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25.12)]페미니즘 리부트 10년, 한국학 돌아보기

3호(2025.12.)  l  퀴어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페미니즘 리부트’ 10년  l  신진연구

'페미니즘 리부트' 10년, 한국학 돌아보기



본 라운드테이블은 DKSC(Decolonizing Korean Studies Collective) 주최로 2025년 9월 26일 zoom에서 진행되었습니다. DKSC는 Queer Korea 수록 논문의 연구윤리 위반과 2023년 한국어판 출간 과정에서 드러난 지식생산의 위계에 문제를 제기하며 결성된 연구자 공동체입니다. 한국학에 내재된 식민주의적, 인종주의적, 이성애규범적 토대를 비판하고, 신진 연구자들의 연대를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페미니즘 리부트' 10년, 한국학 돌아보기”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신원 미상의 참가자가 부적절한 화면 공유 등으로 회의를 훼방하는 이른바 ‘줌바밍(Zoom-bombing)’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조직적 방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의미 있는 논의를 이어간 참가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정성조 안녕하세요. 저는 중앙대학교 사회학과에서 공부하고 있고, DKSC에서 활동하는 정성조라고 합니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DKSC를 간략히 소개드리겠습니다. DKSC는 선집 『퀴어 코리아』(2023)에 수록된 논문의 연구 윤리 위반 문제,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진 지식 생산의 부정의에 대응하면서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2023년 이래로, 초국적 지식생산의 위계와 한국학의 식민주의적, 인종주의적, 이성애중심주의적 경향을 비판하고, 연구자와 커뮤니티의 연결을 만드는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오늘 라운드테이블에서는 “페미니즘 리부트 10년, 한국학 돌아보기”라는 조금은 거창한 주제를 다룹니다. 한국 안팎에서 페미니즘과 퀴어 정치, 운동, 연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 동안 무엇이 변화했고, 또 변하지 않았을까요? 또, 앞으로 연구자들이 함께 고민할 과제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질문은 DKSC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으며, 페미니즘과 퀴어 연구 분야에서 한국 안팎에 존재하는 지식생산의 위계를 질문합니다.

오늘 패널로는 김진숙 선생님, 권정민 선생님, 정민우 선생님, 그리고 제가 간략히 발표한 뒤 플로어를 열어 토론을 나눌 예정입니다. 다만, ‘한국학 돌아보기’라는 주제와 달리 DKSC의 구성원 모두가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학 연구자가 아니라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그럼에도 각자의 위치와 연구 관심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의미있는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른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 동안 한국 안팎에서 진행된 페미니즘 연구와 퀴어 연구에서 중요한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또,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근 한국 문화가 초국적으로 널리 확산되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이 한국 페미니즘과 퀴어 이슈를 학술적으로 다루는 데 어떤 변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하시나요? 한국과 미국 학계의 맥락에서 페미니즘 연구와 퀴어 연구를 가능하게 하거나 제약하는 구조적 조건은 무엇이며, 연구자들이 마주하는 실질적인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김진숙 선생님부터 이야기를 청해 듣도록 하겠습니다.


김진숙 안녕하세요. 조지아 아틀란타에 있는 에모리대학에서 미디어학과에서 연구를 하고 가르치고 있는 김진숙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계신 선생님들이 많이 오셔서 좀 떨리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한데요. 이 주제가 제가 지금 연구하는 분야와 밀접한 주제이기 때문에 조금 더 조심스럽고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대화를 나누는 장으로 생각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여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저는 한국에서 2010년에 여성학 석사학위를 받고, 2013년에 미국으로 미디어 전공으로 박사를 왔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여성학을 공부 할 때는 여성운동의 침체기라 할까요? 여성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사실 많지는 않았던 시기였던 것 같고요. 단적으로 제가 2006년 여성학 석사를 시작할 때 동기가 저를 포함해서 3명밖에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수적으로도 페미니즘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시기였던 것 같고, 유학을 오고 2015년 정도부터는 본격적으로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하는 것을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체험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2017년에 Feminist Media Studies라고 하는 저널에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해시태그 관련된 논문을 출판했는데1, 사실 그 논문을 쓸 때까지만 해도 영문으로 동시대 한국 페미니즘에 대한 연구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난 10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보니까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흐름과 함께, 한국 문화와 미디어 전반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잖아요. 그래서 그런 시너지 속에서 한국 페미니즘, 젠더, 섹슈얼리티 관련된 연구들이 양적으로 많이 늘어났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 속에서 제도적인 변화도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북미에서 한국학 포지션이 신설되거나, 기존의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새롭게 임용되는 한국학 자리가 최근 4~5년간 아주 많이 늘어났습니다. 최근 임용되신 주니어 선생님들을 보면 페미니스트 연구, 퀴어 연구를 안 하시는 분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정말 많은 선생님들이 흥미로운 연구를 하고 계신 상황입니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북미 내 상황과 달리, 페미니즘 연구를 하거나 퀴어 연구를 전공했을 때 한국에서는 전임으로 임용이 되기 힘든 상황을 반영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쨌든 이런 연구자들이 늘어남으로 인해서, 당연히 한국 관련 수업을 어떻게 개설하고 가르칠 것인가 하는 변화도 있지만, 최근에 북미 한국학 연구소에서 한국의 젠더 및 퀴어와 관련된 행사들도 많아졌습니다. 예를 들면 연분홍치마에서 제작한 영화들을 상영하고, 이반지하님이 토론토 대학에 초청되고, 한국의 젠더, 퀴어와 관련된 연구 워크샵 및 컨퍼런스 같은 것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저는 체감을 하고 있고,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오늘 라운드테이블 준비를 하면서,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도 정리를 해보고 싶어서 2015년 이후에 영미권에서 어떤 단행본들이 나왔는지 좀 찾아보게 됐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지는 않더라고요. 제가 모든 분야를 아우를 수는 없겠지만요. 특히 인문학 쪽에서는 사실 단행본이 굉장히 중요하고, 첫 학술서적은 박사 논문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난 10년 간 출판된 책은 사실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전에 시작된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경우가 많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말하는 ‘페미니즘 리부트’와 북미에서의 페미니즘 관련 작업들 사이에는 굉장히 시간차가 크고, 그런 면에서 오히려 지금부터 앞으로 5년-10년간 이 흐름의 영향을 받은 연구들이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라고 추측해 봅니다.

