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2025.9.) l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 l 기획 주제
필드워크와 증명의 정치
정민우
박사과정 동안 질적 연구방법 수업을 어쩌다 세 개나 들었지만 필드워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필드워크가 끝날 때까지도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필드워크는 좁게는 연구자가 연구대상이 속한 현장(필드, field)에서 시간을 보내며 연구대상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연구방법을 뜻하지만, 넓게는 연구자가 직접 현장으로 가서 수행하는 제반의 자료조사 과정(아카이브 연구, 인터뷰, 참여관찰 등)을 총칭한다. 그러나 현장이 언제나 미리 주어져 있지만은 않다는 점이 필드워크의 정의를 까다롭게 만든다. 예컨대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을 연구한다고 할 때 어느 단체를 주된 현장으로 삼을 수도 있지만, 어떤 정체성이나 지향을 공유하는 사람들, 특정한 장소들, 혹은 정치적, 문화적 실천의 방식들이 현장이 될 수도 있고, 이에 따라 ‘성소수자 운동’이라는 현장의 범위와 경계는 다르게 그어질 것이다. 때문에 필드워크는 종종 무엇이 현장인지를 정체화하고 규정하고 문제화하며, 때론 아직 존재하거나 인지되지 않거나 비가시화된 현장을 학술적 언어로 실체화하는 과정이다.
박사논문으로 한국, 대만, 싱가포르의 성소수자 운동을 비교연구할 계획이던 나는 각국의 ‘성소수자 운동’이라는 현장이 이미 존재하고 내가 그곳에 진입하기만 하면 된다고 막연히 가정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필드워크가 시작되고 나서 여러,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가정들이 허물어졌다. 나라마다 ‘성소수자’로 규정되는 집단들, ‘운동’이라고 여겨지는 지향과 실천들, 그리고 ‘성소수자 운동’이 전개되는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토대들과 제도적 공간들은 상상 이상으로 달랐다. 한국에선 반동성애 운동과 결합되곤 하던 국가 상징들이 대만과 싱가포르에선 성소수자 운동의 주요한 표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고, 한국과 대만에선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초국적 기업들이 싱가포르의 성소수자 운동에선 조용한 진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토록 상이한 아시아의 ‘성소수자 운동’들은 모두 서른도 채 되지 않은 젊은 운동들로, 여러 방향으로 열린 채 계속해서 변태하는 중이었다. 변태하는 운동들 안팎을 넘나들며 나는 점점 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내 연구의 현장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져 갔다. 그조차도 내가 맞닥뜨린 현장의 효과라면 효과였다.
무엇이 또 어디가 현장인지를 분별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필드워크에서 맞닥뜨리고 또 필드워크를 통해 만들어진 현장을 학술적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몸으로 부대껴 보고 듣고 배운 현장으로부터의 기록(필드노트, 인터뷰 녹취록 등)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각기 다른 성소수자 운동이라는 현장들에 관해 어떤 발화를 어떻게 할 것인지, 누구를 향한 어떤 발화가 그 현장들을 보다 가치있고 의미있게 여겨지게 할 수 있을지와 같은 고민들이었다. 이 때 필드워크는 연구자 스스로 현장을 가시화하고 문제화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의 이해를 타인들에게 전달, 번역하고 또 증명하는 과정이 된다. 그렇기에 어쩌면 필드워크는 무엇을 현장으로 구성하고 이렇게 구성된 현장을 어떻게 또 누구에게 증명할 것인가를 둘러싼 경합적 실천이다.
