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25.9)]성소수자/퀴어 연구라는 ‘궂은일’: 학회 전환의 도전

 2호(2025.9.)  l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  l  기획 주제

성소수자/퀴어 연구라는 ‘궂은일’

학회 전환의 도전

정성조

 


“학계에 남으려면 다른 주제를 택해라”

이 충고 한마디에 한국 학계에서 성소수자/퀴어 연구가 처한 현실이 압축돼 있다. 학위논문에서 성소수자/퀴어 주제를 다루겠다는 포부는 종종 지도교수의 사려 깊고 예의 바른 만류로, 더 나쁘면 편견에 기반한 노골적인 압박과 거절로 좌절된다. “왜 하필 성소수자인가”라는 질문은 성소수자/퀴어 연구를 불필요한 특수사례로 격하시키면서, 일반화할 수 없는 주변부 연구라는 낙인과 함께 학술적 기여가 부족하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연구 참여자 모집의 어려움과 자료 부족은 개별 연구의 방법론적 결함으로 단정된다.

연구 수행과 평가 과정의 배제는 더욱 교묘하다. 학술대회에서 성소수자/퀴어 연구는 흔히 여성·젠더·소수자·인권 등의 키워드와 함께 끄트머리에 배치된다.1 성소수자/퀴어 연구에 대한 무관심은 때로는 “재미있는 연구를 한다”라는 모호한 칭찬으로, 때로는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노골적인 배제로 나타난다.2 학계에서의 커밍아웃은 평가, 네트워킹, 경력 개발의 모든 단계에서 불이익은 물론 “당사자라서 연구를 하느냐”라는 연구 자체에 대한 평가절하를 불러오기도 한다.3 취업 시장에서 이력서에 기재된 성소수자/퀴어 연구 경력은 연구자를 ‘그 주제만 다루는 사람’으로 낙인찍거나, “혹시 당신도 동성애자입니까?”와 같은 부적절한 질문을 유발하는 불리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렇게 ‘합리적 조언’과 은근한 무관심, 노골적 배제가 순환하며 성소수자/퀴어 연구를 ‘궂은일(dirty work)’로 만드는 제도적인 관행을 재생산한다.4 나아가 이러한 관행은 단지 개별적인 성소수자/퀴어 연구자를 곤경에 빠트릴 뿐만 아니라, 주류 학계와 지식 체계에서 젠더, 섹슈얼리티, 퀴어를 지우는 ‘인식론적 소외’를 공고히 한다.5

그렇다면 한국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역사는 이러한 적대적인 환경을 헤쳐 나간 집합적인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도착》 창간호에서 전원근은 성소수자/퀴어 연구자에게 주어진 생존 전략을 거칠게 세 가지로 제시한 바 있다.6 안전한 주제로 포장하며 퀴어 연구를 ‘곁다리’로 진행하기, 해외로 나가기, 대안적 인프라를 함께 만들기. 이 글은 이러한 전략들이 만들어낸 연구 지형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과제를 모색한다. 먼저 '한국성소수자연구아카이브'(2024)와 '성소수자/퀴어연구 학술환경 실태조사'(2025)의 주요 결과를 검토한다. 이어서 성소수자 대학원생/신진연구자 네트워크(성연넷)가 한국성소수자/퀴어연구학회로 전환하게 된 문제의식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학회 전환과 관련된 질문과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숫자로 본 성장과 과제─한국성소수자연구아카이브

성연넷은 '한국성소수자연구아카이브' 연구팀을 구성하고 2022년부터 2년여간 아카이브를 구축하여 2021년까지 발표된 학술논문 1,322편과 학위논문 657편을 수집하고 분석했다.7 단연 눈에 띄는 변화는 2000년대 이후 연구의 양적 성장이다. 1964년부터 1999년까지 35년 동안 학술논문은 겨우 47편에 머물렀지만, 2000년대에는 246편, 2010년대에는 724편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학위논문도 1990년대 36편에서 2000년대 201편, 2010년대 311편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분야 역시 초기의 HIV/AIDS와 임상 사례 중심을 벗어나 문학·미디어 재현 연구, 법·제도 분석, 역사 연구, 당사자 경험 연구 등으로 빠르게 다변화했다.

