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2025.12.) l 퀴어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페미니즘 리부트’ 10년 l 신진연구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를 통해 되돌아보는 TERF의 한계와 현재
나영
11월 1일 성수동의 한 공간에서 제1회 비혼페어가 2천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행사는 비혼을 주제로 하고 있었지만 비혼 라이프에 관심 있는 기혼 여성, 사실혼 관계에 있는 레즈비언 커플은 참여가 가능했다. 반면, 비혼에 관심이 있는 이성애 커플이 함께 참여하는 건 불가능했다. 주최 측은 입장 시 주민등록증이나 여권 등 법적 신분증을 제출하고 여성임을 확인받은 사람에 한해서만 참여할 수 있다고 참가 기준을 공지했다. 기업, 단체, 동아리 등을 망라하는 66개의 부스가 자리했고 다수의 대학 래디컬 페미니스트 동아리가 부스 운영에 함께 참여했다.
동시에 한편에서는 생활경제, 여성건강, 내 집 마련, 여성폭력에 대한 이해와 대책을 주제로 한 강의가 진행되기도 했다. 법적 성별이 여성으로 증명되지 않는 이들은 행사 입장에서부터 차단을 당했지만 노골적으로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이미지나 콘텐츠를 배포하는 일은 없었으며, 각 대학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들과 한국여성인권플러스를 비롯해 TERF 입장의 그룹과 단체가 다수 참여했지만 “성별은 XX와 XY로 구분되지만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여성건강 강의(강사 김새롬 교수)가 진행되기도 했다. 비혼페어를 ‘TERF 행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행사를 주도적으로 준비한 이들 중 다수는 과거 또는 현재 TERF 입장을 지닌 이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행사는 2015년 페미니즘의 대중적 집단 의제화 이후 워마드를 중심으로 시작된 ‘랟펨’과 ‘쓰까페미’ 논쟁, 4B운동,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반대 사건을 거쳐,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입장의 래디컬 페미니스트-TERF 그룹이 현재 어떠한 자장 아래 모이고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행사이기도 했다.
사실 2025년인 현재 TERF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만큼 TERF 그룹의 활동은 이전만큼 적극적이거나 활발하지 않다. 과거 TERF 입장을 주도적으로 선동하던 이들의 대외적인 활동이 거의 중단되다시피 하면서 이들의 자체 담론도 생산과 유통이 중단되었고, 새로운 논쟁도 더 이상 지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조직되었던 배경과, 앞으로 어떠한 방향이 필요할지에 대해서는 지금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TERF는 단지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입장인 것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영향하에서 새롭게 형성된 래디컬 페미니즘의 자장 안에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이들의 운동은 여전히 그 자장 안에서 한계와 또 다른 불씨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리부트’의 시기를 통해 되돌아보는 TERF
2022년 10월 한겨레 21은 언더스코어와 함께 2017년 2월 7일부터 2018년 11월 18일까지의 워마드 게시물을 헤이트스코어 알고리즘으로 분석하여 보도했다. 분석 결과, 시간이 흐를수록 성소수자와 기혼 여성에 대한 혐오발언 비율은 감소하고 단순 악플과 남성을 겨냥한 혐오표현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는 특히 ‘자기계발’에 대한 게시물과 댓글의 비중이 다른 게시물에 비해 상당히 높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관한 게시물은 주로 자격증·어학공부 등 자기계발을 하고, 교환학생·유학 등으로 한국을 벗어나, 투자·재테크로 경제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서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해외에서도 ‘신자유주의화된 페미니즘’이라고 표현하는데 임금노동자가 되기 불가능해진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인식은 남녀 불문 20대가 공유하고 있다. 자기계발로 (논의가) 흐르는 건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짚었다.
