 한양대 연극영화학과에 들어오게 된 배경이 됐죠.
서동민 입학하실 때부터 퀴어 영화 연구를 하실 학업 계획을 갖고 계셨던 건가요?
문아영 네. 저는 처음부터 이제 여성 영화와 퀴어 영화 연구를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들어온 거였어요. 지금 있는 학교의 김청강 교수님께서 젠더 연구를 하고 계시고 저 또한 이러한 연구를 기대하면서 들어왔어요. 그런데 학과에 실제로 젠더와 페미니즘에 관한 수업이 많지는 않아요. ‘영화와 젠더 연구’라든지 아니면 ‘한국 여성 영화 연구’ 라는 두 개의 수업이 개설되어 있죠. 물론 다른 수업들도 듣지만 이러한 수업을 중점에 두고 공부를 했습니다.
문우 저희가 서로 나이는 모르지만 약간 세대가 다른 것 같긴 한데, 저도 인터넷 해적질을 하면서 퀴어 콘텐츠를 다운 받아 보면서 개인적인 관심사를 채우면서 살아왔습니다. 저는 the L word라는 피디 박스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되게 많은 걸 다운 받고 보면서 성장해 왔구요. 학부 때까지도 대부분은 관심사로 퀴어 영화를 찾아보는 편이었고, 대학원도 국문과 소속이어서 영화 연구를 해야겠다라고 생각해서 들어간 건 아니었어요. 사실 가볍게 들릴 수 있지만 덕질을 하다가 들어간 게 대학원이었고요. 들어가 보니까 저희 학교에 영화 연구를 할 수 있는 토대가 있었고, 저희 선생님이 젠더, 섹슈얼리티, 페미니즘을 베이스로 영화 연구를 하시는 분이었어요. 그 밑에서 공부를 하면서 <사방지>라는 영화로 논문을 쓰고 싶어졌던 거고요. 당시에는 퀴어 영화 연구가 지금만큼 많이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아서 이걸 어떤 범주에서 맥락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을 했고, 처음에는 에로 영화의 맥락에서 접근을 하려고 했었는데, 그게 또 녹록치는 않았어요. 1980년대 에로 영화를 토대로 자료를 열심히 찾으러 돌아다니다 보니까 퀴어하게 읽을 수 있는 영화들을 몇 편 같이 찾게 되면서 이걸 퀴어 영화의 맥락에서 한번 써보자라고 했던 것이 석사학위논문이었고요. 그래서 「1980년대를 퀴어링하기」2라는 논문을 쓰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는 계속 퀴어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아무래도 국문과 베이스로 영화 연구를 하다 보니까 영화학에서 하는 것처럼 미디어 이론 같은 방법론에는 해박하지 못해서 서사 분석을 주로 하고요. 국문과 소속이다 보니 대학원 수업 자체가 한 학기에 영화 수업은 하나 정도 열리는 식이기도 하고, 부족함을 많이 느끼긴 하는데 퀴어 영화 연구는 계속 할 것 같기는 합니다.
서동민 공통적으로 나온 얘기가 수업에 대한 것들이었거든요. 이런 건 좀 재밌는데요. 저희 코스웍에도 두루뭉술한 ‘문화 연구’라는 카테고리가 수업의 이름으로 하나 있고, 젠더나 섹슈얼리티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과목명은 ‘영화와 젠더’라는 과목 하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제 코스웍을 마쳐가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요. 수업에 대한 갈증이 아마 다들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저 같은 경우에는 수업을 열어달라고 했었거든요. ‘영화와 젠더’라는 수업이 있는데, 석박사 과정을 하는 7학기 동안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교수님께 찾아가서 얘기하니 수업이 열렸던 경험이 있어요. 다들 코스웍에서의 수업을 통해 퀴어 연구를 위한 양분이 충분하게 공급된다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해요. 거의 혼자 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수업이 안 열리니까. 결국 연구는 혼자 한다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요. 다들 과정은 수료하셨고, 저는 이제 수료를 앞두고 있는 입장이니까, 어떻게 헤쳐나가셨는지도 조금 궁금하네요.