필드워크의 증명이 대상으로 하는 청중은 많은 경우 현장의 바깥, 즉 학계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논문 지도교수와 심사위원들부터 필드워크에서 비롯된 연구 결과물의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학술적 번역의 일차적 청중은 대부분 학계에 속한 이들이다. 내게도 박사논문을 통해 영미권 사회학에서 성소수자 운동 및 퀴어연구에 관여해 온 학술 공동체에 비판적으로 말을 걸고, 그 공동체에 들어가 한국 출신 퀴어 사회학자로서 내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필드워크를 통한 증명의 궁극적이고 유일한 목적이라고 여기던 때가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필드워크의 증명은 연구자가 필드워크를 통해 어떻게 현장을 만나고 현장을 구성했는지, 또 이 현장을 어떻게 학술적 언어로 매끈하게 번역해 학계에서 통용되는 개념, 논쟁, 이론과 연결 짓고 이를 새롭게 갱신하는지에 따라 그 성패가 걸린 일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증명의 성패는 연구자가 필드워크의 결과물을 어떤 학술 저널에 혹은 어느 출판사에서 출간했는지, 그 출간물이 학계에서 누구의 추천을 받고 어떤 찬사를 받는지 따위에 따라 결정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필드워크의 증명이 반드시 현장의 바깥에 준거하는 것만은 아니다. 필드워크를 수행하는 연구자는 자신이 맞닥뜨리고 만들어가는 현장 속에서 종종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내 경우엔 필드워크 과정에서 국가별로 또 한 국가 내에서도 분화된 ‘성소수자 운동’의 여러 현장들을 오가며 계속해서 연구자로서 내가 성소수자 활동가들에게 동지, 우군, 협력자, 또는 최소한 무해한 존재임을 증명해야 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리 믿었다. 때로 그 증명 과정은 서울 도심 곳곳에서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며 구호를 외치는 퀴어 활동가들과 목소리를 맞춰가는 일이었고, 타이베이의 BDSM 클럽과 게이 온천, 폴댄스 학원을 누비며 벗고 욕망하는 퀴어한 몸들을 긍정하는 일이었으며, 싱가포르의 낯선 도심 속 정장을 입고 칵테일을 즐기는 코스모폴리탄 엘리트 퀴어들 사이에서 그들을 흉내내는 것이었다. 내게 기꺼이 곁을 내어 준 활동가 동료들은 내 연구에 대해 묻기보단 내 다음 행선지와 다음 방문과 다음 계획에 대해 묻곤 했고, 나는 종종 그 질문들에 실린 크고 작은 바람과 기대와 실망의 무게들에 짓눌리곤 했다. 내 미욱한 이기와 욕심들로 인해 나의 현장과 활동가들의 현장이 멀어질 적엔 나를 혐오했고, 나의 현장과 활동가들의 현장이 겹쳐지는 드문 순간에는 비로소 나를 증명한 것 같은 마음에 환호했다. 계속해서 구성 중인 현장들 속에서 연구자로서의 나 역시도 현장의 불완전한 일부가 되어 현장과 함께 변태하며 동시에 현장에서의 증명을 갈구했던 것이다.
두 증명의 성패는 별개가 아니다. 필드워크가 지식생산의 주요한 방법이 되는 인류학 같은 분야에서 현장에서의 증명은 때로 학계에서의 증명의 필요조건이 된다. 연구자가 그곳에 그들과 함께 그들의 일부가 되어 가까이 혹은 깊숙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연구자가 보고 듣고 배운 것들에 무게를 더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때문에 연구자가 현장에서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과 전략들에 관한 학술적 논의가 계속해서 진전되어 왔을 것이다. 필드워크는 언제 시작되어 언제 끝나는지, 시작과 끝을 포함한 필드워크의 전 과정에서 연구자의 위치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연구자는 자신의 관계적 위치성을 언제 어떻게 현장의 사람들과 공유해야 하는지, 자료조사 및 수집의 범위와 적절성에 대해 연구자는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동의를 얻어야 하는지, 어떤 동의가 보다 잘 고지된 동의이며 이 같은 동의는 어떻게 확보되고 또 철회될 수 있는지, 필드워크의 전 과정에서 연구자와 현장의 사람들 사이에서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등의 권력관계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연구자는 어떻게 이 모든 질문들을 보다 성찰적으로 고려해 연구를 계획하고 수행하고 집필할 수 있는지, 이러한 질문들을 기반으로 한 연구윤리는 어떻게 제도화될 수 있는지. 어쩌면 현장에서의 증명 그 자체가 하나의 학술적 탐구의 장르가 됐고, 주로 위험하거나 접근이 어렵다고 여겨지는 현장에서의 증명은 학계에서 페티시와 센세이션의 대상이자 가치 있는 상품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바로 이 때문에 현장과 학계에서의 증명은 때로 어긋난다. 필드워크의 학술적 번역이 학계에서는 증명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 성공이 다시 현장에서의 증명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인도 출신 의료인류학자인 사이바 발마(Saiba Varma)는 인도 점령 하 카슈미르 지역의 정신병원을 현장으로 삼아 군사 점령과 식민지화의 정치적, 물질적, 정신적 폭력에 대해 연구했다. 2020년 듀크대 출판부에서 출간된 발마의 책, 『점령된 클리닉: 카슈미르에서의 군사주의와 보살핌 The Occupied Clinic: Militarism and Care in Kashmir』은 의료인류학계로부터 찬사를 얻었고, 미국인류학회에서 수상했으며, 저자가 UC 샌디에고에서 종신교수직을 얻는 데 핵심 연구성과가 됐다. 그러나 출간 일 년 만에 발마의 책은 연구윤리 논란에 휩싸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카슈미르 점령과 식민지화에 주요 역할을 한 인도 정보기관의 간부라는 사실을 발마가 (점령과 식민지화의 피해자인) 연구참여자들에게 밝히지 않은 채 연구와 출판을 계속해 왔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발마와 교류하고 협업해 왔던 카슈미르 출신 연구자들과 남아시아계 연구자들, UC 샌디에고의 동료 연구자들 사이에서 발마의 공유되지 않은 위치성과 고지되지 않은 동의를 둘러싼 연구윤리 문제가 광범위하게 제기됐다. 학계 내 증명의 성공이 현장 속 증명에 대한 질문들을 불러 일으켰고, 둘 사이의 어긋난 증명이 다시 학계 내 증명의 실패로 되돌아온 셈이다.