2015년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가 시작되었던 배경을 다시 짚어보자. 2015년 2월 《그라치아 코리아》에 실린 김태훈의 칼럼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는 이 역사적인 국면을 만든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당시 ‘김군’이라고 불리던 어느 청소년이 당시 트위터에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 그래서 IS를 좋아한다”는 등의 글을 남기고 실제로 IS에 가입하기 위해 시리아로 떠난 일이 있었고, 김태훈은 이 칼럼에서 남성을 공격하는 페미니스트들 때문에 그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는 주장을 했다. 그의 글에 따르면, “21세기는 온전히 페미니즘의 시대이고 남녀평등은 이제 구호를 떠나 상식이 됐다. 여성 대통령도 낯설지 않다. 이혼은 재산의 절반을 보장하고,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게 만든 남성은 사회적으로 매장된다. 이쯤 되면 페미니즘은 이제 편의점의 물티슈처럼 도처에 존재하는 무엇이 되었다.” 그는 원래는 페미니즘이 그런 게 아니었는데 ‘남성을 공격해 현재의 위치에서 끌어내리면 그 자리를 여성이 차지할 거라고 생각’하는 ‘현재의 페미니즘’이 무뇌아적이라 싸움터만 남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는 ‘싸워야 할 적은 남녀가 아니라 이 빌어먹을 시스템’이라고 짐짓 훈계를 남겼지만, 그의 글은 오히려 여성들로 하여금 ‘여성 대통령도 낯설지 않은’ 시대에 전혀 ‘남녀평등’하지 않은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트위터에서는 곧장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이 시작되었다. 선언에 동참한 이들은 자신이 여전히 경험하고 있는 불평등의 현실을 이야기했고, 그것이 바로 그 ‘빌어먹을 시스템’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조목조목 짚었다. 그리고 이 흐름은 디시인사이드의 메르스 갤러리에서 시작된 미러링 전략과 만나며 메갈리아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일련의 흐름 속에서 온라인 공간을 통해 서로를 만난 이들은 곳곳에서 페미니즘 모임을 조직했고 대학에는 페미니즘 학회와 동아리가 크게 증가했다.
한국의 TERF 그룹이 이 과정 속에서 조직되었다는 점을 주목해 보자.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과 메갈리아, 메갈리아에서 워마드가 분리되어 나오는 과정은 이 시기에 크게 증대한 사회적 관심과 주목을 놓치지 않고 새로운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조직하는 과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에는 지정성별 여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이들이 폭넓게 참여했고, 자신의 경험을 교차적 구조 위에서 말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메갈리아에서는 권력관계를 전복시켜 보여주고자 하는 미러링 전략의 특성상 성별을 중심으로 한 구도가 선명해졌다. 그와 함께 한편에서는 “생물학적 여성만을 챙겨야 한다”는 입장이 격렬한 논쟁을 일으키며 힘을 얻었다. ‘챙긴다’라는 표현이 분명히 보여주듯이 이들이 인식하는 세계는 적자생존의 치열한 경쟁 세계이며, 따라서 이들의 입장에서 페미니즘이 취해야 할 전략은 ‘누구와 함께 살아남을 것인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즉 이들은 불평등을 ‘생존에 불리한’ 구조로 이해하였으며,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언제 짐이 되거나 적이 될지 모르는 이들까지 ‘껴안고’ 가자는 전략으로 여겨 비판하였다. 이는 이들이 자신을 포함한 여성들의 경험을 기반으로 불평등과 폭력의 현실에 대해서는 인식했으나 이를 더욱 추동해 온 교차적 구조와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인식을 확장하거나 대응하지 않으며,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방식으로 살아남기를 적극적인 전략으로써 선택하고 강화하여 중요한 밑바탕으로 삼았다.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의 흐름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을 추동하며 정부와 자본이 유포해 온 “이제 여성들도 능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명백한 허구였음을 고발하는 것이었지만, 워마드에서는 이 메시지가 다시 이들의 운동을 추동하는 내적 동기로서 작동한다. 따라서 ‘생물학적 여성’들이 ‘여성이 아닌’ 존재들에 의해 자꾸만 경쟁에서 가로막히고 폭력을 당하고 죽어가는 현실을 바꾸려면 생물학적 여성들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여성들이 성공하게 돕고, 이를 통해 집단적 권력을 선명하게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TERF의 입장에서 트랜스젠더는 이 전략의 성공을 가로막는 존재다.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여성성의 이미지를 강화하고, 안전을 위해 서로를 식별하는 데에 혼란을 야기하며, 남성으로서의 자원과 신체를 가지고 리그를 불공정하게 만드는 존재, 여성들에게 언제 폭력과 위해를 가하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존재로서 인식되기 때문이다. 열다북스가 번역하여 출간한 쉴라 제프리스의 책 『젠더는 해롭다』는 아예 ‘젠더’라는 개념이 이러한 불안과 혼란을 야기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여성’을 사회적으로 규정짓고 통제하기 위한 구조적 젠더화의 문제를 삭제하고 모든 문제를 생물학적 특성에 기반한 성별로서의 여성 존재의 본질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환원함으로써 페미니즘을 단순히 여성이라는 피해자, 약자의 싸움으로 위치시킨다.