문아영 저도 이런 이야기를 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운이 좋게도 제가 들어간 첫 학기에 ‘영화와 젠더 연구’ 수업이 열렸어요. 제가 딱 하고 싶은 공부부터 먼저 시작하게 된 거죠. 그래서 저는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시네페미니즘의 계보에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알 법한 영화들도 저는 여전히 잘 모르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계속 공부를 하고 있어요. 학부 때 영화를 공부하거나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도 했고 영화를 많이 보는 시네필도 아니었거든요. 저는 정말 남들이 다 봤다고 말하는 영화들도 잘 알지 못하는 채로 영화 공부를 시작한 거였어요. 그런 와중에 첫 학기부터 영화와 젠더에 관한 수업을 들었던 터라 만족감이 컸었죠. 그런데 시네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어떤 과목을 배우고 가르친다는 것이 한 학기 내에 마무리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보니까, 배우는 과정은 굉장히 만족스러웠지만 관련한 수업에 대한 갈증이 여전히 남아있어요. 그래서 지난 학기에는 조혜영 선생님께서 가르치시는 ‘영화와 젠더 연구’ 수업을 청강해서 듣기도 했어요.
그리고 4학기 차에는 앞서 말씀드렸던 ‘한국 여성 영화 연구’ 과목을 수강했어요. 그때 박남옥과 홍은원, 최은희 등을 시작으로 여성 영화 감독의 계보를 처음으로 배웠죠. 수업을 들으면서 정말 즐거웠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수업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게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인데 당연하게도 한 학기 내에 모두 소화하기 어려운 내용들이잖아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이 코스웍 내에서 채워질 수 있는 구조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보통은 제가 따로 공부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가끔 저에게 주어지는 지면들이 있을 때 주로 요구되는 주제가 페미니즘과 퀴어이다 보니 사실 글을 쓰면서 제일 많이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이 외에는 학교 바깥에서 열리는 강의를 듣거나 미디어 연구 및 영상문화 기획 집단 “프로젝트 38”의 손희정, 심혜경, 조혜영 선생님께서 뭔가 하신다는 소식이 있으면 찾아가서 듣고 있어요. (웃음) 최근에는 “프로젝트38”의 팟캐스트 ‘38페이지’ 중에서도 고전 페미니즘 영화를 선정해서 이야기하는 ‘페미니스트 필름 클래식’ 코너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즐겨 듣고 있죠.
문우 저도 비슷할 것 같은데요. 제가 석사 과정부터 지금까지 도합 12년을 학교에 있었는데, 수업을 다 듣고 찾아본 건 아니지만 퀴어 영화나 콘텐츠와 관련해서 열린 학과 수업으로 기억에 남는 건 김경태 선생님이 ‘퀴어영화론’, ‘퀴어문화론’이라는 제목으로 수업을 두 학기 동안 하신 것, 그리고 손희정 선생님이 ‘영화, 문화, 젠더’라는 수업을 한 학기 진행하신 정도인 것 같아요. 그 외에는 영화 수업에 한 주, 두 주 이런 식으로 끼어들어가는 식이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코스웍 안에서 충족하기보다는 학교 안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랑 스터디를 꾸리거나 그런 식이어야 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사실 쉽지는 않았던 것 같긴 해요. 젠더나 섹슈얼리티, 퀴어 이론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은 많은데 그 안에서 영화 연구를 하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고요. 그래서 대부분은 젠더/섹슈얼리티 이론을 공부하자 아니면 학교에서 요구하는 어떤 책들을 읽어나가자는 식으로 모임이 운영되었던 것 같아요. 또 제가 운영하는 모임들은 대부분 유흥의 길로 빠졌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못하였습니다. (웃음) 그래서 결국은 저도 아영 님처럼 바깥에서 듣는 학회 아니면 외부 강의 쪽에 많이 참여했던 것 같고요. 그것도 영화 수업보다는, 젠더나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다른 퀴어 이론 수업들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서동민 그렇죠. 확실히 젠더 연구 혹은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영화 연구를 하는 건 비교적 영화 이론이나 영화 연구 안에서는 보편적인 어법에 해당되는 것 같은데요. 수업 안에서 퀴어 영화 연구는 약간 딸림 상품 같다는 느낌이 가끔 든다는 거죠. 페미니즘 수업에서 한 주나 두 주 정도, 많으면 세 주 정도 할당되는 식으로요. 그래서 그런 지점을 공유해 보니까 다들 비슷한 실정에서 공부하고 계셨다는 것을 느끼면서 반갑기도 하네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도 재밌을 것 같은데요. 아까 문우 님이 언뜻 지나가면서 얘기해 주시긴 하셨지만, 문우 님의 석사학위 논문은 옛날 한국 영화나 시대를 퀴어링 하시는 작업이었잖아요. 〈사방지〉라는 영화부터 시작해서 한국의 에로 영화의 지점들에 대해 작업하신 것 같은데, 그 많은 작업들을 도대체 언제 다 보셨는지도 사실 좀 궁금하기는 했었고요. 좀 더 중요한 질문은 영화를 퀴어링하는 것, 그러니까 명시적으로 퀴어 영화가 아니더라도 과거에 존재했던 영화적 사료들을 퀴어링하는 작업들이 문우 선생님께, 또는 저희 모두에게도 중요한 태도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각각의 작품들의 퀴어함을 읽어내시는 방법이 있으시다면요?
