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2025.9.) l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 l 기획 주제
기록물의 신뢰성과 시간성을 재/해석하기
루인
경험의 (오래된) 정치화
조안 스콧(Joan W. Scott)은 1990년대 초반에 출판한 논문 “Experience”에서 경험의 본질화를 비판하고 경험 해석을 정치적 해석의 장으로 이동시켰다. 스콧의 관점에서 많은 역사 연구, 그리고 경험을 중시하는 페미니즘과 퀴어 연구는 특정 사건의 생존자나 억압과 탄압의 시기를 거쳐온 이들을 대상으로 인터뷰 연구를 진행할 때, 그 증언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한편으로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국가 폭력과 지배 규범에 근거한 해석을 문제 삼고 복잡한 사회적 층위와 비규범적 존재로 배제된 이들의 입장에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연다. 또한 특정 사건에 대한 경험이 모두가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증언의 다양성은 사안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방법이 된다. 하지만 경험 연구에서 경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개인의 경험이 언제나 이미 고정되어 있다는 식의 또 다른 본질론을 재생산한다. 그렇기에 스콧은 경험을 아무런 의심 없이 사용하는 것의 문제를 지적하며, 경험은 자명한 사건이기보다 “언제나 이미 해석이며, 해석이 필요한 상태”라고 지적한다.
경험을 자명한 것으로 가정하기보다 해석과 논쟁의 장으로 이동시키는 스콧의 논의는, 경험이 사회적 인식, 개인적 인식의 변화에 따라 다른 형태의 증언/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정확하게 포착한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퀴어가 혐오 대상인 사회일 때 ‘나’의 퀴어 경험은 절대 발설할 수 없거나, 영원히 망각된다. 하지만 퀴어 경험을 긍정하는 공간일 때 나의 퀴어 경험은 사회적 폭력과 억압, 차별의 피해로 재현될 수도 있고, 이성애-이원 젠더 체제가 강제된 사회에서 어떤 틈새를 만들어 낸 유쾌한 실천으로 의미화될 수도 있다. 즉, 경험은 자명하기보다 언제나 재발굴되고 재해석되고 재의미화되며, 상황에 따라 이 과정을 다른 형태로 갱신한다.
기록과 진술 사이
나는 인터뷰를 통해 경험의 증언을 듣고 연구를 하는 공부노동자가 아니라 남겨진 다양한 기록물을 재배치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의미망을 만드는 작업을 주로 한다. 그렇다면 출판물에 남겨진 사건과 행사의 기록은 경험과 달리 해석과 재해석의 경합 장이 아닌 것일까? 정부나 여러 단체가 생산한 기록물, 기자나 작가가 인터뷰 등을 통해 생산한 기록물, 나아가 개인의 일기와 같은 기록물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 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 따라 조작되고 변형될 수밖에 없다면, 인쇄된 형태의 기록물은 유통되기 시작한 이후 변형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시간에 따른 변형 가능성은 줄어든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생산 과정에서 생산자의 의도나 사회적 인식에 따른 왜곡, 의도적 변형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자나 문장을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기록물을 토대로 연구를 한다는 것은 기록물의 문자를 있는 그대로 믿기보다 기록물을 그것이 생산된 사회적 맥락에 배치시키고, 그 시절 살았던 이들의 기억과 교차 검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여기서 어려움은 비교, 검증할 대상 자체가 부재할 때다. 예를 들어 국가적 사건이나 사회적 관심이 상당한 사건이라면 교차검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그 정도로 큰 사건이 아니라고 해도 어느 정도 기사화된 사건이라면 어떤 형태로건 검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퀴어와 관련한 기록은 자주 단독으로 생산되고, 유일하게 존재할 때가 많다. 이런 기록은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1998년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23개 퀴어 단체가 긴 논의 과정을 통해 발족시킨 한국동성애자단체협의회(이하, 한동협)는, 협의회 발족을 알리는 성명서(DB-0000686)를 1998년 6월 27일에 발표한다. 성명서는 한동협 발족을 알리는 한편 한동협의 역사적 의미, 향후 운동의 방향 등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 퀴어 인권 운동사와 관련한 흥미로운 문장을 기록하고 있다.