‘여성도 능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공적 영역에서 보편적 복지와 보장 체계를 축소하면서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일반화하고,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과 능력의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고자 했던 신자유주의 정부의 프로젝트였다. 보편적 보장 대신 취약자로서의 자격을 입증해야 받을 수 있는 선별적 복지, 안정적인 임금과 일자리, 주택 대신 각 개인이 스스로 자기계발을 담보로 삼아 일단 부채를 만들도록 유도하는 금융화 된 복지와 지원 시스템이 이 프로젝트의 밑바탕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 이 프로젝트는 여성들에게 ‘성별은 능력으로 넘어설 수 있는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었지만, 실상은 이를 통해 여성들을 더욱 체계적으로 젠더화된 노동구조로 위치시키고, 선별적 복지와 금융 부채에 의존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여성이라는 성별’이 아니라 여성을 어떻게 변화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추어 계속해서 새롭게 구조 내로 젠더화 하는가를 문제로 삼아야 하며, 이 젠더화의 구조 속에 연결된 존재들과 함께 선별적 복지와 능력주의의 파이를 내던지고 판 자체를 뒤집을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신자유주의가 만든 허상의 메시지를 벗어나는 길이다. 그러나 TERF 그룹은 여기서 젠더라는 개념이 지닌 구조적 문제의식을 폐기하고 ‘생물학적 여성들만의 파이’를 챙기는 데에 집중함으로써 오히려 연대를 제약하는 한계를 노정했다. 결과적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공격을 경유하여 여성 의제를 급진화하거나 ‘생물학적 여성들만’의 배타적인 힘을 조직하려는 TERF의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TERF의 현재와 한계
쉴라 제프리스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출판, 강좌, 팟캐스트 등을 통해 TERF 입장의 생산과 유포를 주도했던 열다북스는 2022년 이후 활동이 중단되었다. 이들은 쉴라 제프리스가 주도하여 설립한 여성 인권 캠페인(Women's Human Rights Campaign(WHRC), 현 국제 여성 선언 Women's Declaration International(WDI))과 함께 ‘여성의 성별에 기반한 권리 선언(Declaration on Women's Sex-Based Rights)’을 번역하여 배포하는 한편, 성별정체성에 대한 차별금지를 포함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활동까지 활발하게 벌였으나 이후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열다북스의 대표였던 국지혜는 현재 한국여성인권플러스에서 FGM 철폐, 대리모 철폐 운동을 하는 국제연대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함께 활동했던 이들 중 일부는 현재 X에서 우파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 외에 TERF의 입장에 동참했던 이들 중 다수는 현재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한 활동보다는 ‘랟펨’의 줄기 위에서 여성 이슈를 중심으로 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TERF의 운동은 이해 집단을 공고히 하기 위해 혐오를 조직하는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반대할 대상’의 이슈화를 필요로 하며, 따라서 이를 적극적으로 선동하는 그룹이 없으면 계속해서 활성화되기 어렵다. 그러나 ‘여성만의 공간’에 대한 이슈가 다시 제기될 때,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논의가 실질적으로 본격화될 때, 그리고 보수 개신교 집단이 중심이 된 왜곡된 성교육의 현장에서 TERF의 트랜스젠더 배제 논리는 언제든 다시 살아날 불씨를 지니고 있다. 