학술논문의 키워드 변화는 이러한 전환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1990년대까지는 ‘반음양’, ‘HIV’, ‘환자’ 같은 의료화된 어휘가 지배적이었으나, 2000년대에는 ‘동성애’, ‘퀴어’, ‘문화’, ‘영화’, ‘재현’이 전면에 올랐고, 2010년대에는 ‘성소수자’, ‘사회’, ‘혐오’가, 2020년대에는 ‘경험’과 ‘차별금지법’이 핵심 표지어로 떠올랐다. 특히 2000년대 ‘퀴어’라는 용어의 부상과 함께 문학·영화 등 재현 연구를 매개로 퀴어 이론이 폭넓게 수용되었고, 2010년대부터는 성소수자 당사자의 경험과 사회적 태도를 다루는 경험 연구가 눈에 띄게 늘었으며, 최근에는 권리와 제도를 둘러싼 정책·법제 연구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1990년대 이후 성장하고 가시화된 한국 성소수자 운동의 변화와 맞물려, 연구의 주제와 분야를 넓혀 온 결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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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 성소수자 연구 동향과 과제  체계적 문헌고찰 및 텍스트 분석", 316쪽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과 질적 다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제는 남아 있다. 첫째, 인간 대상 경험 연구가 현저히 부족하다. 인간대상연구 540편 중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태도 연구 185편을 제외하면, 전체 논문(1,979편) 가운데 성소수자 당사자의 경험을 직접 다룬 연구는 18%에 불과하다. 이는 단순한 방법론적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연구 환경의 구조적 제약을 반영한다. 참여자 모집의 어려움, IRB 심의 과정에서의 과도한 ‘취약집단’ 규정8, 연구비 확보의 난관, 당사자 연구에 대한 학계의 편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둘째, 박사논문의 정체와 특정 대학으로의 편중 현상도 눈에 띈다. 석사논문은 1990년대까지는 32편에 불과했으나 2000년대 175편, 2010년대 271편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반면 박사논문은 4편에서 26편, 40편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러한 격차는 성소수자/퀴어를 박사논문 주제로 선택할 때 직면하는 ‘합리적 조언’이나 ‘노골적 반대’로 인해, 연구자들이 더 ‘안전한’ 주제를 택하거나 해외 유학을 선택하게 되는 현실을 반영한다.9 학위논문 배출 대학의 분포 역시 이화여대(9.3%), 연세대(8.2%), 서울대(7.6%), 중앙대(6.2%) 등 소수 대학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성소수자/퀴어 연구를 학위논문 주제로 지도할 수 있는 교수진이나 관련 교과목이 개설된 특정 학과로 대학원생들이 집중되는 현상을 보여준다.10

 

침묵된 목소리들─성소수자/퀴어연구 학술환경 실태조사

앞서 살펴본 자료는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양적 성장과 다변화를 한눈에 보여주지만, 출간된 논문에 근거한 만큼 출간에 이르지 못하게 작동한 구조, 그 안에서 연구자와 대학원생 들이 체감한 위험, 부담, 암묵적 규범, 그리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이 무엇인지는 드러내지 못한다. 성연넷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학회 전환을 준비하며 성소수자/퀴어연구 학술환경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2025년 5월 27일부터 6월 22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된 조사에 192명이 응답했다. 설문 응답자 가운데는 대학원생(55.7%)이 가장 많았으며, 시간강사(8.3%), 전임교원(7.8%), 전공/연구와 무관한 일(6.8%), 전공 관련 전문직(병원, 학교, 상담소 등)(5.2%) 등의 분포를 보였다.

학위논문 주제 선정에서부터 성소수자/퀴어 연구는 난관에 봉착한다. 성소수자/퀴어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다고 답한 비율은 응답자의 절반 남짓이다(석사 51.3%, 박사 50.6%). 주제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로는 “다른 주제에 더 관심이 있었다”라는 답변이 가장 많지만(석사 60.6%, 박사 56.0%), 그 이면의 사정은 다층적이다. 박사 과정에서는 방법론·이론의 난관(20%), 진로·취업 불이익 우려(16%), 학문적 인정·평가 저하 우려(16%)가 뒤를 이었고, 석사 과정에서는 선행연구·참고자료의 부족(15.5%), 지도교수·심사위원의 명시적/암묵적 반대(12.7%), 주제의 민감성으로 인한 정서적 부담(11.3%)이 주된 이유로 꼽혔다.