편저서(edited volume) 같은 경우에도 사실 생각보다 많이 없었습니다. DKSC에서 처음부터 윤리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던 Queer Korea를 포함하더라도2, 굉장히 소수의 한국 젠더, 퀴어와 관련된 책들만이 출간되어 있습니다. 학술지 특집호(스페셜 이슈) 같은 경우에는, 제가 놓친 부분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한국학, 아시아학 저널에서 관련 스페셜 이슈들이 기획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회학에서 한국 페미니즘 관련된 스페셜 이슈가 있었나 했을 때 찾기는 어려웠던 것 같고요. 오늘 패널리스트로 계신 권정민 선생님께서 커뮤니케이션/미디어 분야에서 최근에 스페셜 이슈를 기획을 하셔서 한국 페미니즘, 미디어 문화 관련 논문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영문 학술 논문 수 자체는 많이 늘어났지만 단행본이나 스페셜 이슈, 편저서 같은 경우 여전히 소수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예를 들어서 구글 스칼라에 가서 ‘LGBT’ + ‘Korea’라고 치면 가장 먼저 조셉 이(Joseph Yi)의 논문이 나오는데요. 조셉 이는 대표적인 위안부 부정론자입니다. 그리고 ‘Queer’ + ‘Korea’라고 치면 당연히 Queer Korea라는 편저서가 나오죠. 한국 문화나 페미니즘, 젠더, 퀴어 연구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지만, 어떤 글과 관점으로 한국 페미니즘에 대해 가르치고 연구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저로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영 번역된 작업들도 찾아봤는데요, 타리, 김현미, 손희정, 김주희, 루인, 주혜영 선생님 등 한국 페미니스트 선생님들의 글이 일부 번역되어 있지만, 한국 내의 다양한 논의나 흐름을 따라가기는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번역이라는 작업이 미국 학계 내에서도 제도적으로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기도 해서 제한된 글들만 번역이 되어 있어요. 또 반대로 영미권에서 출판된 한국 관련 연구들이 얼마나 한국에 번역이 되었을까 찾아봤을 때, 2015년 이후로 번역된 책들은 사실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혼자 살아가기』(2016)를 쓰신 송제숙 선생님 같은 경우에도, 이 책은 한국에서 출간이 되기는 했지만 영문판은 2015년 이전에 출간이 되었던 거거든요.3 이런 시간 차나 번역의 문제에 더해서 한국과 북미의 평가 시스템의 차이도 존재하고요. 예를 들어 북미 인문학에서는 단행본이 테뉴어 등 심사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반면, 한국에서는 매년마다 학술논문 위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죠. 그래서 한국과 북미의 연구가 유기적으로 이어지기는 굉장히 어려운 환경인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건설적인 방법을 마련할 수 있을지 오늘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북미 학계에서 일을 하면서, 한국 문화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부상하는 와중에 이것이 다시 서구 중심의 담론에 재편입되고 식민화 되는 과정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미국 언론 등에서 비서구 여성, 한국의 성차별, 페미니즘 운동을 바라보는 식민화된 역사적인 패턴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최근에 4B 운동이 갑자기 맥락을 결여한 채로 틱톡에 바이럴이 되니까 온갖 외신 기자들로부터 연락이 와서 “4B 운동에 대해서 알려달라” 이런 상황이 펼쳐집니다. 이 기자들이 바라보는 한국 여성과 한국 여성이 겪는 성차별과 억압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단순화되고 납작한 형태이고요. 그리고 또 한국에서도 이런 것들을 오히려 역이용해서, 어떻게 보면 ‘랟펨’적인 서사를 과잉 대표하면서, 이들이 한국의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의 얼굴이 되는 방식으로 외신이라든지 아니면은 해외 학술담론에서조차 과잉 대표되고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어떻게 다양화하고 맥락화 하면서 더 뉘앙스 있게 연구를 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는 개인적인 고민이 남아 있습니다. 


정성조 김진숙 선생님께서는 영미권 단행본이나 저널의 특별호에서 한국과 관련한 젠더, 섹슈얼리티, 퀴어 연구가 어떻게 생산되고 있으며, 어떤 작업이 주로 대표성을 갖게 되는지 정리해주셨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계실 것 같아서 바로 권정민 선생님 이야기를 청해들어도 될까요?


권정민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에서 한국 미디어와 영화 분야 내에서 페미니즘, 퀴어 관련 주제를 연구하고 있는 권정민입니다. 제 이야기는 앞서 말씀하신 김진숙 선생님의 발언들과 여러모로 맞닿아 있습니다. 미국 내 한국 관련 사안을 연구하는 학자 집단이란 넓은 틀 안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페미니스트 시각을 바탕으로 한국의 젠더, 섹슈얼리티 이슈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최근 경험을 중심으로 몇 가지 개인적인 고민을 나누고자 합니다. 감사하게도 김진숙 선생님 발표 슬라이드에 소개가 되었는데요. 제가 최근 Women’s Studies in Communication 이라는 미국 영문 저널에서 ‘한국 여성과 미디어’를 주제로 한 스페셜 이슈 편집을 맡았고, 얼마 전에 이 이슈가 출간이 되었습니다.4 제가 기획을 하고 편집자의 변을 쓰는 과정에서, 한국어와 영어로 출판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제 내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작성된 젠더와 섹슈얼리티 관련 글들을 많이 읽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든 여러 가지 생각 중에서 두 가지를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한국 학계와 저널리즘의 여러 층위에서 페미니즘 관련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었습니다. 물론 아직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연구의 양이 충분하거나, 주제가 다양하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이제는 그 모든 연구들을 제가 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의 양적 성장이 있어 뚜렷함을 실감합니다. 한국 페미니스트 미디어 연구가 예전처럼 소수 학자들이 제한된 자원으로 간신히 생산하는 수준을 이제 넘어서, 여러 위치성을 가진 연구자들, 그리고 이제는 비한국인 연구자들에 의해서도 활발히 생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저변이 넓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동시에, 이 분야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연구자들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졌는지, 그리고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연구자들을 위한 구조적 지원은 얼마나 마련되어 있는 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몇 년 전 한국 페미니즘을 주제로 연구하던 대학원생들이 일종의 협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도 있는데요. ‘페미니즘 리부트’ 선언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주체들과 그 주체들이 설 수 있는 공적 공간들에 대해 충분히 대화들이 오가고 있는 지가 궁금해졌습니다.

두 번째 지점은 국외에서의 한국 페미니즘 연구에 대한 성찰입니다. 김진숙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 최근 영어권에서 한국 페미니즘과 관련 출판물들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여러 이유로 국내 연구에서 해외 연구를 인용하는 경우는 여전히 많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해외 연구에서도 한국 내에서 이미 활발히 생산된 지식과 담론이 종종 누락되거나, 심지어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반복되는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영문 논문이나 책을 심사하다 보면, 그 주제로 이미 한국에서 중요한 연구들이 출판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인용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견합니다. 그래서 제가 보내는 심사 의견에 한국 학자들의 저작 목록을 참고 자료로 쓰도록 제안하기도 하는데요. 물론 언어와 접근성의 한계가 큰 이유지만, 과연 그 한계가 지역 연구에서 어느 정도까지 용인이 될 수 있는지, 비영어권 지역을 공부하는 연구자의 역할과 의무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몇 년째 이어가고 있습니다.

더불어 한국 페미니즘 이슈들이 해외 학계에서 점점 더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때때로 이 주제들이 깊이 있는 분석이나 탐구 없이 일종의 ‘트렌드 상품’처럼 소비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동시에 이 주제에 대한 양적 확대의 필요성 또한 깊이 느끼고 있기에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사실 그런 의구심은 저를 향하기도 합니다. 단지 이 분야에 먼저 진입했고, 한국어를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이런 비판적 지점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한국 바깥에 위치한 나는 과연 사안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있는 관찰이나 연구를 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의 부족함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Women’s Studies in Communication의 스페셜 이슈를 준비하면서도 작업을 하는 내내 고민이 많았습니다. 내가 과연 이 주제로 이슈를 편집 할 자격이 있는지, 과연 한국의 페미니즘과 미디어에 대해서 의미 있는 고찰을 담은 글을 쓸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자문을 했습니다. 아마 해외에서 한국 관련 주제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자격지심, 자아성찰, 그리고 자아비판적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이어지는 반추 끝에 닿은 생각은 어찌 보면 국외 한국학 내의 페미니즘 연구는 아직 ‘부팅’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국외에서 이분야를 연구하는 우리들은 기댈 수 있는 연구 자원이 없이 황망이 흩어져서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시시각각 쏟아지는 페미니즘 관련 이슈와 학문적 담론을 해외에서 연구하는 것의 의미, 유용성, 한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내 페미니즘 연구와 국외 페미니즘 연구 사이에 불가피한 혹은 불가피하지 않은 간극, 이런 주제들에 대해서 한 번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우리는 앞으로 한국학 내에서의 페미니즘 연구를 어떻게 ‘부팅’하고 방향성을 설정할 나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보자는 제안을 하며 제 발언을 마치고자 합니다.


