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25.9)]연구비 지원으로 그어진 경계선

 2호(2025.9.)  l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  l  기획 주제

연구비 지원으로 그어진 경계선

이혜민

 


“좋은 연구하시는구나” “정말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연구네요.”

타인에게 나를 성소수자 건강 연구자로 소개할 때면 종종 이런 말을 듣곤 했다. 물론 나도 그 말에 너무나 공감한다. 그렇기에 이 연구를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일 테다. 그렇지만 좋은 연구, 사회적으로 필요한 연구라고 해서 꼭 그 연구를 진행하는 환경이 수월하지만은 않다. 그 중에서도 연구비는 단언컨대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요소다. “연구하는 사람이 뭐 이렇게 돈돈돈 얘기하냐” 하겠지만,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그 돈이 매우 중요하다(어떤 연구가 좋은 연구인지는 이 글의 논의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추후에 논할 기회가 있길 바란다).

나는 주로 설문조사를 통해 성소수자의 사회적 경험과 건강 상태를 측정하고 분석하는 양적 연구를 한다. 이런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대학교에 소속되어 제도권 내에서 연구를 진행한다고 해도 여러모로 연구비가 필요하다. 연구팀이 직접 설문조사를 수행하는 경우 그 과정을 축약해서 서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연구팀은 연구 가설을 논의하여 확정한 뒤 설문지를 설계하고, 성소수자 커뮤니티로부터 문항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고 파일럿 조사를 한다. 설문지를 완성한 이후에는 온라인 설문조사 도구에 문항을 입력해서 설문조사를 수행한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수백에서 수천 명의 참여자에게는 보상을 한다. 설문조사를 완료한 이후에는 수집한 데이터를 클리닝하고 분석해서 논문을 작성하게 된다. 물론 모든 양적 연구자가 설문조사를 직접 수행해서 연구를 하지는 않는다. 국민건강영양조사나 한국복지패널 같이 국가에서 수집한 대표성을 지닌 설문조사에 본인이 연구하고자 하는 변수가 포함되어 있다면, 공식적으로 자료를 요청한 후 다운로드 받아 연구를 진행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국가 대표성을 지닌 설문조사에서는 참여자가 성소수자인지 여부를 측정하지 않기에1 내가 여태까지 발표한 모든 국내 성소수자 건강 연구는 연구팀에서 직접 수행한 설문조사에 기반했다.  

설문조사를 통한 양적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 하나하나에 연구 책임자와 석·박사과정 연구자를 포함한 연구팀 전원의 노동력이 투입되며, 이러한 노동력에 대해서는 당연히 그 대가가 지불되어야 한다.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 본인의 경험을 나눠준 참여자에게도 적절한 보상이 따라야 하며, 연구팀이 실질적으로 연구하며 지내는 연구 공간과 데이터 수집 및 분석에 필요한 컴퓨터 등 기타 장비도 필요하다. 논문 작성 과정에서도 데이터 분석을 위해 통계 프로그램을 구입하거나, 문헌 리뷰를 위해 기존에 출판된 논문들을 구매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대학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에는 도서관에서 지원하는 경우가 많지만, 모든 연구자가 제도권에 소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에 지원받은 연구비나 개인 비용으로 해결해야 한다. 논문 출판 과정에서도 연구비가 필요하다. 국내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한 경우 논문의 주저자가 학회의 회원이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서 투고 전에 일정 금액의 회비를 내고 회원의 자격을 얻어야 했고, 심사료와 게재료를 추가로 지불하기도 했다. 국외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했을 때는 이러한 비용이 들진 않았지만, 오픈 액세스 학술지에 게재된 경우 논문 한 편 당 2017년 기준 약 200만원 정도(2025년 현재 $3690로 약 500만원)의 비용을 지불한 적도 있다. 포스터 출력 비용, 교통비, 체류비 등 국내외 학술대회 발표는 두말할 것도 없다. 연구비 없이는 연구를 수행하기도, 수행한 연구의 결과를 논문이나 학회 발표의 형태로 나누기도 어렵다.