서술형 응답은 한층 더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준다. 한 응답자는 “학술대회 발표 후 지도교수님의 지시로 ‘이 연구는 널 위해서 여기까지만 해라’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고, 또 다른 응답자는 “지도교수가 전혀 지도를 해주지 않았고, 성소수자 연구 받아주는 것만도 감사하라고 했다”고 토로했다. 심사 과정에서 “연구자로서 중립을 지키라”는 요구를 반복해 받았다는 서술도 있었고, “너 그거 하는 애지?”라는 식의 은근한 낙인과 시선을 견뎌야 했다는 사례도 이어졌다. 이러한 목소리는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양적 증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계 일각에서 이를 ‘궂은일’로 취급하는 제도적 관행이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소수자/퀴어를 학위논문 주제로 삼았다고 해서 사정이 크게 나은 것은 아니었다. 논문 작성 과정에서 지도교수의 지지와 격려를 받았다는 응답은 석사 82%, 박사 77.3%로 높게 나타났지만, 주제에 대한 전문적 지도를 받았다는 응답은 석사 49.4%, 박사 54.6%에 그쳤다. 학과 커리큘럼 차원에서도 성소수자/퀴어와 직접 관련된 과목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5.2%에 불과했고, 일반 과목에서 일부 다루는 경우가 64.6%, 필수 읽기 자료에 관련 문헌이 포함된 경우가 49.7%로, 체계적 학습의 기반이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더 나아가 수업에서 성소수자/퀴어에 관한 잘못된 정보나 편견을 접했다는 응답도 23.8%에 달했다. 즉, 성소수자/퀴어 관련 주제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의 부재 속에 많은 대학원생은 지도교수의 정서적 지원에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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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퀴어 연구의 수행 과정에서 드러나는 어려움은 한층 다층적이다. 응답자의 67.3%는 이 주제가 진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고, 자료 접근의 어려움(66.0%), 지도교수·멘토의 부재(64.7%), 연구공동체의 부족(61.5%), 측정도구의 부족(51.3%), 학계의 부당한 학술적 평가(44.9%)가 뒤를 이었다. 이 같은 제도적 관행은 심사와 출판 단계에서 더욱 문제가 된다. 국내 학술지 투고 경험자 가운데서는 심사자의 주제 전문성 부족(71.4%), 적합한 투고 학술지의 부족(65.4%), 학술적 가치에 대한 불필요한 의심(44.4%), 편견이 담긴 심사평(39.6%), 과도한 방법론 검증 요구(34.0%)가 주요 문제로 지목됐다. 서술형 응답에서는 “평가 내용에 논문과 상관없는 퀴어 혐오가 길게 적혔다”, “연구가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부당한 판정을 받았다”는 증언이 반복되었다. 즉, 성소수자/퀴어 연구 수행을 어렵게 만드는 제도적 관행은 체계적 저평가, 접근성 부족, 공동체 부재라는 다층적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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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교류의 장에서도 대표성 부족과 고립이 두드러졌다. 국내 학회 활동자의 경우, 해당 학회에서 성소수자/퀴어 연구가 충분히 발표된다고 본 비율은 14.6%에 불과했고, 자신을 제외한 성소수자/퀴어 연구자를 모르거나 없다고 답한 비율은 54.5%였다. 반면 해외 학회 활동자는 발표가 충분하다는 응답이 62.5%, 자신 외에 6명 이상의 연구자를 안다는 응답이 79.2%에 달했다. 정체성 공개의 부담도 국내 40.7%가 느끼는 반면 해외는 25%로 낮아, 발표 기회, 분위기, 안전 측면에서 국내외 학계의 제도적 관행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이는 교육과 멘토링, 커리어 전망에 더해 성소수자/퀴어 연구를 지망할 때 유학을 선택하게 되는 체계적 유인을 설명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한국성소수자연구아카이브'와 '성소수자/퀴어연구 학술환경 실태조사'는 성소수자/퀴어 연구가 직면한 다층적 난관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한국 성소수자/퀴어 연구는 양적 확장 및 주제와 분야의 다변화라는 긍정적 변화를 이루어냈지만, 여전히 잔존하는 제도적 관행은 개별 대학원생과 연구자를 ‘안전한 주제’로의 도피, 해외로의 이탈, 극소수 대학으로의 편중이라는 생존 전략으로 내몰기도 했다. 이는 연구자 개인이 겪는 차별일 뿐만 아니라, 젠더, 섹슈얼리티, 퀴어의 관점에서 기존 지식 체계에 질문하고 도전하는 시도를 위축시키는 제도적 관행―접근, 승인, 평가의 구조―의 문제다. 그렇다면 해법 역시 개인의 분투에 머물 수 없다. 이 난관을 돌파하는 일은 집단적이고 제도적인 대응, 즉 공통의 기반을 세우는 노력으로만 가능하다.