정성조 감사합니다. 줌 바밍으로 시간이 지연된 만큼, 제가 따로 덧붙이지 않고 정민우 선생님 발표를 바로 청해듣겠습니다. 


정민우 저희가 오늘 페미니즘과 퀴어 연구의 지난 10년을 같이 다루고 있는데요. 저는 조금 더 퀴어 연구에 집중해서 얘기를 해 보려고 해요. 앞서 김진숙 선생님이나 권정민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것처럼 저 역시도 개인적인 여정을 돌아볼 수 밖에 없었던 주제였던 것 같아요.

제가 한국에서 석사를 진학했던 게 2009년이거든요. 중앙대에서 석사를 하면서 퀴어 연구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퀴어 연구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나 멘토십이나 혹은 연구자 커뮤니티조차도 충분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지금으로부터 한 15~16년 전이죠. 그 때 비록 많은 것들이 이미 존재했어도 당시 석사 과정이던 제게는 보이지 않았거나 접근 가능하지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다른 주제로 석사논문을 쓰고 졸업한 뒤에, 일종의 휴지 기간을 가지면서 작은 리딩 그룹, 혹은 연구 그룹을 꾸리게 됐었어요. ‘포스트식민 퀴어 연구회’, 줄여서 ‘포식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그룹인데, 포식퀴 모임을 처음 온라인으로 시작해서 많은 분들을 만나고, 매주 리딩 그룹을 하면서 모임을 한 3년 정도 이어갔던 것 같아요.

포식퀴를 하면서 미국 중심의 퀴어 이론 리딩 커리큘럼을 만들어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또 같이 한 번 글을 써 보자라는 이런 욕심도 있었는데, 사실 그 공동의 작업 제안이 잘 풀리진 않았었어요. 당시 많은 멤버들이 대학원 제도의 안팎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전공이나 분야, 관심사도 다 각기 달랐어요. 그렇게 각자의 상황에서 고아였던 사람들끼리 만나서 우리끼리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자는 거였는데, 그게 서로가 서로의 멘토가 될 만큼은 또 아니었던 것 같아요. 각자 속한 제도가 있고, 그 안에서 어쨌든 지도교수, 논문 심사위원, 전공과 학제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하는데, 그게 저희끼리 으쌰으쌰한다고 쉽사리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포식퀴를 3년 정도 하면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퀴어연구를 하려면 유학을 가야 하는 걸까하는 생각에 결국 미국 유학을 가게 됐죠.

그렇게 미국에서 박사를 2014년에 시작했는데, 그때부터는 미국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게 됐어요. 물론 그 전에도 계속 사회학을 전공했지만, 미국의 주류 사회학을 배우고 그 환경에서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하다 보니 또 퀴어 연구와의 관계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공교롭게도 제가 유학을 하던 그 시기가 ‘페미니즘 리부트’와 대중화, 또 그 안에서 여러 변화들과 갈래들이 만들어지던 시기와 겹쳐지죠. 저는 그 시기를 한국 안에서 내부자로서가 아니라 한국 밖에서 관찰자 시점에서 봐 온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한국 출신으로 한국 연구를 하지만, 또 동시에 미국으로 이민을 온 디아스포라로서 어떤 이중적인 관점과 감각으로 지금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떠나 온 사람들이 스스로가 떠나 온 현실의 그 특정한 시점에 경험과 관찰이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고, 저 역시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느껴요. 비록 계속 한국 연구를 해 왔지만, 저는 퀴어 운동이라는 특정한 영역에 집중해 왔고, 그래서 한국에서 진행되어 온 자생적인 학술 연구의 흐름에 대해서는 충분히 가깝게 관찰하거나 경험하지 못했다는 데 대한 한계를 먼저 고백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밖에 없을 것 같고요.  

다만 그런 점에서, 어떻게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페미니즘/퀴어 연구라는 흐름들이 단지 한국 내부의 역동만이 아니라 한국 ‘밖’의 학술 장과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초국적인 방식으로 함께 만들어져 왔는지를 살필 수 있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앞서 김진숙 선생님, 권정민 선생님께서도 말씀해 주셨지만, 성소수자/퀴어 연구로 한정한다고 해도 지난 10년 동안 사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연구들이 한국에서 쏟아져 나왔고, 그게 퀴어 연구를 하는 연구자로서도 다 팔로업이 어려울 정도거든요. 검색 엔진에 관련 키워드 알람 설정을 해두기가 버거울 정도로, 정말 많은 연구 작업들이 한국에 관해, 또 한국어로, 지난 10년간 출간돼 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출간 패턴을 본격적으로 분석한 건 아니지만, 해외에 기반한 관찰자 시점에서 볼 때는 특히 인구화된 집단으로서의 성소수자 집단과 이들에 대한 인구사회학적, 보건사회적 접근이 연구작업의 양적 증가를 추동해 온 것으로 보여요. 다른 한편으론 이 연구작업의 양적 증대 속에서 인문학적, 인문사회과학적 접근들은 상대적으로 여전히 정체되거나, 어려움을 겪어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인문학, 인문사회과학적 작업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대학원생 연구자들의 석박사 논문, 특히 석사 논문에 의해 이뤄져 왔고, 상대적으로 박사급 연구자들—포닥이나 교수들에 의해서는 별로 이뤄지지 않진 않았나 하는 거죠. 그리고 이 지식생산 방식의 격차는 여러 가지 격차들을 반영하겠죠. 학제별 훈련방식의 차이, 석사에서 박사로, 박사 이후로 커리어가 진전되면서 성소수자/퀴어 연구자들이 점점 더 주류에서 비주류로, 아니면 아예 학계 밖으로 밀려나는 현상도 있을테고, 이건 한국 내 구직시장에서 성소수자/퀴어 연구가 여전히 배제되고 주변화되는 방식과도 연관이 되겠죠.

흥미롭게도 한국에 대한 글로벌한 관심이 계속해서 증대하면서, 한국의 성소수자와 퀴어에 대한 영어 학술작업도 지난 10년 간 양적으로 꽤 많이 늘어났어요. 하지만 앞서 김진숙, 권정민 선생님께서도 잠깐 다뤄 주셨던 것처럼, 한국 퀴어에 관한 영어 작업들 중 많은 부분들이 조셉 이라든지 토드 헨리와 같은 문제적인 연구자들에 의해 출간되고, 또 영어로 출간된 탓에 더 손쉽게 국제적 학술 장에서 권위를 확보하고, 상품성을 갖게 되고, 더 자주 인용되고, 그게 다시 지적 권위와 상품 가치를 재생산하게 되는 거죠. 반면에 한국 연구자들에 의해 쓰인 한국 퀴어 연구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석사 논문의 형태로 출간되거나, 한국의 비주류 학술 저널에 한국어로 주로 출간되는 편이고, 그 결과 국내적 학술장에서는 물론 국제적 학술 장에서도 완전히 비가시화되곤 하죠. 그 결과 한국 퀴어에 관해 문제적이지만 권위를 가진 영어 출간물과, 주변화된 한국어 출간물이라는 이중화되고 위계화된 출간 패턴이 지속되고 재생산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을 오래 해 오고 있어요.