| 1980년대 후반부터 조직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대한민국 동성애자 운동은 나름의 성장을 거듭해 문화 활동, 친목 도모, 인권 투쟁 등 다양한 기반 위에 활동하는 수많은 동성애자 단체들의 결성을 이끌어 내었다.4 |
한국 퀴어 인권 운동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문장은 어떤 당혹감과 함께 ‘설마?’, ‘혹시?’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2025년 현재 시점에서, 한국 퀴어 인권 운동은 대체로 1990년대 초반에 형성되었다고 평가된다. 1993년 12월 설립된 초동회를 ‘한국인’이 주축인 최초의 단체로서 운동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기본이다. 시기를 앞당긴다면 1991년 11월 주한외국인레즈비언모임 사포를 논할 수 있는데, 초동회에 참가한 활동가 중 일부가 사포에 참가했었고, 한국 운동을 ‘한국인 주축’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국 퀴어 인권 운동사의 출발은 그 기준을 무엇으로 삼든 1990년대 초반이다. 그런데 한동협 출발을 알리는 성명서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조직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문장은 기존의 익숙한 역사와는 다른 내용이다.
이 경우 해석은 여러 가지가 가능하지만 두 가지 정도만 살펴보자. 첫째, DB-0000686 문서에 적힌 저 문장이 참이라면? 협의체의 성명서는 활동가 단독으로 작성하기보다 여러 활동가가 검토한 뒤에 발표한다는 ‘통상의 관례’를 감안할 경우, 1998년 당시 퀴어 활동가는 한국 퀴어 인권 운동이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다는 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직화와 관련한 어떤 형태의 기록이나 구술을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한동협 성명서 작성에 관여한 여러 활동가는 “1980년대 후반부터 조직화”라는 문장에 동의할 수 있었다. 이럴 경우, 어떤 종류의 퀴어 운동 조직화가 1980년대 후반부터 있었고 1998년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후에는 그 사실이 잊혔고 지금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제 역사 해석이나 아카이브 연구를 주요 연구 방법으로 삼는 나 같은 공부노동자가 할 일은 간단하다. 당시 활동했던 이들의 증언을 요청하거나, 1980년대 중후반부터 나온 온갖 출판물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둘째, 한동협 성명서의 문장이 참이 아니라 거짓이라고 해도, 뭔가 석연찮은 지점은 남는다. DB-0000686 기록물의 전후 시기에 나온 성명서, 토론회 자료집, 교육 자료집 등 온갖 기록물을 살펴봐도 1980년대 후반에 조직화가 시작되었다는 기술은 찾기 어렵고 대체로 초동회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오타일 수 있지만 오타라기에는 석연찮다. ‘1980년대 후반’이 오타라고 하기에는 ‘1990년대 초반’과 비교할 때 모든 단어가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1990년대 초반’의 오타가 ‘1980년대 초반’으로 숫자를 잘못 작성했을 수는 있지만 초반과 후반까지 오타가 발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기대?)이 든다. 그렇기에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고 해도, 뭔가 잊힌 가능성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히 남는다.
그렇기에 DB-0000686 기록물의 저 문장을 처음 접한 다른 공부노동자라면, 특히 한국 퀴어 인권 운동사에 관심이 많은 공부노동자라면 나처럼 어떤 흥분과 ‘혹시?’라는 기대를 갖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 문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곧바로 협의회 발족에 적극 관여했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에게 문의했다. 그리고 그 활동가는 ‘오타’라고 답했다. 이는 기억과 경험이 사후 조작되듯, 문서 기록 역시 기록 작성자의 실수로 인해, 혹은 어떤 의도적 조작을 통해 무조건 신뢰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한동협 성명서의 경우, 해당 기록물을 잘 아는 인물을 통해 비교, 검증을 할 수 있고 그리하여 ‘혹시?’라는 기대감을 완전히 지우지는 않으면서도 일단은 오타로 판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퀴어 관련 모든 기록이 검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 아카이브에 소장하고 있는 1980년대 출판물 중 몇 종은 에이즈 위기를 겪고 있는 이태원의 트랜스젠더퀴어 업소(당시 명명으로는 게이 업소)의 운영자와 진행한 인터뷰를 담고 있다. 그 인터뷰에 따르면 전국에 50여 개에 가까운 트랜스젠더퀴어 업소가 있고, 한국 트랜스젠더퀴어 업소와 노동자를 응원하기 위해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한 트랜스젠더퀴어가 한국 업소를 방문하고 공연을 했다고 한다. 