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25.9)]기획의 변: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

 2호(2025.9.)  l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

기획의 변: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

양준호



“도대체 다들 퀴어 이론을 어디서 공부하고 있는 걸까?” 이번 호를 기획하는 첫 번째 회의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퀴어 이론을 한 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영미권에서 퀴어 이론을 다루는 글이 인터넷에 해적판으로 번역되어 돌아다니는 것을 읽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또, 서울을 중심으로 퀴어 이론을 다루는 여러 세미나나 스터디에 참여해 봤을 수도 있다. 퀴어 이론을 공부한 기억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대부분이 이렇게 제도권 교육 바깥에서 고군분투 했던 경험을 떠올릴 것 같다.

물론, 질문을 퀴어 이론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퀴어 이론’은 1990년대 미국이라는 특정한 역사적, 지리적 환경을 기원으로 하는 이론 구성체다. 최근 퀴어 이론의 이러한 미국 중심성을 비판하고 그것을 초국적으로 확장하는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말이다. 게다가 퀴어 이론이 반드시 성소수자/퀴어 연구에서 생산되는 이론을 모두 포괄하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성소수자/퀴어 지식이 모두 ‘퀴어 이론’이라는 이름에 흡수되고 대표되는 현상에 대해 질문할 필요가 있겠다. 퀴어 이론이라는 용어와 성소수자/퀴어 연구라는 용어가 반드시 충돌하는 것도 아니지만, 단순히 이론의 사용이나 적용을 넘어서 다양한 방식의 연구들이 실행되는 구체적 현장을 들여다 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국 학계는 성소수자/퀴어 연구를 진지한 지식으로 취급하지 않고 그저 소규모 인구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느라 세계와 삶과 ‘우리’에 관해서는 알려줄 바가 없는 협소한 지식으로 다룬다. 대학에서는 여전히 성소수자/퀴어 연구와 관련한 수업이 부재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연구를 지도해 줄 선생님 또한 턱 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런 환경에서 도대체 다들 어떻게 연구를 시작하고 지속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 호의 주제는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방법”이다. 지난 창간호의 주제가 탈식민적 맥락에서 연구자들 각자가 경험한 퀴어 연구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특집호에서는 다양한 환경에 있는 연구자들이 구체적으로 연구를 어떻게 수행하는지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보건학, 사회학, 문화학, 영화학, 여성학, 미디어연구, 인류학,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등 여러 학제에서 공부하는 연구자들이 양적 방법, 참여 관찰, 심층 면접, 역사 연구, 이론 연구, 문헌 연구 등의 방법을 통해 연구를 시작하고 지속해 온 우여곡절을 들려준다.

먼저 루인의 "기록물의 신뢰성과 시간성을 재/해석하기"는 기록물을 다루는 아카이브 연구자로서 가지고 있는 질문들을 나눈다. 기록물을 해석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특히 기록이 없거나 부족하여 교차 검증하기 어렵다는 것이 퀴어 역사 기록물의 특성이라면, 퀴어 역사 연구는 어떻게 가능한가? 퀴어 역사 기록물 연구는 실증 자료를 발굴해 객관적 사실을 증명하는 일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차라리 기록의 단편과 증언의 부재 속에서 기록물 사이의 의미망을 만드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더 잦다. 연구자는 기존에 알려진 사실과 충돌하는 몇몇 짧은 기록과 접촉하면서 ‘설마?’, ‘혹시?’하는 호기심과 기대를 갖고 여러 가지 가정과 상상을 동원해 역사를 재구성하려 애쓴다. 

정민우의 "필드워크와 증명의 정치"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 세 국가의 성소수자 운동 현장을 비교 연구한 경험을 바탕으로 참여관찰 연구가 직면하는 증명의 정치와 윤리의 문제를 논한다. 현장의 행위자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현장을 구성해 내고 그 현장을 학술적 언어로 번역해 학계에 전달하는 참여 관찰 연구의 특성상, 연구자는 학계 내부에서 요구받는 증명만이 아니라 현장에서도 스스로를 증명할 요구를 받게 된다. 정민우는 『점령된 클리닉: 카슈미르에서의 군사주의와 보살핌 The Occupied Clinic: Militarism and Care in Kashmir』과 『퀴어 코리아 Queer Korea』가 불러온 현장 연구의 윤리 및 권력 관계에 대한 논쟁을 재소환하며, 현장에서 요구받는 연구 윤리와 학술적 엄밀함이 결국 깊게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는 점을 복기한다.