앞서 두 분 선생님께서 언급해 주신 학술 번역의 시차라든지, 지금 언급한 한국과 미국, 한국어와 영어, 한국의 학계와 미국의 학계를 둘러싼 중첩된 권력 관계들이 계속해서 ‘한국 페미니즘/퀴어 연구’라는 장을 구성하고 또 이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거겠죠. 그래서 저는 자꾸만 『퀴어 코리아』로 계속 돌아가게 됩니다. 『퀴어 코리아』 이슈에 대해 저희가 DSKC 라는 그룹을 시작하면서부터 여러 가지 비판적 논의지점들을 만들어 왔지만, 이번 라운드테이블을 준비하며 새삼 깨닫게 된 건, 이처럼 한국의 퀴어에 대한 연구 작업이 아직 그리 많지 않은 상황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여러 저자들과 번역자들이 참여해 출간된 영어 출간물이, 문제적인 방식으로 쓰이고, 편집되고, 출간되고, 번역되고, 문제제기를 묵살했고, 이 때문에 굉장히 나쁜 선례를 만든 거라는 점이에요. ‘한국 퀴어 연구'라는 아직 작고 여전히 성장하는 분야 전체에, 그리고 이 분야에서 계속해서 연구해 나가고자 하는 수많은 연구자들, 특히 신진 연구자들, 대학원생 연구자들에게 굉장히 나쁜 선례를 남겼을 뿐 아니라 향후의 연구에 제약을 건 셈이죠. 그런 점에서 다시 한 번 문제적인 작업이었고, 이를 문제적이라고 명확히 평가하고 넘어가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퀴어 코리아』라는 문제적인 작업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던 그 학술 구조와 관행들이 북미 한국학 내에서 계속해서 페미니스트/퀴어 연구가 주변화되는 문제와도 연관돼 있다고 생각해요. 아까 김진숙, 권정민 선생님들께서도 언급해 주셨지만, 지난 10년 동안 북미 학계에서 출간, 수업 개설, 심지어 채용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에서의 양적 성장이 있었지만, 여전히 학계 각 분야 안에서 주변화된 분야로 여겨지고, 상대적으로 ‘신진적인,’ ‘새로운’ 그래서 실라부스의 맨 끄트머리에 자리잡거나, 한 학과에 단 한 명만 존재하는 식으로 흔히 토큰화되고 있죠. 그런 면에서 미국 학계 내에서 지속된 주변화를 경험한 미국 기반 한국 연구자들이 다시 한국을 대상으로 한 자신들의 문제적인 연구나 출간 행위를 정당화하는, 즉 하나의 구조 하에서의 피해자성이 다른 구조 하에서의 가해자성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쓰여온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도 계속하게 됩니다. 스스로를 북미 한국학에서 주변화된 퀴어 연구를 소수자로 내세우면서, 한국에 와서는 그 주변화된 정체성을 발판이자 무기삼아 한국의 동료 연구자들, 활동가들,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는 행태가 오래 지속되어 온 가운데 『퀴어 코리아』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등장한 게 아닌가 하는 거에요. 그런 점에서 이런 불균형한 발전들과 시차들을 어떻게 좁혀 나갈 수 있을까가 앞으로 제 개인적으로나 DKSC 에 있어서나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정성조 정민우 선생님께서는 앞으로 연구자들이 함께 고민하면 좋겠는 지점까지 말씀해 주셨는데요. DKSC만의 고민이라기보다, 관련 분야에 있는 선생님들이 함께 해나가야 할 고민으로 생각됩니다. 

저도 개인적인 여정부터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한국에서 계속 공부와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제가 페미니즘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것은 2014년 즈음 대학 내 성소수자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부터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늘 주제인 ‘페미니즘 리부트’ 혹은 페미니즘 대중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당시는 대학 안팎으로 수많은 페미니즘 소모임과 성소수자 동아리가 새롭게 생기거나 성장하는 시기였습니다. 메갈리아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온라인 공간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토론은 이러한 오프라인 활동의 성장과 상당히 중첩된 것이었죠.

그런데 이 시기를 어떻게 규정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됩니다. 왜냐하면 제가 기억하기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두 가지 갈등이 함께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 동아리들 내부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입장 차이가 불거졌습니다. 이는 친목과 인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성소수자 ‘동아리’의 독특한 성격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페미니즘 소모임들 내부에서 게이 남성과 트랜스젠더에 대한 입장 차이가 불거졌죠. 당연히 이러한 갈등은 온라인에서 점증하던 혐오 담론은 물론 페미니즘과 퀴어에 대한 백래시와도 혼란스럽게 뒤섞인 것이었고요. 제가 있던 학교에서는 이런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FUQ(Feminists Unite with Queers)라는 이름의 공동체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의 연합이었던 QUV에서 활동하면서 지켜본 2010년대 중후반의 흐름은 새롭게 생겨난 페미니즘 소모임과 성소수자 동아리들이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 깨져나가고, 사람들이 소진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페미니즘 리부트’는 단순히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 제기를 넘어, 젠더를 둘러싼 페미니즘과 퀴어, 트랜스 담론 간의 경합이 본격화된 시기였습니다. 특히 이 흐름의 직접적 영향을 받으며 대학을 다녔던 세대에게는 더욱 그러했겠지요. 제 개인적인 경험이 대표성을 지닌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지 ‘페미니즘 리부트’를 거쳐 등장한 학술 담론과 연구들은 당시의 치열한 논쟁을 통과한 이들, 그리고 결국 운동을 떠나게 된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 리부트 10년’이라고 했을 때,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수많은 갈등이 남긴 건 무엇이었을까? 이런 질문이 충분히 답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성소수자/퀴어연구학회’로 재출범한 ‘성소수자 대학원생/신진연구자 네트워크’는 성소수자/퀴어에 관련한 거의 모든 키워드로 검색하여 한국어와 영어로 된 한국 관련 학술논문과 학위논문를 목록화한 ‘한국성소수자연구 아카이브’를 만들었습니다. 아카이브를 통해 간략히 분석한 연구 동향을 학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는데요. 앞서 다른 선생님들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해서 성소수자/퀴어 연구가 급증하는 것을 숫자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학술논문과 학위논문 모두에서 2010년대 전반기에 비해 후반기에는 두 배가 넘는 논문이 출간되었습니다. 저희가 수집한 데이터는 2021년까지였기 때문에 그 이후 4년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 추적하는 과제가 남아있지요. 

그런데 양적 성장의 이면에 남겨진 과제 또한 분명해 보입니다. 앞서 초국적 맥락에서 지식 생산의 위계에 대한 고민을 말씀해주셨는데, 저는 국내적 맥락으로 논의를 연결해보고 싶습니다. 아카이브를 통해 살펴본 성소수자/퀴어 주제 학위논문의 양적 성장은 석사학위에 국한된 결과라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싶습니다. 즉,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간 젠더, 섹슈얼리티, 퀴어와 관련한 수많은 연구가 제출되기 시작했지만, 이를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은 드물게만 나오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박사학위 과정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요? 그런 면도 있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보입니다.