이 기록은 에이즈 위기로 어려움을 겪은 당시 이태원 트랜스젠더퀴어 업소의 상황을 가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국적 규모, 그리고 한국과 일본 트랜스젠더퀴어 업소 사이의 교류 등 많은 정보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당시 한국 트랜스젠더업소에서 일했던 한 선배에게 일본 트랜스젠더퀴어의 방문 및 공연과 관련해서 물었더니 그런 일이 없었다고, 적어도 자신은 들은 적 없었다고 답했다. 인터뷰 작가가 트랜스젠더퀴어 업소 운영자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작성한 출판물과 당시 활동했던 선배의 진술 사이에 발생하는 큰 차이. 이제 가능성은 업소 운영자의 허풍이었거나, 작가가 업소 운영자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작성했거나, 작가가 허풍을 덧붙여 썼거나, 선배의 기억에서 망각되었거나, 혹은 다른 여러 가능성의 조합된 것일 수 있다. 여기서 어떤 해석을 할 수 있을까? 일본의 유명 트랜스젠더퀴어가 한국 업소에서 공연을 했다는 기록이 사실이라면 이는 1980년대 한국 트랜스젠더퀴어 업소 문화와 국제적 교류의 형태를 탐색하는데 있어 흥미로운 단서가 된다. 하지만 완벽하게 교차 검증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당시 활동했던 선배의 기억/경험은 전술한 기록을 부정한다. 따라서 내가 언급한 문서는 당장은 출처를 밝힐 수 없는 허위 기록일 가능성이 남는다.
짧은 몇 개의 문장으로 온갖 상상을 하는 이유는 아카이브 연구에서 이런 짧은 문장이 중요한 역할을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퀴어 인권 운동은 종종 스톤월 항쟁이 최초의 항쟁이 아님에도 최초의 항쟁처럼 기록하고, 신화적 기원처럼 회자될 때가 많다. 트랜스젠더퀴어 역사학자 수잔 스트라이커는 1970년 발간된 팜플릿에서 “텐더로인에서 총체적 난동이 발생했다”는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이 문장을 근거로 스트라이커는 집요하게 조사를 진행했고, 1966년 8월, 텐더로인 지역에 위치한 컴튼스 카페테리아에서 항쟁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발굴함으로써 미국 퀴어 운동의 역사를 다시 쓰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즉 기존 이해를 벗어나는 문장은 새로운 논의와 연구의 가능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가볍게 오류로 넘기기 어렵다. 하지만 그 탐색은 당대를 경험한 이들의 증언, 그리고 또 다른 기록물과 만나야만 의미값을 가질 수 있다. 트랜스젠더퀴어 역사 연구, 기록 연구는 여기서 난국이 발생한다. 남겨진 기록은 단편적이고, 때로 단 하나뿐이며 그 기록을 알고 있는 이들이 현재 부재할 때, 과거 기록은 무엇을 의미할까? 기록물 사이의 의미망 만들기를 실패할 때 그 기록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지금도 내게 어려움으로 남아 있다.
역사성과 시간성을 다시 질문하기
역사적 글쓰기를 할 때의 곤란함은 또 다른 방향에서 전개된다. 이 글에서 나는 게이 업소를 트랜스젠더퀴어 업소로, 동성애자를 퀴어로 치환했다. 범주 명명의 문제는 역사 기록에서 언제나 어려운 지점이다. 미셸 푸코를 비롯한 많은 현대 철학자, 이론가는 섹슈얼리티 연구와 정체성 범주 관련해서 역사적 차이를 강조했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시대 동성간 성행위를 현대적 의미의 동성애나 퀴어로 명명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제 공부노동자에게는 상식에 가깝다. 하지만 정체성의 역사와 행위의 역사를 구분하는 작업은 종종 둘 사이의 헷갈림과 뒤얽힘을 생성한다. 예를 들어 존 보스웰(John Boswell)이 1990년에 쓴 논문 “Concepts, Experience and Sexuality”은 본질주의와 구성주의의 개념적 논의를 전개하며 구성주의자는 종종 본질주의를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만 하는 논의로 취급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보스웰은 그리스부터 동성애 행위의 긴 역사를 탐색하는데 이 작업은 정체성을 본질화하는 것 같지만, 행위를 둘러싼 사회적 의미가 변해가는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본질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방법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또한 보스웰의 논의를 따라가면, 본질주의는 사회적 역동 속에서 그 의미가 다르게 구성되고, 행위와 정체성을 구분하는 구성주의적 논의 역시 ‘그럼에도 행위의 긴 역사’를 반복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그런데 보스웰의 작업에 퀴어 이론의 식민성을 다룬 논의를 겹쳐 읽고 있노라면 다른 질문이 등장한다. 왜 퀴어-정체성 관련 논의는 정체성 명명의 시간적/역사적 차이는 강조하면서 동시대 지역적 차이는 그 정도로 강조되지 않는가? 