문우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제가 석사 논문을 쓰던 시기가 너무 오래전이어 가지고 약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요. 그때는 한국영상자료원에 자주 다니면서 잡지를 찾아보거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레즈비언, 게이, 호모, 이런 키워드를 검색하면서 어떤 작품이 퀴어한 영화인지 감이 오는 것들 중심으로 VHS들도 한 번씩 보고 그런 식으로 찾았던 것 같아요. 석사논문이 1980년대를 퀴어하게 읽어보는 작업이기는 했는데요.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은 거의 동시대 작업이어서 대부분은 명확하게 퀴어 영화로 나오는 영화들을 다루고 있는 것 같긴 해요. 이제까지 쓴 글들은 <비밀은 없다>랑 <위켄즈>, <경성학교>, <기담>을 다뤘고, 지금 준비하고 있는 글도 <경성학교>랑 <유령>, <아가씨>를 다루는 작업이라서 <기담>을 빼면 명확하게 퀴어 영화로 불리는 작품들인데요. <기담>은 어머니에 대한 딸의 퀴어한 사랑을 읽는 방식으로 독해해서 사실 이게 왜 퀴어한 작품인지 설득을 못해서 투고에서 떨어진 적이 있기도 하고, 여전히 제 독해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제 눈에는 자연스럽게 그런 감정들이 보이더라고요. 1980년대 영화를 다룰 때도 그렇고, 퀴어들에게 달려 있는 센서 같은 거 있지 않나요? 퀴어 아이라고 해야할지, 그런 센서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된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퀴어하고 미묘한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감지하게 되는 그런 감각이요. 퀴어 로맨스도 일종의 장르물이기도 하고, 특히 백합같이 청소년기에 미묘한 감정선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보다보니 더 발달되는 퀴어 아이 같은 게 있다는 생각도 하고… 네, 너무 이상한 대답이죠? (웃음)
서동민 사실 아영 님 말씀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결국 영화 연구에서 퀴어나 젠더 연구는 역사쓰기의 작업과 뗄 수 없는 느낌이기도 한 것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한양대에서 열린다는 ‘한국 여성 영화 연구’라는 과목이 이 두 영역을 교차하는 수업인 것 같기도 한데요. 저도 너무 들어보고 싶은 수업이기도 하고요. 아영 님도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영화라든지 혹은 터울을 갖고 있는 옛날 영화라든지 마주하게 되는 영화들에 대해서 퀴어함을 읽어내시는 방법이 있다면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아영 저는 현재 석박사통합과정을 수료한 상태라서 석사 학위 논문을 쓰지는 않았고 학술 논문을 한 편 썼는데요. 「퀴어 독립 다큐멘터리를 통해 바라본 노년 성소수자의 공간 만들기: <홈그라운드>와 <두 사람>을 중심으로」3라는 제목으로 동시대 퀴어 영화에 관한 논문을 작성했어요. 당시 여러 영화제에서 퀴어 영화를 관람하면서 생긴 문제의식을 다루고 싶어서 작성한 글인데, 사실 처음 써본 논문이고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두 영화를 모두 보신 분들은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텐데, 노년의 성소수자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페미니즘과 퀴어 지리학의 관점에서 두 영화를 어떻게 볼 수 있을지 연구했어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건 아직 논문이 출판된 건 아니라서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질병과 낙인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요. 해당 작품이 소수자의 질병과 낙인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퀴어하게 분석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앞서 수업에 대한 내용에서 하나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저는 대학원 과목이 반드시 페미니즘과 퀴어에 관한 수업이 아니더라도 학기 말에 제출하는 과제를 페미니즘과 퀴어를 주제로 작성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는 페미니즘과 퀴어에 관한 내용이 커리큘럼에 전혀 담겨있지 않은 수업에서도 자주 여성 영화와 퀴어 영화 혹은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의 관점에서 페이퍼를 작성해 왔거든요. 