또한 6B(비연애, 비섹스, 비혼, 비출산, 비소비, 비돕비(같은 운동을 하는 다른 비혼 여성 돕기) 4T(탈코르셋, 탈종교, 탈오타쿠, 탈아이돌), ‘여돕여’(여성이 여성을 돕는다)와 같은 ‘랟펨’의 메시지가 ‘능력 있는 여성’으로서의 성공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이상 트랜스젠더는 언제든 이에 방해가 되는, 반대할 수밖에 없는 대상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한편 TERF와의 논쟁은 오히려 트랜스젠더에 대한 논의를 사회적으로 가시화하고 구체화한 측면이 있지만 그 논쟁의 한복판을 지나온 지난 10년의 과정에서 많은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세상을 떠났고, 우리는 여전히 많은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화장실을 가지 못해 자퇴를 고민하는 현실 속에 있다. 반대를 통해 이슈가 부상하는 때에만 혐오에 대한 대응을 논의할 것이 아니라 TERF와의 논쟁 속에서 마주했던 신체와 섹슈얼리티, 젠더, 안전, 공간, 재생산권에 대한 논의들을 계속해서 확장하고 새로운 의제로서 제기하는 과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TERF의 운동은 바로 이 개념들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고여왔던 오해와 왜곡을 밑거름으로 삼아 시작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에서 활동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서 우경화와 혐오가 작동하는 방식이 어떤 방식으로 성적권리에 대한 침해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추적하고 있다.
3호(2025.12.) l 퀴어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페미니즘 리부트’ 10년 l 신진연구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를 통해 되돌아보는 TERF의 한계와 현재
나영
11월 1일 성수동의 한 공간에서 제1회 비혼페어가 2천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행사는 비혼을 주제로 하고 있었지만 비혼 라이프에 관심 있는 기혼 여성, 사실혼 관계에 있는 레즈비언 커플은 참여가 가능했다. 반면, 비혼에 관심이 있는 이성애 커플이 함께 참여하는 건 불가능했다. 주최 측은 입장 시 주민등록증이나 여권 등 법적 신분증을 제출하고 여성임을 확인받은 사람에 한해서만 참여할 수 있다고 참가 기준을 공지했다. 기업, 단체, 동아리 등을 망라하는 66개의 부스가 자리했고 다수의 대학 래디컬 페미니스트 동아리가 부스 운영에 함께 참여했다.
동시에 한편에서는 생활경제, 여성건강, 내 집 마련, 여성폭력에 대한 이해와 대책을 주제로 한 강의가 진행되기도 했다. 법적 성별이 여성으로 증명되지 않는 이들은 행사 입장에서부터 차단을 당했지만 노골적으로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이미지나 콘텐츠를 배포하는 일은 없었으며, 각 대학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들과 한국여성인권플러스를 비롯해 TERF 입장의 그룹과 단체가 다수 참여했지만 “성별은 XX와 XY로 구분되지만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여성건강 강의(강사 김새롬 교수)가 진행되기도 했다. 비혼페어를 ‘TERF 행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행사를 주도적으로 준비한 이들 중 다수는 과거 또는 현재 TERF 입장을 지닌 이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행사는 2015년 페미니즘의 대중적 집단 의제화 이후 워마드를 중심으로 시작된 ‘랟펨’과 ‘쓰까페미’ 논쟁, 4B운동,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반대 사건을 거쳐,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입장의 래디컬 페미니스트-TERF 그룹이 현재 어떠한 자장 아래 모이고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행사이기도 했다.