발마의 책과 마찬가지로 듀크대 출판부에서 2020년 출간된 편저 『퀴어 코리아 Queer Korea』가 한국에서 불러일으킨 논란은 필드워크에서의 증명의 문제가 머나먼 타국의 현장과 학계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편저의 한국어 번역 과정에서 인류학자 티머시 기츤(Timothy Gitzen)의 한국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챕터가 (또한 그의 박사논문 전체가) 필드워크에서 그가 만난 한국 활동가들의 실명/활동명 및 개인정보를 동의없이 담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사실을 접한 피해자들이 여러 차례 저자인 기츤과 편집자인 UC 샌디에고의 역사학자 토드 헨리(Todd Henry), 출판부 대표 편집자인 켄 위소커(Ken Wissoker) 등에게 책임있는 대응을 요구했지만 묵살당했고, 심지어 편저에 참여한 한 비백인 저자가 피해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자신의 챕터를 책에 싣지 않겠다고 알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편집자인 헨리는 기츤의 챕터를 배제한 영문 개정판을 발매하기로 하고 동시에 한국어 번역판의 출간을 강행했으나 이는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나 책임, 또는 그들과의 대화나 협의 없는 일방적 결정이었다. 2023년 출간된 한국어 번역판에서 헨리는 이러한 일방적 결정을 연구윤리라는 이름으로 상찬했지만, 피해자들 가운데 한 명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남웅 활동가가 피해자들의 문제제기를 지속적으로 묵살, 침묵시켜 온 기츤과 헨리에 대한 장문의 비판을 제기함으로써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기츤과 헨리는 각기 논란의 많은 부분이 의사소통 상의 오류나 오해라며 자신들의 연구실천을 비호했지만, 동시에 피해자 및 연대자들에게 법적 조치를 비롯한 직간접적 위협을 제기하고 비판을 봉쇄함으로써 논란의 핵심이 단지 연구윤리가 아니라 인종화된 권력관계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점령된 클리닉』과 『퀴어 코리아』를 둘러싼 연구윤리와 위치성, 권력관계 논쟁은 필드워크에서의 증명의 균열과 성패에 관해 재고하게 한다. 필드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많은 학술연구는 현장으로부터의 증명과 학계로부터의 증명을 동시에 요구 받으며, 이 두 증명의 요구는 계획과 집필을 포함한 연구의 전 과정에서 때로는 협력, 때로는 긴장관계에 놓인다. 아마도 발마와 기츤, 헨리 각자에게도 현장에서의 증명이 누구보다 더 간절했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언제쯤 현장을 학술적 언어로 번역해 학계에서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갈망이 현장에서의 증명을 아득히 초과한 것일까. 평판 좋은 학술 저널에 논문을 싣고, 저명한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고, 학회에서 수상하고, 명성을 드높여 여기저기에서 인터뷰와 초청강연을 하고, 유수의 대학에서 종신교수직을 얻고, 그리하여 학계에서 알려진 존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이 모든 것들을 위해 현장에서의 증명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일까. 연구자이자 현장의 외부인으로서 뛰어들고 맞닥뜨리고 또 재구성한 현장들 속에서 이들이 현장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나눈 교류와 우정의 얼마만큼이 진심이었는지, 혹은 추후 학계에서의 증명을 위한 고려와 계산이었을지를 구별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 나는 그들을 잘 알지 못하기에 그들 각자가 두 증명의 변화하는 무게들을 어떻게 마주하고 여기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기록만을 살필 뿐이다. 그들 중 누구도 공적으로 사과하고 책임지지 않았으며, 피해자 및 연대자들과 동등하게 대화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 또한 어떤 증명의 방식일 테다.
