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2025.9.) l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 l 라운드테이블
퀴어 방법론
학제 간 퀴어 연구에서 마주하는 어려움
본 라운드테이블은 2025년 7월 11일 한국성소수자/퀴어연구학회가 개최한 학술대회 "전환의 시간: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교차로에서"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허성원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를 맡은 허성원입니다. 반갑습니다. 일단 어떻게 이 방법론 패널이 꾸려지게 됐는지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한국성소수자/퀴어연구학회의 전신인 성소수자대학원생/신진연구자네트워크(성연넷)에서는 그 발족과 함께 다양한 방법론 세미나, 방법론 워크숍 등을 진행해 왔습니다. 그래서 양적 방법과 질적 방법에 관한 여러 가지 토론을 수년간 진행해 왔는데요. 저희는 그동안 성연넷이 진행해 온 여러 가지 방법과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질적 방법, 양적 방법에 구애받지 않고 논의하며, 한편으로 그다음 단계라고 할 수도 있는 이론화에 있어서도 어떤 어려움과 도전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하고자 이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방법론 라운드 테이블을 준비하면서 저희가 마주친 질문들과 상황들에 대해서 몇 가지 더 공유를 드리고 싶습니다.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방법과 방법론을 고민하는 것은 사실 사회과학의 고민입니다. 다만 퀴어 연구 같은 경우에는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계열의 연구 분과에서도 꾸준히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인문학에서는 방법과 방법론이라는 말을 아주 직접적으로 사용하거나 논의하지 않고 논문을 쓰는 경우도 꽤 많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사회과학에서 문헌 분석이라고 불리는 방법론에 의존해서 연구를 진행합니다.
그래서 이제 퀴어 연구 같은 경우에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양쪽 분과 모두에서, 그리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포섭되지 않은 다른 분과에서도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이 연구의 기초 언어, 특히 사회과학 연구의 기초 언어라고 할 수 있는 방법과 방법론에 대한 논쟁이 최근 들어 서구 학회에서도 많이 있습니다. 사실 서구 학회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비공식적이고 공식적인 여러 경로들로 어떻게 우리가 연구를 할 수 있는지 많은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여기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긴장이 나타납니다. 첫째,사회과학 연구에는 객관성 혹은 외적 타당성의 요구가 있고 인문학에서는 그런 요구가 연구의 폭을 좁히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던집니다.
또한 인구 집단으로서 LGBTQ를 연구하는 것 그리고 인구화 기획에 대한 비판으로서 퀴어 연구를 하는 것 사이의 긴장도 존재합니다. [마지막으로,]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을 요구하는 흐름이 존재하고 그것을 둘러싼 학술사적 맥락에서,퀴어 연구가 더 널리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객관성, 외적 타당성, 재현 가능성을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타당한 연구에 대한 요구와 겹치면서도 완전히 같지는 않은, 윤리적 연구에 대한 요구와 인간 대상 연구에 대한 우려들도 동시에 존재합니다. LGBTQ 인구 집단 그리고 퀴어가 굉장히 취약한 집단이기 때문에 떠오르는 문제들인데요.
저희는 이러한 질문들을 손에 쥐고 각자 발제문을 썼습니다. 패널을 한 분씩 소개 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발제를 맡아주실 분은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석사 졸업하신 김경내 선생님이십니다. 두 번째로 발제 맡아주신 분은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석사 졸업하신 김정래 선생님께서, 세 번째로는 지금 조지아공과대학에서 인간중심컴퓨팅을 전공하고 계신 권순호 선생님이 발제해 주시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문화연구를 전공하면서 퀴어이론을 공부하고 있는데요, 제가 사회자의 역할을 하는 한편 패널로서 저의 고민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김경내 선생님 발제 시작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김경내 안녕하세요. 소개받은 중앙대학교 사회학과의 김경내입니다. 지금은 진보정책연구원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제가 속한 분과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를 드리면 사회학은 사회 그 자체에 대한 학문이기도 하지만 그 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현상들 그리고 사회 속에 속한 행위자들을 연구하면서 하나의 학문 분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실 사회라는 게 만들어지면서 생기는 현상 중에 대표적인 것이 사회 운동,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집회나 시위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지금처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걸 어떤 광기로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집합행위를 어떻게 보아야 하며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서 출발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회학 내의 논쟁에서 그러면 성소수자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살펴보면. 성소수자의 삶이 어떻게 차별받고 억압되는지 그리고 성소수자들의 실천이 어떻게 이 구조를 흔들고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연구했습니다. 나아가서 이 퀴어 이론이라는 것이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구조를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행위에 의해 유지되는 것으로 보면서 구조와 행위자 사이의 이분법을 해체하려는 시도도 역시 있었습니다. 사회학 내에서 성과 젠더와 섹슈얼리티는 주요한 관심 분야였는데요. 한국에서는 1990년대 이후에 사회학계에서도 여성학자와 학생 들이 많이 늘어났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학계의 남성 중심적인 세계관이라는 것이 쉽게 깨지지는 않았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회학에서 어떤 방법론을 가지고 연구를 하는지에 대해서 짧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실증 연구가 있습니다. 이것은 조사, 자료, 실험, 관측 등의 경험적 증거를 이용한 연구입니다. 흔히 양적 연구 혹은 질적 연구라고 많이 들어보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양적 연구라고 함은 어떤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경향을 찾고자 하는 대량의 데이터를 이용한 연구이고 예전에는 서베이나 통계를 많이 이용했다면 요즘엔 나아가서 빅데이터 분석을 많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질적 연구는 양적으로 많지는 않더라도 특정 대상을 깊게 이해하기 위한 현장 연구나 심층 면접 그리고 참여 관찰 등이 있고요. 그런데 지금 말씀드린 것들은 데이터 수집 방법이고, 수집한 데이터를 가지고 내용 분석이나 문헌 분석을 하거나 혹은 담론 분석을 하는 등의 연구 방법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론 연구와 역사 구조 변동 연구가 있는데요. 사회학계 내에서는 당연히 세부 전공에 따라서 차이는 좀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요즘은 실증 연구가 더 보편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제가 나온 과에서는 질적 연구와 더불어 역사 구조 변동에 대한 연구가 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 연구 경험 및 계획을 말씀드리면 제 석사학위 논문 「낙태죄 폐지 운동을 통해 본 한국 여성운동 지형의 분화」는 낙태죄 폐지 운동을 참여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수행한 질적 연구입니다. 사실 저는 양적 방법을 결합해서 논문을 쓰고 싶었는데, 자료상의 한계로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하는 성소수자 차별 실태조사에 조사팀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질적 방법과 양적 방법을 둘 다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들에 대해서 좀 써봤습니다. 양적 방법을 하면서 특히나 느끼는 것은 측정과 재현의 어려움입니다. 특히 성소수자들끼리는 많이 알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령 트랜스젠더가 겪는 차별, 혐오, 디스포리아 이런 것들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 것인지, 최근에 일어난 페미니즘 대중화와 더불어 TERF의 부상이 있었는데 이 이후에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혐오의 양상이 어떻게 달라졌으며 그것이 트랜스젠더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지가 저의 고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걸 누군가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지만, 사실 꼭 직접적으로 물어보고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시계열 데이터가 있다면 더 좋겠죠. 2010년 데이터, 2015년 데이터, 2020년 데이터. 이런 시계열 데이터가 있으면 그 시계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데 지금 저희는 또 그런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그러면 어떻게 질문하고 어떻게 이걸 확인하고 어떻게 재현해야 되는가 이런 고민들이 있습니다.
또 분석 과정에서도 인과관계를 어떻게 밝힐 수 있는가, 즉, 시간적 선후, 외생성과 상관관계 등, 이 조건들을 만족시킬만한 데이터와 분석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사회학과에서 성소수자/퀴어 연구하기의 장점이라고 함은 이론적, 방법론적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성소수자 운동이나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서 분석을 할 때도 페미니즘이나 퀴어 이론만을 접목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운동 자체에 대한 이론에 접목을 시킨다든가 아니면 네트워크에 대한 이론을 통해 같이 분석한다든가 이런 다양한 시도들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민을 좀 말씀드리면, 어쨌든 양방에서는 아까 말씀드렸던 데이터의 부족으로 생기는 문제들이 가장 큽니다. 미국 중심의 퀴어 이론에서는 통계 연구 자체가 성소수자 인구를 그리는 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지요. 그런데 저희는 지금 비판의 대상 자체가 없는 상황이잖아요. 공식적으로 통계적 표집이 없다 보니까, 성소수자에 대한 확률 표집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상황에서 자발적인 의사를 통해서 진행되는 조사에서는 어떤 경향성이나 편향성이 들어갈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을 어떻게 잘 통제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 대상의 조사에서도 더욱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연구 윤리상 청소년 대상의 조사에서 IRB(기관생명윤리위원회) 심의를 받을 때는 부모 동의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성소수자 청소년은 부모에게 커밍아웃하기 굉장히 어려운 조건에서 이걸 어떻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도 많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사업에서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부모 동의를 면제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을 비롯한 여러 곳에 자문을 받는 등 많은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소수자의 삶에 대한 데이터가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제 고민 중에 하나는 성소수자에 대한 시민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도 없다는 것이 문제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예전에는 질적 방법은 뭔가 비판적이고, 연구자가 스스로를 연구 도구로 삼는 그런 관점에서 수행이 되는 반면 양적 방법은 굉장히 객관적이고 그래서 좀 그런 부분(객관성)에서 비판을 받는 지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은 양적 방법에서도 연구자에 따라서 이론도 너무 달라지고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서 연구가 굉장히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성소수자 연구자들이, 퀴어 연구자들이 양적 방법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고요. 질적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들 역시 양적 연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면서 서로 어떤 이해와 비판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이 들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발제문을 확인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허성원 네. 시간을 많이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럼 이어서 김정래 선생님 발제 듣겠습니다.
김정래 안녕하세요. 소개받은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 석사 졸업한 김정래입니다. 지금 소속은 청소년 자치배움터 다가치학교 강서양천에서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이번 발제문의 제목을 「퀴어 인류학과 방법론에 관한 질문들」이라고 적었는데, 사실 “질문들”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정답이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짚을 수 없다는 점을 바탕으로 오히려 이 불확정성과 함께 성소수자/퀴어 관련 연구를 앞둔 과정에 계신 분들, 그리고 이제 당장 논문을 써야 하는데 방법론 파트에서 당장 무언가를 써내야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어떤 방법론적 질문들을 함께 만들어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를 같이 고민하는 발표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성’이라는 것이 사실 ‘섹슈얼리티’로 번역이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지도 여전히 고민이 남는 부분이긴 하지만, 성이라는 것은 인류학이라는 학문 분과가 태동한 초창기부터 꾸준히 관심받아온 주제이기도 한데요. 이전까지 굉장히 개인화돼 있던 영역이었던 젠더, 섹슈얼리티가 사회문화적 가치 체계와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 마가렛 미드 이후에도 꾸준히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시도는 에스더 뉴턴이나 게일 루빈으로 이어지면서 인류학에서의 일정한 계보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퀴어 인류학이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이러한 계보에 따라서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인류학적 연구 대상으로 삼는 분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 계보를 어떻게 그리느냐는 개인이 집중하는 바에 따라서 굉장히 달라질 수 있겠지만, 거칠게 요약하자면 여성/남성, 동성애/이성애와 같은 어떤 이분법이 보편타당한 진리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특수한 현상이라는 전제와 함께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서 무엇이 성적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지가 퀴어 인류학의 오랜 연구 주제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발표에서 주요하게 다룰 퀴어 인류학의 연구 방법론의 특수성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 제가 세 가지 질문을 가져왔습니다.
첫째로 퀴어 인류학 연구가 지시하는 현장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사실 당연한 말이지만 전 지구적 규모의 도시화 영향으로 인해서 이제는 문화라는 것을 통일되고 정합적이고 일관성 있는 어떤 구조를 갖춘 것으로서 접근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 도시화라는 것이 익명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퀴어 문화를 싹틔우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인류학과 퀴어 연구에서의 현장이란 단순히 공간 좌표계상의 고정된 값을 가지는 것을 넘어서 '밖'이라고 경계 지어진 것들의 영역 간의 이동 또는 안팎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된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현장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서 이런 현장을 참여 관찰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관찰이라는 행위는 보는 주체와 보여지는 대상을 전제로 함에도 ‘참여’가 개입하는 순간 능동과 피동 역학이 모호해지는 순간이 찾아오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숱한 인류학 석사, 박사 논문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연구 대상이라는 단어를 쓰기보다는 연구 참여자라고, 연구를 같이 참여해서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채택하는 것으로서 이 고민이 두드러지기도 합니다.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든 방법론적 고민을 성찰해서 연구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쓰기의 문제로까지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확장될 수밖에 없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이 퀴어 인류학에서의 방법론에서 어떤 부분이 과연 퀴어냐는 것인가를 봤을 때, 사실 제 논문 연구 같은 경우에는 패널 질문들 전체 질문들에서 좀 많이 다룰 것이기 때문에, 최근 출간된 학위 논문이기도 하고 저와 같이 이번 라운드테이블 준비에 도움을 주었던 한중연 이현화 선생님의 얘기를 조금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이현화 선생님의 논문 「케이팝으로 함께 흐트러지기: 이태원 게이클럽의 케이팝 놀이가 만드는 공동체와 경계」는 이태원의 게이 클럽에 대해 현장을 중심으로 Kpop을 매개로 게이 남성 간의 놀이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해당 연구는 내용뿐만이 아니라 연구 방법론적으로도 중요한 질문을 촉발시키고 있는데요. 특히 성소수자 재현과 성소수자 연구 참여자 보호에 관련한 논쟁적인 질문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일괄적이고 적극적인 익명화, 모자이크 처리. 그런 적극적으로 은폐하는 상태로서 연구 참여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어떤 질문이라는 것이 사실 어떻게 보면 성소수자가 역사적으로 결부된 범죄화의 재현, 병리화된 존재의 재현, 이런 사회적 낙인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고민이 남는다고 이현화 선생님은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은 사실 1970년대 미국 사회학자 로드 험프리스(Laud Humphreys)의 티룸 트레이드(Tearoom Trade) 이후로도 계속해서 퀴어 또는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인류학 연구에서 문제 제기되고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2023년, 『퀴어 코리아』와 관련한 많은 논쟁이 있었던 것을 통해서도 이 문제가 현재 진행형으로 첨예한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연구자가 연구 참여자를 보호해야 된다 혹은 보호하지 못했다라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고, 이것은 단순히 IRB 연구 지침을 따른다고 해서 손쉽게 해결되는 문제는 분명 퀴어 인류학 연구에서는 아닐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IRB 중심의 프로토콜화 된 연구 윤리를 따르는 것을 넘어서 현장에서 연구자가 어떻게 관계를 맺고 무언가를 하면서 그 관계성에 대해서 치밀하게 사유를 하고 연구 윤리를 다른 방식으로 상상하는 것이 질적 연구 방법과 참여 관찰 방법론에 있어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지 않을까하는 제안을 하면서, 그런 필요를 인지하는 것에서 퀴어 인류학의 방법론과 윤리에 대한 제 질문을 하는 것으로 저의 발제를 이상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허성원 네, 발제 감사드립니다. 김경내 선생님은 사회학자로서, 김정래 선생님은 인류학자로서 훈련을 받으셨습니다. 김경내 선생님은 이 자리에서 양적 방법 위주로 말씀해 주셨지만, 발제문에서는 양적 방법과 질적 방법이 교차할 때 마주치는 질문들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공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김정래 선생님은 인류학이 참여관찰, 에스노그래피를 비롯한 여러 가지 질적 방법에 있어서, 이를테면 본거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수집한 자료를 기술(description)할 때 마주치는 소수자 연구자로서의 고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회학과 인류학, 이 두 분과는 방법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연구 방법을 가장 강조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훈련시키는 분과 중 하나입니다.이어지는 두 발제자는 사실 방법론과의 관계가 좀더 불투명한 분과에 속해 있습니다. 권순호 선생님은 응용사회과학 및 디자인 쪽에서, 크게 보자면 응용학문에서 퀴어연구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관한 고민을 나눠주실 겁니다. 세 번째 발제 이어 듣도록 하겠습니다.