그런데 이런 부분은 주로 해당 수업이 어떤 주제 혹은 방법론을 다루고 있는지 그리고 교수자의 관점에 따라 허용되는 범위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한국영화사 수업에서는 한국 영화에 대한 과제를 작성하게 되는 데, 그 안에서도 본인의 관심사인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을 접목할 수 있다면 이후 해당 주제를 발전시키는 데 스스로 큰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껏 저는 수업에서 자기소개를 하거나 관심 분야를 이야기할 때면 매번 여성 영화와 퀴어 영화를 연구하고 싶다고 말해왔어요. 감사하게도 같은 수업을 듣는 분들과 교수자 분들도 좋게 바라봐 주셨고요. 제 관심 분야가 페미니즘과 퀴어라서가 아니라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정확히 있다는 점을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주변에 있었어요. 덕분에 아예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저의 연구 주제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혹은 이런 주제로 과제를 제출해도 될지 등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페미니즘과 퀴어를 비롯한 서로의 연구 주제를 존중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여러모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서동민 재미있네요. 어떤 의미에서 코스웍 과정에서 수업을 듣는다는 게 해당 방법론을 연습하는 것이기도 할 텐데요. 퀴어 영화라는 소재나 연구 대상은 사실 그렇게까지 과목이나 방법론의 제약을 받지 않는 느낌도 있는 것 같아요.
이제 퀴어영화 연구그룹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지금까지 저마다 각자 어떤 식으로 공부해 왔고 어떤 식으로 연구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려주셨어요. 이러한 맥락에서 퀴어영화 연구그룹을 만들게 된 구체적인 배경이나 계기가 궁금합니다. 개인 연구가 아니라 공동체를 꾸리려고 한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제 입장에서는, 단순히 영화그룹이 아니라 그사이에 연구가 붙어 있는 게 흥미롭기도 하고요.
문우 아영 님이 잘 말씀해 주실 것 같아서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제가 너무 허술하게 대답할 것 같아서요. (웃음) 저는 사실 아영님 제안을 받고 재밌겠다고 생각해서 시작을 하게 된 거라 사실 공동체를 만들었다는 데엔 크게 방점은 못 찍을 것 같아요. 사실 공동체라고도 생각을 잘 못하고 있다가 질문을 주셔서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는데요. 끈끈한 의미의 공동체까지는 잘 모르겠고, 식상한 말이긴 하지만 느슨한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퀴어 영화를 연구하는, 저희가 다 아는 선생님들이 몇 분 계시잖아요. 그분들도 저희가 학회에 오며가며 이곳저곳에서 뵙고 인사도 하긴 하는데, 이미 선생님들한테는 나름의 커뮤니티가 이미 있는 것 같고. 그게 어떻게 보면 그분들의 공동체겠죠?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다른 세대의 공동체로 저희가 새로운 모임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였고요. 그런 지점에서 느슨한 의미의 공동체라는 건, 연구자들이 다 한 번쯤은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외롭다는 생각을 할 텐데, 끈끈하게는 아니더라도 느슨하게 서로 어떤 연구를 하는지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허브나 네트워크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인 것 같아요.
문아영 비슷한 이야기인데요. 말씀드린 것처럼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 보면 서로의 관심사를 알게 되잖아요. 그런데 페미니즘과 퀴어 관련해서 관심이 있는 동기와 학우들이 있어도 그 수가 굉장히 적고, 제가 석박사통합과정이라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과정을 하고 있다 보니까 같은 관심 분야를 공유하던 분들은 졸업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고 계신 상황이에요. 그리고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다는 것도 수업 내에서 흥미를 느끼는 일과 별도의 스터디를 꾸리는 일 그리고 혼자서 글을 쓰고 그걸 발표하는 일은 조금씩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랬을 때 학교에서 같이 뭔가를 더 하고 싶은 사람을 찾는 게 조금 어렵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학교 밖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동료를 찾아보자고 생각했죠.