이것은 내가 한채윤과 함께 『퀴어 한국사』를 작업하는 과정에서 가진 질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동성간 관계로 기록된 인물을 동성애자로 명명하는 것에는 많은 변명이 필요하다. 1980년대 ‘게이’ 업소를 트랜스젠더퀴어 업소로 바꿔 기록하는 것에도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그럼 2025년 미국의 퀴어와 한국의 퀴어와 팔레스타인의 퀴어를 동일하게 퀴어로 명명하는 행위에는 왜 문제가 없거나 덜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대만의 혼인평등 운동을 다룬 잉-차오 카오(Ying-Chao Kao)는 대만에서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자 미국의 여러 퀴어 이론가들이 동성애규범성이 반복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카오는 동성애규범성이라는 개념이 빠르게 유행하면서 지역의 특성은 무시되고 미국식 동성애규범성이 전세계에 일괄 적용되고 있음을 문제 삼는다. 그리하여 미국에서 동성결혼 운동이 전개되는 양상과 대만(혹은 다른 여러 지역)에서 동성결혼 운동이 전개되는 양상 사이의 차이는 무시되고 동성애규범적이라는 비판이 보편화되는 방식을 문제 삼으며, 퀴어 이론의 식민주의를 경계한다. 이 지적을, 나의 고민과 연결해서 변주하면, 50년 전 인물을 퀴어로 명명하는 것에는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내가 거주하는 지역과 다른 문화권에서 사용하는 퀴어라는 명명의 의미가 전세계적으로 동일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태도에는 왜 변명이 필요하지 않은가? 다른 말로 어떤 차이(시간)는 매우 조심하고 또 설명이 필요하다면, 다른 차이(지역이나 문화)는 덜 조심해도 괜찮다는 그 믿음 자체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시간 차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지역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차이 등을 은폐하는 장치가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간성이 서구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체성에서 시간성/역사성의 강조가 무엇을 누락시키고 어떤 가치를 보편화시키는지를 질문하는 것은 중요하다.
역사 기록을 탐색하는 방법을 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이 이 정도밖에 안 될 리 없다. 하지만 이미 발굴된 기록물의 신뢰성을 둘러싼 해석, 그리고 그 기록물에 등장하는 인물의 범주를 명명하는 방식은 나와 같은 공부노동자에게는 반복되는 어려움이다. 나는 여기에 명확한 답을 찾기보다 질문과 질문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모색했지만 이것이 최선이 아님을 알기에 여전히 괴로울 뿐이다.
루인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소장이며,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의 설립부터 함께한 상근활동가다.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의 이론화를 모색하는 한편, 트랜스젠더퀴어를 경유하거나 스쳐 지나간 한국의 역사, 범죄, 폭력을 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Scott, Joan W. (1992), “Experience,” in Judith Butler and Joan W. Scott(eds), Feminists Theorize the Political. New York: Routledge. pp. 22-40.↩
Scott, Ibid, p.37.↩
한국동성애자단체협의회(1998), "성명서: 억압과 차별에서 평등과 공존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하나로 단결한다! [한국 동성애자 단체 협의회 발족에 부쳐],"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문서번호 DB-0000686.↩
한국동성애자단체협의회, 위의 글.↩
루인, 한채윤(2025), 『퀴어 한국사: 1일 1페이지 퀴어한 역사 읽기』, 서울: 이매진, 99-102쪽.↩
스트라이커, 수잔(2016), 『트랜스젠더의 역사』, 제이, 루인 옮김, 서울: 이매진, 109쪽.↩
Boswell, John(1990), “Categories, Experience and Sexuality”, in Edward Stein(ed), Forms of Desire: Sexual Orientation and the Social Constructionist Controversy, New York: Routledge, pp. 135-138. ↩
Kao, Ying-Chao(2024), “The Coloniality of Queer Theory: The Effects of "Homonormativity" on Transnational Taiwan's Path to Equality,” Sexualities, 27(1-2), 136-153. ↩
2호(2025.9.) l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 l 기획 주제
기록물의 신뢰성과 시간성을 재/해석하기
루인
경험의 (오래된) 정치화