권순호 네 안녕하세요. 소개받은 권순호라고 합니다. 다음 발제 맡아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소개받은 대로 저는 현재 조지아 공과대학에서 인간 중심 컴퓨팅(Human Centered Computing)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아마 “인간 중심 컴퓨팅이 뭘까?”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조금 많으실 것 같아서 제 분야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를 먼저 하고 진행을 해보겠습니다. 저희 분야는 보통 휴먼 컴퓨터 인터렉션(Human Computer Interaction), 혹은 HCI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산업계에서 스타트업이라든가 디자인 쪽에서 근무하셨던 분들은 ‘사용자 경험 디자인’ 혹은 ‘UX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조금 더 익숙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항상 저희 분야를 “기술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들어와야 할지 디자인하는 분야”라고 소개 합니다. 가령, 음성 인식이라는 기술은 우리의 삶에 늘 존재해 왔지만 이걸 시리(Siri)나 빅스비의 형태로 핸드폰에 집어넣자고 하는 것은 일종의 디자인 결정인 것이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디자인이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분야라고 생각하시는데, 저희 분야는 한 발짝 더 나아가서, 기술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들어올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기획하고, 구현하고, 평가하고, 그 결과에 대해 사회적, 윤리적 함의를 논하는 일련의 과정을 디자인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저희 분야가 사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기법으로는 사용자 중심 디자인(User Centered Design)이라는 기법이 있습니다.이 기법의 경우에는, 사용자의 삶에 직접 디자이너가 들어가서 여러 가지 사회 과학과 인문학의 방법론들을 활용해 사용자의 현실에의 깊은 이해와 공감을 도모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용자가 무슨 문제를 겪고 있는지를 정의한 후, 이 문제를 어떻게 우리가 기술로서 해결할 수 있을지 여러가지 제품이나 서비스를 상상해본 뒤, 프로토타입을 제작하여 실제 사용자 삶에 배치해보고, 그 문제가 해결이 됐는지 안 됐는지를 판단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저희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 첫 번째 단계인 공감하는 단계(empathize)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과 삶에 대한 가장 깊은 공감과 이해를 기반으로 디자인 솔루션이 나와야 비로소 좋은 디자인이 되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나아가서 이러한 공학(?)적인 분야에서 퀴어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질까라는 질문이 아마 생기셨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희 분야 내의 소분야인 퀴어 HCI에 대해서 소개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학계에서는 퀴어 HCI는 총 3가지의 갈래로 정의를 합니다. 첫 번째가 성소수자 연구자 본인이 진행한 HCI 연구. 두 번째로는 성소수자 사용자를 중심에 두고 진행한 HCI 연구. 마지막으로는 퀴어 이론을 활용해서 저항의 도구로서 기술을 활용하는 연구.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연구, 그리고 오늘 제가 소개해 드릴 연구는 두 번째인 성소수자 사용자에게 집중하는 HCI 연구입니다.
아마 여러분 페이스북 세대시죠? 안 써보신 분 없죠? (웃음) 페이스북이 2014년까지는 사용자의 실명만을 사용해야 했던 것 알고 계셨나요? 당시 이 정책이 드랙퀸 커뮤니티에서 굉장히 큰 항의를 불러왔습니다. "실명만 쓸 수 있는 게 말이 되냐"라고요. 그런데 페이스북이 실명만 쓸 수 있게 하자는 디자인 결정을 내린 것은,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기본적으로 동문들 간의 커넥션을 위한 플랫폼으로서 시작됐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실명 기반으로 소셜 미디어를 디자인하자는 결정 또한, 그들의 유저 리서치를 통해서, 나름대로 그 목적성에 충실하기 위해 내려진디자인 결정이었겠죠. 하지만 이 플랫폼이 글로벌해지고, 플랫폼의 용도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당시 성소수자의 목소리는 디자인 과정에서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 이름’이 성소수자 당사자에게 본인이 사용하지 않는 이름일 수 있다는 인사이트는 디자인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았던 것인데, 성소수자 사용자가 늘어난 그 이후의 페이스북의 현실과 일종의 마찰이 빚어진 겁니다. 그래서 드랙퀸들의 이런 일련의 항의를 통해 2014년부터 실명 정책을 페이스북이 폐지합니다. 본인이 선택한 이름으로도 계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디자인 결정을 바꾼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결정이 굉장히 다양한 인구 집단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드랙퀸뿐만이 아니라 이름 정정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개인의 경우에도 본인이 선택한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필명을 사용하고 싶은 아티스트나, 검열 등을 피해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활동가들이 이런 안전망 속에 들어올 수 있게 되는 추가적인 활용 예들이 생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퀴어한 사용 케이스를 통해서 퀴어한 목소리를 반영한 디자인 결정이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서 퀴어는 물론, 퀴어를 넘어선 유저들의 보다 포용적인 사용자 경험이 생긴 것이죠. 성소수자라는 인구가 디자인 과정에서 어떻게 배제됐는지 이야기하고, 퀴어함이 포함되는 디자인이 어떠한 방식으로 기술의 영역을 넓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퀴어 HCI 접근의 예시 중 하나가 되겠습니다.
다음으로 제가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조금 소개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현재 띵동과 함께 대한민국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어떠한 새로운 기술을 필요로 할까, 또 지금 사용하고 있는 기술들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를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까 전에 얘기했던 사용자 중심 디자인 기법에서 보면, 첫 번째 단계인 공감의 단계와 문제 정의 단계를 지금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 처음 제가 했던 질문은, 지금의 한국의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어떤 주변 사람들과 어떤 공간에서 어떤 물건들을 활용하고 어떤 서비스를 활용하고 더 깊이 들어가서 어떤 어려움과 즐거움과 두려움과 꿈이 있을지 였습니다.
크게 두 가지의 방법론을 차용해서 이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로는 페미니스트 서사 연구(Feminist Narrative Study)라는 방법론을 사용을 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공동 디자인(co-design)이라는 기법을 활용해서 연구를 진행을 했습니다. 페미니스트 서사 연구 같은 경우에는 페미니즘 연구하시는 분들은 아마 들어보셨을 수도 있을 텐데요. 우리가 연구자로서 어떠한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권력을 가진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 권력을 가지고 연구 목표를 설정을 해서, 사람들을 인터뷰한 다음에, 그들에 대해 써 내려가는 과정이 참여자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나의 목소리, 나의 연구자의 권력으로 이야기가 쓰여진다는 것을 비판하면서 나온 방법론입니다. 그래서 연구의 목표 설정과 내러티브가 연구자가 아니라 참여자의 목소리로 이어지는 것을 강조하죠. 이 과정에서 여성들의 어떤 구전 설화, 이런 것들을 기반으로 조금 이루어지는 방법론입니다. 이런 연구 철학을 제 연구에 차용을 해서 “이야기 모음”이라는 단계를 진행을 했습니다. 일반적인 인터뷰 연구처럼 제가 연구 목표와 인터뷰에 사용할 질문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만나면 어떤 질문을 하고 싶나요? 혹은 무인도에서 어떤 병의 편지를 담아서 떠내려 보내 있다면 어떤 편지를 써 내려갈 거예요?” 이런 식으로 조금 더 자유롭고, 열려있는 형태로 자신의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연구를 구성 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이야기는 공동 디자인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함께 분석을 했습니다. 이 방법론의 경우, 디자인 연구의 수행을 디자이너가 권력을 가지고 “너희 이런 거 필요하지?” 하고 주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동등한 위치에서, 그들은 자신의 현장의 전문가로, 저희는 디자인의 전문가로서 “우리 같이 이거 만들어보자”라고 하는 기법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같이 띵동에 가가지고 이렇게 예쁜 사진도 찍고, 각자 자기가 읽었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이 이야기들를 기반으로청소년 성소수자가 어떠한 삶 속에 살고 있는지 함께 그려보고, 어떤 기술이 생기면 도움이 될지 상상해보는 활동을 진행 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제가 연구 과정에서 어떤 고민들이 있었는지 조금 나눠보면, 앞서 두 분이 말씀해 주신 것과 굉장히 겹칩니다. 우선 연구 참여자 모집에 있어서 안전한 연구와 윤리적인 연구란 무엇일까를 굉장히 많이 고민했습니다. 김경내 선생님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저도 이제 IRB 심의를 받는 데 굉장히 고생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부모 동의를 받으면 아웃팅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저희 학교에서는 (아마도 미국 학교여서인지) IRB가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인지가 있었고, 이러한 절차가 연구 참여자를 오히려 위험하게 만든다는 저희의 판단에 공감해주셔서, 여러 가지 면제를 받고 진행을 했습니다만… 이러한 위험성은 IRB가 짚어내지 못했고, 제가 퀴어여서 짚어낸 부분이었단 말이죠. 그런 생각에 미치니까, 청소년과 퀴어라는 이 교차되는 취약성 속에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그리고 IRB도 생각하지 못한, 이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연구의 과정이 분명 있을 것 같은데, ‘퀴어 인구의 안전’과 관련된 연구 윤리에 대한 논의가 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굉장히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걸 하나의 일반화된 “한국 청소년 성소수자”의 이야기로 적으면서 또 뉘앙스가 있는 여러 가지 현실들이 지워지는 것은 아닐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는 얘기 나누면서 발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허성원 그럼 바로 이어서 제가 발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발제문에는 「퀴어 방법의 불가능성을 바탕으로 작업하기」라고 가제를 붙여봤습니다. 일단 저의 분과적 위치를 말씀드리면, 저는 여성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 종족연구(ethnic studies) 기반의 문화연구 프로그램에서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몸을 담았던 두 프로그램은 모두 학제적 연구를 수행하는 분과입니다.
우선 여성학부터 말씀드리면 양적 연구, 질적 연구, 이론 연구를 모두 배웁니다. 제가 수학한 여성학 프로그램은 사회과학대학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론에 더해서 양적 연구, 질적 연구, 그리고 방법론에 대한 강의가 필수 강좌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논문을 제출하려면 양적, 질적 연구 방법 및 방법론에 대한 일정 수준의 지식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저의 연구는 경험에 대한 접근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질적 연구 혹은 경험 연구보다는 이론 및 문헌 연구의 비중이 상당히 높습니다. 제가 속한 박사과정 프로그램이 학제적 프로그램이기는 합니다만은 전통적으로 사회과학보다는 인문학에 가까운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구성원의 주요 연구 주제는 퀴어,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 종족, 장애, 환경 등입니다.
제 연구 경험을 말씀드리면, 주된 연구 분야로는 퀴어 이론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론을 연구한다는 것은 이론의 발전 과정을 정리하는 한편 그 연장선상에서 그간 이론화되어 오지 않았던 부분에 대한 이론화 작업을 수행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석사 학위 논문 「한국 퀴어퍼레이드와 정동정치」는 퀴어 퍼레이드라는 현장을 바탕으로 퀴어와 정동 이 두 가지 이론적 열쇠말로 삼아 그 관계를 이론화하려는 논문을 썼고, 박사 학위 논문으로는 초국적 관점에서 한국 동시대성의 퀴어성과 인종성, 그리고 그 공진화(co-evolution)에 대한 연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방법 및 방법론과 관련하여서도 제가 연구에서 마주친 어려움을 두 가지로 요약해서 말씀드리면서 제 발제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는 영문학, 비교문학, 고전 문헌학 등이 출발점이었던 인문학 베이스의 퀴어 연구와 사회과학, 특히 양적 연구에서 유리한 방법과 방법론이라는 언어가 존재하는 두 세계관 사이의 충돌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방법과 방법론으로부터 퀴어 해석, 특히 좋은 퀴어 해석이 반드시 따라나오지는 않는다는 데서 오는 어려움입니다.
그래서 퀴어 방법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들이 고민을 해왔습니다. 예컨대 이제 서구의 사례인데요. 출간된 걸 찾다 보니까 서구 쪽을 좀 먼저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아민 가지아니(Amin Ghaziani)와 매트 브림(Matt Brim)이 공편한 『퀴어 방법을 상상하기(Imagining Queer Methods)』 에서 두 편집자는 이런 어떤 어려움을 인문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긴장으로 서술하면서 제인 워드(Jane Ward)의 문장을 인용합니다. "안정적인 분류 시스템에 천착하거나 분과의 경계에 속하는 것의 실패를 기리는 데서 출발한 퀴어와 질서 있고 분과 특수적이고 재현 가능한 기술들을 의미하곤 하는 방법론을 함께 묶는 일에는 흥미로운 동시에 생산적인 모순이 있다." 그래서 이들의 진단은 범주를 둘러싼 오래된 과정과의 대립으로 나아갑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전통적인 사회 조사 방법에서 연구 대상이 어떤 범주에 속하거나 속하지 않는 사태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매우 곤란한데, 그것이 제3자의 위치에서 관측 가능한 객관적 사실 혹은 외적 타당성이라고 불리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전제를 흐트러뜨리기 때문입니다. 이는 또한 경험의 투명성이나 신뢰성에 관한 물음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물론 (김경내 선생님의 발제에서도 이야기되었지만) 지난 수십 년간 페미니즘 연구와 퀴어 연구를 포함하여 사회과학 분과 안에서 질적 방법으로 연구를 수행한 수많은 연구자들 그리고 양적 방법 연구자들 또한 이 문제를 고민해 왔고 이 어려움을 어떻게 피하거나 돌파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논의가 쌓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성과 재현 가능성은 많은 퀴어 연구자들이 여전히 맞닥뜨리는 현실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제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경험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연구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피해가고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방법과 방법론의 문제는 저에게 아주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제 사실 참여 관찰, 문헌 분석과 텍스트 분석 등의 방법을 제가 모두 사용하지만, 사실 그것을 이론화라는 더 큰 목적을 위해서 동원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기본적인 연구 윤리에서의 문제를 지키는 한에서, 예를 들면 제가 수행하는 참여 관찰 방법과 김정래 선생님이 수행하는 참여 관찰 방법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박사 논문에서는 좀 더 스케일이 큰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 문제들에 대비해서는 사실 추정이라는 어떤 전통적인 사회과학적 연구를 하기도 좀 어렵고 해석, 상상, 독해 등으로 사실 인문학 베이스의 퀴어 연구에서 발전되어 온, ‘방법’이라기보다는 ‘접근’에 가까운 경로를취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세션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당연히 모든 분과에 적용되는 말은 아닐 테지만 인문학 베이스의 퀴어 연구가 계속해서 주장하려고 하는 바는 객관성이나 타당성을 계속해서 생각하기보다는 그 요구를 넘어서자는 주장 같습니다.이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식은 전달되고, 받아들여지고, 소통될 수 있는(transferable) 지식을 생산하고 그것을 통해서 또 다른 방법을 지닌 연구자들과 함께 교류를 하면서 성소수자, 퀴어. 연구의 언어와 지식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렇게 제 발제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남은 질문은 질의 응답 통해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허성원 이제 패널 토론을 진행할 차례인데요. 발제 순서대로 질문을 받는 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김정래 선생님 권순호 선생님 그리고 제가 김경내 선생님의 발제에 대한 질문이 있으면 지금 공유를 해 주시고 다 모아서 김경내 선생님이 한 번에 답변을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선, 사회자가 준비한 전체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을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인구 집단으로서의 LGBTQ 혹은 성소수자와 인구화 비판 기획으로서 퀴어 연구의 긴장을 고려하면서 패널리스트들은 자신의 연구를 성소수자 연구 혹은 퀴어 연구 중 어느 것으로 여기고 있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하나 있고요.
그리고 재현 불가능성. 여기서 재현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였는데요.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리플리케이트(replicate)'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이 연구를 같은 방식으로 진행했을 때 똑같은 결괏값이 나오느냐는 의미의 재현 가능성. 그리고 흔히 인류학을 위시로 하는 '디스크라이브(describe)'의 문제 그러니까 기술의 문제에 있어서 '리프레젠트(represent)'가 되지 않는 문제, 다시 말해 연구 집단이라든가 대상을 포착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데 그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을 해 오고 계신지, 이렇게 두 가지가 제가 사회자 질문으로 전체 패널께 드리는 질문입니다.