성소수자 건강 연구를 수행해오면서 한국연구재단, 미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 소속 대학교, 단과대학, 외부 재단, 성소수자 인권단체 등 여러 기관에 연구비를 신청했고, 운 좋게도 몇 차례 연구비 지원을 받아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 중 한국연구재단의 박사과정생연구지원사업과 이공분야 학술연구지원사업(박사후국외연수)에 연구책임자로 지원한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박사과정생연구지원사업은 풀타임 박사과정 학생의 학위논문 관련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1년 혹은 2년 동안 연간 2,500만원(간접비 포함)을 지원한다. 나는 2020년 ‘한국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라는 과제명으로 트랜스젠더 건강 격차 및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대한 세 가지 연구를 제안했고, 최종 선정되어 2년간 최소한의 생활비 걱정 없이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인 2023년에는 ‘트랜스젠더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가족 기반 중재연구 개발’을 위해 박사과정부터 협업해 온 교수님이 계신 미국 대학교에서 1년간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으로 박사후국외연수사업에 지원했다. 결과는 미선정이었다.

한국연구재단에 지원했던 두 가지 지원사업의 결과는 상반되었지만, 평가위원의 의견에는 비슷한 결의 우려가 담겨 있었다. 한국 트랜스젠더의 건강 연구에 대한 두 개의 지원서는 모두 시의적절하고 학술적으로 필요하며, 독창성과 창의성을 갖추었다고 평가되었다. 하지만 일부 평가자는 국내 전체 인구 중 트랜스젠더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데이터가 부재해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정된 보건의료자원의 효율적 분배라는 관점에서 소수 집단 연구의 우선순위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인 한계도 제기됐다. 트랜스젠더 인구 규모는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자인 나조차도 궁금한 부분이다. 인구주택총조사와 같은 국가 단위 조사를 통해 국내 트랜스젠더 인구집단의 규모를 측정하지 않는 이상 개별 연구자가 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건의료자원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극히 공감한다. 하지만 해외에서 진행된 많은 연구들을 통해 트랜스젠더 집단이 겪고 있는 건강 격차에 대한 충분한 학술적 근거를 갖춘 상태였고, 내가 소속된 연구팀에서 진행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더불어 우선순위는 누가 정하는 것인지, 그 우선순위가 반드시 인구집단 규모에 비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여전히 ‘나중에’로 귀결되는 성소수자 이슈인 것이다). 성소수자 건강 연구를 잘 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마련하고자 연구 지원사업에 신청했지만 또 다른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연구비 측면에서 미국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꽤 긍정적이었다. 2017년 박사과정 당시, 나는 한국인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성인이 겪은 차별 경험이 우울 증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기 위해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National LGBTQ Health Conference에 참가했다. 컨퍼런스의 한 세션에서는 국립보건원의 성소수자 연구소(Sexual & Gender Minority Research Office, SGMRO) 디렉터가 성소수자 건강 연구자들에게 다양한 연구비 지원 기회를 홍보했고,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와, 미국에서는 성소수자 건강 연구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구나.’ 그 때만 해도 이런 생각에 먼 나라의 연구자들을 마냥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국립보건원에서 지원하는 연구 프로젝트 중 성소수자 건강 관련 연구는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는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성소수자 인구집단에 대한 연구 중 국립보건원으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은 연구는 총 1,093건(4억 9,170만 달러, 한화로 약 6,785억 원)으로 지원을 받은 전체 연구 프로젝트의 0.8% 밖에 되지 않는다.2 미국 내 성소수자 인구 비율이 7.6%인 점을 고려하면, 인구 규모에 비해서도 여전히 크게 부족한 수준이다. 물론 해당 기간 동안 지원받은 연구 프로젝트의 수가 3배 정도 급격히 증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긴 하지만, 지원받은 연구 주제가 게이, 바이섹슈얼 남성의 HIV/AIDS 이슈에 치중되어 있는 한계점도 가지고 있다.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여성과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집단의 건강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부족하고, 유색인종 성소수자에 대한 연구는 계속해서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성소수자 건강을 연구하기 위해 건너온 미국에서는 새로운 차원의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게 된 연구실은 국립보건원이 지원하는 가장 큰 규모의 R01 프로젝트(3~5년간 약 $2,750,000-$3,000,000, 한화로는 약 38억원-41억원 지원)를 통해서 유색인종 성소수자 청소년이 겪는 사회적 경험이 이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많이 다뤄지지 않은 유색인종 성소수자 청소년의 건강에 대해 교차성의 관점에서 고민하고 연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이 경험을 이어 나가기 위해 나는 박사후연구원 지도교수와 함께 한국계 미국인 성소수자 청년들이 교차하는 정체성을 기반으로 겪는 사회적 경험과 건강에 대한 연구 제안서를 작성하여 국립보건원의 R21 프로젝트(2년간 $275,000달러, 한화로는 약 3억 7,950만원 지원)에 지원했다. 연구비 지원 과정은 학술지 논문 투고 과정과 비슷해서 단번에 통과하긴 어렵고 심사를 받아 수정한 이후 다시 제출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지원 결과, 당장 연구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정도의 점수를 얻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평가자로부터 제안서에 대한 상세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피드백을 바탕으로 수정해서 다시 제출하면 지원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피드백을 받은 시점은 2024년 11월 말이었다.