조안 스콧(Joan W. Scott)은 1990년대 초반에 출판한 논문 “Experience”에서 경험의 본질화를 비판하고 경험 해석을 정치적 해석의 장으로 이동시켰다.1 스콧의 관점에서 많은 역사 연구, 그리고 경험을 중시하는 페미니즘과 퀴어 연구는 특정 사건의 생존자나 억압과 탄압의 시기를 거쳐온 이들을 대상으로 인터뷰 연구를 진행할 때, 그 증언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한편으로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국가 폭력과 지배 규범에 근거한 해석을 문제 삼고 복잡한 사회적 층위와 비규범적 존재로 배제된 이들의 입장에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연다. 또한 특정 사건에 대한 경험이 모두가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증언의 다양성은 사안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방법이 된다. 하지만 경험 연구에서 경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개인의 경험이 언제나 이미 고정되어 있다는 식의 또 다른 본질론을 재생산한다. 그렇기에 스콧은 경험을 아무런 의심 없이 사용하는 것의 문제를 지적하며, 경험은 자명한 사건이기보다 “언제나 이미 해석이며, 해석이 필요한 상태”라고 지적한다.2
경험을 자명한 것으로 가정하기보다 해석과 논쟁의 장으로 이동시키는 스콧의 논의는, 경험이 사회적 인식, 개인적 인식의 변화에 따라 다른 형태의 증언/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정확하게 포착한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퀴어가 혐오 대상인 사회일 때 ‘나’의 퀴어 경험은 절대 발설할 수 없거나, 영원히 망각된다. 하지만 퀴어 경험을 긍정하는 공간일 때 나의 퀴어 경험은 사회적 폭력과 억압, 차별의 피해로 재현될 수도 있고, 이성애-이원 젠더 체제가 강제된 사회에서 어떤 틈새를 만들어 낸 유쾌한 실천으로 의미화될 수도 있다. 즉, 경험은 자명하기보다 언제나 재발굴되고 재해석되고 재의미화되며, 상황에 따라 이 과정을 다른 형태로 갱신한다.
기록과 진술 사이
나는 인터뷰를 통해 경험의 증언을 듣고 연구를 하는 공부노동자가 아니라 남겨진 다양한 기록물을 재배치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의미망을 만드는 작업을 주로 한다. 그렇다면 출판물에 남겨진 사건과 행사의 기록은 경험과 달리 해석과 재해석의 경합 장이 아닌 것일까? 정부나 여러 단체가 생산한 기록물, 기자나 작가가 인터뷰 등을 통해 생산한 기록물, 나아가 개인의 일기와 같은 기록물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 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 따라 조작되고 변형될 수밖에 없다면, 인쇄된 형태의 기록물은 유통되기 시작한 이후 변형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시간에 따른 변형 가능성은 줄어든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생산 과정에서 생산자의 의도나 사회적 인식에 따른 왜곡, 의도적 변형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자나 문장을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기록물을 토대로 연구를 한다는 것은 기록물의 문자를 있는 그대로 믿기보다 기록물을 그것이 생산된 사회적 맥락에 배치시키고, 그 시절 살았던 이들의 기억과 교차 검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여기서 어려움은 비교, 검증할 대상 자체가 부재할 때다. 예를 들어 국가적 사건이나 사회적 관심이 상당한 사건이라면 교차검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그 정도로 큰 사건이 아니라고 해도 어느 정도 기사화된 사건이라면 어떤 형태로건 검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퀴어와 관련한 기록은 자주 단독으로 생산되고, 유일하게 존재할 때가 많다. 이런 기록은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1998년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23개 퀴어 단체가 긴 논의 과정을 통해 발족시킨 한국동성애자단체협의회(이하, 한동협)는, 협의회 발족을 알리는 성명서(DB-0000686)를 1998년 6월 27일에 발표한다.3 성명서는 한동협 발족을 알리는 한편 한동협의 역사적 의미, 향후 운동의 방향 등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 퀴어 인권 운동사와 관련한 흥미로운 문장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 퀴어 인권 운동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문장은 어떤 당혹감과 함께 ‘설마?’, ‘혹시?’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2025년 현재 시점에서, 한국 퀴어 인권 운동은 대체로 1990년대 초반에 형성되었다고 평가된다.5 1993년 12월 설립된 초동회를 ‘한국인’이 주축인 최초의 단체로서 운동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기본이다. 시기를 앞당긴다면 1991년 11월 주한외국인레즈비언모임 사포를 논할 수 있는데, 초동회에 참가한 활동가 중 일부가 사포에 참가했었고, 한국 운동을 ‘한국인 주축’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국 퀴어 인권 운동사의 출발은 그 기준을 무엇으로 삼든 1990년대 초반이다. 그런데 한동협 출발을 알리는 성명서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조직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문장은 기존의 익숙한 역사와는 다른 내용이다.