사회자는 시간 관계상 모든 질문은 사회자 질문으로 갈음하겠고요. 김정래 선생님, 권순호 선생님께서 김경내 선생님께 질문이 있으면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정래 어떻게 보면 저의 대척점에 서서 양적 방법을 사용하시는 김경내 선생님 발표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드리고 싶은 질문은 범주화와 계측화에 대한 문제이기도 한데요. 특히 퀴어 연구, 성소수자 대상 연구를 하는 데 있어서 예시 들어주신 것처럼 트랜스젠더의 디스포리아를 어떻게 측정 가능한 것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어떤 측정 가능한 데이터를 만들고 계측하는 데 있어서 이 디스포리아를 느끼는 것과 측정화된 데이터 값에서의 갭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이것을 연구를 통해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질문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는 그냥 개인적인 제 감상인데, IRB에서의 취약한 연구 대상자에 대한 보호 문제를 이야기할 때 항상 청소년이 언급되잖아요. 그런데 사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이 설문지법을 사용하는 것이, 그래도 보호자 동의라는 것이 과연 그러니까 제가 느끼기로는 양적 접근이 오히려 청소년 성소수자 연구의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권순호 감사합니다. 저는 질문 한 가지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아까 마지막에 제가 나눴던 고민이, 이렇게 우리가 인구 집단으로서 성소수자를 뽑아서 연구를 하고, “이게 성소수자의 삶을 대표해”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지워지는 현실들이 분명히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마 알고 계시겠지만, 성소수자의 삶에 관한 실태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더라고요. 응답을 하는 와중에, 이 설문지가 도는 그룹이… 굉장히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이 대부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음). 과연 그랬을 때, 이게 어떤 학계나 퀴어 씬에 있지 않은 분들이라든지, 디지털을 활용할 수 없는 분들이라든지, 혹은 이거에 나름의 이유를 갖고 참여하고 싶지 않아 하는 분들도 분명히 어떠한 형태의 퀴어함을 살고 계실 거란 말이죠. 그랬을 때 이 표본의 표집이 비퀴어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발제하시면서도 굉장히 많이 말씀해 주셨겠지만, 이런 것들을 어떻게 논문 속에서 소통을 하시는 편이신지, 이걸 좀 극복하려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신 적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조금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허성원 네, 저는 사회자 질문이 있어서 질문은 넘기고 간단한 코멘트만 드리겠습니다. 퀴어 연구자 사이에서 사실 국가 혹은 통치성에 대한 어떤 의심과 비판이 존재하잖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데이터 혹은 데이터 조사라는 게 필연적으로 퀴어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까 김정래 선생님도 말씀해 주셨지만, 예를 들면 우리가 아동 성소수자 연구에서 어떤 현재 존재하는 질적 연구의 제도적인 어떤 어려움들을 피해가기 위해서 설문지법을 이용한다고 했을 때, 설문지법이 필연적으로 퀴어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실 질적 연구 방법을 이용하시는 분들 혹은 이론 연구를 하는 사람들도 이런 자리에서 서로가 어떻게 연구하는지 이야기를 듣고 배울 수 있으면 좋지 않을지 하는 생각도 이 세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깊어진 생각인데요. 김경내 선생님 발제를 듣다 보니까 그 생각이 다시 들어서 이 코멘트만 드립니다. 그러면 김경내 선생님, 이제 간단하게 김정래 선생님 그리고 권순호 선생님 질문에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경내 일단은 김정래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범주화와 계층화에 대한 문제에서, 예컨대 트랜스젠더의 디스포리아를 어떻게 측정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큰 어려움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의학적으로도 디스포리아의 어떤 측정 기준이라는 것이 있고, 그게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기 때문에 사용이 되는 것일 텐데요. 그런데 제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건 이런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 그런 게 서구에서 들여온 것들입니다. 그러면 한국적 맥락에서 트랜스젠더들이 느끼는 다른 고통이 분명히 있을 텐데, 이거는 어떻게 또 개발하고 측정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가 우선 있는 것 같습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제가 최근에 좀 인상 깊게 봤던 것은, 요즘 20·30대 남성 극우화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리포트와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캔자스대 김창환 교수님이 《시사인》에서 최근 극우 조사를 하실 때, 극우 지표 중에 하나로 서구에서 안 쓰는 지표를 하나 넣었습니다. 그게 뭐냐면 “중국의 보복으로 한국이 경제적 타격을 입더라도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문항입니다. 그런데 이거 정말 다른 곳에서는 그 극우 지표로 쓰지 않을 만한 건데 한국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와서 넣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트랜스젠더가 한국에서 겪는 특수한 경험들이 또 있을 건데, 저는 분명히 지표화에서의 한계가 있지만 또 그 지표를 사용할 때 한국적 맥락을 얼마나 반영할 수 있는가를 함께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일단 충분히 응답이 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런 고민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IRB에서의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보호 이야기를 여러분께서 해 주셨는데. 사실 이 문제가 굉장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IRB라는 것도 연구 윤리를 준수하기 위해서 이들이 이렇게까지 엄격하게 윤리적인 것을 요구하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고. 저는 예를 들면 청소년 성소수자가 혹시나 특정될 수 있는 위험성이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에, 이 보호에 대한 규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참여자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리스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연구 윤리에서의 가장 어려운 점인 것 같습니다. 김정래 선생님께도 질문을 드리려고 했는데요. 예를 들면 저희가 연구에서 연구 참여자를 실명으로 기술 제언을 했을 때, 연구 참여자는 본인은 동의를 했지만 본인이 예상하지 못한 리스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게 연구자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IRB에서의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보호도 물론 그런 측면도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에 대한 아우팅 위험은 너무 크기 때문에 이제 부모 동의에 대한 면제를 받은 것이기도 하죠. 이런 문제를 잘 조율하는 것이 연구자의 역할이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구 집단으로서 성소수자를 어떻게 표집을 하거나 아니면 조사를 해서 “성소수자의 삶이 이렇습니다”라고 이야기할 때 그것이 과연 정말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지, 혹은 대표성을 가진다고 할지언정 그때 지워지는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사실 저희 연구팀에서도 굉장히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긴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이번에 설문조사를 할 때, 처음에 이 포스터를 SNS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SNS에 한 번 올라가면 이게 전파가 되면서 너무 빠르게 모집이 돼버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제 응답을 해 주시는데, 또 특정 SNS를 사용하면서 이런 조사에 참여하는 분들의 경향성이라는 게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만 받았을 때 그러면 그게 진짜 퀴어의 삶을 대표하는 건가, 이런 부분들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퀴어 프렌들리한 병원들에다가 포스터를 다 보내드려서 그걸 부착을 하게끔 한다든가. 아니면 DC 갤러리 중에서도 성소수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갤러리를 찾아다니면서 올린다던가. 그리고 저는 이번에 검색하다가 처음 발견한 ‘스레딕’이라는 사이트를 발견했는데 그런 커뮤니티가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거기가 약간 트위터 이용자들이 별로 없는 커뮤니티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이런 곳에서도 글을 올려서 받으면 조금이나마 그런 경향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하긴 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사실 일반적이고 대표적인 경험이라는 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고 가는 게 양적 방법론 연구자의 태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질적 방법론이나 그 외의 연구들이 같이 또 필요하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성원 네, 다음으로 이제 김정래 선생님께 질문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김경내 선생님 그리고 권순호 선생님 질문해 주시고, 김정래 선생님 답변 다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사회자 질문 포함해서 다 한 번에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김경내 저도 사실 문화인류학에 대해서 관심이 많이 있었는데, 발제를 해 주셔서 너무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인터뷰 참여자가 실명으로 (처리를) 원했을 때, 이걸 완벽하게 모자이크 처리하고 싶지 않은 연구자의 마음이 있는 것이고 그리고 연구참여자도 동의를 해서 실명 처리를 하셨다고 했는데요. 그런데 저는 이것에 대해서 저희가 다양한 방법들을 고민해 볼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난번에 다른 선생님들도 말씀해 주셨지만, 예를 들면 가명을 사용하는데 그 가명을 연구 참여자가 고를 수 있게 한다든가. 이런 다양한 방법들이 있지 않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어떻게 검토해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 좀 같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공감이 되게 읽었던 것은 연구 참여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연구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 (말하자면) 내가 이 연구를 통해서 드러내고 싶은 것과 어떤 정치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과 연구 참여자가 말하는 것 사이에 괴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괴리가 있을 때, 그것을 “연구 참여자를 그대로 인용하고 재현하는 것이 물론 정답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그것이 배치되거나 충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참여자들끼리도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연구자도 또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데.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연구자가 책임을 진다는 건 어떤 걸까, 그리고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에 대해서 책임진다는 게 어떤 걸까. 이런 부분을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습니다.
권순호 저는 김정래 선생님 발표 들으면서 제일 공감했던 부분이, 연구 진행자와 연구 참여자의 친밀성에 관련된 부분이었습니다. 학부 때 문화 인류학 수업 3개 들은 게 전부이지만, 연구자가 현장에 들어가서 정말 깊은 공감, 공명이 있어야 깊이 있고 심도 있고 가슴을 울리는 민족지적 기술이 나온다는 경험을 몇 번 해봤었는데요. (저희 학계에서도 인류학적 방법론을 많이 차용하는데,) 그 과정에서 제가 자주 마주쳤던 문제가 “너는 당사자야?”라는 질문이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퀴어(라는 주제)에 있어서 특히나 그게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아까 게이 클럽에 가서 뭔가 참여 관찰을 하는데 비퀴어인 분이 가서 참여 관찰을 한다 한들 그게 깊이가 나올까. 그런데 그게 당사자여야만 할까. 뭐 이런 어떤 게이트키핑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여러 가지 논점이있을 것 같은데, 김정래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퀴어와 관련된 문화 인류학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당사자가 진행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각각에 대해서 어떤 장단점과 한계들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가볍게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김정래 우선 첫 번째 질문으로 김경내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실명으로 기술했을 때 예상치 못한 리스크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사실 이 문제 자체도 리스크라는 것이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일단 첫 번째 출발점이기도 하고, (연구자)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라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을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특히 계속해서 이야기가 나오는 청소년 성소수자와 부모 간의 동의의 문제. 한국에서의 어떤 청소년 성소수자와 부모라는 관계가 다른 문화권이나 나라들보다도 어느 정도로 삶이 밀착돼 있고, 어느 정도 의지를 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그런 종류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연구윤리적 고민이라는 것도 지정학적인 문제에 껴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IRB가 연구자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역할로 작동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현재 국내에서 IRB가 작동하고 있는 모델 자체는 게이트 키핑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는 이 연구가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냐를 판가름하는 주체로서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죠. 제가 해외에서 수학하는 다른 분들의 말씀을 듣기로는 IRB에서 연구 윤리와 관련한 실질적인 조언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IRB 담당자가 1대 1로 붙어서, 연구에 대해 어떤 고민이 있는지 그리고 윤리적인 고민이 있는지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 주는 그런 방식의 모델도 가능할 것 같은데요. 한국의 IRB 모델에 대해서 좀 더 고민을 해보는 방식의 질문이 나와야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자면, 연구자가 책임을 진다는 것. 당사자성의 문제에 대해서 간단하게 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인류학에서는 항상 위치성에 대해서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연구하는 너는 누구냐.”라고 해서 오래전부터 인류학 논문에서는 ‘나’를 출연시킵니다. 연구에서 ‘나’ 그러니까 연구자로서의 ‘나’가 출연하는 게, 어떻게 보면 웃긴 그런 모습일 수도 있지만, 이 ‘나’라는 것이 연구 참여, 그러니까 단순히 연구 대상으로서 보이는 이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넘어서 현장 안에서 어떻게 위치성이 바뀌는지. 위치성이라는 것은 사실 고정되지 않기 때문에 위치가 아니라 위치성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에 있어서도 어떤 주장이 배치되고 충돌하는 것. 말하는 것과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한 차이도 사실 현장 연구를 통해서 줄여나가기 보다는, 대화를 계속 해나가는 것이 저는 결국엔 윤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김경내 저도 잘 모르는, 권순호 선생님께서 발제해 주신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분야여서 굉장히 발표를 멋있게 해주셔가지고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간단한 질문인데 이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차이에 대해 고민해 주셨잖아요. 예를 들면 장애 여부, 탈가정/탈학교 여부, 커밍아웃 여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이걸 하나로 그냥 동질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사실 컴퓨팅 디자인 이런 곳에서 이 차이들을 어떻게 고민하고 반영할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고민하고 계시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정래 다행히 저도 비슷한 결의 질문이라서 같이 답변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인간의 문제를 발견하고 기술을 도입해서 해결한다는 것에 대한 것에서, ‘인간의 문제를 발견한다.’ 이것이 인류학에서도 집요하게 질문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청소년 문제 같은 것을 발견한다고 했을 때, 사실 청소년 스스로가 문제 삼지 않았던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사자의 목소리라는 것이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듣기 어렵다고 여겨지는것들, 쉽게 포착되기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이제 HCI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이것에 대해 문제화를 하고 있는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권순호 김정래 선생님이 왜 한숨을 쉬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웃음) 제가 분야를 대표해야 하는 큰 질문을 받아서요. 우선 김경내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여러 가지 현실들을 포착한다고 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디자인으로서 풀어내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 주셨는데, 이 분야가 저희 지도 교수님이 전문이십니다. 페미니스트 HCI라는 분야를만드신 분이신데, 페미니스트 HCI는 디자인 일반화의 폭력성에 관해서 이야기해요. 대표적으로 예전에 기업 어딘가에서 “전세계를 위한 유니버설 세탁기예요.” 하고 만들어 전세계에 뿌린 거죠. 여러가지 세제나 원단들을 활용해서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이게 인도에 가서 인도 여성분들이 전통의상 사리를 세탁했는데, 사리가 다 망가지고 세탁기도 망가져 버린 겁니다.
페미니스트 HCI는, 이런 식으로 디자인이 한 가지의 현실, 주로 다수의 현실을 모두에게 일반화했을 때, 그 다수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의 현실이 디자인을 통해 무너진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따라서 굉장히 지역적(local)이고, 한 가지의 정체성 혹은 한 가지의 배경에서만 리서치를 진행을 해서, 거기에만 활용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청소년 성소수자 연구 같은 경우에도… 제가 이 고민을 정확히 이 공동 디자인 워크샵을 진행하면서 참여해준 친구들하고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디자인을 하는데 이런 고민들이 너무 걱정이다. 여기 트랜스젠더 친구도 있고, 젠더퀴어 친구도 있고, 에이섹슈얼 친구 있고, 게이 친구, 레즈비언 친구 다 있는데 여러분의 이야기를 내가 하나로 뭉뚱그리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물어봤더니, 각각 따로 만들면 되지 않냐고 시원하게 답을 해줬습니다. 저희가 이 워크샵에서 상상한 기술의 모습은, 어떠한 부분들은 게이들에게만, 어떠한 부분들은 트랜스젠더에만 해당이 되는 거예요. 이때 게이를 위한 디자인이 트랜스젠더에게 사용된다면, 트랜스젠더 당사자는 고려되지 않은 채로 불편한 사용 케이스가 발생할 수 있겠죠. 그렇다고 "게이를 위한 디자인이 틀린거냐?"라고 하신다면 그렇제는 않습니다. 여러가지 디자인 현실이 양립할 수 있고, 공존할 수 있는 것이죠. 누군가를 대상으로 한 디자인을 모두에게 일반화시키지 않고, 다양한 현실을 위한 다수의 디자인이 존재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페미니스트 HCI에서 이야기하는 다원주의적 디자인(Pluralistic Design)입니다. 하나의 현실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여러 현실들을 위한 각각의 디자인 솔루션들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풀어내는 학계의 흐름이고요.
두 번째로 이제 인간의 문제, 그것을 발견한 스스로가 문제 삼지 않았던 것들 (혹은) 당사자의 목소리와 같이 듣기 어렵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실제로도) 굉장히 포착되기 어려운데요. 이걸 HCI에서 어떻게 풀어내는가…를 지금 열심히 많은 학자들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이런 고민을 하는 학자들은 “문제 자체를 포착하는 것이 문제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기술 해결주의 (혹은) 기술 만능주의(techno-solutionism)라고 보통 이야기를 합니다.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사람들이 겪고 있지 않은 문제를 기술자들 혹은 디자이너들이 굳이 만들어내서 “너네 이거 어렵지 않아? 이거 우리가 해결해 줄게.”라고 들어가는 굉장히 시혜적인 형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아니라 기쁨을 증대해 주는 방식이라든지, 혹은 더 깊은 수준에서의 어떤 가치를 원하는지를 찾아가서, 기술이 어떠한 방식으로 그 가치를 증대하거나 억압하는지 탐구하는 등, 여러 가지의 디자인 연구 기법들이 있습니다. Value-Sensitive Design이라든가, Participatory Design 같은 기법을 제가 다 소개해 드리고 싶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이런 기법들이 있다는 정도만 말씀드리면서 마무리하고, 허성원 선생님께 질문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질문 바로 드릴까요? 저는 허성원 선생님 발표 들으면서 제일 집중하고 싶었던 부분이 세계관의 충돌이었습니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모두 다루면서 이러한 부분에서의 부딪힘이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저는 이걸 큰 질문으로 끌고 가서 “우리는 왜 퀴어 연구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연구의 목표가 실질적 변화를 이끌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현상을 이해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 사이에 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랬을 때 허성원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본인 분야에서 연구 목표의 방향성은 무엇인지, 혹은 거기에서 벗어나서 우리 모두는 학자로서 퀴어 연구를 왜 하는지에 대해 질문 드리고 싶었습니다.
김정래 저는 간단한 질문입니다. 이전에도 발표 준비하면서 좀 준비한 질문이긴 하지만, 어떤 발표와 허성원 선생님의 발표 안에서 퀴어 독해라는 것이 있는데요. 이 퀴어 독해, 퀴어 해석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김경내 허성원 선생님께서 발제해 주실 때 인간 대상보다는 텍스트나 콘텐츠 대상으로 연구를 많이 수행하신다고 하셨는데요. 그때도 고민해야 하는 연구 요지들이 또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분석하고 재현, 기술하느냐 이런 차원의 문제도 있지만, 사실 저도 방법론 수업을 들을 때 어떤 콘텐츠를 분석을 대상으로 삼을 것인지부터 시작해서 그 논문을 어떻게 발행하고 누구를 대상으로 이야기할 것인지까지가 연구이기 때문에 그 과정 자체에서의 윤리가 필요하다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하시는 어떤 학제나 연구에서 고민하고 있는연구 윤리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성원 네, 일단 큰 질문. 왜 퀴어 연구를 하느냐. 그리고 심지어 권순호 선생님이 답변을 이미 해 주셨는데요. 현상을 더 잘 이해하고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인데, 제 연구는 굳이 따지자면 현상 이해 쪽에 훨씬 가깝습니다. 예술하는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할 때 많이 하는 얘기이기도 한데요, 우리가 하는 걸로, 예를 들면 글을 써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냐고. 저도 그때 술이 취했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얘기 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활동을 해야지 왜 글을 써서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느냐고요. 물론 그런 질문이 아니었다는 걸 압니다. 그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할 때 그 변화의 의미 자체가 다르다는 겁니다. 사실 퀴어 연구라든가 혹은 퀴어 글쓰기 등을 통해서 이끌어낼 수 있는 변화는 우리가 ‘사회 변화’라고 부를 때 상상하는 변화의 이미지와는 무척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인간에게 어떤 변화를 주죠. 예를 들면 어떤 글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저는 그런 일들이 되게 많은 퀴어 연구에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사회 변화라는 형태로 포착되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이지요. 제 연구는 현상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이야기함으로써 더 소통 가능한 형태의 지식들이 늘어난다면 저는 그것이 그런 포착하기 어려운 변화를 이끌어내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결국에는 포착되지 않을지라도요.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인 퀴어 독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게 읽히지 않았던 것들을 퀴어 시각에서 읽으면 밝혀지는 맥락들을 다시 적어보자는 접근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김경내 선생님이 주신 질문은 텍스트와 콘텐츠를 어떻게 윤리적으로 접근할 것이냐는 것인데요. 저는 석사 논문을 쓸 때는 공개적으로 접근 가능한 자료만 썼습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긴 합니다만, 제가 그 이외의 자료를 알고 있는 경우에도 검색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자료만 썼습니다. 아무래도 제 석사 논문은 동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퀴어 퍼레이드라는 현장을 연구했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이런 희망도 약간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예전에 조명받지 못했던 정보를 엮고 해석하면, 제 연구의 독자 역시 예전에는 중요한 자료로 표집되지 않았던 것들을 가져가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그런 실천을 하리라는 희망을 가졌었습니다..