필드워크를 통해 지식생산에 참여하는 연구자로서 우리는 계속해서 필드워크를 둘러싼 두 증명—현장에서의 증명과 학계에서의 증명—의 요구를 맞닥뜨리고 이에 답해야만 한다. 두 증명은 반드시 위계적이거나 상충하지는 않는다. 현장에서의 증명은 학계에서의 증명과 결국 연결되어 있다. 진부한 언어처럼 보일지언정 현장에서의 보다 성찰적, 관계적, 윤리적인 연구실천은 보다 엄밀한 학술실천을 위한 필요조건이 된다. 두 증명 사이에 큰 간극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의 증명을 학계에서의 증명을 위해 전적으로 포기해서도 안 된다. 만일 그 간극이 현장에서의 문제제기로 인한 것이라면, 연구자는 문제제기를 묵살하거나 침묵시키거나 변명으로 우회하기보다 이를 책임 있게 맞닥뜨림으로써 문제제기와 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변태해 나갈 수도 있다. 어쩌면 어긋난 증명은 실패의 징후가 아니라 현장으로의 새로운 초대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끊임없이 누구에게 무엇을 또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를 어떤 식으로든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사이바 발마, 티머시 기츤, 토드 헨리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정민우
사회학자/퀴어 연구자
Van Maanen, John(2011), Tales of the Field: On Writing Ethnograph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
Jung, Minwoo(2024), “Rights Projects: A Relational Sociology of Rights in Globalization,” Sociological Theory, 42(3), 256-281.↩
Jung, Minwoo(2021), “Embracing the Nation: Strategic Deployment of Sexuality, Nation, and Citizenship in Singapore,” British Journal of Sociology, 72(5), 1229-1245; Jung, Minwoo(2024), “Imagining Sovereign Futures: The Marriage Equality Movement in Taiwan,” Social Movement Studies, 23(4), 462-478.↩
Jung, Minwoo(2022), “Quiet Politics: Queer Organizing in Corporate Singapore,” The Sociological Review, 70(5), 863-881. ↩
Jung, Minwoo(2024), “Flexible Masculinities: Negotiating Gender, Sexuality, and Ethnicity in Global Asia,” Current Sociology (online first). ↩
백인남성 중심적 필드워크 방법론이 필드워크의 주된 현장이 되는 공간과 사람들, 나아가 연구자들을 타자화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으로는 Small, Mario L.(2015), “De–exoticizing Ghetto Poverty: On the Ethics of Representation in Urban Ethnography,” City & Community,14(4), 352-358; Adjepong, Anima(2019), “Invading Ethnography: A Queer of Color Reflexive Practice,” Ethnography, 20(1), 27-46; Hanson, Rebecca, and Patricia Richards(2019), Harassed: Gender, Bodies, and Ethnographic Research,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
또 다른 사례로, 백인 사회학자 앨리스 고프먼(Alice Goffman)의 책 『도주 중: 한 미국 도시에서 도망자들의 삶 On the Run: Fugitive Life in an American City』의 학술적, 대중적 성공은 고프먼의 필드워크에서 자료와 주장의 투명성, 정당성 뿐 아니라 현장에서의 증명이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광범위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관련된 비판으로는 Lubet, Steven(2018), Interrogating Ethnography: Why Evidence Matters, Oxford University Press. ↩
“Statement on Anthropologist Saiba Varma,” Medium, Sep 20, 2021; “Does Nondisclosure of Familial Proximity to ‘Security State’ Compromise Research on Kashmir?” The Wire, Oct 3, 2021; “Two UCSD Faculty Resigns from Critical Gender Studies Executive Committee,” The UCSD Guardian, Feb 21, 2022. 발마는 성명을 통해 자신의 위치성을 연구참여자들과 공유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윤리적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
정민우(2023), 「불가능한 퀴어 이론」, 『문학동네』, 115, 130-151. ↩
남웅(2023), 「유감, 팀 깃즌과 『퀴어 코리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 2023년 2월 25일. ↩
정민우(2024), 「보론: 불가능한 퀴어 이론 이후」, 『크리티컬 포인트: 문학, 비평, 이론』, 227-228. 『퀴어 코리아』를 둘러싼 논란의 상세한 전개과정은 디콜로나이징 코리안 스터디즈 콜렉티브(Decolonizing Korean Studies Collective, DKSC)의 웹 아카이브를 참조. ↩
2호(2025.9.) l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 l 기획 주제
필드워크와 증명의 정치
정민우
박사과정 동안 질적 연구방법 수업을 어쩌다 세 개나 들었지만 필드워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필드워크가 끝날 때까지도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필드워크는 좁게는 연구자가 연구대상이 속한 현장(필드, field)에서 시간을 보내며 연구대상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연구방법을 뜻하지만, 넓게는 연구자가 직접 현장으로 가서 수행하는 제반의 자료조사 과정(아카이브 연구, 인터뷰, 참여관찰 등)을 총칭한다.1 그러나 현장이 언제나 미리 주어져 있지만은 않다는 점이 필드워크의 정의를 까다롭게 만든다. 예컨대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을 연구한다고 할 때 어느 단체를 주된 현장으로 삼을 수도 있지만, 어떤 정체성이나 지향을 공유하는 사람들, 특정한 장소들, 혹은 정치적, 문화적 실천의 방식들이 현장이 될 수도 있고, 이에 따라 ‘성소수자 운동’이라는 현장의 범위와 경계는 다르게 그어질 것이다.2 때문에 필드워크는 종종 무엇이 현장인지를 정체화하고 규정하고 문제화하며, 때론 아직 존재하거나 인지되지 않거나 비가시화된 현장을 학술적 언어로 실체화하는 과정이다.