문우 저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거 같은데요? (웃음)
문아영 아니에요. 문우 님은 저에게 큰 도움을 주고 계세요. (웃음)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는 학술 논문은 한 편 정도 썼지만 《프리즘 오브》에서 가끔 글을 기고하고 있어요. 퀴어 영화에 대해서 쓰기도 했지만 퀴어 영화가 아닌 영화들도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의 관점에서 쓴 글이 많아요. 글을 쓰다 보면 정말 공부가 많이 돼요. 저는 어떤 주제와 형식으로 글을 써달라고 청탁이 와도, 가능하면 당시에 제가 관심을 두고 있던 주제와 스타일을 함께 시도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왔거든요. 저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기회인 거죠. 그런데 이런 기회를 기다리기만 하는 게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전부터 동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보니 퀴어영화 연구그룹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성격상 저는 재미있고 멋있어 보이는 일이 있으면 그걸 직접 해봐야 하거든요.
구성원으로 계신 문우 님과는 서로 얼굴과 이름 정도만 아는 사이였고 아마 문우 님은 훨씬 더 저를 잘 모르셨을 거예요. 왜냐하면 제게 문우 님은 과거에 『한국퀴어영화사』4 시리즈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이미 책에 필자로 참여하시고 활발하게 퀴어 영화에 대해 연구하는 분이셨거든요. 이후로 저는 오랜 시간 문우 님의 글을 읽어 왔고 그런 이유로 제가 퀴어영화 연구그룹 일을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해요. 문우 님을 사람 대 사람으로는 잘 알지 못해도 어떤 글을 쓰는 분인지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에 이 작업을 계속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어떤 믿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다짜고짜 페이스북으로 “안녕하세요 문우 님. 저 예전에 한 번 세미나에서 인사드렸던 문아영이라고 합니다. 이런 행사가 있다고 하는 데 혹시 같이 가실래요?” 이런 식으로 연락을 드려서 만나게 됐어요. 그리고 그날 제가 구상하고 있던 퀴어영화 연구그룹에 대한 기획안을 프린트한 걸 보여드리면서 제안을 드렸고, 문우 님이 승낙해 주셔서 만들어진 그룹이에요.
서동민 그때 제안 받으셨을 때 문우 님은 어떠셨어요?
문우 저는 근데 말씀 주신 것처럼 꾸준히 글을 쓰고 그런 사람이 아니어서요. 되게 게으르기도 하고요. 약간 자신이 없어서 조금 고민을 하다가, 아영 님이 게을러도 될 것 같이 말씀하셔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서동민 문우 님이 이 연구 그룹에 대해서 느슨함이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아영 님 말씀 들어보면 느슨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온도 차이가 좀 재밌는데요.
공동체라고 제가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퀴어영화 연구그룹이 지금 발행해오고 있는 글들을 보면 되게 재밌는 점이 많아요. 〈정년이〉 대담부터 시작해서 가장 최근에는 〈럭키 아파트〉에 대한 개별 비평 내지 진단이 발행되었어요. 그런데 이제 중간중간 대담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 기록을 발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함께 대화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퀴어영화 연구그룹의 느슨함과도 좀 상통하는 것 같기도 한 것 같아요.
실제로 퀴어영화 연구그룹의 활동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얘기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정기 모임이 있는지 아니면 계획 중인 프로그램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좀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문아영 일단 단체의 이름이 퀴어영화 연구그룹이지만, 제가 연구라는 단어를 넣은 것은 스스로 퀴어 영화에 대해 잘 알아서가 아니라 앞으로 계속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하고 싶은 마음으로 붙인 거예요. 게다가 단체의 구성원 모두가 연구자인 건 아니거든요. 현재 퀴어영화 연구그룹에는 총 4명의 구성원이 있는데, 대담에 참여하고 있는 저와 문우 님은 퀴어 영화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이지만, 다른 구성원인 한오하 님은 디자이너이자 아트디렉터로 활동하고 계시고, 또 다른 구성원인 고석영 님은 개발자로 일하고 계신 분이에요. 단체의 홍보 이미지와 MD 파일 제작을 오하 님께서 해주신다면, 웹사이트에 관련된 전반적인 일은 석영 님이 맡아주고 계세요.