다른 학제에서는 이런 식의 자료 수집과 기술을 보고 자료의 대표성 문제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는 대표성 문제를 피해가는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케이스가 다른 상황에 또 나타날 것이라는 가정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 케이스에 얽힌 층위를 하나하나 들추어 내고이론화하는 것에 가까운데요. 이게 권순호 선생님이 말씀하신, 모든 로컬한 데이터를 만들면 되지 않냐는 접근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아까 공유해드린 사회자 질문 중 명확하게 답을 하지 않은 질문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그 질문에 간략하게 답해 주시면서 마무리 발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경내 아까 많이 말씀을 드린 것 같은데요. 어쨌든 그 비판적 퀴어 연구 혹은 비판적 질적 연구라고 했을 때, 그 비판의 대상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걸 비판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꼭 양방만이 정답은 아니지만 그런 혼합 방법을 비롯한 다양한 연구들을 좀 같이 수행하면서 상호 토론과 비판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정래 일단 제 연구는 성소수자 연구인가 퀴어 연구인가? 퀴어 연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번 콜로키움이라고 해야 될까요? 웹진 《도착》 창간호에 실린 글에서 전혜은 선생님께서는 “퀴어이론이 곧 사회적 부정에 맞서 현재의 세상 모습을 유지하는 지배적 가치 체계와 인식들을 해체하는 담론적 저항 실천”이라고 했는데요. 제 연구 같은 경우도 비록 어떤 인구 집단으로서의 성소수자를 상정하고 있지 않지만, 아동과 아동과의 양육을 대상으로 “어린이는 자라는가. 인간은 자라는가.”(와 같은 질문들.) 혹은 “어떤 형상으로 오늘의 사회에서 어린이를 자라게 한다거나, 명확하게 건강하게 성장시킨다고 여겨지는 것이 사실 어린이를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런 질문을 통해서 연구관심을 이어 나가기 때문에 퀴어 연구로서의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짚어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객관성에 대한 요구를 어떻게 절합하고 거부해 왔냐는 것에 있어서는 사실 질문에 좀 질문으로 답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연구가 어떤 순간에 객관성에 대한 답을 해낼 것, 자기 입증을 할 것을 요구받는가를 질문을 해야 될 것이고 객관성에 대한 요구는 사실 전체를 설명 가능한 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하고 연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전체성에 대한 갈망. 이런 전체론적 사고로서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인정을 하는 사람들이 퀴어 이론과 퀴어 연구를 하러 여기 온 것이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제 답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권순호 저는 인구 집단으로서 LGBTQ 연구 쪽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학계에서는 조금 명확하게 퀴어 연구와 인구 집단 연구가 나뉘어 있는데요. 퀴어 연구하시는 분들은 퀴어 이론을 활용해서 굉장히 이론적으로 기술을 분석하시고, 저는 그것보다는 실제로 기술이 성소수자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한 현장 지식을 조금 더 다루는 편이어서 제 연구는 조금 더 그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재현 불가능성 같은 경우에는… 이것도 저희 학회에서 이제 재현 가능성을 찾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 분들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기술을 어떻게 쓰이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루시는데, 제가 하고 있는 연구는 이런 연구보다는, 그렇게 “더 많은 사람”에게 집중하고, 디자인이 만들어낸 결과의 재현에 집중하면서 “지워지는 사람들”에 집중하는 디자인 연구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뭔가가 재현 가능하다는 것보다도, 한 사람이라도 이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아 이런 경험이 기술을 통해서 가능했구나.”라고 한다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재현 가능성 자체를 저는 크게 논문에서 부각하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시각에 반대하는 편입니다.
허성원 저는 우선 인구 집단으로서의 LGBTQ 및 성소수자 연구를 하느냐 아니면 퀴어 연구를 하는 거냐고 질문에 관한 생각을 풀면서 마무리 발언 드리고 싶은데요. 퀴어 연구가 인구화 기획을 비판하는데 그것이 LGBTQ라는 어떤 인구, 이미 존재하는 인구와 범주를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퀴어 연구가 어떤 정체성 범주가 본질주의적으로 규정되는 현상을 비판해야 하지만, 저는 반본질주의 기획으로서의 퀴어 연구가 그런 범주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밝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런 범주가 존재하지 않고, 바로 부정하면 사라진다고 믿는 작업이 아니고요.이런 면에서, LGBTQ라고 불리는 사회 집단은 근대성과 통치성이 성립하기 위한 구성적 타자들의 집단 중 하나로서 (필연적이지는 않지만) 역사적으로 충분히 타당한 연결 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퀴어 연구를 함에 있어서, 우리가 성소수자 집단과 그 역사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될 이유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60년대, 70년대 문화를 읽는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동시대의 LGBTQ 당사자들이 받는 차별을 좌표로 삼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정정이 유독 중요한이슈입니다. 주민등록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민등록제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파악하다 보면, 이 제도가 그 당대의 이성애규범성이 형성되는 역사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이 있고, 이 두 가지가 떼어져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성애규범성이라는 게 만들어지면서 사실 성소수자를 포함한 다른 여러 종류의 마이너리티 집단들이 생기는 어떤 메커니즘들이 유사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데요. 그런 것들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방식으로서 인구화된 집단의 역사를 보는 게 저는 퀴어 연구에도 매우 유의미한 접근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플로어 토론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남았습니다. 저희가 사전 질문을 받았는데요. 사전 질문을 주신 분들 중 이 자리에 계신 분이 계시면 먼저 그 질문에 답을 하겠습니다.
플로어 질문자 1 일부 유전체 연구나 신경생물학적 접근은 성별 정체성 발현이 단지 X와 Y염색체에만 의존하지 않음을 밝히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과학적 발견을 퀴어 이론 연구와 연결짓거나 협업하는 방법이나 사례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허성원 이 질문은 퀴어 과학 연구 혹은 페미니스트 과학 연구에서 소화할 수 있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혹시 다른 패널 분들 중에서 관련해서 말씀해주실 분이 계시지 않으면 제가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저도 이 부분을 전공하는 것은 아니어서 그냥 제가 과문하지만 말씀을 드리자면, 이 x염색체와 y염색체에 대한 그 광기 어린 집착은 80년대 페미니스트 문헌에서도 많이 비판해 왔습니다. 그때의 질문은 왜 염색체가 젠더를 정의하냐고 생각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젠더를 규정하는 생물학적 결정자는 과학 담론의 전개에 따라 예전에는 성기의 생김새였다가, 호르몬이 됐다가, 다시염색체로 바뀌는 흐름을 비판했던 것이지요. 제가 2010년대 이후 퀴어와 트랜스 연구에서 많이 읽고 있는 것은 염색체보다는 호르몬이기는 합니다. 대표적으로 길 페터슨(Jules Gill-Peterson)이라는 학자의 연구가 생각나는데요. 이 연구는 호르몬 담론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추적합니다. 호르몬 담론이 19세기에는 어떤 지식이었고, 그 전에 사회 진화론적인 부분들을 담지하고 있고 이게 발전해서 어떤 문헌에서 특히 화제가 됐고, 특히 역사적으로 조겐슨과 같은 트랜스젠더 인물 혹은 현상이 나타나고, 우리가 지금 트랜스젠더라고 부르는 당사자가 어떤 식으로 집단을 이루게 되었는지, 이런 것들을 과학 문헌 및 담론과의 연관성을 통해 들여다 보는 연구입니다.
이때 퀴어 이론은 당대 혹은 동시대의 과학 및 과학적 담론이 어떤 가정을 갖고 있고 그게 현재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살핍니다. 퀴어 연구자들이 널리 공유하고 있는 접근 방식은 염색체든 호르몬이든 아니면 다른 생물학적 베이스든지, 신체가 사회 문화적 표현형(phenotype)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과학 담론의 가정과 현실 사이의 미스 매치를 지적하는 것이 가장 자주 보이는 접근법인 것 같습니다.
플로어 질문자 2 패널 분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질문은 아니고 몇 가지 코멘트가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청소년 IRB 관련한 이야기가 굉장히 여러 번 등장했는데, 확인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거는 한국적인 문제도 아니고 청소년 성소수자만의 문제도 아니고, 사실 연구 윤리라는 차원에서 미성년자에 대해서는 부모의 동의, 그리고 당사자 아동/청소년의 승인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입니다. 그 일반적인 관행 속에서 부모의 동의를 없앨 필요가 있는 상황이 있습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해외 성소수자 연구에서도 IRB에 대해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는데요. 저희가 확인한 사례 중에서는 적어도 하이틴이라고 할 수 있는 고등학생 정도의 연령대에는 부모의 동의를 받는 것이 가져올 위험성과 혹은 이것을 받지 않는 것이 가져올 위험성을 비교했을 때 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것이 조금 더 윤리적이지 않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번에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활용한 방식은 그런 것들을 제시를 해서 심의를 받았습니다. 기본적으로 미성년자에 대한 어떤 IRB의 이슈가 있고, 사실 특정한 조사방법, 예컨대 설문조사를 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래서 사실 김경내 선생님한테 어려운 질문이 계속 등장을 해서 죄송합니다만, 어쨌든 같이 연구를 하고 있고, 양적 연구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서 몇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양적 연구의 어떤 객관성에 대한 비판은 굉장히 오래되고 전통적인 비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을 취하는 분들이 양적 연구가 이야기하는 대표성 혹은 객관성에 대해 오히려 너무 옛날에 있었던 가정에 근거하고 있지 않느냐는 양적 연구자로서의 불만이 있습니다. 사실 (최근의 양적 연구는) 인구 집단을 충분히 상세하게 서술하는 것, 그리고 연구의 프로토콜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연구의 한계를 정확하게 적시하는 것을 통해서 이것이 어떤 것들을 대표하고 있는지를 전달하는 것을 전제로 한 대표성과 그리고 제한 가능성을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마찬가지로, 양적 연구를 독해할 때도 이것이 마치 객관적인 현실을 담보한다는 방식의 독해는 오히려 그 연구자, 그것을 수행한 연구자보다도, 오히려 독자가 이것을 (어디서나 통용되는) ‘팩트’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처음에 시작하실 때 허성원 선생님이 방법과 방법론에 대해서 이렇게 조금 분리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더 우리가 많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방법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이 이야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소자와 연구의 양이 늘어나면서 한국에서도 암묵적인 관행이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연구 참여자를 어떤 방식으로 모을 것인지에 대한 것들인데요. 주로 SNS에 웹자보와 링크를 올려서, 그게 확산되면서 연구 참여자들을 모집하고는 합니다. 이것이 사실 국가의 대표성 있는 어떤 통계 자료가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가장 많은 샘플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로 활용해 왔던 것인데, 그런 연구 참여자 모집 방법이 가지는 명확한 한계를 반복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끊임없이 20~30대 중심으로만 표집이 됩니다. 그리고 성소수자 집단 중에 논바이너리와 젠더퀴어 그리고 시스젠더 여성이 너무나 과대표 됩니다. 당분간은 국가 차원에서 성소수자 사회 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국가 대표성 있는 수준의 자료가 만들어질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요. 똑같은 설문조사 방법을 취하더라도 이 한계를 극복할 만한 어떤 다른 종류의 방법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조금 더 다른 방식을 시도해 보고, 그 경험을 통해서 그런 한계를 극복하는 어떤 방법을 계속 만들어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사 참여자 모집의 문제는 질적 연구에도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질적 연구도 내 주변의 인적 네트워크 혹은 온라인으로 연구 참여자를 모집하는 것이 계속 어떤 사람들의 경험만 계속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를 좀 돌아보고, 조금 더 다른 방법들을 좀 찾아가는 논의가 학계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허성원 코멘트 감사합니다. 저희가 질문이나 코멘트를 아마 하나 정도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플로어 질문자 3 안녕하세요. 저 늦게 들어와서 말씀은 다 못 들었지만 질의 응답 잘 들었습니다. 저는 카이스트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부생입니다. 권순호 선생님이 이제 컴퓨터 쪽으로 이제 연구를 하신다고 해서 좀 반가운 마음이었는데요. 제가 컴퓨터 공학을 공부할 때 느낀 점은 사실 프로그래머가 퀴어 당사자인지 아닌지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하면 도달할수록 더 편해지는 건 맞다고 생각을...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먼저) 당사자만이 퀴어 디자인을 할 수 있는지 그런 질문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동료인 비성소수자 프로그래머들은 퀴어 디자인을 할 수 없는 것인가 이런 질문이 떠올랐고요. 그리고 그러면 제가 이렇게 맥북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애플이 “그러면 너는 성소수자니까 성소수자를 위한 맥북을 써. 아니면 비성소수자를 위한 맥북을 써.” 이렇게 됐을 때, 그러면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거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 약간 아리까리해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 가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허성원 사회자가 약간 정리 발언을 하자면,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질문과 다원주의 디자인에 대한 질문이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권순호 선생님께서 지혜롭게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권순호 (웃음) 감사합니다. 지혜롭게 잘 풀어내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당사자가 디자인 과정에 포함이 되어야 하냐는 질문은 아까 제가 김정래 선생님께 드렸던 “당사자가 참여 관찰을 진행을 꼭 해야 할까.”라는 질문과도 조금 얽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디자인 연구 사례를 공유드리자면, 손소독제 연구와 인종 연구가 함께 움직였던 적이 있습니다. 이게 어떤 사례냐 하면, 손소독제 자동 디스펜서가 있습니다. 근데 그 디자인 팀에 흑인이 한 명도 없었던 거예요. 그리고 테스트 대상으로 흑인이 한 명도 없었던 거죠. 그래서 보급이 다 됐는데, 흑인의 피부색을 인지하지를 못했습니다. 이게 유저 스터디뿐만이 아니라, 그 디자인팀에 흑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건 잡아낼 수 있는 문제였을 거잖아요. 그러한 측면에서, 어떠한 기술에서 누군가가 배제되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여러 정체성의 사람들이 들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까 전에 제가 소개한 퀴어 HCI 세 가지 갈래 중에서 첫 번째였던, 성소수자가 연구자로 들어가는 HCI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이제 기술의 일반화의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드렸는데, 모든 기술이 그렇게 로컬라이즈 될 필요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페미니스트 HCI나 퀴어 HCI가 이야기하는 바도 아니기도 하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뭔가 맥북이나 이런 것들을 활용하는 데 있어서 노트북을 사용하는데 퀴어한 것이 그렇게까지 큰 활용의 차이를 만들지는 않죠. 그렇지만 장애, 신체의 어떤 장애를 가진 분들은 분명한 다른 종류의 차이가 발생을 하겠죠. 그랬을 때는 그런 배제에 조금 더 집중을 해서 맥북을 디자인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디자인의 과정에서 상정된 사용자의 군상에 누가 포함되는지 계속 성찰하고, 배제된 군상이 디자인을 사용할 때 혹시나 불편함이 있는지 확인하고, 만약 그렇다면 그 배제된 존재를 위한 디자인은 어떤 형태여야 할지 함께 고민해나가는 것이 제가 가진 디자인과 연구 인식론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성원 감사합니다. 이제 마쳐야 할 시간이 다 되었네요. 이상으로 라운드테이블을 마치겠습니다.
권순호
조지아공과대학에서 인간중심컴퓨팅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퀴어, 죽음, 신앙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인간을 위한 기술’은 어떠한 형태여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
김경내
중앙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를 마쳤다. 젠더와 여성운동, 그리고 인권과 노동에 관심을 두고 연구와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김정래
연세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다. 어린이의 성장을 퀴어이론을 통해 설명하는 데에 관심이 있으며, 현재 청소년자치배움터 다가치학교-강서양천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이것저것 하고 있다.
허성원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에서 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동시대 한국 퀴어성을 초국적 인종 및 퀴어 연구의 관점에서 독해하는 박사논문을 작업 중이다.