같은 단체에서는 최근 ‘성소수자/퀴어 연구 학술환경 실태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성소수자/퀴어를 주제로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학습 및 연구 활동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국내에서 공부한 연구자들은 여전히 정민우 선생님이 지적한 멘토십과 커리큘럼 부재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앞선 아카이브 자료에 따르면, 성소수자/퀴어 연구 관련 석박사 학위논문의 30% 이상이 이화여대, 연세대, 서울대, 중앙대 등 4개 대학에 집중되어 있었고요. 한국에서 이 분야에 진입하고자 할 때 주어진 선택지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뜻입니다. 미국 박사학위를 선호하는 현상이 페미니즘이나 퀴어 연구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차치하고 보면, 초국적 지식생산의 위계와 국내 학계 내 성소수자/퀴어 관련 지식 생산의 제도적 장벽은 동전의 양면인 셈입니다.

앞서 개인적인 여정을 소개하면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의 시간이 페미니즘 운동과 지식 생산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기이면서 동시에 퀴어, 트랜스와의 경합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작년에 참석한 한국여성학회 창립 40주년 학술대회는 ‘연대와 확장: 페미니즘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40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기조 세션에는 여러 발표자가 참여했지만, 퀴어나 트랜스, 섹슈얼리티 관련 논의가 이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젠더 개념을 연구하는 데 어떤 함의가 있었는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전체 발표 30여 편 중에서도 퀴어를 명시적으로 다룬 발표는 단 두 편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을 되돌아본다고 하면, 한국 학계 전반의 제도적 장벽과 더불어 페미니즘 연구 지형 내에서 퀴어나 트랜스 연구가 어떻게 위치하고 있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현재 많은 신진 연구자들이 성소수자, 퀴어, 트랜스를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과 학술지 논문을 발표하고 있으며, 수년간 TERF 담론의 형성과 그 의미를 분석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논의가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관한 페미니즘 논의 지형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나아가 한국 사회의 변화와 민주주의 위기와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심도 있게 토론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플로어를 열고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질문이나 코멘트가 있으신 분께서는 자유롭게 발언해주시면 됩니다. 


질문자 1 퀴어 연구, 특히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을 돌아볼 때, 모든 패널리스트 분들께서 공통적으로 양적 성장을 언급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양적 성장에서 방법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어떤 변수로 작용했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앞서 한 패널리스트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의료화된 집단으로서의 성소수자 연구, 그리고 양적 접근을 통한 건강 담론이나 의료화 담론 연구가 증가했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간 방법론적 측면에서 눈에 띄는 변화나 전환점이 있었는지, 있다면 어떤 것들인지 생각을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성조 양가적인 마음이 드는데요. 저는 통계 연구도 종종 하는데, 국내 성소수자 관련 연구 데이터의 한계를 절감하게 됩니다. 가령 미국에서는 대규모 펀딩을 바탕으로 성소수자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한 건강 연구나 차별 경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는 아직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묻는 대표성 있는 데이터조차 없어, 개인 연구자들이 직접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그로 인해 지난 10년간 한 가지 암묵적인 방법론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트위터(X)를 통해 연구 참여자를 모집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양적 연구뿐 아니라 인터뷰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트위터를 중심으로 형성된 커뮤니티가 갖는 특정한 편향이 있죠. 데이터 부족이라는 현실적 제약은 이해되지만, 이제는 이러한 방법론적 도전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보입니다.


정민우 미국, 혹은 한국 밖에서 기본적으로 한국학이란 분야 자체가 역사학과 문학을 기반으로 성장해 오고, 이후에 영화/미디어 연구, 그리고 다른 사회과학 연구가 부가적으로 덧대어지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는데요. 여기에 한국학이라는 분야의 근본적인 방법론적 편향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이 때문에 역사학을 전공한 토드 헨리가 한국학에서 손쉽게 권위를 확보하며 등장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어요. 그 때문에 페미니스트/퀴어 역사학자들이 북미 한국학에 얼마나 또 어떻게 비판적으로 개입해 왔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것 같고요. 그런 면에서 정성조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한국성소수자연구 아카이브’와 ‘성소수자/퀴어 연구 학술환경 실태 조사’ 사례처럼, 북미에 기반한 한국 연구자들인 저희도 북미에서 한국에 관한 퀴어 지식이 생산되는 방식과 조건에 대한 검토를 해 볼 수는 없을까 싶기도 합니다.

지난 10년만이 아니라, 1990년대 이후 20-30년 동안 북미와 해외의 한국학에서 페미니스트/퀴어 지식은 어떻게 위치지어져 왔고, 또 한국 내에서의 페미니스트/퀴어 지식과는 어떻게 연계/단절되어 왔는가라는 질문이 될 텐데요. 앞에서 나눈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결국은 지식생산과 번역에서의 다중적인 시차와 격차가 큰 주제가 될 것 같아요. 사실 케이팝이 됐건, 케이 드라마가 됐건, 케이 뷰티가 됐건, 한국의 변화하는 현실이 없이는 한국학에서 젠더/섹슈얼리티 이슈에 대한 관심의 증대가 애초에 불가능한 거잖아요. ‘한국’이 글로벌하게 뜨니까 ‘한국학’도 덩달아 뜨는 건데, 반면에 그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을 제대로 동시대적으로 반영한 ‘한국학’은 사실 좀 여러 모로 불가능한 프로젝트인 거죠. 작업 속도의 시차, 번역의 시차, 문화 번역의 시차, 그리고 평가제도를 비롯한 여러 제도의 차이가 있는데, 이 다중적인 시차와 격차를 다 고려하면서 어떻게 계속 ‘한국’과 ‘한국학’ 사이의 싱크로를 맞춰 나갈 것인가가 저희가 계속 고민해 온 ‘디콜로나이징’에서도 아주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질문자 2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저도 최근 두 가지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성조 선생님께서 언급하신 TERF 담론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그리고 김진숙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4B 운동’을 한국과 미국에서 공부하는 연구자들이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얼마 전 참석한 학회에서 흥미로운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4B 운동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연구자들이 한국인이 아닌 중국 페미니스트 학자들이었어요. 이들은 트랜스내셔널 관점에서 이 운동을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김진숙 선생님 연구에서도 지적하셨듯이, 4B 운동이 래디컬 페미니즘이나 TERF적 경향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이를 어떻게 발전적으로 재해석할지가 관건이었습니다. 중국과 일본 연구자들이 보여주는 트랜스내셔널 접근법은 좋은 연구 협업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이 운동의 래디컬 페미니즘적 성향이 더 넓은 학술적 논의를 제약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이러한 운동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TERF 담론을 넘어서는 생산적인 논의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김진숙 최근에 Asian Journal of Women’s Studies 라는 저널에 김지은 선생님이 쓰신 논문이 있는데요. 한국의 TERF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초국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연구를 하셨거든요.5 TERF는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고, 한국에서 랟펨이 형성되는 과정 자체도 사실은 서구의 젠더비판적 페미니즘(gender critical feminism) 이라든가 호주의 쉴라 제프리스 등 굉장히 초국적인 자장 속에서 만들어진 페미니즘의 한 조류잖아요. 그리고 4B 운동의 경우도 한국에서 시작되었으나 이미 우리가 다 파악할 수 없는 정도로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이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제가 알기로, 중국도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페미니스트 대중화를 겪었기 때문에 내부에서 TERF 경향이 굉장히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트위터에서 무슨 얘기를 하면 웨이보에서 “한국의 래디컬 페미니즘”은 이렇다는 식으로 번역해서 공유하는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생각보다 우리가 그 고리를 잘 알지 못한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저는 일차적으로는 그 부분을 조금 더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다른 지역학에서 한국 연구하는 사람들을 봤을 때도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어떤 연구자들을 신뢰하고 어떤 연구를 통해 중국 페미니즘을 이해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제 연구가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한국 안에 많이 제한되어 있었다라고 스스로도 반성을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책 작업이 마무리되고 나면, 앞으로 다양한 초국적 페미니즘 흐름 속에서 교류나 대화의 장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그런 대화를 통해 (지금까지) 과잉 대표된 “랟펨”을 벗어난 어떤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함께 얘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여러 선생님께서 얘기했지만 언어의 문제도 크고, 한국이든 중국이든 관련 현상들이 다시 미국에서 논의되는 방식의 한계도 있으니까요. 저도 한국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어느 날 갑자기 4B 운동이 바이럴한 현상이 되고, 관심이 높아질 때 양가적인 감정을 항상 느끼면서 어떻게 대응을 해야 될까 고민이 됩니다. 단순하게 이게 좋다 아니면 문제적이다라고만 할 수 없는 다층적인 층위가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그런 계기를 통해서 한국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더 고민이 되는 문제입니다.