박사논문으로 한국, 대만, 싱가포르의 성소수자 운동을 비교연구할 계획이던 나는 각국의 ‘성소수자 운동’이라는 현장이 이미 존재하고 내가 그곳에 진입하기만 하면 된다고 막연히 가정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필드워크가 시작되고 나서 여러,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가정들이 허물어졌다. 나라마다 ‘성소수자’로 규정되는 집단들, ‘운동’이라고 여겨지는 지향과 실천들, 그리고 ‘성소수자 운동’이 전개되는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토대들과 제도적 공간들은 상상 이상으로 달랐다. 한국에선 반동성애 운동과 결합되곤 하던 국가 상징들이 대만과 싱가포르에선 성소수자 운동의 주요한 표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고3, 한국과 대만에선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초국적 기업들이 싱가포르의 성소수자 운동에선 조용한 진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4 이토록 상이한 아시아의 ‘성소수자 운동’들은 모두 서른도 채 되지 않은 젊은 운동들로, 여러 방향으로 열린 채 계속해서 변태하는 중이었다. 변태하는 운동들 안팎을 넘나들며 나는 점점 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내 연구의 현장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져 갔다. 그조차도 내가 맞닥뜨린 현장의 효과라면 효과였다.
무엇이 또 어디가 현장인지를 분별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필드워크에서 맞닥뜨리고 또 필드워크를 통해 만들어진 현장을 학술적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몸으로 부대껴 보고 듣고 배운 현장으로부터의 기록(필드노트, 인터뷰 녹취록 등)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각기 다른 성소수자 운동이라는 현장들에 관해 어떤 발화를 어떻게 할 것인지, 누구를 향한 어떤 발화가 그 현장들을 보다 가치있고 의미있게 여겨지게 할 수 있을지와 같은 고민들이었다. 이 때 필드워크는 연구자 스스로 현장을 가시화하고 문제화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의 이해를 타인들에게 전달, 번역하고 또 증명하는 과정이 된다. 그렇기에 어쩌면 필드워크는 무엇을 현장으로 구성하고 이렇게 구성된 현장을 어떻게 또 누구에게 증명할 것인가를 둘러싼 경합적 실천이다.