2호(2025.9.) l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 l 라운드테이블
퀴어 방법론
학제 간 퀴어 연구에서 마주하는 어려움
본 라운드테이블은 2025년 7월 11일 한국성소수자/퀴어연구학회가 개최한 학술대회 "전환의 시간: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교차로에서"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허성원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를 맡은 허성원입니다. 반갑습니다. 일단 어떻게 이 방법론 패널이 꾸려지게 됐는지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한국성소수자/퀴어연구학회의 전신인 성소수자대학원생/신진연구자네트워크(성연넷)에서는 그 발족과 함께 다양한 방법론 세미나, 방법론 워크숍 등을 진행해 왔습니다. 그래서 양적 방법과 질적 방법에 관한 여러 가지 토론을 수년간 진행해 왔는데요. 저희는 그동안 성연넷이 진행해 온 여러 가지 방법과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질적 방법, 양적 방법에 구애받지 않고 논의하며, 한편으로 그다음 단계라고 할 수도 있는 이론화에 있어서도 어떤 어려움과 도전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하고자 이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방법론 라운드 테이블을 준비하면서 저희가 마주친 질문들과 상황들에 대해서 몇 가지 더 공유를 드리고 싶습니다.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방법과 방법론을 고민하는 것은 사실 사회과학의 고민입니다. 다만 퀴어 연구 같은 경우에는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계열의 연구 분과에서도 꾸준히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인문학에서는 방법과 방법론이라는 말을 아주 직접적으로 사용하거나 논의하지 않고 논문을 쓰는 경우도 꽤 많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사회과학에서 문헌 분석이라고 불리는 방법론에 의존해서 연구를 진행합니다.
그래서 이제 퀴어 연구 같은 경우에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양쪽 분과 모두에서, 그리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포섭되지 않은 다른 분과에서도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이 연구의 기초 언어, 특히 사회과학 연구의 기초 언어라고 할 수 있는 방법과 방법론에 대한 논쟁이 최근 들어 서구 학회에서도 많이 있습니다. 사실 서구 학회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비공식적이고 공식적인 여러 경로들로 어떻게 우리가 연구를 할 수 있는지 많은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여기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긴장이 나타납니다. 첫째,사회과학 연구에는 객관성 혹은 외적 타당성의 요구가 있고 인문학에서는 그런 요구가 연구의 폭을 좁히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던집니다.
또한 인구 집단으로서 LGBTQ를 연구하는 것 그리고 인구화 기획에 대한 비판으로서 퀴어 연구를 하는 것 사이의 긴장도 존재합니다. [마지막으로,]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을 요구하는 흐름이 존재하고 그것을 둘러싼 학술사적 맥락에서,퀴어 연구가 더 널리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객관성, 외적 타당성, 재현 가능성을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타당한 연구에 대한 요구와 겹치면서도 완전히 같지는 않은, 윤리적 연구에 대한 요구와 인간 대상 연구에 대한 우려들도 동시에 존재합니다. LGBTQ 인구 집단 그리고 퀴어가 굉장히 취약한 집단이기 때문에 떠오르는 문제들인데요.
저희는 이러한 질문들을 손에 쥐고 각자 발제문을 썼습니다. 패널을 한 분씩 소개 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발제를 맡아주실 분은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석사 졸업하신 김경내 선생님이십니다. 두 번째로 발제 맡아주신 분은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석사 졸업하신 김정래 선생님께서, 세 번째로는 지금 조지아공과대학에서 인간중심컴퓨팅을 전공하고 계신 권순호 선생님이 발제해 주시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문화연구를 전공하면서 퀴어이론을 공부하고 있는데요, 제가 사회자의 역할을 하는 한편 패널로서 저의 고민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김경내 선생님 발제 시작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김경내 안녕하세요. 소개받은 중앙대학교 사회학과의 김경내입니다. 지금은 진보정책연구원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제가 속한 분과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를 드리면 사회학은 사회 그 자체에 대한 학문이기도 하지만 그 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현상들 그리고 사회 속에 속한 행위자들을 연구하면서 하나의 학문 분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실 사회라는 게 만들어지면서 생기는 현상 중에 대표적인 것이 사회 운동,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집회나 시위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지금처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걸 어떤 광기로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집합행위를 어떻게 보아야 하며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서 출발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회학 내의 논쟁에서 그러면 성소수자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살펴보면. 성소수자의 삶이 어떻게 차별받고 억압되는지 그리고 성소수자들의 실천이 어떻게 이 구조를 흔들고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연구했습니다. 나아가서 이 퀴어 이론이라는 것이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구조를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행위에 의해 유지되는 것으로 보면서 구조와 행위자 사이의 이분법을 해체하려는 시도도 역시 있었습니다. 사회학 내에서 성과 젠더와 섹슈얼리티는 주요한 관심 분야였는데요. 한국에서는 1990년대 이후에 사회학계에서도 여성학자와 학생 들이 많이 늘어났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학계의 남성 중심적인 세계관이라는 것이 쉽게 깨지지는 않았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회학에서 어떤 방법론을 가지고 연구를 하는지에 대해서 짧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실증 연구가 있습니다. 이것은 조사, 자료, 실험, 관측 등의 경험적 증거를 이용한 연구입니다. 흔히 양적 연구 혹은 질적 연구라고 많이 들어보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양적 연구라고 함은 어떤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경향을 찾고자 하는 대량의 데이터를 이용한 연구이고 예전에는 서베이나 통계를 많이 이용했다면 요즘엔 나아가서 빅데이터 분석을 많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질적 연구는 양적으로 많지는 않더라도 특정 대상을 깊게 이해하기 위한 현장 연구나 심층 면접 그리고 참여 관찰 등이 있고요. 그런데 지금 말씀드린 것들은 데이터 수집 방법이고, 수집한 데이터를 가지고 내용 분석이나 문헌 분석을 하거나 혹은 담론 분석을 하는 등의 연구 방법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론 연구와 역사 구조 변동 연구가 있는데요. 사회학계 내에서는 당연히 세부 전공에 따라서 차이는 좀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요즘은 실증 연구가 더 보편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제가 나온 과에서는 질적 연구와 더불어 역사 구조 변동에 대한 연구가 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 연구 경험 및 계획을 말씀드리면 제 석사학위 논문 「낙태죄 폐지 운동을 통해 본 한국 여성운동 지형의 분화」는 낙태죄 폐지 운동을 참여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수행한 질적 연구입니다. 사실 저는 양적 방법을 결합해서 논문을 쓰고 싶었는데, 자료상의 한계로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하는 성소수자 차별 실태조사에 조사팀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질적 방법과 양적 방법을 둘 다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들에 대해서 좀 써봤습니다. 양적 방법을 하면서 특히나 느끼는 것은 측정과 재현의 어려움입니다. 특히 성소수자들끼리는 많이 알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령 트랜스젠더가 겪는 차별, 혐오, 디스포리아 이런 것들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 것인지, 최근에 일어난 페미니즘 대중화와 더불어 TERF의 부상이 있었는데 이 이후에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혐오의 양상이 어떻게 달라졌으며 그것이 트랜스젠더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지가 저의 고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걸 누군가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지만, 사실 꼭 직접적으로 물어보고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시계열 데이터가 있다면 더 좋겠죠. 2010년 데이터, 2015년 데이터, 2020년 데이터. 이런 시계열 데이터가 있으면 그 시계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데 지금 저희는 또 그런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그러면 어떻게 질문하고 어떻게 이걸 확인하고 어떻게 재현해야 되는가 이런 고민들이 있습니다.
또 분석 과정에서도 인과관계를 어떻게 밝힐 수 있는가, 즉, 시간적 선후, 외생성과 상관관계 등, 이 조건들을 만족시킬만한 데이터와 분석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사회학과에서 성소수자/퀴어 연구하기의 장점이라고 함은 이론적, 방법론적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성소수자 운동이나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서 분석을 할 때도 페미니즘이나 퀴어 이론만을 접목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운동 자체에 대한 이론에 접목을 시킨다든가 아니면 네트워크에 대한 이론을 통해 같이 분석한다든가 이런 다양한 시도들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민을 좀 말씀드리면, 어쨌든 양방에서는 아까 말씀드렸던 데이터의 부족으로 생기는 문제들이 가장 큽니다. 미국 중심의 퀴어 이론에서는 통계 연구 자체가 성소수자 인구를 그리는 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지요. 그런데 저희는 지금 비판의 대상 자체가 없는 상황이잖아요. 공식적으로 통계적 표집이 없다 보니까, 성소수자에 대한 확률 표집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상황에서 자발적인 의사를 통해서 진행되는 조사에서는 어떤 경향성이나 편향성이 들어갈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을 어떻게 잘 통제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 대상의 조사에서도 더욱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연구 윤리상 청소년 대상의 조사에서 IRB(기관생명윤리위원회) 심의를 받을 때는 부모 동의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성소수자 청소년은 부모에게 커밍아웃하기 굉장히 어려운 조건에서 이걸 어떻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도 많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사업에서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부모 동의를 면제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을 비롯한 여러 곳에 자문을 받는 등 많은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소수자의 삶에 대한 데이터가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제 고민 중에 하나는 성소수자에 대한 시민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도 없다는 것이 문제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예전에는 질적 방법은 뭔가 비판적이고, 연구자가 스스로를 연구 도구로 삼는 그런 관점에서 수행이 되는 반면 양적 방법은 굉장히 객관적이고 그래서 좀 그런 부분(객관성)에서 비판을 받는 지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은 양적 방법에서도 연구자에 따라서 이론도 너무 달라지고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서 연구가 굉장히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성소수자 연구자들이, 퀴어 연구자들이 양적 방법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고요. 질적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들 역시 양적 연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면서 서로 어떤 이해와 비판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이 들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발제문을 확인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허성원 네. 시간을 많이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럼 이어서 김정래 선생님 발제 듣겠습니다.
김정래 안녕하세요. 소개받은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 석사 졸업한 김정래입니다. 지금 소속은 청소년 자치배움터 다가치학교 강서양천에서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이번 발제문의 제목을 「퀴어 인류학과 방법론에 관한 질문들」이라고 적었는데, 사실 “질문들”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정답이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짚을 수 없다는 점을 바탕으로 오히려 이 불확정성과 함께 성소수자/퀴어 관련 연구를 앞둔 과정에 계신 분들, 그리고 이제 당장 논문을 써야 하는데 방법론 파트에서 당장 무언가를 써내야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어떤 방법론적 질문들을 함께 만들어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를 같이 고민하는 발표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성’이라는 것이 사실 ‘섹슈얼리티’로 번역이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지도 여전히 고민이 남는 부분이긴 하지만, 성이라는 것은 인류학이라는 학문 분과가 태동한 초창기부터 꾸준히 관심받아온 주제이기도 한데요. 이전까지 굉장히 개인화돼 있던 영역이었던 젠더, 섹슈얼리티가 사회문화적 가치 체계와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 마가렛 미드 이후에도 꾸준히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시도는 에스더 뉴턴이나 게일 루빈으로 이어지면서 인류학에서의 일정한 계보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퀴어 인류학이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이러한 계보에 따라서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인류학적 연구 대상으로 삼는 분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 계보를 어떻게 그리느냐는 개인이 집중하는 바에 따라서 굉장히 달라질 수 있겠지만, 거칠게 요약하자면 여성/남성, 동성애/이성애와 같은 어떤 이분법이 보편타당한 진리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특수한 현상이라는 전제와 함께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서 무엇이 성적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지가 퀴어 인류학의 오랜 연구 주제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발표에서 주요하게 다룰 퀴어 인류학의 연구 방법론의 특수성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 제가 세 가지 질문을 가져왔습니다.
첫째로 퀴어 인류학 연구가 지시하는 현장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사실 당연한 말이지만 전 지구적 규모의 도시화 영향으로 인해서 이제는 문화라는 것을 통일되고 정합적이고 일관성 있는 어떤 구조를 갖춘 것으로서 접근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 도시화라는 것이 익명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퀴어 문화를 싹틔우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인류학과 퀴어 연구에서의 현장이란 단순히 공간 좌표계상의 고정된 값을 가지는 것을 넘어서 '밖'이라고 경계 지어진 것들의 영역 간의 이동 또는 안팎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된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현장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서 이런 현장을 참여 관찰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관찰이라는 행위는 보는 주체와 보여지는 대상을 전제로 함에도 ‘참여’가 개입하는 순간 능동과 피동 역학이 모호해지는 순간이 찾아오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숱한 인류학 석사, 박사 논문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연구 대상이라는 단어를 쓰기보다는 연구 참여자라고, 연구를 같이 참여해서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채택하는 것으로서 이 고민이 두드러지기도 합니다.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든 방법론적 고민을 성찰해서 연구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쓰기의 문제로까지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확장될 수밖에 없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이 퀴어 인류학에서의 방법론에서 어떤 부분이 과연 퀴어냐는 것인가를 봤을 때, 사실 제 논문 연구 같은 경우에는 패널 질문들 전체 질문들에서 좀 많이 다룰 것이기 때문에, 최근 출간된 학위 논문이기도 하고 저와 같이 이번 라운드테이블 준비에 도움을 주었던 한중연 이현화 선생님의 얘기를 조금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이현화 선생님의 논문 「케이팝으로 함께 흐트러지기: 이태원 게이클럽의 케이팝 놀이가 만드는 공동체와 경계」는 이태원의 게이 클럽에 대해 현장을 중심으로 Kpop을 매개로 게이 남성 간의 놀이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해당 연구는 내용뿐만이 아니라 연구 방법론적으로도 중요한 질문을 촉발시키고 있는데요. 특히 성소수자 재현과 성소수자 연구 참여자 보호에 관련한 논쟁적인 질문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일괄적이고 적극적인 익명화, 모자이크 처리. 그런 적극적으로 은폐하는 상태로서 연구 참여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어떤 질문이라는 것이 사실 어떻게 보면 성소수자가 역사적으로 결부된 범죄화의 재현, 병리화된 존재의 재현, 이런 사회적 낙인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고민이 남는다고 이현화 선생님은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은 사실 1970년대 미국 사회학자 로드 험프리스(Laud Humphreys)의 티룸 트레이드(Tearoom Trade) 이후로도 계속해서 퀴어 또는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인류학 연구에서 문제 제기되고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2023년, 『퀴어 코리아』와 관련한 많은 논쟁이 있었던 것을 통해서도 이 문제가 현재 진행형으로 첨예한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연구자가 연구 참여자를 보호해야 된다 혹은 보호하지 못했다라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고, 이것은 단순히 IRB 연구 지침을 따른다고 해서 손쉽게 해결되는 문제는 분명 퀴어 인류학 연구에서는 아닐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IRB 중심의 프로토콜화 된 연구 윤리를 따르는 것을 넘어서 현장에서 연구자가 어떻게 관계를 맺고 무언가를 하면서 그 관계성에 대해서 치밀하게 사유를 하고 연구 윤리를 다른 방식으로 상상하는 것이 질적 연구 방법과 참여 관찰 방법론에 있어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지 않을까하는 제안을 하면서, 그런 필요를 인지하는 것에서 퀴어 인류학의 방법론과 윤리에 대한 제 질문을 하는 것으로 저의 발제를 이상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허성원 네, 발제 감사드립니다. 김경내 선생님은 사회학자로서, 김정래 선생님은 인류학자로서 훈련을 받으셨습니다. 김경내 선생님은 이 자리에서 양적 방법 위주로 말씀해 주셨지만, 발제문에서는 양적 방법과 질적 방법이 교차할 때 마주치는 질문들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공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김정래 선생님은 인류학이 참여관찰, 에스노그래피를 비롯한 여러 가지 질적 방법에 있어서, 이를테면 본거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수집한 자료를 기술(description)할 때 마주치는 소수자 연구자로서의 고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회학과 인류학, 이 두 분과는 방법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연구 방법을 가장 강조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훈련시키는 분과 중 하나입니다.이어지는 두 발제자는 사실 방법론과의 관계가 좀더 불투명한 분과에 속해 있습니다. 권순호 선생님은 응용사회과학 및 디자인 쪽에서, 크게 보자면 응용학문에서 퀴어연구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관한 고민을 나눠주실 겁니다. 세 번째 발제 이어 듣도록 하겠습니다.