그리고 글을 쓰거나 대담을 진행하고 편집을 하는 등 원고에 대한 모든 일은 저와 문우 님이 담당하고 있어요. 주로 제가 기획을 하고 문우 님께 조언을 구하거나 피드백을 받는 식으로요. 그런데 이 외에 원고 발행과 홍보처럼 이 글을 과연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오하 님과 석영 님이 정말 큰 역할을 해주고 계세요. 실제로 저는 처음부터 단체의 이름은 퀴어영화 연구그룹이지만 반드시 연구자들만 함께 할 수 있는 그룹으로 국한해서 글을 발행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함께 공부할 사람을 찾고 싶어서 만든 그룹이지만 여기에서 나오는 모든 글이 연구의 형태를 띠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재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만약 제가 계속 연구를 하게 된다면 학술 활동은 어차피 지속해야 하는 일인데, 그것과 똑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 이 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금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발행된 글들도 그런 형식을 띠고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연구자가 아닌 사람들, 특히 단체의 구성원인 오하 님과 석영 님이 보실 때도 이해가 되고 잘 읽히는 글이어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에요.
이 외에 현재 퀴어영화 연구그룹의 활동이 느슨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저희가 비온뒤무지개재단의 ‘2024 이창국퀴어연구지원사업’을 수행 중이기 때문이에요. 지원 사업을 신청할 때부터 함께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모두 연구자는 아니었고, 감독과 작가, 활동가, 관객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퀴어 영화에 관한 이들의 지식과 기억, 감정을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기록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글이 발행된 것이기도 해요.
서동민 개인적인 궁금함인데요. 오하 님과 석영 님은 퀴어영화에 대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인가요? 동료 분들의 간단한 소개를 덧붙여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문아영 오하 님은 저와 퀴어예술매거진 《them》이라는 잡지를 같이 만들고 계신 아트 디렉터님이세요. 퀴어 예술에 관심이 많으시고 이미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분이죠. 석영 님은 오하 님께서 소개해 주셔서 만나 뵙게 되었는데 영화를 매우 좋아하시는 분이고요.
서동민 재밌네요. 남은 질문들을 살펴보면, 우선 학술 공동체가 아니었죠? 그럼에도 너른 의미에서의 공동체를 운영하면서 겪는 어려움이나 보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떠신가요? 공동체를 운영하면서 겪는 어려움이나 뿌듯함이 있을까요?
문아영 저는 다른 건 아니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단체를 만들 때부터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지원 사업에 선정되지 않아도 저는 지금처럼 단체를 운영할 생각이었어요. 저의 사비를 들여서라도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기획들을 실현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다행히 지원 사업에 붙게 된 거죠. 그런데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까 당연하게도 생각한 것처럼 일이 굴러가지 않고,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게 되었어요. 바깥에서 봤을 때는 몇 개월에 걸쳐서 띄엄띄엄 원고가 발행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단체 안에서는 기획과 섭외 그리고 편집이 계속 반복되는 지난 1년을 보냈죠. 지금까지 3개의 대담과 4개의 비평을 발행했고 앞으로 인터뷰 원고 1개가 더 나오면 지원 사업이 끝이 나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후반부에 가서는 너무 무리한 일정이었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정말 무리했던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지금처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어쨌든 지원 사업은 마감이 있는 일이기 때문에 주어진 기간 안에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이 지원받은 예산만큼이나 도움이 되었거든요.
게다가 퀴어영화 연구그룹은 보통의 학술 공동체와는 조금 다른 구성을 띠고 있는 단체이기 때문에 이제 곧 지원 사업이 종료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단체를 계속 운영하고자 했을 때, 어떤 구심점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가 지금의 고민이에요. 그래서 이런 점을 해소하려면 구성원 간에 어느 정도의 친밀함이 바탕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서동민 구성원들끼리의 친밀함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문아영 네. 일적으로 가까워질 수도 있겠지만, 개개인 간의 친밀함이 조금 두텁게 쌓여야지 활동을 어느 순간 잠시 멈추더라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서동민 얘기를 들어보면 들어볼수록 느슨하지 않고 정말 바쁜 공동체라는 것이 느껴지는데…….