필드워크의 증명이 대상으로 하는 청중은 많은 경우 현장의 바깥, 즉 학계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논문 지도교수와 심사위원들부터 필드워크에서 비롯된 연구 결과물의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학술적 번역의 일차적 청중은 대부분 학계에 속한 이들이다. 내게도 박사논문을 통해 영미권 사회학에서 성소수자 운동 및 퀴어연구에 관여해 온 학술 공동체에 비판적으로 말을 걸고, 그 공동체에 들어가 한국 출신 퀴어 사회학자로서 내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필드워크를 통한 증명의 궁극적이고 유일한 목적이라고 여기던 때가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필드워크의 증명은 연구자가 필드워크를 통해 어떻게 현장을 만나고 현장을 구성했는지, 또 이 현장을 어떻게 학술적 언어로 매끈하게 번역해 학계에서 통용되는 개념, 논쟁, 이론과 연결 짓고 이를 새롭게 갱신하는지에 따라 그 성패가 걸린 일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증명의 성패는 연구자가 필드워크의 결과물을 어떤 학술 저널에 혹은 어느 출판사에서 출간했는지, 그 출간물이 학계에서 누구의 추천을 받고 어떤 찬사를 받는지 따위에 따라 결정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필드워크의 증명이 반드시 현장의 바깥에 준거하는 것만은 아니다. 필드워크를 수행하는 연구자는 자신이 맞닥뜨리고 만들어가는 현장 속에서 종종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내 경우엔 필드워크 과정에서 국가별로 또 한 국가 내에서도 분화된 ‘성소수자 운동’의 여러 현장들을 오가며 계속해서 연구자로서 내가 성소수자 활동가들에게 동지, 우군, 협력자, 또는 최소한 무해한 존재임을 증명해야 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리 믿었다. 때로 그 증명 과정은 서울 도심 곳곳에서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며 구호를 외치는 퀴어 활동가들과 목소리를 맞춰가는 일이었고, 타이베이의 BDSM 클럽과 게이 온천, 폴댄스 학원을 누비며 벗고 욕망하는 퀴어한 몸들을 긍정하는 일이었으며, 싱가포르의 낯선 도심 속 정장을 입고 칵테일을 즐기는 코스모폴리탄 엘리트 퀴어들 사이에서 그들을 흉내내는 것이었다.5 내게 기꺼이 곁을 내어 준 활동가 동료들은 내 연구에 대해 묻기보단 내 다음 행선지와 다음 방문과 다음 계획에 대해 묻곤 했고, 나는 종종 그 질문들에 실린 크고 작은 바람과 기대와 실망의 무게들에 짓눌리곤 했다. 내 미욱한 이기와 욕심들로 인해 나의 현장과 활동가들의 현장이 멀어질 적엔 나를 혐오했고, 나의 현장과 활동가들의 현장이 겹쳐지는 드문 순간에는 비로소 나를 증명한 것 같은 마음에 환호했다. 계속해서 구성 중인 현장들 속에서 연구자로서의 나 역시도 현장의 불완전한 일부가 되어 현장과 함께 변태하며 동시에 현장에서의 증명을 갈구했던 것이다.
두 증명의 성패는 별개가 아니다. 필드워크가 지식생산의 주요한 방법이 되는 인류학 같은 분야에서 현장에서의 증명은 때로 학계에서의 증명의 필요조건이 된다. 연구자가 그곳에 그들과 함께 그들의 일부가 되어 가까이 혹은 깊숙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연구자가 보고 듣고 배운 것들에 무게를 더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때문에 연구자가 현장에서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과 전략들에 관한 학술적 논의가 계속해서 진전되어 왔을 것이다. 필드워크는 언제 시작되어 언제 끝나는지, 시작과 끝을 포함한 필드워크의 전 과정에서 연구자의 위치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연구자는 자신의 관계적 위치성을 언제 어떻게 현장의 사람들과 공유해야 하는지, 자료조사 및 수집의 범위와 적절성에 대해 연구자는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동의를 얻어야 하는지, 어떤 동의가 보다 잘 고지된 동의이며 이 같은 동의는 어떻게 확보되고 또 철회될 수 있는지, 필드워크의 전 과정에서 연구자와 현장의 사람들 사이에서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등의 권력관계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연구자는 어떻게 이 모든 질문들을 보다 성찰적으로 고려해 연구를 계획하고 수행하고 집필할 수 있는지, 이러한 질문들을 기반으로 한 연구윤리는 어떻게 제도화될 수 있는지. 어쩌면 현장에서의 증명 그 자체가 하나의 학술적 탐구의 장르가 됐고, 주로 위험하거나 접근이 어렵다고 여겨지는 현장에서의 증명은 학계에서 페티시와 센세이션의 대상이자 가치 있는 상품이 되기도 한다.6
어쩌면 바로 이 때문에 현장과 학계에서의 증명은 때로 어긋난다. 필드워크의 학술적 번역이 학계에서는 증명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 성공이 다시 현장에서의 증명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오기도 한다.7 인도 출신 의료인류학자인 사이바 발마(Saiba Varma)는 인도 점령 하 카슈미르 지역의 정신병원을 현장으로 삼아 군사 점령과 식민지화의 정치적, 물질적, 정신적 폭력에 대해 연구했다. 2020년 듀크대 출판부에서 출간된 발마의 책, 『점령된 클리닉: 카슈미르에서의 군사주의와 보살핌 The Occupied Clinic: Militarism and Care in Kashmir』은 의료인류학계로부터 찬사를 얻었고, 미국인류학회에서 수상했으며, 저자가 UC 샌디에고에서 종신교수직을 얻는 데 핵심 연구성과가 됐다. 그러나 출간 일 년 만에 발마의 책은 연구윤리 논란에 휩싸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카슈미르 점령과 식민지화에 주요 역할을 한 인도 정보기관의 간부라는 사실을 발마가 (점령과 식민지화의 피해자인) 연구참여자들에게 밝히지 않은 채 연구와 출판을 계속해 왔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발마와 교류하고 협업해 왔던 카슈미르 출신 연구자들과 남아시아계 연구자들, UC 샌디에고의 동료 연구자들 사이에서 발마의 공유되지 않은 위치성과 고지되지 않은 동의를 둘러싼 연구윤리 문제가 광범위하게 제기됐다.8 학계 내 증명의 성공이 현장 속 증명에 대한 질문들을 불러 일으켰고, 둘 사이의 어긋난 증명이 다시 학계 내 증명의 실패로 되돌아온 셈이다.