이 경우 해석은 여러 가지가 가능하지만 두 가지 정도만 살펴보자. 첫째, DB-0000686 문서에 적힌 저 문장이 참이라면? 협의체의 성명서는 활동가 단독으로 작성하기보다 여러 활동가가 검토한 뒤에 발표한다는 ‘통상의 관례’를 감안할 경우, 1998년 당시 퀴어 활동가는 한국 퀴어 인권 운동이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다는 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직화와 관련한 어떤 형태의 기록이나 구술을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한동협 성명서 작성에 관여한 여러 활동가는 “1980년대 후반부터 조직화”라는 문장에 동의할 수 있었다. 이럴 경우, 어떤 종류의 퀴어 운동 조직화가 1980년대 후반부터 있었고 1998년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후에는 그 사실이 잊혔고 지금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제 역사 해석이나 아카이브 연구를 주요 연구 방법으로 삼는 나 같은 공부노동자가 할 일은 간단하다. 당시 활동했던 이들의 증언을 요청하거나, 1980년대 중후반부터 나온 온갖 출판물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둘째, 한동협 성명서의 문장이 참이 아니라 거짓이라고 해도, 뭔가 석연찮은 지점은 남는다. DB-0000686 기록물의 전후 시기에 나온 성명서, 토론회 자료집, 교육 자료집 등 온갖 기록물을 살펴봐도 1980년대 후반에 조직화가 시작되었다는 기술은 찾기 어렵고 대체로 초동회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오타일 수 있지만 오타라기에는 석연찮다. ‘1980년대 후반’이 오타라고 하기에는 ‘1990년대 초반’과 비교할 때 모든 단어가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1990년대 초반’의 오타가 ‘1980년대 초반’으로 숫자를 잘못 작성했을 수는 있지만 초반과 후반까지 오타가 발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기대?)이 든다. 그렇기에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고 해도, 뭔가 잊힌 가능성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히 남는다.
그렇기에 DB-0000686 기록물의 저 문장을 처음 접한 다른 공부노동자라면, 특히 한국 퀴어 인권 운동사에 관심이 많은 공부노동자라면 나처럼 어떤 흥분과 ‘혹시?’라는 기대를 갖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 문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곧바로 협의회 발족에 적극 관여했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에게 문의했다. 그리고 그 활동가는 ‘오타’라고 답했다. 이는 기억과 경험이 사후 조작되듯, 문서 기록 역시 기록 작성자의 실수로 인해, 혹은 어떤 의도적 조작을 통해 무조건 신뢰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한동협 성명서의 경우, 해당 기록물을 잘 아는 인물을 통해 비교, 검증을 할 수 있고 그리하여 ‘혹시?’라는 기대감을 완전히 지우지는 않으면서도 일단은 오타로 판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퀴어 관련 모든 기록이 검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 아카이브에 소장하고 있는 1980년대 출판물 중 몇 종은 에이즈 위기를 겪고 있는 이태원의 트랜스젠더퀴어 업소(당시 명명으로는 게이 업소)의 운영자와 진행한 인터뷰를 담고 있다. 그 인터뷰에 따르면 전국에 50여 개에 가까운 트랜스젠더퀴어 업소가 있고, 한국 트랜스젠더퀴어 업소와 노동자를 응원하기 위해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한 트랜스젠더퀴어가 한국 업소를 방문하고 공연을 했다고 한다. 이 기록은 에이즈 위기로 어려움을 겪은 당시 이태원 트랜스젠더퀴어 업소의 상황을 가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국적 규모, 그리고 한국과 일본 트랜스젠더퀴어 업소 사이의 교류 등 많은 정보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당시 한국 트랜스젠더업소에서 일했던 한 선배에게 일본 트랜스젠더퀴어의 방문 및 공연과 관련해서 물었더니 그런 일이 없었다고, 적어도 자신은 들은 적 없었다고 답했다. 인터뷰 작가가 트랜스젠더퀴어 업소 운영자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작성한 출판물과 당시 활동했던 선배의 진술 사이에 발생하는 큰 차이. 