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25.12)]페미니즘은 돌아오는 거야

3호(2025.12.)  l  퀴어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페미니즘 리부트’ 10년  l  신진연구

페미니즘은 돌아오는 거야

 「‘페미니즘 리부트’이후 몸과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여성운동: 집합적 정체성, 연대의 재/구성 과정과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쟁투」 (2025)

박재승


신진연구 코너에서는 최근 출간된 성소수자/퀴어 관련 학위논문을 소개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2019년, 페미니즘을 리부트한‘영영-페미’1들의 활동이 사그라드는 것 같은 시기였다. 그들의 궤적을 놓치고 싶지 않아 기록하기로 마음먹고 대학원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으로부터 5년도 채 지나지 않아, 해당 운동이 연구 주제로 적합하지 않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코스웍 내에 졸업하지 못하고 2024년에 논문을 마무리하게 되면서, 무려 약 9년이라는 시간 안에서의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을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그들의 운동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주변의 의문이었다. 코로나 이후 집회가 제한되면서 활동이 내부적으로 진행되거나 그 규모 또한 축소되었는데, 가령 독서 모임 등으로 지속되는 그룹을 운동 조직이라고 볼 수 있냐는 것이었다. 또, 불행인지 다행인지(불행이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연구 대상이었던 단체들이‘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아래 광장에 나타났다. 박근혜 퇴진 정국에서 ‘페미존(Femi-Zone)’을 구축했던 이들이 죽지 않고 살아, 유의미한 운동 세력으로 자리하고 있음이 가시화된 것이다.

마침내 ‘네가 보이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라는 피드백을 받았는데, 이때 필자는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논문을 마치며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운동이 정체기(Abeyance)를 맞은 것처럼 보일 때 그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과정에서 여성 신체를 경유한 피해 경험에 연대하며 일어난 운동이, ‘여성’범주를 반문하고 정치적 주체를 새롭게 구성하며 운동 지속의 전략을 꾀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었다.

논문의 서론에서 페미니즘 대중화가 백래시와 함께 진행되었다는 지적과 그에 대한 우려들을 거론한다. 첫 번째로, 젠더폭력의 피해 경험을 가진 ‘여성’ 범주에 대한 동일시로 등장한 정치적 주체가 지니는 근본적인 한계에 대한 지적이다. 이는 두 가지의 문제를 가져오는데, 하나는 피해자로서의 지위로 화력을 모으는 운동 전략은 ‘메갈 색출’의 사례처럼 탈취되기 쉽다는 것이다. 다음은, 여성 신체에 대한 폭력의 경험으로 부상한 운동이 단일한 정체성의 정치로 축약되는 경향이다. 이는 생물학적 여성의 문제만을 우선시하는 흐름이 페미니즘의 지향을 다채롭게 만들지 못한다.

두 번째 우려는, 온라인 공간의 해시태그 연결 행동으로 공감과 연대를 불러일으키는 운동 방식에 대한 회의다. 이는 폭발적인 결집을 일으킬 수 있으나, 단발적이고 파편적인 특성탓에 운동의 지속성 측면에서 취약하다. 일례로, 온라인에 기반하여 익명의 여성들이 결집한불법촬영물 규탄 집회, 일명 ‘혜화역 시위’는 그 의제를 성공적으로 이슈화했지만 6차례 진행한 이후 해산되었다. 이때 필자는 오히려 폭발적인 힘과 추동이 일어났던 순간을 그리워하며, 가시화된 페미니즘 운동을 좇는데 몰두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한다. ‘화력의 정치’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운동 연구자들이 아닌가? 그리고 교차성 페미니즘을 고민하며 운동을 지속하는 이들의 자리가 정말로 공백인지 묻는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기점으로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단체 <대구여성주의그룹 나쁜페미니스트(이하 나쁜페미니스트)>, <불꽃페미액션>,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를 연구 대상으로 선정하고 주목했다. 이들의 활동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 해방을 촉구하거나 기술을 매개하여 성별화된 방식으로 통제당하는 여성 신체, 즉 사이버 성폭력에 대항하였다. 연구 방법으로는 각 단체의 페이스북 페이지의 2016년부터 2024년 10월까지의 게시글을 수집하여 문헌 연구하고 각 단체의 활동가 5명을 심층면접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집합적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 및 변화하는지 분석했다.