발마의 책과 마찬가지로 듀크대 출판부에서 2020년 출간된 편저 『퀴어 코리아 Queer Korea』가 한국에서 불러일으킨 논란은 필드워크에서의 증명의 문제가 머나먼 타국의 현장과 학계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9 편저의 한국어 번역 과정에서 인류학자 티머시 기츤(Timothy Gitzen)의 한국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챕터가 (또한 그의 박사논문 전체가) 필드워크에서 그가 만난 한국 활동가들의 실명/활동명 및 개인정보를 동의없이 담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사실을 접한 피해자들이 여러 차례 저자인 기츤과 편집자인 UC 샌디에고의 역사학자 토드 헨리(Todd Henry), 출판부 대표 편집자인 켄 위소커(Ken Wissoker) 등에게 책임있는 대응을 요구했지만 묵살당했고, 심지어 편저에 참여한 한 비백인 저자가 피해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자신의 챕터를 책에 싣지 않겠다고 알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편집자인 헨리는 기츤의 챕터를 배제한 영문 개정판을 발매하기로 하고 동시에 한국어 번역판의 출간을 강행했으나 이는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나 책임, 또는 그들과의 대화나 협의 없는 일방적 결정이었다. 2023년 출간된 한국어 번역판에서 헨리는 이러한 일방적 결정을 연구윤리라는 이름으로 상찬했지만, 피해자들 가운데 한 명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남웅 활동가가 피해자들의 문제제기를 지속적으로 묵살, 침묵시켜 온 기츤과 헨리에 대한 장문의 비판을 제기함으로써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10 기츤과 헨리는 각기 논란의 많은 부분이 의사소통 상의 오류나 오해라며 자신들의 연구실천을 비호했지만, 동시에 피해자 및 연대자들에게 법적 조치를 비롯한 직간접적 위협을 제기하고 비판을 봉쇄함으로써 논란의 핵심이 단지 연구윤리가 아니라 인종화된 권력관계임을 스스로 증명했다.11
『점령된 클리닉』과 『퀴어 코리아』를 둘러싼 연구윤리와 위치성, 권력관계 논쟁은 필드워크에서의 증명의 균열과 성패에 관해 재고하게 한다. 필드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많은 학술연구는 현장으로부터의 증명과 학계로부터의 증명을 동시에 요구 받으며, 이 두 증명의 요구는 계획과 집필을 포함한 연구의 전 과정에서 때로는 협력, 때로는 긴장관계에 놓인다. 아마도 발마와 기츤, 헨리 각자에게도 현장에서의 증명이 누구보다 더 간절했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언제쯤 현장을 학술적 언어로 번역해 학계에서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갈망이 현장에서의 증명을 아득히 초과한 것일까. 평판 좋은 학술 저널에 논문을 싣고, 저명한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고, 학회에서 수상하고, 명성을 드높여 여기저기에서 인터뷰와 초청강연을 하고, 유수의 대학에서 종신교수직을 얻고, 그리하여 학계에서 알려진 존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이 모든 것들을 위해 현장에서의 증명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일까. 연구자이자 현장의 외부인으로서 뛰어들고 맞닥뜨리고 또 재구성한 현장들 속에서 이들이 현장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나눈 교류와 우정의 얼마만큼이 진심이었는지, 혹은 추후 학계에서의 증명을 위한 고려와 계산이었을지를 구별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 나는 그들을 잘 알지 못하기에 그들 각자가 두 증명의 변화하는 무게들을 어떻게 마주하고 여기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기록만을 살필 뿐이다. 그들 중 누구도 공적으로 사과하고 책임지지 않았으며, 피해자 및 연대자들과 동등하게 대화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 또한 어떤 증명의 방식일 테다.