그 이후 미국에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섰고 하루하루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소용돌이 같은 변화 속에서 국립보건원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성소수자 건강 관련 연구 프로젝트들이 하나씩 중단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 내 성소수자 건강 연구자들은 중단된 연구 프로젝트들을 구글 문서에 함께 기록하고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연구실에서 진행하던 유색인종 성소수자 청소년 R01 프로젝트도 그 리스트에 올랐다. 2025년 3월 말이었다. 중단된 연구 프로젝트를 다시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2025년 8월 21일, 대법원은 성소수자를 포함한 DEI(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관련 국립보건원 연구비 7억 8,300만 달러를 중단하겠다는 행정부의 결정을 허용했다. 나에게 꽤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국립보건원의 성소수자 연구소는 이미 2024년 12월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올 가을학기부터 오클라호마 대학교에서 신임교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학부연구원, 석사, 박사,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이제서야 보다 안정된 기반에서 연구책임자로서 성소수자 건강 연구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었다. 하지만, 정치적인 환경이 연구할 수 있는 주제 자체를 좌우하는 현실 속에서 미국 내 보수적인 주의 주립대학에 소속된 성소수자 건강 연구자로서 어떻게 버텨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커져만 간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소수자 건강 격차는 여전히 존재하고, 이를 기록하고 해결하기 위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연구비라는 현실적 벽 앞에서 좌절하기보다는 좀 더 창의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이고, 그것이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저항이자 실천이라고 생각하며 버텨볼 생각이다.

 

이혜민

성소수자 건강 연구자. 무지개를 따라 조금 먼 곳으로 산책을 오게 되었다. 유색인종 성소수자, 청소년 성소수자, 성소수자 이민자 등 교차적인 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1. 이호림, 이혜민, 주승섭, 김란영, 엄윤정, 김승섭(2022), 「국가 대표성 있는 설문 조사에서의 성소수자 정체성 측정 필요성: 국내외 현황 검토와 측정 문항 제안」, 『비판사회정책』, 74, 175-208.

  2. Weideman, B. C., Ecklund, A. M., Alley, R., Rosser, B. S., Rider, G. N.(2025), “Research Funded by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Concerning Sexual and Gender Minoritized Populations: A Tracking Update for 2012 to 2022,”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115(3), 374-3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