정민우 짧게 코멘트를 더하고 싶어요. 먼저 TERF, 즉 트랜스배제적 ‘페미니즘’의 부상은 결국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페미니즘의 지형들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 그리고 이 지형들이 학술적으로 어떻게 번역되고 있는지, 또 그 번역이 어떻게 한국과 미국 혹은 영어권에서 다르게 이뤄지고 있는지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텐데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대중화’라는 줄기의 경향 가운데 트랜스 혐오가 주되게 부상한 거고, 또 이들의 이민자 배제 혹은 제노포비아에 대해서도 논의가 꽤 되어 왔죠.

여기에서 중요하게 겹쳐지는 다른 줄기는 금융화라는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김보형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작업들에서 보면, 한국에서 근래 대중화된 페미니즘과 금융화가 결합되는 방식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요.6 다만 여기에서 트랜스 혐오가 어떻게 엮이는가에 대한 분석은 아직 미흡한 것 같아요. 저는 IMF 이후 한국에서 전개되어 온 신자유주의 사회변화와 금융화된 주체의 등장 속에서 사실 ‘여성’이라는 범주가 지속적으로 재구성되어 왔다고 봐요. 이 때 금융화와 페미니즘의 대중화가 어떻게 ‘여성’ 범주 구성에서 트랜스 혐오, 또 이민여성을 포함한 이민자 혐오를 필요로 했는가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금융화라는 맥락에서 변화하는 일상의 풍경들, 예컨대 게임이나 웹툰 같은 디지털 유료 콘텐츠에 대한 불법 접근을 미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청소년이나 취약계층을 보이스피싱이나 각종 디지털 범죄 조직에 가담시키는 방식들이 있고, 또 이렇게 착취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돈들이 코인이나 익명 지갑 같은 형태로 빠르게 유통되면서 일종의 비공식 금융 회로를 이루고, 그 중 일부는 소셜 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극우, 혐오 담론을 자동화해 무한히 확대 재생산하는 AI 봇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데 쓰이기도 하고, 또 일부는 극우 세력이나 혐오 정치 그룹으로 흘러 들어가 성소수자, 트랜스, 외국인 혐오 담론을 강화하는 데 재투자되기도 한다는 추정들이 있잖아요. 이런 혐오 담론의 순환을 단순히 담론적 차원이 아니라, 금융화된 환경 속에서 혐오 담론이 어떻게 구체적인 경제적, 기술적인 동력이자 회로로 작동하는지를 좀 더 살피고 싶다는 궁금증이 개인적으로도 좀 있어요.

관련해서, 트랜스배제적 페미니즘을 닮은 트랜스배제적 LGBT 운동 역시 부상하고 있다는 관찰이 있죠. 최근 영국에서 LGB Association 이라는 트랜스배제 LGBT 그룹이 등장했고, 관련 담론이 이웃나라 대만에도 수입돼 이 그룹에 동조하는 일부 대만 성소수자 분들이 작년 타이베이 프라이드 행진에 참가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제가 좀 놀라서 대만 활동가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니 대만에서 이런 흐름을 트랜스배제적 레즈비언들이 이 흐름을 추도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또 이 분들 가운데 학계로 진입하는 분들도 있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이 분들이 또 앞으로 어떤 연구들을 해 나갈지를 생각하면, 비록 시차가 있을 지언정 결국 이런 문제적 현상들이 연구에도 어떤 식으로든 반영되고 번역되는 거죠. 아마 한국에서도 비슷한 흐름들이 관찰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부분에서 터프의 부상은 사실 분리된 사회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그 부상이 학계와 학계 안팎에서의 지식 생산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서 함께 논의되고 고민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성조 제도적인 측면도 고민이 됩니다.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용어가 언뜻 단절을 가리키는 것처럼 사용되는 경향이 있어 보이는데요. 사실 2010년대 초중반은 퀴어문화축제의 성장과 함께 반퀴어 세력의 조직적인 활동이 두드러지면서 정치권에서 성소수자를 다루는 게 점차 금기시되는 시기이기도 하죠. 그러면서 ‘양성평등’과 ‘성평등’이라는 용어의 차이가 성소수자를 포함하는지 여부에 관한 문제라는 프레임과 같이 젠더나 인권 관련 정책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논쟁이 직전 시기의 제도적 변화를 바탕으로 삼는다고 할 때, 과연 그러한 수세적인 프레임을 전환하는 데 성공적으로 개입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부호가 남습니다. 그렇다면 이후 등장한 TERF와 같은 흐름은 과연 이전 시기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 있는지, 그리고 TERF 자체를 문제삼기보다는 수많은 젠더 정책에서 질문되지 않은 퀴어의 위치를 되묻는 전략이 필요한 게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채팅으로 들어온 두 개의 질문을 소개드리겠습니다. 질문자 3께서는 미국 내 젠더 스터디에서도 한국이나 동아시아에 대한 관점이 매우 부족하고, 참고할 논의나 사람이 없게 느껴진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러한 고민과 관련해서 참고할만한 제안을 해주신다면요? 그리고 질문자 4께서는, 한국에서 서구의 퀴어 이론을 적용해서 연구한다는 것에 있어서의 낙차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요. 특히 방법론적인 측면이나, 미국 학계와 한국 학계 사이의 논의의 낙차에 대해서 답변주실 수 있을까요?


권정민 굉장히 중요한 질문들이고, 저도 역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고, 아마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부딪칠 문제일 것 같습니다. 아직 한국에서 퀴어학이 독립된 학문 분야로 충분히 자리잡지 못했고, 한국의 퀴어 관련 이슈들을 서구의 이론을 수입, 적용하는 방식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이 주제를 연구하는 개인들이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는가가 저 또한  궁금한 부분이었습니다.