 

학회 전환의 다섯 가지 과제

성연넷은 성소수자/퀴어 연구를 주된 주제로 삼는 대학원생과 연구자 들이 고민을 나눌 안전하고 공간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2019년 12월 출발했다. 이후 월례 발표회와 방법론 워크숍, ‘프로포절 데이’ 같은 정기 모임을 꾸준히 열고, 무지개행동이 주최하는 성소수자 인권포럼의 연구 세션을 공동 주최했으며, 한국성소수자연구아카이브 구축과 학술대회 개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왔다. 열 명 남짓으로 시작한 모임은 2025년 8월 현재 400여 명 이상이 참여하는 학회로 성장했다.11 이전에도 여러 학술공동체가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밑거름을 다져 왔지만12, 성연넷이 이 분야의 저변 확대와 네트워크 형성에 기여해 온 바는 분명하다.

지금까지 논의한 문제의식과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성연넷은 1년 넘는 준비 끝에 학회 전환을 추진했고, 올해 7월 11일 학술대회에서 한국성소수자/퀴어연구학회로 재출범했다. 아래에서는 학회 전환과 관련한 주된 과제를 다섯 가지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과제는 학술지 발간과 정례 학술대회를 통해 제도적 기반을 세우는 일이다.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다수가 학회 전환 시 학술지 발간(70.1%)과 정기 학술대회 개최(65.3%)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이는 발표, 토론, 투고, 심사 전 과정에서 연구 주제의 학술적 가치가 불필요하게 의심되거나 부적절한 평가가 반복되는 현실을 바로잡을 장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동시에, (본 학회 웹진 《도착》이 그러하듯)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학술 담론을 활성화할 플랫폼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학술지는 기획특집을 통해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핵심 쟁점을 제시하고, 방법론, 연구윤리, 측정 표준을 둘러싼 논의를 축적하는 레퍼런스 허브로 기능할 필요가 있다. 학술대회는 각 분야에서 고립된 연구자를 연결하고 심층적인 논의를 가능하게 하는 장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학회 운영과 학술지 발간의 재정적 기반 및 편집 인력을 어떻게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마련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두 번째 과제는 기성 학계의 제도적 관행을 바꾸는 일이다. 성소수자/퀴어 연구를 별도의 분야로 제도화하는 일은 ‘게토화’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장을 만드는 것만큼이나(어쩌면 그 이상으로) 기존 장의 규칙을 바꾸는 작업이 중요하다. 가령 기존 학술대회에서 성소수자/퀴어 주제를 메인 세션으로 편성하고, 주요 학술지에 특집호를 기획하며, 성소수자/퀴어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학부–대학원–학계 바깥의 다양한 학술단체 등 다양한 수준의 교육과정에 편입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학회 간 공동 학술대회 개최, 공동 성명 발표 등을 통해 주제의 중요성에 대한 최소 규범을 확산해야 한다.13 이러한 개입은 특히 ‘반성소수자 담론’의 학계 유통을 견제하는 데도 핵심적이다. '한국성소수자연구아카이브'에 포함된 연구의 약 7%는 편견이나 종교적 신념에 기반한 반성소수자 관점에 속하며, 이러한 연구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신학, 법학, 교육학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14 학회는 이러한 흐름이 학계의 권위를 빌려 대중적으로 가시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심사 및 윤리 기준을 공유하며, 반차별 가이드라인 제작을 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경우 공동 대응을 조직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세 번째 과제는 학제 간 차이를 가로질러 공통의 언어와 규범을 세우는 일이다. ‘성소수자/퀴어 연구’(슬래시를 통한 두 용어의 결합이 이미 긴장을 함축한다)라는 느슨한 범주를 제외하면, 학회 구성원의 전공과 방법론은 크게 갈라져 있다. 이를테면 성소수자 인구집단을 다루는 사회과학적 경험연구와 인문학을 축으로 한 비판적 퀴어 이론 사이의 대화는 아직 매끄럽지 않다.15 그러나 퀴어 이론의 핵심 기여가 ‘정상’이나 ‘규범’의 전제를 비틀어 문제를 재구성하는 데 있다면, 이는 사회과학에서 통용되는 개념, 이론적 가정, 측정 도구를 다시 설계하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반대로 다양한 방법으로 현실을 포착하는 경험연구는 ‘지금, 여기’의 구체성으로 퀴어 이론을 갱신할 좌표를 제공한다.16 물론 학제 간 대화는 쉽지 않다. 무비판적 절충주의로 흐르거나, 각 분야의 고유한 인식론과 방법론을 무시할 위험도 상존한다. 특히 학술적 ‘엄밀성’의 기준이 분야마다 다른 현실에서, 학회는 무엇을 공통분모로 삼아 논의와 평가의 틀을 만들 것인지 토론해야 한다. 연구의 전제와 위치성을 명확히 하고, 서로 다른 학문 전통을 번역하며 소통의 기반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간학제적 분야인 성소수자/퀴어 연구가 추구해야 할 고유한 학문적 기여가 될 것이다.