필드워크를 통해 지식생산에 참여하는 연구자로서 우리는 계속해서 필드워크를 둘러싼 두 증명—현장에서의 증명과 학계에서의 증명—의 요구를 맞닥뜨리고 이에 답해야만 한다. 두 증명은 반드시 위계적이거나 상충하지는 않는다. 현장에서의 증명은 학계에서의 증명과 결국 연결되어 있다. 진부한 언어처럼 보일지언정 현장에서의 보다 성찰적, 관계적, 윤리적인 연구실천은 보다 엄밀한 학술실천을 위한 필요조건이 된다. 두 증명 사이에 큰 간극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의 증명을 학계에서의 증명을 위해 전적으로 포기해서도 안 된다. 만일 그 간극이 현장에서의 문제제기로 인한 것이라면, 연구자는 문제제기를 묵살하거나 침묵시키거나 변명으로 우회하기보다 이를 책임 있게 맞닥뜨림으로써 문제제기와 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변태해 나갈 수도 있다. 어쩌면 어긋난 증명은 실패의 징후가 아니라 현장으로의 새로운 초대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끊임없이 누구에게 무엇을 또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를 어떤 식으로든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사이바 발마, 티머시 기츤, 토드 헨리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정민우
사회학자/퀴어 연구자
Van Maanen, John(2011), Tales of the Field: On Writing Ethnograph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
Jung, Minwoo(2024), “Rights Projects: A Relational Sociology of Rights in Globalization,” Sociological Theory, 42(3), 256-281.↩
Jung, Minwoo(2021), “Embracing the Nation: Strategic Deployment of Sexuality, Nation, and Citizenship in Singapore,” British Journal of Sociology, 72(5), 1229-1245; Jung, Minwoo(2024), “Imagining Sovereign Futures: The Marriage Equality Movement in Taiwan,” Social Movement Studies, 23(4), 462-478.↩
Jung, Minwoo(2022), “Quiet Politics: Queer Organizing in Corporate Singapore,” The Sociological Review, 70(5), 863-881. ↩
Jung, Minwoo(2024), “Flexible Masculinities: Negotiating Gender, Sexuality, and Ethnicity in Global Asia,” Current Sociology (online first). ↩
백인남성 중심적 필드워크 방법론이 필드워크의 주된 현장이 되는 공간과 사람들, 나아가 연구자들을 타자화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으로는 Small, Mario L.(2015), “De–exoticizing Ghetto Poverty: On the Ethics of Representation in Urban Ethnography,” City & Community,14(4), 352-358; Adjepong, Anima(2019), “Invading Ethnography: A Queer of Color Reflexive Practice,” Ethnography, 20(1), 27-46; Hanson, Rebecca, and Patricia Richards(2019), Harassed: Gender, Bodies, and Ethnographic Research,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
또 다른 사례로, 백인 사회학자 앨리스 고프먼(Alice Goffman)의 책 『도주 중: 한 미국 도시에서 도망자들의 삶 On the Run: Fugitive Life in an American City』의 학술적, 대중적 성공은 고프먼의 필드워크에서 자료와 주장의 투명성, 정당성 뿐 아니라 현장에서의 증명이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광범위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관련된 비판으로는 Lubet, Steven(2018), Interrogating Ethnography: Why Evidence Matters, Oxford University Press. ↩
“Statement on Anthropologist Saiba Varma,” Medium, Sep 20, 2021; “Does Nondisclosure of Familial Proximity to ‘Security State’ Compromise Research on Kashmir?” The Wire, Oct 3, 2021; “Two UCSD Faculty Resigns from Critical Gender Studies Executive Committee,” The UCSD Guardian, Feb 21, 2022. 발마는 성명을 통해 자신의 위치성을 연구참여자들과 공유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윤리적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
정민우(2023), 「불가능한 퀴어 이론」, 『문학동네』, 115, 130-151. ↩
남웅(2023), 「유감, 팀 깃즌과 『퀴어 코리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 2023년 2월 25일. ↩
정민우(2024), 「보론: 불가능한 퀴어 이론 이후」, 『크리티컬 포인트: 문학, 비평, 이론』, 227-228. 『퀴어 코리아』를 둘러싼 논란의 상세한 전개과정은 디콜로나이징 코리안 스터디즈 콜렉티브(Decolonizing Korean Studies Collective, DKSC)의 웹 아카이브를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