예전에 저희 DKSC에서 주최한 워크샵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드렸던 적이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사유하고 있는지 말씀드리자면, 저는 한국 퀴어 대중 문화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과연 내가 주디스 버틀러를 인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그렇다면 인용하지 않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인가”리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제게 던졌습니다. 한국의 퀴어 연구자들을 만나거나 혹은 연구를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많은 분들이 저와 유사한 고민을 하고 계시다는 점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정민우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 한국에서 퀴어 관련 학술 연구는 과거보다 더 많이,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습니다. 제가 박사 논문을 썼던 2012-2013년 무렵만 해도 이 분야의 연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그래서 답답함과 동시에 더 많은 연구가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지난 십여년 넘는 시간 동안 (여전히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행히도 연구가 꾸준히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 연구들을 찾아 읽는 과정에서 엄밀한 의미의 이론은 아닐지라도, 선행 연구자들이 구축한 퀴어적 세계관 혹은 퀴어적 시각, 관찰의 방식에 기대면서 내 글을 진행시킬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전혜은 선생님께서 쓰신 『퀴어 이론 산책하기』7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이 저서가 ‘한국형 퀴어 이론’을 명시적으로 정립하려는 목적에서 쓰인 것은 아닐테지만, 텍스트의 문장들을 따라가면서 “이것이 나에게 하나의 이론적 자원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하였습니다. 

또 제 연구 주제에 한하여 깨달은 다른 지점은, 수많은 사례와 인터뷰를 축적하며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유들을 엮어 나가다 보면은, 결국 이론적 틀이나 접근법이 정립될 수도 있겠다는 점입니다. 제가 약 50명의 인터뷰이를 만났는데, 이들이 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100명의 경험을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목소리을 특정 이론이나 시각으로 규정하거나 방법론으로 분석하기 보다는, 그 퀴어 주체들의 생생한 경험과 언어가 자연스레 연구에서 드러날 수 있게 내가 잘 풀어나가는 것이 퀴어 문화 연구자로서의 역할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주신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라기 보다는 제가 마주한 벽과 그 벽을 넘어서기 위해 시도해 온 과정에서 내린 잠정적 결론들을 나눠보았습니다.


김진숙 질문자 3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부분 공감이 됩니다. 저는 또 한국에서 석사를 했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사실 페미니즘 연구를 하거나 퀴어 연구를 하면서 전업연구자로서 커리어를 이어나가기 쉽지 않은 환경이잖아요. 그래서 미국 유학을 오게 되었지만, 미국에 오니까 이제 “너는 한국연구를 하는데, 네가 하는 연구는 왜 (우리에게) 중요하지?” 이런 질문을 다시 맞닥뜨리게 되는 거죠.

페미니즘이나 퀴어 이론은 제가 하는 문화 연구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이론적인 갈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는 비서구 연구들은 계속해서 결코 이론이 되지 못하는, 경험적인 사례로만 남는 그런 주변화를 계속 경험해야 되기 때문에 사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연구를 한다는 게 양쪽 다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저도 답은 드릴 수 없지만, 제가 지금까지 버텨왔던 걸 생각해 봤을 때, 어쨌든 꼭 한국인 페미니스트, 퀴어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내가 롤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예를 들면 비백인 비서구 연구자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교류를 하고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 생각이 들고, 저희가 DKSC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같아요. 왜냐하면 내 학제 안에서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분과나 전공을 넘어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질문자 4 선생님이 얘기해 주신 부분들도 공감이 가는데 이론도 유행이라는 게 있고, 여러가지 이유로 분명한 시차는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유학을 왔을 당시에 정동 이론, 신유물론이라든지 특정 이론이 미국 학계에서 유행을 했는데, 그것이 번역 되고 한국의 담론장에 본격적으로 논의가 이루어 지기까지 저는 어느 정도의 시차가 있었다고 개인적으로 느꼈거든요.  사실은 미디어 문화 연구든 영화 이론이든 정말 서구 중심이고 정말 백인 남자들이 쓴 그런 이론들이 정전이 되는 되는 상황에서, 저널에 심사를 통과하고 출판되기 위해서 그들의 언어와 전통을 따르고 인용을 해야만 한다는 부담과 딜레마들도 있다 생각합니다. 이건 한국에 있든 미국에 있든 자유롭지 않은 거고,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있지 않나… 그리고 저도 절대로 자유롭지 못하고, 제가 지금 10년 정도 미국 학계에 있으면서 쓴 글을 돌아봐도 반복되는 문제들이거든요. 그래서 정말 쉬운 길은 아닌 것 같지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결국은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형을 의식적으로 넓히고 비서구의 페미니스트 학자들과 교류를 하고 배워가며 그런 리소스들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DKSC에서 실라부스 프로젝트라든지 한국 퀴어 영화 목록이라든지 이런 리소스를 계속해서 만들어 가려고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좀 그런 노력들이 새로운 레퍼런스 내지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정민우 저는 ‘자생적 연구’라는 게 일종의 환상이라는 생각도 하곤 해요. 참조하거나 인용하거나 번역하지 않는 완전히 온전한 우리의 ‘자생’이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일종의 민족주의적 환상은 아닐까. 예컨대 남의 음악을 안 듣는데, ‘내가 이런 또 훌륭한 음악을 만들었다!’ 라고 하는데 알고 보니 다 베토벤이고 비틀즈고 그런 거죠. 지금처럼 글로벌화된 학술 장과 문화적 장 안에서 사실 꾸준히 번역하고 참조하지 않는 이상은 뭔가 ‘자생’인지를 판단하기조차 어렵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사실 이건 자생의 문제라기보다는 번역이 계속해서 이뤄지는 환경, 또 번역이라는 과정 속에서 지속되어 온 권력 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어떻게 다른 관계를 만들어갈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해요.

특히나 지금처럼 한국에 대한 글로벌한 관심이 증대하고, 학계 안팎에서 비한국인 연구자들과 학생들이 한국에 대해 계속해서 배우고, 작업하려고 하는 가운데 우리가 번역 과정에서 어떤 관계를 쌓아갈 것인가. 최근에 스피박 방한과 관련해 한국에서 여러 논쟁이 있었잖아요. 사실 비슷한 논쟁들이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고, 비슷한 구도가 반복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피해자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었거든요. 문제제기 전체에 공감하진 않지만, 한국에서 한국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 한국의 페미니스트/퀴어 연구자들이 초국적 학술 장에서 더이상 단순히 서구 학계 권력의 순수한 피해자만은 아니라는 인식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더이상 한국에 관해 연구하는 비한국인들이 서구의 백인들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한국 대학들도 이제 점점 동남아시아, 중남미, 중동 출신의 국제 유학생 없이는 운영될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고, 한국에 있는 유학생들 뿐 아니라 한국 밖,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한국에 관해 연구하는 비백인 연구자들도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죠. 이런 초국적 맥락에서 ‘자생적’ 한국 연구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탈식민적이고 초국적인 한국 연구를 어떻게 그리고 실천할 것인지, 이 때 한국 페미니즘과 퀴어 연구는 어떤 모습을 할 수 있는지 같은 고민들을 더 오래 갖고 가고 싶어요.