사실 2025년인 현재 TERF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만큼 TERF 그룹의 활동은 이전만큼 적극적이거나 활발하지 않다. 과거 TERF 입장을 주도적으로 선동하던 이들의 대외적인 활동이 거의 중단되다시피 하면서 이들의 자체 담론도 생산과 유통이 중단되었고, 새로운 논쟁도 더 이상 지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조직되었던 배경과, 앞으로 어떠한 방향이 필요할지에 대해서는 지금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TERF는 단지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입장인 것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영향하에서 새롭게 형성된 래디컬 페미니즘의 자장 안에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이들의 운동은 여전히 그 자장 안에서 한계와 또 다른 불씨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리부트’의 시기를 통해 되돌아보는 TERF
2022년 10월 한겨레 21은 언더스코어와 함께 2017년 2월 7일부터 2018년 11월 18일까지의 워마드 게시물을 헤이트스코어 알고리즘으로 분석하여 보도했다. 분석 결과, 시간이 흐를수록 성소수자와 기혼 여성에 대한 혐오발언 비율은 감소하고 단순 악플과 남성을 겨냥한 혐오표현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는 특히 ‘자기계발’에 대한 게시물과 댓글의 비중이 다른 게시물에 비해 상당히 높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관한 게시물은 주로 자격증·어학공부 등 자기계발을 하고, 교환학생·유학 등으로 한국을 벗어나, 투자·재테크로 경제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서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해외에서도 ‘신자유주의화된 페미니즘’이라고 표현하는데 임금노동자가 되기 불가능해진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인식은 남녀 불문 20대가 공유하고 있다. 자기계발로 (논의가) 흐르는 건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짚었다.1
2015년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가 시작되었던 배경을 다시 짚어보자. 2015년 2월 《그라치아 코리아》에 실린 김태훈의 칼럼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2는 이 역사적인 국면을 만든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당시 ‘김군’이라고 불리던 어느 청소년이 당시 트위터에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 그래서 IS를 좋아한다”는 등의 글을 남기고 실제로 IS에 가입하기 위해 시리아로 떠난 일이 있었고, 김태훈은 이 칼럼에서 남성을 공격하는 페미니스트들 때문에 그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는 주장을 했다. 그의 글에 따르면, “21세기는 온전히 페미니즘의 시대이고 남녀평등은 이제 구호를 떠나 상식이 됐다. 여성 대통령도 낯설지 않다. 이혼은 재산의 절반을 보장하고,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게 만든 남성은 사회적으로 매장된다. 이쯤 되면 페미니즘은 이제 편의점의 물티슈처럼 도처에 존재하는 무엇이 되었다.” 그는 원래는 페미니즘이 그런 게 아니었는데 ‘남성을 공격해 현재의 위치에서 끌어내리면 그 자리를 여성이 차지할 거라고 생각’하는 ‘현재의 페미니즘’이 무뇌아적이라 싸움터만 남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는 ‘싸워야 할 적은 남녀가 아니라 이 빌어먹을 시스템’이라고 짐짓 훈계를 남겼지만, 그의 글은 오히려 여성들로 하여금 ‘여성 대통령도 낯설지 않은’ 시대에 전혀 ‘남녀평등’하지 않은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트위터에서는 곧장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이 시작되었다. 선언에 동참한 이들은 자신이 여전히 경험하고 있는 불평등의 현실을 이야기했고, 그것이 바로 그 ‘빌어먹을 시스템’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조목조목 짚었다. 그리고 이 흐름은 디시인사이드의 메르스 갤러리에서 시작된 미러링 전략과 만나며 메갈리아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일련의 흐름 속에서 온라인 공간을 통해 서로를 만난 이들은 곳곳에서 페미니즘 모임을 조직했고 대학에는 페미니즘 학회와 동아리가 크게 증가했다.