네 번째 과제는 교육과 멘토링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일이다. 그 내용은 이론, 방법론, 측정 도구, 연구윤리, 출판, 진학/커리어 등 다양할 것이다. 실태조사가 보여주듯 다수의 대학원생이 적절한 지도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성연넷에서 그동안 이어 온 방법론 워크샵, ‘프로포절 데이’, 월례발표회 등 프로그램을 학회 전환 이후에도 유지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상당했다. 이는 단순히 교육적 측면뿐만 아니라, (세 번째 과제와 관련하여) 공통의 언어와 규범을 만들고 확산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이는 성소수자/퀴어 연구로 학위를 받은 연구자들에게 주제와 직접 관련된 강의 기회를 체계적으로 제공하고, 멘토―멘티 매칭 등 경력 전환을 지원하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동시에 이러한 프로그램은 소수의 헌신과 봉사에 기대어 지속될 수 없다. 적절한 보상과 운영을 뒷받침하는 예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접근성 있는 인프라를 갖추어야 한다.

마지막 과제는 공동연구를 활성화하는 일이다. 성소수자/퀴어 연구는 본질적으로 간학제적이며, 한 분야의 방법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층위를 지닌다. 이미 '한국성소수자연구아카이브' 구축이나 한국성소수자의료연구회의 '한국 트랜스젠더 건강 코호트 연구 KITE'가 보여 준 선례도 있다. 학술서, 학부 수준의 입문서, 교양서의 집필에서 출발해, 특정 주제를 둘러싼 간학제적이고 통합적인 연구, 국가 또는 지역 단위의 비교 연구까지 협력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다. 성소수자/퀴어 연구 입문 공통 강의계획서를 개발하고, 성소수자 대상 연구의 IRB 가이드라인과 윤리적 기준을 제작하는 일 자체가 하나의 공동연구가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패널 연구의 기반을 마련하고, 학회 차원의 정책 브리프를 정례 발간하여 연구 성과를 공공영역으로 확산하는 구상도 가능하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다양한 공적 연구기금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고, 국책연구원 등 공적 기관이 생산하는 통계에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항목을 포함하기 위한 정책 개입도 병행돼야 한다. 또한 학계 내부의 협력을 넘어 성소수자 운동 및 예술 분야와의 협업은 연구의 폭을 넓히고, 학술적 지식을 더 살아 있는 형태로 사회에 환류시키는 통로가 될 것이다.

학회라는 이름이 아직은 낯설고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학술대회의 열기 또한 선명하다. 서로의 연구와 시간이 포개져 버팀목이 되는 기반을 만드는 일에 함께해주시기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당부드린다.


정성조

사회학 연구자.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며,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차별경험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다. 성소수자/퀴어연구 학술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관심이 많다.