관련해서 ‘한국인’이라는 에스닉 그룹을 어떻게 한국학, 한국연구에서 탈중심화할 것인가라는 고민 속에서, 좀 전에 김진숙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아시아 맥락으로의 확장이라는 비전에 저도 공감해요. 최근 대만의 퀴어 연구자 동료들을 오랜만에 만나 안부를 나누며 새삼, 현재 대만 퀴어 연구 씬의 주축인 40대 전후의 동료 연구자들 대부분이 2000년대 초중반 ‘인터아시아’라는 연구 운동의 흐름 속에 성장한 세대로 정체화하고, 이건 한국에서 문화연구와 페미니즘을 배우며 학부와 석사를 한 저 역시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런데 지금 ‘인터아시아’가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 보면, 제도화된 형태로서 인터아시아는 저널도 있고, 학회도 있고, 하던 대로 돌아가고 있긴 하지만, 20여 년 전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분들은 이제 다 은퇴하고 더 이상 그 레거시가 크게 이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 때 인터아시아라는 비전, 아시아적 맥락에서의 탈식민적 연대의 비전을 좀 다시 복원할 순 없을까, 다시 그 전망을 빌려올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들을 계속 여기 계신 분들과 더 나누고 싶어요.


정성조 동아시아 맥락에 대한 고민은 운동적인 맥락에서도 비슷하게 생기는 듯합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라든지, 꼭 트랜스젠더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혐오와 배제의 정치가 서로를 참조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순환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운동 차원에서의 연대에 대한 고민도 더 제기되는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패널 분들께 마무리 발언을 요청드리고자 합니다.


김진숙  한국에서 선생님들도 많이 오시고 해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기도 했고, 긴장되고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고, 미국 학계에서 한국 페미니즘을 연구한다는 그 위치성 때문에 생기는 조심스러움 등으로 많이 긴장 했었는데 줌바밍까지 있어서 어수선하게 진행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오늘 참여해주신 분들한테 감사드립니다. 지난 10년을 돌이켜 보니, 주니어 학자로서 미국 학계에서 자리 잡기, 제 앞가림 하기에 치중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도 DKSC를 하면서 서보경 선생님의 『휘말린 날들』 북토크도 진행을 했고, 한국에 계신 분들과 계속해서 저희가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아시아 내에서 페미니즘의 교류라든지 제가 할 수 있는 역량에서 여러 고민을 하고 있어서,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함께 만들어 나가는 그런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권정민 제가 개인적으로 품고 있는 여러 고민들을 다른 패널리스트 선생님들, 그리고 참석해주신 여러 연구자분들 역시 공유하고 계시다는 점을 오늘 이자리에서 확인하며, 우리가 지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히 연구를 이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동시에 앞으로 우리가 풀어가야 할 과제들이 여전히 많다다는 생각에 책임감과 부담도 커졌지만, 그 자체로 의미있고 긍정적인 긴장감이라고 생각하구요. 앞으로 저희 행사에서 이런 고민과 경험들을 풀어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뵐 때는 오늘처럼 예상치 못한 방해가 없이 더 밀도있는 대화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어떤 방해나 제약에도 각자 진행 중인 연구를 계속 이어나가시길 응원합니다. 이 분야에서 연구 주제를 설정하는 일, 향후 고용 시장에서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 프로그램의 불확실한 지원 등 다양한 위치에서 여러 현실적 제약을 맞닥뜨리고 계실 텐데, 스스로 의미있고,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공부를 계속하다 보면 길이 열리더라고요. 포기하지 마시고, 각자의 신념과 지향을 따라 꾸준히 연구를 계속 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민우 마지막으로, 오늘 나누고 싶었지만 아쉽게 나누지 못한 주제 중 하나는 사실 팔레스타인이라고 생각해요. 예컨대 지금 라운드테이블이 열리는 오늘도 한국 서울에선 기후 대행진이 열리고, 그 기후 대행진의 여러 참가 단위와 주요한 구호들 속에 팔레스타인 연대가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잖아요. 전세계적으로 권위주의가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미국과 서구 대학들 곳곳에서는 학문의 자유가 심각한 위기에 놓이고, 한때 ‘학술 제국’처럼 기능했던 미국 학계의 헤게모니가 빠르게 무너지고, 비판적 인종연구나 젠더/섹슈얼리티 연구, 인문학과 기후과학 같은 분야가 권위주의적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고요. 저는 이런 여러 흐름의 시작이자 끝에 팔레스타인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어쩌면 ‘우리는 한국에 있으니까,’ 국제뉴스 한 꼭지에서나 보도되는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고, 아마 그게 대중적인 인식이기도 할 테고, 연구자들도 어쩌면 많은 경우에 ‘내 연구는 중동이나 팔레스타인과 무관하니까, 내 연구는 상관없으니까’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이제 오늘 내내 논의한 한국의 현재 글로벌 위치라는 게 그렇잖아요. 세계 경제 10대 대국이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내란을 극복한 K-민주주의라며 한국이 해외에서 유엔 회의를 주관하고 자랑하고, 추켜 세우고 이러잖아요. 그런데 동시에 한국 정부와 기업은 팔레스타인에서의 학살과 직결된 군사 및 무기 거래에 관여하고 또 엄청난 이윤을 얻어 오기도 했잖아요. 이런 구조적 책임 속에서 한국인으로서, 한국 연구자로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 고민이 사실 페미니스트/퀴어 연구자로서도 결코 놓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지금같이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사실상 공모가 되는 거잖아요.

지금의 변화하는 글로벌한 정치, 문화적 환경 속에서 페미니즘의 언어와 퀴어의 언어는 어떻게 제국주의나 정착민 식민주의와 결착해 집단학살에 공모하고 있는지, 또 이에 대해 한국에 있는 또는 한국에 관해 연구하는 사람들로서, 또 페미니스트/퀴어 연구자들로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지, 어떻게 저항의 언어를 만들 수 있을지, 이런 질문들이 사실 지금 저희가 오래 고민해 왔던 논의들과 만나는 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또 최소한 저희 그룹에서라도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요.


정성조 긴 시간 토론에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야기 나눈 문제의식을 더 확산하고, 또 고민을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 무엇을 같이 해보는 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라운드테이블을 마치겠습니다.


김진숙

페미니스트 미디어 연구자. 디지털 액티비즘, 소셜 미디어 플랫폼과 초국적 디지털 문화를 가르치고 연구한다.


권정민

디지털 문화 및 영화학을 가르치고 있다.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의 틀을 통해 디지털 문화, 영화 및 미디어, 미디어 산업과 팬, 미디어 셀러브리티, 그리고 한국 및 동아시아 대중문화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정민우

사회학자/퀴어 연구자


정성조

사회학 연구자.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역사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며, 성소수자의 차별 경험과 건강를 연구한다.


  1. Kim, Jinsook(2017), “#iamafeminist as the “Mother Tag”: Feminist Identification and Activism against Misogyny on Twitter in South Korea,” Feminist Media Studies, 17(5), 804-820.

  2. https://dkscollective.com/re-queer-korea/

  3. Song, Jesook(2014), Living on Your Own: Single Women, Rental Housing, and Post-Revolutionary Affect in Contemporary South Korea, SUNY Press.

  4. Kwon, Jungmin(2025), “Korean Women, Gwangjang Feminism, and Transmedia Feminist Worldbuilding,Women's Studies in Communication, 48(4), 1-10.

  5. Kim, Jieun(2024), “A Critical Analysis of TERF Politics in South Korea: The Contradictory Constructions of ‘Western Feminism’ and Its Legitimizing Effects,Asian Journal of Women’s Studies, 30(July), 196–226.

  6. Kim, Bohyeong(2025), “Feminist Economicus: Popular Feminism, Popular Finance, and the Making of the Economic Woman in South Korea,” Cultural Studies, 1–24.

  7. 전혜은(2021), 『퀴어이론 산책하기』, 도서출판 여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