한국의 TERF 그룹이 이 과정 속에서 조직되었다는 점을 주목해 보자.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과 메갈리아, 메갈리아에서 워마드가 분리되어 나오는 과정은 이 시기에 크게 증대한 사회적 관심과 주목을 놓치지 않고 새로운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조직하는 과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에는 지정성별 여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이들이 폭넓게 참여했고, 자신의 경험을 교차적 구조 위에서 말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메갈리아에서는 권력관계를 전복시켜 보여주고자 하는 미러링 전략의 특성상 성별을 중심으로 한 구도가 선명해졌다. 그와 함께 한편에서는 “생물학적 여성만을 챙겨야 한다”는 입장이 격렬한 논쟁을 일으키며 힘을 얻었다. ‘챙긴다’라는 표현이 분명히 보여주듯이 이들이 인식하는 세계는 적자생존의 치열한 경쟁 세계이며, 따라서 이들의 입장에서 페미니즘이 취해야 할 전략은 ‘누구와 함께 살아남을 것인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즉 이들은 불평등을 ‘생존에 불리한’ 구조로 이해하였으며,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언제 짐이 되거나 적이 될지 모르는 이들까지 ‘껴안고’ 가자는 전략으로 여겨 비판하였다. 이는 이들이 자신을 포함한 여성들의 경험을 기반으로 불평등과 폭력의 현실에 대해서는 인식했으나 이를 더욱 추동해 온 교차적 구조와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인식을 확장하거나 대응하지 않으며,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방식으로 살아남기를 적극적인 전략으로써 선택하고 강화하여 중요한 밑바탕으로 삼았다.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의 흐름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을 추동하며 정부와 자본이 유포해 온 “이제 여성들도 능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명백한 허구였음을 고발하는 것이었지만, 워마드에서는 이 메시지가 다시 이들의 운동을 추동하는 내적 동기로서 작동한다. 따라서 ‘생물학적 여성’들이 ‘여성이 아닌’ 존재들에 의해 자꾸만 경쟁에서 가로막히고 폭력을 당하고 죽어가는 현실을 바꾸려면 생물학적 여성들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여성들이 성공하게 돕고, 이를 통해 집단적 권력을 선명하게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TERF의 입장에서 트랜스젠더는 이 전략의 성공을 가로막는 존재다.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여성성의 이미지를 강화하고, 안전을 위해 서로를 식별하는 데에 혼란을 야기하며, 남성으로서의 자원과 신체를 가지고 리그를 불공정하게 만드는 존재, 여성들에게 언제 폭력과 위해를 가하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존재로서 인식되기 때문이다. 열다북스가 번역하여 출간한 쉴라 제프리스의 책 『젠더는 해롭다』는 아예 ‘젠더’라는 개념이 이러한 불안과 혼란을 야기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여성’을 사회적으로 규정짓고 통제하기 위한 구조적 젠더화의 문제를 삭제하고 모든 문제를 생물학적 특성에 기반한 성별로서의 여성 존재의 본질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환원함으로써 페미니즘을 단순히 여성이라는 피해자, 약자의 싸움으로 위치시킨다.