  1. 학술대회의 프로그램 배치는 그 자체로 위계를 드러낸다. 성소수자 연구뿐 아니라 여성, 소수자, 다양성 관련 주제들은 프로그램 말미에 배치되거나, 하나의 세션으로 뭉뚱그려지거나, 특정 패널이 자신의 성별, 인종, 성정체성 등을 이유로 그러한 주제를 ‘전담’하는 것처럼 당연시되는 경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Chautard, Alice, and Claire Hann(2019), Developing Inclusive Conferences: Best Practice Guide, University of Oxford; Fernando, Benjamin, and Mariama Dryák-Vallies(2025), “Eight Ways to Encourage Equality, Diversity, and Inclusion Discussions at Conferences," Eos (AGU).

  2. 조수미는 성소수자 연구가 평소에는 재미있고 힙하다는 공치사를 받지만, “정작 채용의 순간에는 ‘너무 특이하고 지엽적인 연구’”로 격하되는 모순을 지적한다. 조수미(2025), 「앨라이로서 광장과 퀴어문화축제를 연구-생각하기」, 《도착》 창간호(2025.6.). 성소수자/퀴어 연구가 학계의 다양성을 담보하는 것처럼 토큰화되는 경향에 대한 비판으로는 다음을 볼 것. LaSala, Michael C., David A. Jenkins, Darrell P. Wheeler, and Karen I. Fredriksen-Goldsen(2008), "LGBT Faculty, Research, and Researchers: Risks and Rewards", Journal of Gay and Lesbian Social Services, 20(3), 253-267.

  3. Taylor, Verta, and Nicole C. Raeburn(1995), "Identity Politics as High-risk Activism: Career Consequences for Lesbian, Gay, and Bisexual Sociologists", Social Problems, 42(2), 252-273; Veldhuis, Cindy B.(2022), "Doubly Marginalized: Addressing the Minority Stressors Experienced by LGBTQ+ Researchers Who Do LGBTQ+ Research", Health Education and Behavior, 49(6), 960-974.

  4. ‘궂은 일’이라는 표현은 섹슈얼리티가 학계에서 점점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는 동시에 좀처럼 선호되지 않는 주제라는 이중성을 함축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제도적 관행은 교육과 멘토링의 부재, 학술적 기여 저평가, 학술논문 출판의 장벽에 더해 IRB의 과도한 규제나 연구비 지원의 어려움 등 다양하다. 이는 섹슈얼리티 연구를 진지한 주제로 보지 않는 인지적 편견과 불편하거나 혐오스러운 것으로 바라보는 정서적 편견의 결합을 통해 작동한다. Irvine, Janice M.(2014), “Is Sexuality Research ‘Dirty Work’? Institutionalized Stigma in the Production of Sexual Knowledge,” Sexualities, 17(5-6), 632-656. 비슷하게, 국내 사회학계에서 ‘여성학하기’를 둘러싼 제도적 관행을 분석한 논문으로는 다음을 볼 것. 이나영, 정민우(2010), 「한국 ‘사회학(과)’에서 ‘여성학하기’란? 페미니스트 학문 후속세대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국사회학』, 44(5), 176~223.

  5. Jung, Minwoo(2024). “Theorizing Sexuality Politics of Neoliberalism: A Queer Sociological Approach,” Sociology Compass, 18(9), e70000; Go, Julian(2017), “Decolonizing Sociology: Epistemic Inequality and Sociological Thought,” Social Problems, 64(2), 194–199.

  6. 전원근(2025), 「한국에서 안전한 퀴어 연구에 도착하기」, 《도착》 창간호(2025.6.).

  7. 한국성소수자/퀴어연구학회 홈페이지에 해당 자료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자료 활용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해당 자료를 활용한 심층적인 분석은 다음 논문을 참고할 것. 이혜민, 박정은, 전원근, 김종빈, 이호림, 정성조(2024), 「한국 성소수자 연구 동향과 과제: 체계적 문헌고찰 및 텍스트 분석」, 『경제와 사회』, 143, 303-341.

  8. 권수빈, 김선기, 정성조, 차현재, 이상길(2023). 「'취약성’의 제도화? 인문사회 분야 IRB의 ‘취약한 대상’ 연구 심의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쟁점」, 『사회과학연구』, 34(4), 133-159.

  9. 전원근, 앞의 글.

  10. 이혜민 외, 위의 글, 323쪽.