문아영 앞으로 느슨해질 거예요. (웃음)
서동민 부디 그랬으면 좋겠네요. 《도착》이 한국성소수자/퀴어연구학회 웹진이다 보니 이런 질문도 드려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학술 공동체를 지향하시는 것은 아니시지만, 그래도 연구를 하고 계시는 두 선생님께 앞으로의 관심 영역이나 요즘 관심 가는 연구 주제나 이런 것들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셔도 좋을 것 같거든요. 있으신가요?
문우 저는 이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에요. 불구이론을 중심으로 한국 대중문화에서 퀴어 재현과 장애 재현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그런 교차적인 관계를 살펴보려고 하고 있고요.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시기로 찾아보고 있는데, 사실 이 두 개가 교차하는 작품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서 어떤 텍스트를 선택해야 하는지부터 일단 고민 중이에요. 꼭 다루고 싶은 꼭지는 이제 HIV/AIDS 재현인데 한국 영화 쪽에서는 그게 너무 없잖아요. 그래서 그런 걸 조금 고민 중입니다.
문아영 저도 지금 준비하고 있는 주제가 HIV/AIDS 연구이고 저는 학술 논문으로 작성하고 있어요. 저 또한 이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해야 하는데, 현재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동시대 여성 영화와 퀴어 영화를 중심으로 분석을 하고 있어요. 이 시기의 영화를 영화 연구와 문화 연구, 정동 연구의 관점에서 다층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서동민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응원하겠습니다. 마무리 질문으로 준비되어 있었던 건, 퀴어 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관람객들 혹은 퀴어 영화를 연구하는 동료 연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인데요. 또는 퀴어영화 연구그룹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남겨주시고 대화를 마무리해도 좋을 것 같아요.
문아영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퀴어영화 연구그룹이 지금까지 발행한 글들을 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저희가 발행한 글들에 정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든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거든요. 물론 제가 쓴 원고를 볼 때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마저도 글이 많이 읽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퀴어영화 연구그룹의 글을 재미있게 읽으신 분이 계신다면 SNS 혹은 메일로 감상을 남겨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이 외에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저를 퀴어 영화 연구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퀴어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과 앞으로도 함께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해나가고 싶어요.
문우 저희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지원 사업도 종료됐고, 저희도 이제 아마 논문 준비를 할 거라서 한동안 어쩌면 휴지기가 있을 수도 있는데요. 그럼에도 어떤 초청비나 원고료에 기대를 가지지 않고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으신 분이 계신다면……. (웃음) 저희에게 메일을 주시면 그래도 재밌는 걸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서동민 알겠습니다. 대화 여기까지 할게요. 감사합니다.
문아영
퀴어영화 연구그룹 구성원. 퀴어영화에 관한 다양한 글을 기획하고 발행한다. 퀴어예술매거진 《them》의 에디터로 퀴어웹툰에 관한 인터뷰와 대담을 기획했다. 사랑하는 동료들과 서울여성독립영화제를 만들고 있으며, 여성영화와 퀴어영화를 관람하고 연구한다.
이문우
퀴어영화 연구그룹 구성원. 주로 한국퀴어영화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써왔다. 최근에는 교차성의 관점에서 장애와 퀴어 재현을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불구 이론을 공부하며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서동민
웹진 《도착》 편집위원. 중앙대 영화영상이론 박사과정 중에 있으며 다큐멘터리와 퀴어 영화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다.
문아영(2022), 「퀴어영화를 찾아다니는 일: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퀴어 단편영화를 중심으로」, 퀴어예술매거진 『them』 2호, 91~97.↩
이문우(2017), 「1980년대를 퀴어링하기: 한국영화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학위 청구논문.↩
문아영(2023), 「퀴어 독립 다큐멘터리를 통해 바라본 노년 성소수자의 공간 만들기: <홈그라운드>와 <두 사람>을 중심으로」, 『문학과 영상』, 24(2), 427-456. ↩
김경태 외(2020), 『한국퀴어영화사』, 담담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