‘여성도 능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공적 영역에서 보편적 복지와 보장 체계를 축소하면서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일반화하고,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과 능력의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고자 했던 신자유주의 정부의 프로젝트였다. 보편적 보장 대신 취약자로서의 자격을 입증해야 받을 수 있는 선별적 복지, 안정적인 임금과 일자리, 주택 대신 각 개인이 스스로 자기계발을 담보로 삼아 일단 부채를 만들도록 유도하는 금융화 된 복지와 지원 시스템이 이 프로젝트의 밑바탕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 이 프로젝트는 여성들에게 ‘성별은 능력으로 넘어설 수 있는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었지만, 실상은 이를 통해 여성들을 더욱 체계적으로 젠더화된 노동구조로 위치시키고, 선별적 복지와 금융 부채에 의존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여성이라는 성별’이 아니라 여성을 어떻게 변화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추어 계속해서 새롭게 구조 내로 젠더화 하는가를 문제로 삼아야 하며, 이 젠더화의 구조 속에 연결된 존재들과 함께 선별적 복지와 능력주의의 파이를 내던지고 판 자체를 뒤집을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신자유주의가 만든 허상의 메시지를 벗어나는 길이다. 그러나 TERF 그룹은 여기서 젠더라는 개념이 지닌 구조적 문제의식을 폐기하고 ‘생물학적 여성들만의 파이’를 챙기는 데에 집중함으로써 오히려 연대를 제약하는 한계를 노정했다. 결과적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공격을 경유하여 여성 의제를 급진화하거나 ‘생물학적 여성들만’의 배타적인 힘을 조직하려는 TERF의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TERF의 현재와 한계
쉴라 제프리스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출판, 강좌, 팟캐스트 등을 통해 TERF 입장의 생산과 유포를 주도했던 열다북스는 2022년 이후 활동이 중단되었다. 이들은 쉴라 제프리스가 주도하여 설립한 여성 인권 캠페인(Women's Human Rights Campaign(WHRC), 현 국제 여성 선언 Women's Declaration International(WDI))과 함께 ‘여성의 성별에 기반한 권리 선언(Declaration on Women's Sex-Based Rights)’을 번역하여 배포하는 한편, 성별정체성에 대한 차별금지를 포함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활동까지 활발하게 벌였으나 이후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열다북스의 대표였던 국지혜는 현재 한국여성인권플러스에서 FGM 철폐, 대리모 철폐 운동을 하는 국제연대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함께 활동했던 이들 중 일부는 현재 X에서 우파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 외에 TERF의 입장에 동참했던 이들 중 다수는 현재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한 활동보다는 ‘랟펨’의 줄기 위에서 여성 이슈를 중심으로 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TERF의 운동은 이해 집단을 공고히 하기 위해 혐오를 조직하는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반대할 대상’의 이슈화를 필요로 하며, 따라서 이를 적극적으로 선동하는 그룹이 없으면 계속해서 활성화되기 어렵다. 그러나 ‘여성만의 공간’에 대한 이슈가 다시 제기될 때,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논의가 실질적으로 본격화될 때, 그리고 보수 개신교 집단이 중심이 된 왜곡된 성교육의 현장에서 TERF의 트랜스젠더 배제 논리는 언제든 다시 살아날 불씨를 지니고 있다. 또한 6B(비연애, 비섹스, 비혼, 비출산, 비소비, 비돕비(같은 운동을 하는 다른 비혼 여성 돕기) 4T(탈코르셋, 탈종교, 탈오타쿠, 탈아이돌), ‘여돕여’(여성이 여성을 돕는다)와 같은 ‘랟펨’의 메시지가 ‘능력 있는 여성’으로서의 성공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이상 트랜스젠더는 언제든 이에 방해가 되는, 반대할 수밖에 없는 대상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한편 TERF와의 논쟁은 오히려 트랜스젠더에 대한 논의를 사회적으로 가시화하고 구체화한 측면이 있지만 그 논쟁의 한복판을 지나온 지난 10년의 과정에서 많은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세상을 떠났고, 우리는 여전히 많은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화장실을 가지 못해 자퇴를 고민하는 현실 속에 있다. 반대를 통해 이슈가 부상하는 때에만 혐오에 대한 대응을 논의할 것이 아니라 TERF와의 논쟁 속에서 마주했던 신체와 섹슈얼리티, 젠더, 안전, 공간, 재생산권에 대한 논의들을 계속해서 확장하고 새로운 의제로서 제기하는 과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TERF의 운동은 바로 이 개념들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고여왔던 오해와 왜곡을 밑거름으로 삼아 시작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에서 활동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서 우경화와 혐오가 작동하는 방식이 어떤 방식으로 성적권리에 대한 침해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추적하고 있다.
한겨레21(2022.10.3.), “워마드의 관심사는 ‘자기계발’ [혐오의 민낯] 급진 페미니즘 커뮤니티의 변화”. ↩
오마이뉴스(2015.2.13.), “IS보다 생각 없는 '여성 혐오'가 더 위험해요 [주장] 김태훈의 칼럼 '무뇌아적 페미니즘 위험', 이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