  11. 학회 구성원의 다양한 전공 분야 분포는 한국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다양한 기반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2025년 8월 현재를 기준으로 거칠게 요약해보면, 사회학 13.1%, 여성학 12.2%, 상담·심리학 11.9%, 문학 9.5%, 교육학 6.8%, 사회복지학 5.8%, 법학·정치학 4.6%, 인류학 4.4%, 커뮤니케이션·미디어 4.4%, 보건·의료 4.1% 등으로 분포한다.

  12. 1990년대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초기 활동 가운데 중요했던 것은 성소수자가 처한 정치적, 사회적 억압을 언어화하기 위한 학술 활동이었다. 성정치 담론은 물론 역사 발굴, 해외 학술서 번역, 페미니즘 논쟁 개입 등 다양한 활동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후로도 2000년대까지 국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주된 학술 활동은 인권운동 차원에서 진행되는 경향이 강했다.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이후로는 정책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다양한 실태조사가 인권위는 물론 인권단체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2006년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에 참여한 연구자와 활동가들은 이후 퀴어이론문화연구모임 WIG(Wander in Gender)를 결성하고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2008)를 발간했다. 2011년 각각 설립된 SOGI법정책연구회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한 법제도 연구를 활성화했고, 포스트퀴어식민연구회는 포스트식민주의적 관점에서 퀴어이론에 대한 논의를 열었다.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은 2009년부터 성소수자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아카이빙하는 활동을 시작했으며, 비온뒤무지개재단은 2014년부터 이창국장학사업(현재는 ‘이창국퀴어연구지원사업’으로 개편)을 통해 성소수자 연구를 지원해왔다. 2010년대부터는 퀴어이론 서적의 번역출판이 본격화되었으며, 게이 매거진 《뒤로》, 퀴어인문잡지 《삐라》, 퀴어페미니스트매거진 《펢》, 퀴어예술매거진 《them》 등 전문잡지는 성소수자/퀴어 연구를 소개하고 논의하는 지면으로 자리매김했다. 무지개행동이 2008년부터 연례로 이어온 성소수자 인권포럼은 2016년 ‘퀴어-젠더 연구포럼’을 사전 행사로 개최했고, 이후 연구세션으로 정례화되었다. 2016년에는 한국성소수자연구회 준비모임이 출범해 반동성애 담론을 반박하기 위한 학술 활동을 본격화했고, 2019년에는 성소수자 대학원생/신진연구자 네트워크(성연넷)와 트랜스젠더 의료 공부모임이 결성되었다. 세 단체는 2025년 각각 한국성소수자연구회, 한국성소수자/퀴어연구학회, 한국성소수자의료연구회로 각각 재출범했다. 『퀴어 코리아』의 연구 윤리 위반 문제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페미니즘과 퀴어 관점에서 한국학을 갱신하고자 하는 디콜로나이징 코리안 스터디즈 콜렉티브(Decolonizing Korean Studies Collective)가 결성되었다. 그밖에도 연구모임 POP, 퀴어영화연구모임, 한국퀴어신학아카데미 등 다양한 연구모임이 성소수자/퀴어와 관련된 다양한 학술적 대화를 활성화하고 있다.

  13. 지난 6월 23일, 한국성소수자/퀴어연구학회는 한국성소수자연구회, 한국성소수자의료연구회와 함께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및 반동성애 입장에 대한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8월 22일에는 “반동성애와 안티페미니즘 그리고 우리사회의 파시즘”을 주제로 학술 포럼을 개최했는데, 이 행사는 위 세 단체와 더불어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비판사회학회, 한국인권학회, 한국여성학회, 한국사회사학회, 한국사회학회,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공동 주최했다.

  14. 이혜민 외, 위의 글.

  15. 관련 문제의식으로는, 김대현, 루인, 오혜진, 임동현, 정성조(2025). 「비판적 퀴어 연구의 구축과 과제」, 《도착》 창간호(2025.6.); 권순호, 김경내, 김정래, 허성원(2025). 「퀴어 방법론: 학제 간 퀴어 연구에서 마주하는 어려움」, 《도착》 2호(2025.9.)

  16. 예컨대 정민우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주류 학계의 논의에서 섹슈얼리티가 과소 논의되고, 퀴어 이론에서 신자유주의가 과소 이론화되는 이중적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섹슈얼리티의 교차하는 권력 관계와 이러한 권력 관계가 작동하는 글로벌 및 초국가적 과정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것을 제안한다. Jung, 위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