권순호 네 안녕하세요. 소개받은 권순호라고 합니다. 다음 발제 맡아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소개받은 대로 저는 현재 조지아 공과대학에서 인간 중심 컴퓨팅(Human Centered Computing)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아마 “인간 중심 컴퓨팅이 뭘까?”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조금 많으실 것 같아서 제 분야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를 먼저 하고 진행을 해보겠습니다. 저희 분야는 보통 휴먼 컴퓨터 인터렉션(Human Computer Interaction), 혹은 HCI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산업계에서 스타트업이라든가 디자인 쪽에서 근무하셨던 분들은 ‘사용자 경험 디자인’ 혹은 ‘UX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조금 더 익숙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항상 저희 분야를 “기술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들어와야 할지 디자인하는 분야”라고 소개 합니다. 가령, 음성 인식이라는 기술은 우리의 삶에 늘 존재해 왔지만 이걸 시리(Siri)나 빅스비의 형태로 핸드폰에 집어넣자고 하는 것은 일종의 디자인 결정인 것이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디자인이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분야라고 생각하시는데, 저희 분야는 한 발짝 더 나아가서, 기술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들어올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기획하고, 구현하고, 평가하고, 그 결과에 대해 사회적, 윤리적 함의를 논하는 일련의 과정을 디자인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저희 분야가 사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기법으로는 사용자 중심 디자인(User Centered Design)이라는 기법이 있습니다.이 기법의 경우에는, 사용자의 삶에 직접 디자이너가 들어가서 여러 가지 사회 과학과 인문학의 방법론들을 활용해 사용자의 현실에의 깊은 이해와 공감을 도모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용자가 무슨 문제를 겪고 있는지를 정의한 후, 이 문제를 어떻게 우리가 기술로서 해결할 수 있을지 여러가지 제품이나 서비스를 상상해본 뒤, 프로토타입을 제작하여 실제 사용자 삶에 배치해보고, 그 문제가 해결이 됐는지 안 됐는지를 판단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저희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 첫 번째 단계인 공감하는 단계(empathize)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과 삶에 대한 가장 깊은 공감과 이해를 기반으로 디자인 솔루션이 나와야 비로소 좋은 디자인이 되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나아가서 이러한 공학(?)적인 분야에서 퀴어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질까라는 질문이 아마 생기셨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희 분야 내의 소분야인 퀴어 HCI에 대해서 소개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학계에서는 퀴어 HCI는 총 3가지의 갈래로 정의를 합니다. 첫 번째가 성소수자 연구자 본인이 진행한 HCI 연구. 두 번째로는 성소수자 사용자를 중심에 두고 진행한 HCI 연구. 마지막으로는 퀴어 이론을 활용해서 저항의 도구로서 기술을 활용하는 연구.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연구, 그리고 오늘 제가 소개해 드릴 연구는 두 번째인 성소수자 사용자에게 집중하는 HCI 연구입니다.
아마 여러분 페이스북 세대시죠? 안 써보신 분 없죠? (웃음) 페이스북이 2014년까지는 사용자의 실명만을 사용해야 했던 것 알고 계셨나요? 당시 이 정책이 드랙퀸 커뮤니티에서 굉장히 큰 항의를 불러왔습니다. "실명만 쓸 수 있는 게 말이 되냐"라고요. 그런데 페이스북이 실명만 쓸 수 있게 하자는 디자인 결정을 내린 것은,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기본적으로 동문들 간의 커넥션을 위한 플랫폼으로서 시작됐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실명 기반으로 소셜 미디어를 디자인하자는 결정 또한, 그들의 유저 리서치를 통해서, 나름대로 그 목적성에 충실하기 위해 내려진디자인 결정이었겠죠. 하지만 이 플랫폼이 글로벌해지고, 플랫폼의 용도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당시 성소수자의 목소리는 디자인 과정에서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 이름’이 성소수자 당사자에게 본인이 사용하지 않는 이름일 수 있다는 인사이트는 디자인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았던 것인데, 성소수자 사용자가 늘어난 그 이후의 페이스북의 현실과 일종의 마찰이 빚어진 겁니다. 그래서 드랙퀸들의 이런 일련의 항의를 통해 2014년부터 실명 정책을 페이스북이 폐지합니다. 본인이 선택한 이름으로도 계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디자인 결정을 바꾼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결정이 굉장히 다양한 인구 집단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드랙퀸뿐만이 아니라 이름 정정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개인의 경우에도 본인이 선택한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필명을 사용하고 싶은 아티스트나, 검열 등을 피해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활동가들이 이런 안전망 속에 들어올 수 있게 되는 추가적인 활용 예들이 생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퀴어한 사용 케이스를 통해서 퀴어한 목소리를 반영한 디자인 결정이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서 퀴어는 물론, 퀴어를 넘어선 유저들의 보다 포용적인 사용자 경험이 생긴 것이죠. 성소수자라는 인구가 디자인 과정에서 어떻게 배제됐는지 이야기하고, 퀴어함이 포함되는 디자인이 어떠한 방식으로 기술의 영역을 넓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퀴어 HCI 접근의 예시 중 하나가 되겠습니다.
다음으로 제가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조금 소개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현재 띵동과 함께 대한민국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어떠한 새로운 기술을 필요로 할까, 또 지금 사용하고 있는 기술들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를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까 전에 얘기했던 사용자 중심 디자인 기법에서 보면, 첫 번째 단계인 공감의 단계와 문제 정의 단계를 지금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 처음 제가 했던 질문은, 지금의 한국의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어떤 주변 사람들과 어떤 공간에서 어떤 물건들을 활용하고 어떤 서비스를 활용하고 더 깊이 들어가서 어떤 어려움과 즐거움과 두려움과 꿈이 있을지 였습니다.
크게 두 가지의 방법론을 차용해서 이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로는 페미니스트 서사 연구(Feminist Narrative Study)라는 방법론을 사용을 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공동 디자인(co-design)이라는 기법을 활용해서 연구를 진행을 했습니다. 페미니스트 서사 연구 같은 경우에는 페미니즘 연구하시는 분들은 아마 들어보셨을 수도 있을 텐데요. 우리가 연구자로서 어떠한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권력을 가진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 권력을 가지고 연구 목표를 설정을 해서, 사람들을 인터뷰한 다음에, 그들에 대해 써 내려가는 과정이 참여자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나의 목소리, 나의 연구자의 권력으로 이야기가 쓰여진다는 것을 비판하면서 나온 방법론입니다. 그래서 연구의 목표 설정과 내러티브가 연구자가 아니라 참여자의 목소리로 이어지는 것을 강조하죠. 이 과정에서 여성들의 어떤 구전 설화, 이런 것들을 기반으로 조금 이루어지는 방법론입니다. 이런 연구 철학을 제 연구에 차용을 해서 “이야기 모음”이라는 단계를 진행을 했습니다. 일반적인 인터뷰 연구처럼 제가 연구 목표와 인터뷰에 사용할 질문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만나면 어떤 질문을 하고 싶나요? 혹은 무인도에서 어떤 병의 편지를 담아서 떠내려 보내 있다면 어떤 편지를 써 내려갈 거예요?” 이런 식으로 조금 더 자유롭고, 열려있는 형태로 자신의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연구를 구성 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이야기는 공동 디자인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함께 분석을 했습니다. 이 방법론의 경우, 디자인 연구의 수행을 디자이너가 권력을 가지고 “너희 이런 거 필요하지?” 하고 주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동등한 위치에서, 그들은 자신의 현장의 전문가로, 저희는 디자인의 전문가로서 “우리 같이 이거 만들어보자”라고 하는 기법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같이 띵동에 가가지고 이렇게 예쁜 사진도 찍고, 각자 자기가 읽었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이 이야기들를 기반으로청소년 성소수자가 어떠한 삶 속에 살고 있는지 함께 그려보고, 어떤 기술이 생기면 도움이 될지 상상해보는 활동을 진행 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제가 연구 과정에서 어떤 고민들이 있었는지 조금 나눠보면, 앞서 두 분이 말씀해 주신 것과 굉장히 겹칩니다. 우선 연구 참여자 모집에 있어서 안전한 연구와 윤리적인 연구란 무엇일까를 굉장히 많이 고민했습니다. 김경내 선생님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저도 이제 IRB 심의를 받는 데 굉장히 고생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부모 동의를 받으면 아웃팅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저희 학교에서는 (아마도 미국 학교여서인지) IRB가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인지가 있었고, 이러한 절차가 연구 참여자를 오히려 위험하게 만든다는 저희의 판단에 공감해주셔서, 여러 가지 면제를 받고 진행을 했습니다만… 이러한 위험성은 IRB가 짚어내지 못했고, 제가 퀴어여서 짚어낸 부분이었단 말이죠. 그런 생각에 미치니까, 청소년과 퀴어라는 이 교차되는 취약성 속에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그리고 IRB도 생각하지 못한, 이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연구의 과정이 분명 있을 것 같은데, ‘퀴어 인구의 안전’과 관련된 연구 윤리에 대한 논의가 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굉장히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걸 하나의 일반화된 “한국 청소년 성소수자”의 이야기로 적으면서 또 뉘앙스가 있는 여러 가지 현실들이 지워지는 것은 아닐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는 얘기 나누면서 발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허성원 그럼 바로 이어서 제가 발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발제문에는 「퀴어 방법의 불가능성을 바탕으로 작업하기」라고 가제를 붙여봤습니다. 일단 저의 분과적 위치를 말씀드리면, 저는 여성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 종족연구(ethnic studies) 기반의 문화연구 프로그램에서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몸을 담았던 두 프로그램은 모두 학제적 연구를 수행하는 분과입니다.
우선 여성학부터 말씀드리면 양적 연구, 질적 연구, 이론 연구를 모두 배웁니다. 제가 수학한 여성학 프로그램은 사회과학대학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론에 더해서 양적 연구, 질적 연구, 그리고 방법론에 대한 강의가 필수 강좌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논문을 제출하려면 양적, 질적 연구 방법 및 방법론에 대한 일정 수준의 지식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저의 연구는 경험에 대한 접근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질적 연구 혹은 경험 연구보다는 이론 및 문헌 연구의 비중이 상당히 높습니다. 제가 속한 박사과정 프로그램이 학제적 프로그램이기는 합니다만은 전통적으로 사회과학보다는 인문학에 가까운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구성원의 주요 연구 주제는 퀴어,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 종족, 장애, 환경 등입니다.
제 연구 경험을 말씀드리면, 주된 연구 분야로는 퀴어 이론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론을 연구한다는 것은 이론의 발전 과정을 정리하는 한편 그 연장선상에서 그간 이론화되어 오지 않았던 부분에 대한 이론화 작업을 수행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석사 학위 논문 「한국 퀴어퍼레이드와 정동정치」는 퀴어 퍼레이드라는 현장을 바탕으로 퀴어와 정동 이 두 가지 이론적 열쇠말로 삼아 그 관계를 이론화하려는 논문을 썼고, 박사 학위 논문으로는 초국적 관점에서 한국 동시대성의 퀴어성과 인종성, 그리고 그 공진화(co-evolution)에 대한 연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방법 및 방법론과 관련하여서도 제가 연구에서 마주친 어려움을 두 가지로 요약해서 말씀드리면서 제 발제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는 영문학, 비교문학, 고전 문헌학 등이 출발점이었던 인문학 베이스의 퀴어 연구와 사회과학, 특히 양적 연구에서 유리한 방법과 방법론이라는 언어가 존재하는 두 세계관 사이의 충돌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방법과 방법론으로부터 퀴어 해석, 특히 좋은 퀴어 해석이 반드시 따라나오지는 않는다는 데서 오는 어려움입니다.
그래서 퀴어 방법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들이 고민을 해왔습니다. 예컨대 이제 서구의 사례인데요. 출간된 걸 찾다 보니까 서구 쪽을 좀 먼저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아민 가지아니(Amin Ghaziani)와 매트 브림(Matt Brim)이 공편한 『퀴어 방법을 상상하기(Imagining Queer Methods)』 에서 두 편집자는 이런 어떤 어려움을 인문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긴장으로 서술하면서 제인 워드(Jane Ward)의 문장을 인용합니다. "안정적인 분류 시스템에 천착하거나 분과의 경계에 속하는 것의 실패를 기리는 데서 출발한 퀴어와 질서 있고 분과 특수적이고 재현 가능한 기술들을 의미하곤 하는 방법론을 함께 묶는 일에는 흥미로운 동시에 생산적인 모순이 있다." 그래서 이들의 진단은 범주를 둘러싼 오래된 과정과의 대립으로 나아갑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전통적인 사회 조사 방법에서 연구 대상이 어떤 범주에 속하거나 속하지 않는 사태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매우 곤란한데, 그것이 제3자의 위치에서 관측 가능한 객관적 사실 혹은 외적 타당성이라고 불리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전제를 흐트러뜨리기 때문입니다. 이는 또한 경험의 투명성이나 신뢰성에 관한 물음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물론 (김경내 선생님의 발제에서도 이야기되었지만) 지난 수십 년간 페미니즘 연구와 퀴어 연구를 포함하여 사회과학 분과 안에서 질적 방법으로 연구를 수행한 수많은 연구자들 그리고 양적 방법 연구자들 또한 이 문제를 고민해 왔고 이 어려움을 어떻게 피하거나 돌파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논의가 쌓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성과 재현 가능성은 많은 퀴어 연구자들이 여전히 맞닥뜨리는 현실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제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경험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연구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피해가고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방법과 방법론의 문제는 저에게 아주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제 사실 참여 관찰, 문헌 분석과 텍스트 분석 등의 방법을 제가 모두 사용하지만, 사실 그것을 이론화라는 더 큰 목적을 위해서 동원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기본적인 연구 윤리에서의 문제를 지키는 한에서, 예를 들면 제가 수행하는 참여 관찰 방법과 김정래 선생님이 수행하는 참여 관찰 방법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박사 논문에서는 좀 더 스케일이 큰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 문제들에 대비해서는 사실 추정이라는 어떤 전통적인 사회과학적 연구를 하기도 좀 어렵고 해석, 상상, 독해 등으로 사실 인문학 베이스의 퀴어 연구에서 발전되어 온, ‘방법’이라기보다는 ‘접근’에 가까운 경로를취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세션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당연히 모든 분과에 적용되는 말은 아닐 테지만 인문학 베이스의 퀴어 연구가 계속해서 주장하려고 하는 바는 객관성이나 타당성을 계속해서 생각하기보다는 그 요구를 넘어서자는 주장 같습니다.이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식은 전달되고, 받아들여지고, 소통될 수 있는(transferable) 지식을 생산하고 그것을 통해서 또 다른 방법을 지닌 연구자들과 함께 교류를 하면서 성소수자, 퀴어. 연구의 언어와 지식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렇게 제 발제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남은 질문은 질의 응답 통해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허성원 이제 패널 토론을 진행할 차례인데요. 발제 순서대로 질문을 받는 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김정래 선생님 권순호 선생님 그리고 제가 김경내 선생님의 발제에 대한 질문이 있으면 지금 공유를 해 주시고 다 모아서 김경내 선생님이 한 번에 답변을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선, 사회자가 준비한 전체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을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인구 집단으로서의 LGBTQ 혹은 성소수자와 인구화 비판 기획으로서 퀴어 연구의 긴장을 고려하면서 패널리스트들은 자신의 연구를 성소수자 연구 혹은 퀴어 연구 중 어느 것으로 여기고 있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하나 있고요.
그리고 재현 불가능성. 여기서 재현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였는데요.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리플리케이트(replicate)'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이 연구를 같은 방식으로 진행했을 때 똑같은 결괏값이 나오느냐는 의미의 재현 가능성. 그리고 흔히 인류학을 위시로 하는 '디스크라이브(describe)'의 문제 그러니까 기술의 문제에 있어서 '리프레젠트(represent)'가 되지 않는 문제, 다시 말해 연구 집단이라든가 대상을 포착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데 그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을 해 오고 계신지, 이렇게 두 가지가 제가 사회자 질문으로 전체 패널께 드리는 질문입니다.