이제 가능성은 업소 운영자의 허풍이었거나, 작가가 업소 운영자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작성했거나, 작가가 허풍을 덧붙여 썼거나, 선배의 기억에서 망각되었거나, 혹은 다른 여러 가능성의 조합된 것일 수 있다. 여기서 어떤 해석을 할 수 있을까? 일본의 유명 트랜스젠더퀴어가 한국 업소에서 공연을 했다는 기록이 사실이라면 이는 1980년대 한국 트랜스젠더퀴어 업소 문화와 국제적 교류의 형태를 탐색하는데 있어 흥미로운 단서가 된다. 하지만 완벽하게 교차 검증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당시 활동했던 선배의 기억/경험은 전술한 기록을 부정한다. 따라서 내가 언급한 문서는 당장은 출처를 밝힐 수 없는 허위 기록일 가능성이 남는다.
짧은 몇 개의 문장으로 온갖 상상을 하는 이유는 아카이브 연구에서 이런 짧은 문장이 중요한 역할을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퀴어 인권 운동은 종종 스톤월 항쟁이 최초의 항쟁이 아님에도 최초의 항쟁처럼 기록하고, 신화적 기원처럼 회자될 때가 많다. 트랜스젠더퀴어 역사학자 수잔 스트라이커는 1970년 발간된 팜플릿에서 “텐더로인에서 총체적 난동이 발생했다”6는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이 문장을 근거로 스트라이커는 집요하게 조사를 진행했고, 1966년 8월, 텐더로인 지역에 위치한 컴튼스 카페테리아에서 항쟁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발굴함으로써 미국 퀴어 운동의 역사를 다시 쓰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즉 기존 이해를 벗어나는 문장은 새로운 논의와 연구의 가능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가볍게 오류로 넘기기 어렵다. 하지만 그 탐색은 당대를 경험한 이들의 증언, 그리고 또 다른 기록물과 만나야만 의미값을 가질 수 있다. 트랜스젠더퀴어 역사 연구, 기록 연구는 여기서 난국이 발생한다. 남겨진 기록은 단편적이고, 때로 단 하나뿐이며 그 기록을 알고 있는 이들이 현재 부재할 때, 과거 기록은 무엇을 의미할까? 기록물 사이의 의미망 만들기를 실패할 때 그 기록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지금도 내게 어려움으로 남아 있다.
역사성과 시간성을 다시 질문하기
역사적 글쓰기를 할 때의 곤란함은 또 다른 방향에서 전개된다. 이 글에서 나는 게이 업소를 트랜스젠더퀴어 업소로, 동성애자를 퀴어로 치환했다. 범주 명명의 문제는 역사 기록에서 언제나 어려운 지점이다. 미셸 푸코를 비롯한 많은 현대 철학자, 이론가는 섹슈얼리티 연구와 정체성 범주 관련해서 역사적 차이를 강조했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시대 동성간 성행위를 현대적 의미의 동성애나 퀴어로 명명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제 공부노동자에게는 상식에 가깝다. 하지만 정체성의 역사와 행위의 역사를 구분하는 작업은 종종 둘 사이의 헷갈림과 뒤얽힘을 생성한다. 예를 들어 존 보스웰(John Boswell)이 1990년에 쓴 논문 “Concepts, Experience and Sexuality”은 본질주의와 구성주의의 개념적 논의를 전개하며 구성주의자는 종종 본질주의를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만 하는 논의로 취급한다는 점에 주목한다.7 보스웰은 그리스부터 동성애 행위의 긴 역사를 탐색하는데 이 작업은 정체성을 본질화하는 것 같지만, 행위를 둘러싼 사회적 의미가 변해가는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본질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방법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또한 보스웰의 논의를 따라가면, 본질주의는 사회적 역동 속에서 그 의미가 다르게 구성되고, 행위와 정체성을 구분하는 구성주의적 논의 역시 ‘그럼에도 행위의 긴 역사’를 반복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그런데 보스웰의 작업에 퀴어 이론의 식민성을 다룬 논의를 겹쳐 읽고 있노라면 다른 질문이 등장한다. 왜 퀴어-정체성 관련 논의는 정체성 명명의 시간적/역사적 차이는 강조하면서 동시대 지역적 차이는 그 정도로 강조되지 않는가? 