이혜민의 "연구비 지원으로 그어진 경계선"은 양적 방법을 통해 성소수자의 건강 상태를 측정하고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특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연구비 지원에 얽힌 지식 생산의 정치경제적 문제를 조명한다. 국가대표성 있는 설문조사가 성소수자 정체성을 따로 측정하지 않기 때문에, 국내 성소수자 건강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직접 설문조사를 수행해야 하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성소수자 연구를 위해 연구비를 지원하면 국내 전체 인구 중 성소수자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공식적 데이터가 부재하다는 이유로 연구의 필요성을 의심받게 되기도 한다.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이 연구를 시작할 근거보다는 연구 지원의 필요성을 의심하게 되는 조건으로 뒤바뀔 때, 이 순환적 굴레 속에서 성소수자 연구는 지식으로서의 가치를 부정당한다.

정성조의 "성소수자/퀴어 연구라는 '궂은일'"은 '한국성소수자연구아카이브'(2024)와 '성소수자/퀴어연구 학술환경 실태조사'(2025)의 결과를 검토하면서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퀴어 연구의 지형을 다각도에서 살펴본다. 1964년부터 2021년까지 발표된 성소수자/퀴어 연구는 양적으로 꾸준히 증가했지만 성소수자/퀴어 연구를 ‘궂은 일(dirty work)’로 만드는 제도적 관행은 아직도 남아 개별 대학원생과 연구자를 “‘안전한 주제’로의 도피, 해외로의 이탈, 극소수 대학으로의 편중이라는 생존 전략으로” 내몰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관행은 개별 연구자들을 어려움에 처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젠더, 섹슈얼리티, 퀴어 지식을 합당한 지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소외시킴으로써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이런 현재적 지형 속에서 한국성소수자/퀴어연구학회의 출범이 가지는 의미와 과제를 정리한다.

"퀴어 방법론: 학제간 연구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은 2025년 7월 11일 금요일 개최된 한국성소수자/퀴어연구학회 학술대회에서 진행한 라운드테이블을 정리한 것이다. 김경내는 사회학 분과에서, 김정래는 인류학 분과에서, 허성원은 문화학 분과에서, 권순호는 HCI 분과에서 각각 성소수자/퀴어 연구를 진행하며 마주하는 방법/방법론적 난제들을 논한다. 양적 연구, 질적 연구, 참여 관찰 연구, 이론 연구, 역사 연구, 디자인 등 다방면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연구자들은 간학제적 특성을 갖고 있는 성소수자/퀴어 연구가 기존의 분과 학문의 전통과 마찰하며 빚는 어려움과 앞으로의 과제를 공유한다.

이번 호부터는 새 코너로 '대담'과 '신진연구' 지면을 마련하였다. 성소수자/퀴어 연구와 관련된 단체의 활동과 고민을 이야기하는 대담 코너의 시작은 퀴어영화 연구그룹과의 대담 "동료와 퀴어함을 찾아 가기"가 열었다. 다양한 연구대상과 방법론을 포괄하는 영화학의 특성은 개별 영화 연구자들의 훈련 과정을 어렵게 만든다. 더구나, 코스웍 기간 동안 페미니즘, 젠더, 섹슈얼리티, 성소수자, 퀴어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회는 일회적이거나 제한적일 뿐더러 퀴어영화 연구 방법론을 수학하는 일은 더욱 녹록치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퀴어영화 연구자들은 어떤 길을 찾아 다녔을까? 문아영과 이문우는 한국 영화학의 학제 속에서 퀴어영화 연구라는 관심사를 탐색하고 구체화시켰던 자신들의 학업적인 여정을 밝히며, 이후 너른 의미의 비평적 활동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가치들을 이야기한다.

신진연구 코너에서는 최근 발간된 성소수자/퀴어 관련 학위논문의 핵심 내용과 문제의식을 소개한다. 이번 호에는 김시언, 양준호, 김지은 세 연구자의 석사학위논문을 소개한다. 김시언은 「퀴어 코미디와 수치심의 정동 정치: 국내 퀴어 유튜브 및 팟캐스트 콘텐츠와 구독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2024)를, 김지은은 「한국 TERF 세력의 모순적 위치 설정과 자기 정당화 전략: 글로벌 반(反) 트랜스 운동과 관계 맺기」(2024)를, 양준호는 「젠더비평으로서 트랜스」(2025)를 쓰게 된 맥락과 집필 과정에서의 고민들을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