멜루치2는 집합적 정체성이란 행동 체계를 구성하는 과정으로 다수의 개인이 행동 방향과 기호, 제약에 대해 상호작용하고 공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과정으로서의 집합적 정체성’은 행위자들 간에 소통하고 협상하며 결정을 내리는 능동적 관계의 네트워크 자체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행위자들은 내적연대를 통해 정체성을 강화한다. 즉, 집합적 정체성이란 고정되지 않고 유동하는 것이다.

위 단체들은 강남역 이후 부상한 의제,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사회에 대한 대항 활동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그렇기에 초기 활동은 생물학적 여성 신체에 대한 피해 경험을 가진 당사자로서 발화하거나 그에 연대하는 것에 기반한다. 단체마다의 고유한 실천에 따라 형성된 페미니스트 활동가라는 정체성의 코어 또한 여성 신체를 가지고 저항하는 주체로 구체화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페미니스트 활동가인가, 누가‘우리’안에 포함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면서 여성 집단 내부에도 다양한 정체성이 존재하며, 중첩된 형태의 억압에 저항하는 것이 그들의 의제에 핵심이 된다.

불꽃페미액션의 ‘순종하는 몸을 거부’하는 주체는 ‘여성’에서, 여성으로 정체화하거나 여성으로서의 경험이 있는 자로 확장된다. 나쁜페미니스트의 ‘퀴어한 페미, 환대하는 페미’는 집회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뒤섞이며, 억압과 차별은 비단 여성의 범주로만 엮이지 않음을 드러낸다. 특히 대구 지역의 뿌리 깊은 여성 혐오가 정상 가족 틀 안에서 사유되는 것을 비추어 볼 때, 정상성 규범 안에 포섭되지 못하는 이들과 필연적으로 연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사성은 피해 촬영물이란 ‘태어나지 않는다, 만들어지’는 것임을 지적하며 기술 매개의 성범죄 속 데이터가 젠더화 되어있음을 명확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젠더의 문제를 탈정치화하는 맥락이 ‘양성평등’이란 용어를 차용하며 성별이분법적인 사고로 성소수자를 지우는 흐름과 같이하고 있음을 주지한다. 이처럼 페미니스트 활동가라는 집합적 정체성은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으로 변모했다. 페미니즘 실천 방식을 어떤 방향으로 지속할 것인가를 고심하고 그 전략을 모색하게 했다.

이 논문에서는 여성 범주를 어떻게 확장해 나가면서 연대하고 활동하는가 외에도 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조직의 형태를 어떻게 꾸리는가 또한 살피고 있다. 운동의 정체기에 오히려 내실을 다지는 고민이 활성화되고, 각기 다른 한계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숙제’가 무엇인지 고찰하고, 그것을 가능한 방식으로 풀기 위해 물리적 토대를 조정한다. 단일한 정체성의 정치에서 벗어나는 것과 조직 존속을 위한 전략 세우기는 엄밀히 보면 다른 영역이다. 하지만 그 둘이 의제를 심화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것임은 비교적 분명하다.

논문의 말미에서는 페미니즘에 붙은 ‘리부트’라는 수식을 의심하기도 한다. 리부트란 말에는 종료와 재시작을 내포하는데, 운동이란 종료되지 않기에 그렇다. 행위자가 의제와 활동 방식을 보존할 때 운동의 거점이 만들어지고, 그곳이 언젠가 우리가 만날 실천의 장이 된다. 그러니까 미래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같이 가서 기다릴 연구자, 퀴어-페미니즘 운동의 정체와 연결, 그 지속을 논하고자 하는 이는 꼭 아래 메일로 연락해 주길 바란다.

 

박재승

중앙대학교 사회학 석사를 마치며, 페미니즘과 사회 운동을 주로 연구했다. 졸업 후에는 쓰라는 학술 논문은 안 쓰고 주로 희곡에 몰두하고 있다. 과연 박사를 하지 않고도 학술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jaeseung1993@gmail.com

 

  1. 1990년대 등장한 ‘영페미’(young feminist·젊은 페미니스트)에서 따온 지칭으로 그들보다 더 젋다는 뜻이다. 스스로 지은 이름이라기보다는 ‘영영 페미’가 새로웠던 이들이 붙인 것에 가깝다.

  2. Melucci, A(1996), Challenging codes: Collective action in the information age, Cambridge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