사회자는 시간 관계상 모든 질문은 사회자 질문으로 갈음하겠고요. 김정래 선생님, 권순호 선생님께서 김경내 선생님께 질문이 있으면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정래 어떻게 보면 저의 대척점에 서서 양적 방법을 사용하시는 김경내 선생님 발표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드리고 싶은 질문은 범주화와 계측화에 대한 문제이기도 한데요. 특히 퀴어 연구, 성소수자 대상 연구를 하는 데 있어서 예시 들어주신 것처럼 트랜스젠더의 디스포리아를 어떻게 측정 가능한 것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어떤 측정 가능한 데이터를 만들고 계측하는 데 있어서 이 디스포리아를 느끼는 것과 측정화된 데이터 값에서의 갭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이것을 연구를 통해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질문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는 그냥 개인적인 제 감상인데, IRB에서의 취약한 연구 대상자에 대한 보호 문제를 이야기할 때 항상 청소년이 언급되잖아요. 그런데 사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이 설문지법을 사용하는 것이, 그래도 보호자 동의라는 것이 과연 그러니까 제가 느끼기로는 양적 접근이 오히려 청소년 성소수자 연구의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권순호 감사합니다. 저는 질문 한 가지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아까 마지막에 제가 나눴던 고민이, 이렇게 우리가 인구 집단으로서 성소수자를 뽑아서 연구를 하고, “이게 성소수자의 삶을 대표해”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지워지는 현실들이 분명히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마 알고 계시겠지만, 성소수자의 삶에 관한 실태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더라고요. 응답을 하는 와중에, 이 설문지가 도는 그룹이… 굉장히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이 대부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음). 과연 그랬을 때, 이게 어떤 학계나 퀴어 씬에 있지 않은 분들이라든지, 디지털을 활용할 수 없는 분들이라든지, 혹은 이거에 나름의 이유를 갖고 참여하고 싶지 않아 하는 분들도 분명히 어떠한 형태의 퀴어함을 살고 계실 거란 말이죠. 그랬을 때 이 표본의 표집이 비퀴어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발제하시면서도 굉장히 많이 말씀해 주셨겠지만, 이런 것들을 어떻게 논문 속에서 소통을 하시는 편이신지, 이걸 좀 극복하려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신 적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조금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허성원 네, 저는 사회자 질문이 있어서 질문은 넘기고 간단한 코멘트만 드리겠습니다. 퀴어 연구자 사이에서 사실 국가 혹은 통치성에 대한 어떤 의심과 비판이 존재하잖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데이터 혹은 데이터 조사라는 게 필연적으로 퀴어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까 김정래 선생님도 말씀해 주셨지만, 예를 들면 우리가 아동 성소수자 연구에서 어떤 현재 존재하는 질적 연구의 제도적인 어떤 어려움들을 피해가기 위해서 설문지법을 이용한다고 했을 때, 설문지법이 필연적으로 퀴어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실 질적 연구 방법을 이용하시는 분들 혹은 이론 연구를 하는 사람들도 이런 자리에서 서로가 어떻게 연구하는지 이야기를 듣고 배울 수 있으면 좋지 않을지 하는 생각도 이 세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깊어진 생각인데요. 김경내 선생님 발제를 듣다 보니까 그 생각이 다시 들어서 이 코멘트만 드립니다. 그러면 김경내 선생님, 이제 간단하게 김정래 선생님 그리고 권순호 선생님 질문에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경내 일단은 김정래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범주화와 계층화에 대한 문제에서, 예컨대 트랜스젠더의 디스포리아를 어떻게 측정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큰 어려움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의학적으로도 디스포리아의 어떤 측정 기준이라는 것이 있고, 그게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기 때문에 사용이 되는 것일 텐데요. 그런데 제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건 이런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 그런 게 서구에서 들여온 것들입니다. 그러면 한국적 맥락에서 트랜스젠더들이 느끼는 다른 고통이 분명히 있을 텐데, 이거는 어떻게 또 개발하고 측정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가 우선 있는 것 같습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제가 최근에 좀 인상 깊게 봤던 것은, 요즘 20·30대 남성 극우화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리포트와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캔자스대 김창환 교수님이 《시사인》에서 최근 극우 조사를 하실 때, 극우 지표 중에 하나로 서구에서 안 쓰는 지표를 하나 넣었습니다. 그게 뭐냐면 “중국의 보복으로 한국이 경제적 타격을 입더라도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문항입니다. 그런데 이거 정말 다른 곳에서는 그 극우 지표로 쓰지 않을 만한 건데 한국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와서 넣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트랜스젠더가 한국에서 겪는 특수한 경험들이 또 있을 건데, 저는 분명히 지표화에서의 한계가 있지만 또 그 지표를 사용할 때 한국적 맥락을 얼마나 반영할 수 있는가를 함께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일단 충분히 응답이 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런 고민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IRB에서의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보호 이야기를 여러분께서 해 주셨는데. 사실 이 문제가 굉장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IRB라는 것도 연구 윤리를 준수하기 위해서 이들이 이렇게까지 엄격하게 윤리적인 것을 요구하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고. 저는 예를 들면 청소년 성소수자가 혹시나 특정될 수 있는 위험성이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에, 이 보호에 대한 규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참여자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리스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연구 윤리에서의 가장 어려운 점인 것 같습니다. 김정래 선생님께도 질문을 드리려고 했는데요. 예를 들면 저희가 연구에서 연구 참여자를 실명으로 기술 제언을 했을 때, 연구 참여자는 본인은 동의를 했지만 본인이 예상하지 못한 리스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게 연구자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IRB에서의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보호도 물론 그런 측면도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에 대한 아우팅 위험은 너무 크기 때문에 이제 부모 동의에 대한 면제를 받은 것이기도 하죠. 이런 문제를 잘 조율하는 것이 연구자의 역할이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구 집단으로서 성소수자를 어떻게 표집을 하거나 아니면 조사를 해서 “성소수자의 삶이 이렇습니다”라고 이야기할 때 그것이 과연 정말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지, 혹은 대표성을 가진다고 할지언정 그때 지워지는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사실 저희 연구팀에서도 굉장히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긴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이번에 설문조사를 할 때, 처음에 이 포스터를 SNS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SNS에 한 번 올라가면 이게 전파가 되면서 너무 빠르게 모집이 돼버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제 응답을 해 주시는데, 또 특정 SNS를 사용하면서 이런 조사에 참여하는 분들의 경향성이라는 게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만 받았을 때 그러면 그게 진짜 퀴어의 삶을 대표하는 건가, 이런 부분들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퀴어 프렌들리한 병원들에다가 포스터를 다 보내드려서 그걸 부착을 하게끔 한다든가. 아니면 DC 갤러리 중에서도 성소수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갤러리를 찾아다니면서 올린다던가. 그리고 저는 이번에 검색하다가 처음 발견한 ‘스레딕’이라는 사이트를 발견했는데 그런 커뮤니티가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거기가 약간 트위터 이용자들이 별로 없는 커뮤니티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이런 곳에서도 글을 올려서 받으면 조금이나마 그런 경향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하긴 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사실 일반적이고 대표적인 경험이라는 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고 가는 게 양적 방법론 연구자의 태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질적 방법론이나 그 외의 연구들이 같이 또 필요하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성원 네, 다음으로 이제 김정래 선생님께 질문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김경내 선생님 그리고 권순호 선생님 질문해 주시고, 김정래 선생님 답변 다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사회자 질문 포함해서 다 한 번에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김경내 저도 사실 문화인류학에 대해서 관심이 많이 있었는데, 발제를 해 주셔서 너무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인터뷰 참여자가 실명으로 (처리를) 원했을 때, 이걸 완벽하게 모자이크 처리하고 싶지 않은 연구자의 마음이 있는 것이고 그리고 연구참여자도 동의를 해서 실명 처리를 하셨다고 했는데요. 그런데 저는 이것에 대해서 저희가 다양한 방법들을 고민해 볼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난번에 다른 선생님들도 말씀해 주셨지만, 예를 들면 가명을 사용하는데 그 가명을 연구 참여자가 고를 수 있게 한다든가. 이런 다양한 방법들이 있지 않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어떻게 검토해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 좀 같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공감이 되게 읽었던 것은 연구 참여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연구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 (말하자면) 내가 이 연구를 통해서 드러내고 싶은 것과 어떤 정치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과 연구 참여자가 말하는 것 사이에 괴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괴리가 있을 때, 그것을 “연구 참여자를 그대로 인용하고 재현하는 것이 물론 정답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그것이 배치되거나 충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참여자들끼리도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연구자도 또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데.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연구자가 책임을 진다는 건 어떤 걸까, 그리고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에 대해서 책임진다는 게 어떤 걸까. 이런 부분을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습니다.
권순호 저는 김정래 선생님 발표 들으면서 제일 공감했던 부분이, 연구 진행자와 연구 참여자의 친밀성에 관련된 부분이었습니다. 학부 때 문화 인류학 수업 3개 들은 게 전부이지만, 연구자가 현장에 들어가서 정말 깊은 공감, 공명이 있어야 깊이 있고 심도 있고 가슴을 울리는 민족지적 기술이 나온다는 경험을 몇 번 해봤었는데요. (저희 학계에서도 인류학적 방법론을 많이 차용하는데,) 그 과정에서 제가 자주 마주쳤던 문제가 “너는 당사자야?”라는 질문이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퀴어(라는 주제)에 있어서 특히나 그게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아까 게이 클럽에 가서 뭔가 참여 관찰을 하는데 비퀴어인 분이 가서 참여 관찰을 한다 한들 그게 깊이가 나올까. 그런데 그게 당사자여야만 할까. 뭐 이런 어떤 게이트키핑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여러 가지 논점이있을 것 같은데, 김정래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퀴어와 관련된 문화 인류학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당사자가 진행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각각에 대해서 어떤 장단점과 한계들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가볍게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김정래 우선 첫 번째 질문으로 김경내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실명으로 기술했을 때 예상치 못한 리스크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사실 이 문제 자체도 리스크라는 것이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일단 첫 번째 출발점이기도 하고, (연구자)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라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을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특히 계속해서 이야기가 나오는 청소년 성소수자와 부모 간의 동의의 문제. 한국에서의 어떤 청소년 성소수자와 부모라는 관계가 다른 문화권이나 나라들보다도 어느 정도로 삶이 밀착돼 있고, 어느 정도 의지를 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그런 종류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연구윤리적 고민이라는 것도 지정학적인 문제에 껴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IRB가 연구자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역할로 작동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현재 국내에서 IRB가 작동하고 있는 모델 자체는 게이트 키핑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는 이 연구가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냐를 판가름하는 주체로서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죠. 제가 해외에서 수학하는 다른 분들의 말씀을 듣기로는 IRB에서 연구 윤리와 관련한 실질적인 조언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IRB 담당자가 1대 1로 붙어서, 연구에 대해 어떤 고민이 있는지 그리고 윤리적인 고민이 있는지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 주는 그런 방식의 모델도 가능할 것 같은데요. 한국의 IRB 모델에 대해서 좀 더 고민을 해보는 방식의 질문이 나와야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자면, 연구자가 책임을 진다는 것. 당사자성의 문제에 대해서 간단하게 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인류학에서는 항상 위치성에 대해서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연구하는 너는 누구냐.”라고 해서 오래전부터 인류학 논문에서는 ‘나’를 출연시킵니다. 연구에서 ‘나’ 그러니까 연구자로서의 ‘나’가 출연하는 게, 어떻게 보면 웃긴 그런 모습일 수도 있지만, 이 ‘나’라는 것이 연구 참여, 그러니까 단순히 연구 대상으로서 보이는 이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넘어서 현장 안에서 어떻게 위치성이 바뀌는지. 위치성이라는 것은 사실 고정되지 않기 때문에 위치가 아니라 위치성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에 있어서도 어떤 주장이 배치되고 충돌하는 것. 말하는 것과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한 차이도 사실 현장 연구를 통해서 줄여나가기 보다는, 대화를 계속 해나가는 것이 저는 결국엔 윤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김경내 저도 잘 모르는, 권순호 선생님께서 발제해 주신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분야여서 굉장히 발표를 멋있게 해주셔가지고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간단한 질문인데 이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차이에 대해 고민해 주셨잖아요. 예를 들면 장애 여부, 탈가정/탈학교 여부, 커밍아웃 여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이걸 하나로 그냥 동질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사실 컴퓨팅 디자인 이런 곳에서 이 차이들을 어떻게 고민하고 반영할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고민하고 계시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정래 다행히 저도 비슷한 결의 질문이라서 같이 답변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인간의 문제를 발견하고 기술을 도입해서 해결한다는 것에 대한 것에서, ‘인간의 문제를 발견한다.’ 이것이 인류학에서도 집요하게 질문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청소년 문제 같은 것을 발견한다고 했을 때, 사실 청소년 스스로가 문제 삼지 않았던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사자의 목소리라는 것이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듣기 어렵다고 여겨지는것들, 쉽게 포착되기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이제 HCI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이것에 대해 문제화를 하고 있는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권순호 김정래 선생님이 왜 한숨을 쉬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웃음) 제가 분야를 대표해야 하는 큰 질문을 받아서요. 우선 김경내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여러 가지 현실들을 포착한다고 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디자인으로서 풀어내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 주셨는데, 이 분야가 저희 지도 교수님이 전문이십니다. 페미니스트 HCI라는 분야를만드신 분이신데, 페미니스트 HCI는 디자인 일반화의 폭력성에 관해서 이야기해요. 대표적으로 예전에 기업 어딘가에서 “전세계를 위한 유니버설 세탁기예요.” 하고 만들어 전세계에 뿌린 거죠. 여러가지 세제나 원단들을 활용해서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이게 인도에 가서 인도 여성분들이 전통의상 사리를 세탁했는데, 사리가 다 망가지고 세탁기도 망가져 버린 겁니다.
페미니스트 HCI는, 이런 식으로 디자인이 한 가지의 현실, 주로 다수의 현실을 모두에게 일반화했을 때, 그 다수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의 현실이 디자인을 통해 무너진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따라서 굉장히 지역적(local)이고, 한 가지의 정체성 혹은 한 가지의 배경에서만 리서치를 진행을 해서, 거기에만 활용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청소년 성소수자 연구 같은 경우에도… 제가 이 고민을 정확히 이 공동 디자인 워크샵을 진행하면서 참여해준 친구들하고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디자인을 하는데 이런 고민들이 너무 걱정이다. 여기 트랜스젠더 친구도 있고, 젠더퀴어 친구도 있고, 에이섹슈얼 친구 있고, 게이 친구, 레즈비언 친구 다 있는데 여러분의 이야기를 내가 하나로 뭉뚱그리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물어봤더니, 각각 따로 만들면 되지 않냐고 시원하게 답을 해줬습니다. 저희가 이 워크샵에서 상상한 기술의 모습은, 어떠한 부분들은 게이들에게만, 어떠한 부분들은 트랜스젠더에만 해당이 되는 거예요. 이때 게이를 위한 디자인이 트랜스젠더에게 사용된다면, 트랜스젠더 당사자는 고려되지 않은 채로 불편한 사용 케이스가 발생할 수 있겠죠. 그렇다고 "게이를 위한 디자인이 틀린거냐?"라고 하신다면 그렇제는 않습니다. 여러가지 디자인 현실이 양립할 수 있고, 공존할 수 있는 것이죠. 누군가를 대상으로 한 디자인을 모두에게 일반화시키지 않고, 다양한 현실을 위한 다수의 디자인이 존재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페미니스트 HCI에서 이야기하는 다원주의적 디자인(Pluralistic Design)입니다. 하나의 현실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여러 현실들을 위한 각각의 디자인 솔루션들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풀어내는 학계의 흐름이고요.
두 번째로 이제 인간의 문제, 그것을 발견한 스스로가 문제 삼지 않았던 것들 (혹은) 당사자의 목소리와 같이 듣기 어렵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실제로도) 굉장히 포착되기 어려운데요. 이걸 HCI에서 어떻게 풀어내는가…를 지금 열심히 많은 학자들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이런 고민을 하는 학자들은 “문제 자체를 포착하는 것이 문제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기술 해결주의 (혹은) 기술 만능주의(techno-solutionism)라고 보통 이야기를 합니다.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사람들이 겪고 있지 않은 문제를 기술자들 혹은 디자이너들이 굳이 만들어내서 “너네 이거 어렵지 않아? 이거 우리가 해결해 줄게.”라고 들어가는 굉장히 시혜적인 형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아니라 기쁨을 증대해 주는 방식이라든지, 혹은 더 깊은 수준에서의 어떤 가치를 원하는지를 찾아가서, 기술이 어떠한 방식으로 그 가치를 증대하거나 억압하는지 탐구하는 등, 여러 가지의 디자인 연구 기법들이 있습니다. Value-Sensitive Design이라든가, Participatory Design 같은 기법을 제가 다 소개해 드리고 싶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이런 기법들이 있다는 정도만 말씀드리면서 마무리하고, 허성원 선생님께 질문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질문 바로 드릴까요? 저는 허성원 선생님 발표 들으면서 제일 집중하고 싶었던 부분이 세계관의 충돌이었습니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모두 다루면서 이러한 부분에서의 부딪힘이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저는 이걸 큰 질문으로 끌고 가서 “우리는 왜 퀴어 연구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연구의 목표가 실질적 변화를 이끌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현상을 이해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 사이에 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랬을 때 허성원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본인 분야에서 연구 목표의 방향성은 무엇인지, 혹은 거기에서 벗어나서 우리 모두는 학자로서 퀴어 연구를 왜 하는지에 대해 질문 드리고 싶었습니다.
김정래 저는 간단한 질문입니다. 이전에도 발표 준비하면서 좀 준비한 질문이긴 하지만, 어떤 발표와 허성원 선생님의 발표 안에서 퀴어 독해라는 것이 있는데요. 이 퀴어 독해, 퀴어 해석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김경내 허성원 선생님께서 발제해 주실 때 인간 대상보다는 텍스트나 콘텐츠 대상으로 연구를 많이 수행하신다고 하셨는데요. 그때도 고민해야 하는 연구 요지들이 또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분석하고 재현, 기술하느냐 이런 차원의 문제도 있지만, 사실 저도 방법론 수업을 들을 때 어떤 콘텐츠를 분석을 대상으로 삼을 것인지부터 시작해서 그 논문을 어떻게 발행하고 누구를 대상으로 이야기할 것인지까지가 연구이기 때문에 그 과정 자체에서의 윤리가 필요하다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하시는 어떤 학제나 연구에서 고민하고 있는연구 윤리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성원 네, 일단 큰 질문. 왜 퀴어 연구를 하느냐. 그리고 심지어 권순호 선생님이 답변을 이미 해 주셨는데요. 현상을 더 잘 이해하고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인데, 제 연구는 굳이 따지자면 현상 이해 쪽에 훨씬 가깝습니다. 예술하는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할 때 많이 하는 얘기이기도 한데요, 우리가 하는 걸로, 예를 들면 글을 써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냐고. 저도 그때 술이 취했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얘기 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활동을 해야지 왜 글을 써서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느냐고요. 물론 그런 질문이 아니었다는 걸 압니다. 그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할 때 그 변화의 의미 자체가 다르다는 겁니다. 사실 퀴어 연구라든가 혹은 퀴어 글쓰기 등을 통해서 이끌어낼 수 있는 변화는 우리가 ‘사회 변화’라고 부를 때 상상하는 변화의 이미지와는 무척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인간에게 어떤 변화를 주죠. 예를 들면 어떤 글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저는 그런 일들이 되게 많은 퀴어 연구에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사회 변화라는 형태로 포착되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이지요. 제 연구는 현상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이야기함으로써 더 소통 가능한 형태의 지식들이 늘어난다면 저는 그것이 그런 포착하기 어려운 변화를 이끌어내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결국에는 포착되지 않을지라도요.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인 퀴어 독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게 읽히지 않았던 것들을 퀴어 시각에서 읽으면 밝혀지는 맥락들을 다시 적어보자는 접근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김경내 선생님이 주신 질문은 텍스트와 콘텐츠를 어떻게 윤리적으로 접근할 것이냐는 것인데요. 저는 석사 논문을 쓸 때는 공개적으로 접근 가능한 자료만 썼습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긴 합니다만, 제가 그 이외의 자료를 알고 있는 경우에도 검색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자료만 썼습니다. 아무래도 제 석사 논문은 동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퀴어 퍼레이드라는 현장을 연구했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이런 희망도 약간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예전에 조명받지 못했던 정보를 엮고 해석하면, 제 연구의 독자 역시 예전에는 중요한 자료로 표집되지 않았던 것들을 가져가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그런 실천을 하리라는 희망을 가졌었습니다..