이것은 내가 한채윤과 함께 『퀴어 한국사』7를 작업하는 과정에서 가진 질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동성간 관계로 기록된 인물을 동성애자로 명명하는 것에는 많은 변명이 필요하다. 1980년대 ‘게이’ 업소를 트랜스젠더퀴어 업소로 바꿔 기록하는 것에도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그럼 2025년 미국의 퀴어와 한국의 퀴어와 팔레스타인의 퀴어를 동일하게 퀴어로 명명하는 행위에는 왜 문제가 없거나 덜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대만의 혼인평등 운동을 다룬 잉-차오 카오(Ying-Chao Kao)는 대만에서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자 미국의 여러 퀴어 이론가들이 동성애규범성이 반복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는 점에 주목한다.8 카오는 동성애규범성이라는 개념이 빠르게 유행하면서 지역의 특성은 무시되고 미국식 동성애규범성이 전세계에 일괄 적용되고 있음을 문제 삼는다. 그리하여 미국에서 동성결혼 운동이 전개되는 양상과 대만(혹은 다른 여러 지역)에서 동성결혼 운동이 전개되는 양상 사이의 차이는 무시되고 동성애규범적이라는 비판이 보편화되는 방식을 문제 삼으며, 퀴어 이론의 식민주의를 경계한다. 이 지적을, 나의 고민과 연결해서 변주하면, 50년 전 인물을 퀴어로 명명하는 것에는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내가 거주하는 지역과 다른 문화권에서 사용하는 퀴어라는 명명의 의미가 전세계적으로 동일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태도에는 왜 변명이 필요하지 않은가? 다른 말로 어떤 차이(시간)는 매우 조심하고 또 설명이 필요하다면, 다른 차이(지역이나 문화)는 덜 조심해도 괜찮다는 그 믿음 자체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시간 차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지역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차이 등을 은폐하는 장치가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간성이 서구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체성에서 시간성/역사성의 강조가 무엇을 누락시키고 어떤 가치를 보편화시키는지를 질문하는 것은 중요하다.
역사 기록을 탐색하는 방법을 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이 이 정도밖에 안 될 리 없다. 하지만 이미 발굴된 기록물의 신뢰성을 둘러싼 해석, 그리고 그 기록물에 등장하는 인물의 범주를 명명하는 방식은 나와 같은 공부노동자에게는 반복되는 어려움이다. 나는 여기에 명확한 답을 찾기보다 질문과 질문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모색했지만 이것이 최선이 아님을 알기에 여전히 괴로울 뿐이다.
루인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소장이며,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의 설립부터 함께한 상근활동가다.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의 이론화를 모색하는 한편, 트랜스젠더퀴어를 경유하거나 스쳐 지나간 한국의 역사, 범죄, 폭력을 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Scott, Joan W. (1992), “Experience,” in Judith Butler and Joan W. Scott(eds), Feminists Theorize the Political. New York: Routledge. pp. 22-40.↩
Scott, Ibid, p.37.↩
한국동성애자단체협의회(1998), "성명서: 억압과 차별에서 평등과 공존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하나로 단결한다! [한국 동성애자 단체 협의회 발족에 부쳐],"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문서번호 DB-0000686.↩
한국동성애자단체협의회, 위의 글.↩
루인, 한채윤(2025), 『퀴어 한국사: 1일 1페이지 퀴어한 역사 읽기』, 서울: 이매진, 99-102쪽.↩
스트라이커, 수잔(2016), 『트랜스젠더의 역사』, 제이, 루인 옮김, 서울: 이매진, 109쪽.↩
Boswell, John(1990), “Categories, Experience and Sexuality”, in Edward Stein(ed), Forms of Desire: Sexual Orientation and the Social Constructionist Controversy, New York: Routledge, pp. 135-138. ↩
Kao, Ying-Chao(2024), “The Coloniality of Queer Theory: The Effects of "Homonormativity" on Transnational Taiwan's Path to Equality,” Sexualities, 27(1-2), 136-1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