다른 학제에서는 이런 식의 자료 수집과 기술을 보고 자료의 대표성 문제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는 대표성 문제를 피해가는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케이스가 다른 상황에 또 나타날 것이라는 가정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 케이스에 얽힌 층위를 하나하나 들추어 내고이론화하는 것에 가까운데요. 이게 권순호 선생님이 말씀하신, 모든 로컬한 데이터를 만들면 되지 않냐는 접근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아까 공유해드린 사회자 질문 중 명확하게 답을 하지 않은 질문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그 질문에 간략하게 답해 주시면서 마무리 발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경내 아까 많이 말씀을 드린 것 같은데요. 어쨌든 그 비판적 퀴어 연구 혹은 비판적 질적 연구라고 했을 때, 그 비판의 대상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걸 비판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꼭 양방만이 정답은 아니지만 그런 혼합 방법을 비롯한 다양한 연구들을 좀 같이 수행하면서 상호 토론과 비판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정래 일단 제 연구는 성소수자 연구인가 퀴어 연구인가? 퀴어 연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번 콜로키움이라고 해야 될까요? 웹진 《도착》 창간호에 실린 글에서 전혜은 선생님께서는 “퀴어이론이 곧 사회적 부정에 맞서 현재의 세상 모습을 유지하는 지배적 가치 체계와 인식들을 해체하는 담론적 저항 실천”이라고 했는데요. 제 연구 같은 경우도 비록 어떤 인구 집단으로서의 성소수자를 상정하고 있지 않지만, 아동과 아동과의 양육을 대상으로 “어린이는 자라는가. 인간은 자라는가.”(와 같은 질문들.) 혹은 “어떤 형상으로 오늘의 사회에서 어린이를 자라게 한다거나, 명확하게 건강하게 성장시킨다고 여겨지는 것이 사실 어린이를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런 질문을 통해서 연구관심을 이어 나가기 때문에 퀴어 연구로서의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짚어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객관성에 대한 요구를 어떻게 절합하고 거부해 왔냐는 것에 있어서는 사실 질문에 좀 질문으로 답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연구가 어떤 순간에 객관성에 대한 답을 해낼 것, 자기 입증을 할 것을 요구받는가를 질문을 해야 될 것이고 객관성에 대한 요구는 사실 전체를 설명 가능한 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하고 연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전체성에 대한 갈망. 이런 전체론적 사고로서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인정을 하는 사람들이 퀴어 이론과 퀴어 연구를 하러 여기 온 것이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제 답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권순호 저는 인구 집단으로서 LGBTQ 연구 쪽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학계에서는 조금 명확하게 퀴어 연구와 인구 집단 연구가 나뉘어 있는데요. 퀴어 연구하시는 분들은 퀴어 이론을 활용해서 굉장히 이론적으로 기술을 분석하시고, 저는 그것보다는 실제로 기술이 성소수자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한 현장 지식을 조금 더 다루는 편이어서 제 연구는 조금 더 그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재현 불가능성 같은 경우에는… 이것도 저희 학회에서 이제 재현 가능성을 찾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 분들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기술을 어떻게 쓰이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루시는데, 제가 하고 있는 연구는 이런 연구보다는, 그렇게 “더 많은 사람”에게 집중하고, 디자인이 만들어낸 결과의 재현에 집중하면서 “지워지는 사람들”에 집중하는 디자인 연구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뭔가가 재현 가능하다는 것보다도, 한 사람이라도 이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아 이런 경험이 기술을 통해서 가능했구나.”라고 한다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재현 가능성 자체를 저는 크게 논문에서 부각하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시각에 반대하는 편입니다.
허성원 저는 우선 인구 집단으로서의 LGBTQ 및 성소수자 연구를 하느냐 아니면 퀴어 연구를 하는 거냐고 질문에 관한 생각을 풀면서 마무리 발언 드리고 싶은데요. 퀴어 연구가 인구화 기획을 비판하는데 그것이 LGBTQ라는 어떤 인구, 이미 존재하는 인구와 범주를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퀴어 연구가 어떤 정체성 범주가 본질주의적으로 규정되는 현상을 비판해야 하지만, 저는 반본질주의 기획으로서의 퀴어 연구가 그런 범주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밝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런 범주가 존재하지 않고, 바로 부정하면 사라진다고 믿는 작업이 아니고요.이런 면에서, LGBTQ라고 불리는 사회 집단은 근대성과 통치성이 성립하기 위한 구성적 타자들의 집단 중 하나로서 (필연적이지는 않지만) 역사적으로 충분히 타당한 연결 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퀴어 연구를 함에 있어서, 우리가 성소수자 집단과 그 역사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될 이유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60년대, 70년대 문화를 읽는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동시대의 LGBTQ 당사자들이 받는 차별을 좌표로 삼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정정이 유독 중요한이슈입니다. 주민등록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민등록제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파악하다 보면, 이 제도가 그 당대의 이성애규범성이 형성되는 역사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이 있고, 이 두 가지가 떼어져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성애규범성이라는 게 만들어지면서 사실 성소수자를 포함한 다른 여러 종류의 마이너리티 집단들이 생기는 어떤 메커니즘들이 유사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데요. 그런 것들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방식으로서 인구화된 집단의 역사를 보는 게 저는 퀴어 연구에도 매우 유의미한 접근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플로어 토론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남았습니다. 저희가 사전 질문을 받았는데요. 사전 질문을 주신 분들 중 이 자리에 계신 분이 계시면 먼저 그 질문에 답을 하겠습니다.
플로어 질문자 1 일부 유전체 연구나 신경생물학적 접근은 성별 정체성 발현이 단지 X와 Y염색체에만 의존하지 않음을 밝히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과학적 발견을 퀴어 이론 연구와 연결짓거나 협업하는 방법이나 사례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허성원 이 질문은 퀴어 과학 연구 혹은 페미니스트 과학 연구에서 소화할 수 있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혹시 다른 패널 분들 중에서 관련해서 말씀해주실 분이 계시지 않으면 제가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저도 이 부분을 전공하는 것은 아니어서 그냥 제가 과문하지만 말씀을 드리자면, 이 x염색체와 y염색체에 대한 그 광기 어린 집착은 80년대 페미니스트 문헌에서도 많이 비판해 왔습니다. 그때의 질문은 왜 염색체가 젠더를 정의하냐고 생각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젠더를 규정하는 생물학적 결정자는 과학 담론의 전개에 따라 예전에는 성기의 생김새였다가, 호르몬이 됐다가, 다시염색체로 바뀌는 흐름을 비판했던 것이지요. 제가 2010년대 이후 퀴어와 트랜스 연구에서 많이 읽고 있는 것은 염색체보다는 호르몬이기는 합니다. 대표적으로 길 페터슨(Jules Gill-Peterson)이라는 학자의 연구가 생각나는데요. 이 연구는 호르몬 담론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추적합니다. 호르몬 담론이 19세기에는 어떤 지식이었고, 그 전에 사회 진화론적인 부분들을 담지하고 있고 이게 발전해서 어떤 문헌에서 특히 화제가 됐고, 특히 역사적으로 조겐슨과 같은 트랜스젠더 인물 혹은 현상이 나타나고, 우리가 지금 트랜스젠더라고 부르는 당사자가 어떤 식으로 집단을 이루게 되었는지, 이런 것들을 과학 문헌 및 담론과의 연관성을 통해 들여다 보는 연구입니다.
이때 퀴어 이론은 당대 혹은 동시대의 과학 및 과학적 담론이 어떤 가정을 갖고 있고 그게 현재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살핍니다. 퀴어 연구자들이 널리 공유하고 있는 접근 방식은 염색체든 호르몬이든 아니면 다른 생물학적 베이스든지, 신체가 사회 문화적 표현형(phenotype)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과학 담론의 가정과 현실 사이의 미스 매치를 지적하는 것이 가장 자주 보이는 접근법인 것 같습니다.
플로어 질문자 2 패널 분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질문은 아니고 몇 가지 코멘트가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청소년 IRB 관련한 이야기가 굉장히 여러 번 등장했는데, 확인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거는 한국적인 문제도 아니고 청소년 성소수자만의 문제도 아니고, 사실 연구 윤리라는 차원에서 미성년자에 대해서는 부모의 동의, 그리고 당사자 아동/청소년의 승인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입니다. 그 일반적인 관행 속에서 부모의 동의를 없앨 필요가 있는 상황이 있습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해외 성소수자 연구에서도 IRB에 대해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는데요. 저희가 확인한 사례 중에서는 적어도 하이틴이라고 할 수 있는 고등학생 정도의 연령대에는 부모의 동의를 받는 것이 가져올 위험성과 혹은 이것을 받지 않는 것이 가져올 위험성을 비교했을 때 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것이 조금 더 윤리적이지 않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번에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활용한 방식은 그런 것들을 제시를 해서 심의를 받았습니다. 기본적으로 미성년자에 대한 어떤 IRB의 이슈가 있고, 사실 특정한 조사방법, 예컨대 설문조사를 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래서 사실 김경내 선생님한테 어려운 질문이 계속 등장을 해서 죄송합니다만, 어쨌든 같이 연구를 하고 있고, 양적 연구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서 몇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양적 연구의 어떤 객관성에 대한 비판은 굉장히 오래되고 전통적인 비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을 취하는 분들이 양적 연구가 이야기하는 대표성 혹은 객관성에 대해 오히려 너무 옛날에 있었던 가정에 근거하고 있지 않느냐는 양적 연구자로서의 불만이 있습니다. 사실 (최근의 양적 연구는) 인구 집단을 충분히 상세하게 서술하는 것, 그리고 연구의 프로토콜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연구의 한계를 정확하게 적시하는 것을 통해서 이것이 어떤 것들을 대표하고 있는지를 전달하는 것을 전제로 한 대표성과 그리고 제한 가능성을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마찬가지로, 양적 연구를 독해할 때도 이것이 마치 객관적인 현실을 담보한다는 방식의 독해는 오히려 그 연구자, 그것을 수행한 연구자보다도, 오히려 독자가 이것을 (어디서나 통용되는) ‘팩트’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처음에 시작하실 때 허성원 선생님이 방법과 방법론에 대해서 이렇게 조금 분리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더 우리가 많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방법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이 이야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소자와 연구의 양이 늘어나면서 한국에서도 암묵적인 관행이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연구 참여자를 어떤 방식으로 모을 것인지에 대한 것들인데요. 주로 SNS에 웹자보와 링크를 올려서, 그게 확산되면서 연구 참여자들을 모집하고는 합니다. 이것이 사실 국가의 대표성 있는 어떤 통계 자료가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가장 많은 샘플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로 활용해 왔던 것인데, 그런 연구 참여자 모집 방법이 가지는 명확한 한계를 반복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끊임없이 20~30대 중심으로만 표집이 됩니다. 그리고 성소수자 집단 중에 논바이너리와 젠더퀴어 그리고 시스젠더 여성이 너무나 과대표 됩니다. 당분간은 국가 차원에서 성소수자 사회 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국가 대표성 있는 수준의 자료가 만들어질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요. 똑같은 설문조사 방법을 취하더라도 이 한계를 극복할 만한 어떤 다른 종류의 방법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조금 더 다른 방식을 시도해 보고, 그 경험을 통해서 그런 한계를 극복하는 어떤 방법을 계속 만들어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사 참여자 모집의 문제는 질적 연구에도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질적 연구도 내 주변의 인적 네트워크 혹은 온라인으로 연구 참여자를 모집하는 것이 계속 어떤 사람들의 경험만 계속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를 좀 돌아보고, 조금 더 다른 방법들을 좀 찾아가는 논의가 학계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허성원 코멘트 감사합니다. 저희가 질문이나 코멘트를 아마 하나 정도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플로어 질문자 3 안녕하세요. 저 늦게 들어와서 말씀은 다 못 들었지만 질의 응답 잘 들었습니다. 저는 카이스트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부생입니다. 권순호 선생님이 이제 컴퓨터 쪽으로 이제 연구를 하신다고 해서 좀 반가운 마음이었는데요. 제가 컴퓨터 공학을 공부할 때 느낀 점은 사실 프로그래머가 퀴어 당사자인지 아닌지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하면 도달할수록 더 편해지는 건 맞다고 생각을...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먼저) 당사자만이 퀴어 디자인을 할 수 있는지 그런 질문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동료인 비성소수자 프로그래머들은 퀴어 디자인을 할 수 없는 것인가 이런 질문이 떠올랐고요. 그리고 그러면 제가 이렇게 맥북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애플이 “그러면 너는 성소수자니까 성소수자를 위한 맥북을 써. 아니면 비성소수자를 위한 맥북을 써.” 이렇게 됐을 때, 그러면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거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 약간 아리까리해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 가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허성원 사회자가 약간 정리 발언을 하자면,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질문과 다원주의 디자인에 대한 질문이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권순호 선생님께서 지혜롭게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권순호 (웃음) 감사합니다. 지혜롭게 잘 풀어내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당사자가 디자인 과정에 포함이 되어야 하냐는 질문은 아까 제가 김정래 선생님께 드렸던 “당사자가 참여 관찰을 진행을 꼭 해야 할까.”라는 질문과도 조금 얽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디자인 연구 사례를 공유드리자면, 손소독제 연구와 인종 연구가 함께 움직였던 적이 있습니다. 이게 어떤 사례냐 하면, 손소독제 자동 디스펜서가 있습니다. 근데 그 디자인 팀에 흑인이 한 명도 없었던 거예요. 그리고 테스트 대상으로 흑인이 한 명도 없었던 거죠. 그래서 보급이 다 됐는데, 흑인의 피부색을 인지하지를 못했습니다. 이게 유저 스터디뿐만이 아니라, 그 디자인팀에 흑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건 잡아낼 수 있는 문제였을 거잖아요. 그러한 측면에서, 어떠한 기술에서 누군가가 배제되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여러 정체성의 사람들이 들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까 전에 제가 소개한 퀴어 HCI 세 가지 갈래 중에서 첫 번째였던, 성소수자가 연구자로 들어가는 HCI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이제 기술의 일반화의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드렸는데, 모든 기술이 그렇게 로컬라이즈 될 필요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페미니스트 HCI나 퀴어 HCI가 이야기하는 바도 아니기도 하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뭔가 맥북이나 이런 것들을 활용하는 데 있어서 노트북을 사용하는데 퀴어한 것이 그렇게까지 큰 활용의 차이를 만들지는 않죠. 그렇지만 장애, 신체의 어떤 장애를 가진 분들은 분명한 다른 종류의 차이가 발생을 하겠죠. 그랬을 때는 그런 배제에 조금 더 집중을 해서 맥북을 디자인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디자인의 과정에서 상정된 사용자의 군상에 누가 포함되는지 계속 성찰하고, 배제된 군상이 디자인을 사용할 때 혹시나 불편함이 있는지 확인하고, 만약 그렇다면 그 배제된 존재를 위한 디자인은 어떤 형태여야 할지 함께 고민해나가는 것이 제가 가진 디자인과 연구 인식론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성원 감사합니다. 이제 마쳐야 할 시간이 다 되었네요. 이상으로 라운드테이블을 마치겠습니다.
권순호
조지아공과대학에서 인간중심컴퓨팅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퀴어, 죽음, 신앙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인간을 위한 기술’은 어떠한 형태여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
김경내
중앙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를 마쳤다. 젠더와 여성운동, 그리고 인권과 노동에 관심을 두고 연구와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김정래
연세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다. 어린이의 성장을 퀴어이론을 통해 설명하는 데에 관심이 있으며, 현재 청소년자치배움터 다가치학교-강서양천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이것저것 하고 있다.
허성원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에서 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동시대 한국 퀴어성을 초국적 인종 및 퀴어 연구의 관점에서 독해하는 박사논문을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