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25.12)]트랜스젠더퀴어를 중심으로 본 ‘페미니즘 리부트’의 역사적 재구성

 3호(2025.12.)  l  퀴어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페미니즘 리부트’ 10년  l  신진연구

트랜스젠더퀴어를 중심으로 본 ‘페미니즘 리부트’의 역사적 재구성

연혜원



2025년 윤석열 퇴진 광장은 2016년 촛불집회 이후 등장한 새로운 여성주의 세대의 정동을 계승하는 듯 보였지만, 동시에 그 광장은 더 이상 ‘여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장면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페미니즘 리부트’가 성폭력 고발, 미러링, 온라인 페미니즘 문화의 출현을 통해 여성이 말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의 지평을 확장해 왔다면, 2025년의 광장에서는 퀴어가 광장에서 커밍아웃하는 장면, 퀴어문화축제의 몸짓이 시위의 리듬에 스며드는 장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시 벌어지는 ‘여성’ 범주를 둘러싼 갈등과 경계 긋기가 동시에 목격되었다.

나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광장을 읽는 열쇠가 페미니즘 리부트를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여성의 권리 운동이 아닌, 젠더이분법을 해체하는 정치로 재독해하는 것, 즉 퀴어의 시선으로 지난 10년을 다시 읽는 일에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 범주를 자명한 단일 집합이 아닌 차이와 불화, 추방의 흔적으로 읽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성 범주는 언제나 논쟁적이었으며, ‘트랜스 여성은 여성인가’라는 질문 역시 여성 범주를 구성하는 권력의 문제를 드러낸다. 다시 말해, ‘여성’이라는 범주는 운동의 기반이자 동시에 배제·경계의 실천을 수행해 온 장치였다.

이 점에서 페미니즘-퀴어 관계의 역사를 ‘분리와 충돌’이 아닌 ‘경합과 재구성’의 역사로 다시 쓰는 일은 중요하다. 배제는 언제나 외부가 아니라 내부의 흔적을 지우는 방식으로 수행된다. 즉, 퀴어는 언제나 페미니즘의 바깥이 아니라 안에 있으면서도 쫓겨났던 존재였다. 이 글은 2015년 이후 한국의 페미니즘 리부트가 ‘여성의 귀환’이라는 단일한 서사로 소비되어 온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를 트랜스젠더퀴어를 중심에 둔 역사적 재서술로 재정렬하고자 한다. 그동안 페미니즘 리부트는 종종 메갈리아·워마드,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촛불 광장, 온라인 페미니즘과 연결되며 ‘젊은 여성의 등장’이라는 프레임으로 기억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는 ‘여성’ 범주가 구성되어 온 정치에 관한 질문을 유보한 채, 여성이라는 정치적 주체를 이미 존재하는 실체로 전제해 왔다. 반면 트랜스젠더퀴어를 분석의 중심에 둘 때 리부트는 단순한 페미니즘의 확장이 아니라, 여성 범주를 재구성한 사건의 연쇄, 즉 규범의 경계가 드러나고 협상된 역사로 다시 읽힌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사례를 덧붙이는 작업이 아니라, 사건의 배치 자체를 재구성하는 역사적 시선 전환이다.

페미니즘 리부트를 다시 쓸 때 우리가 수행해야 할 과제는 다음의 세 가지를 분리된 과제가 아닌 하나의 관점적 전환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첫째, 여성 범주를 자연화된 정체성이 아니라 권력과 제도 속에서 구성된 범주적 효과로 분석하는 역사적 독해, 둘째, 메갈리아 내 퀴어 혐오를 둘러싼 논쟁, 변희수 하사 사건, 숙명여대 입학 철회 논쟁 등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논쟁을 주변부가 아닌 페미니즘 작동을 드러내는 핵심 장면으로 재위치하는 서사, 셋째, ‘누가 여성인가’를 둘러싼 공방을 포용의 윤리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여성 범주를 조직하기 위해 안전과 공간, 시민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담론을 사료로 읽어내는 재서술 전략. 이 세 가지는 리부트를 선형적 발전으로 기록하는 기존 서술을 넘어, 균열·갈등·파열·재배열의 역사로 기술하도록 요구한다.

그 결과, 2015~2025년의 페미니즘은 하나의 물결이 아니라 교차하며 충돌한 흐름들의 다층적 지형으로 재등장한다. ‘여성’이라는 범주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트랜스젠더퀴어를 둘러싼 배제와 협상, 환대의 장면 속에서 계속해서 구축된 정치적 기술이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퀴어를 중심에 둔 해석은 미래의 윤리적 과제가 아니라 이미 지나간 역사에 대한 더 정확한 기록 방식이다. 다시 말해, 지난 10년여 간의 페미니즘 운동을 재구성하는 일은 “포용하라”는 호소가 아니라 역사기술 방법론의 전환이며, 그 핵심 열쇠는 경계에서 말해온 주체들의 흔적을 다시 읽는 데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트랜스젠더퀴어의 관점은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서사를 다시 고쳐 쓰게 만든다. 버틀러 이후 페미니즘-퀴어 이론은 젠더/섹슈얼리티를 정체성의 이름이 아니라 권력의 배치, 불가해성, 비규범성의 정동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트랜스 연구 또한 특정 집단이 아닌 젠더-범주 자체를 비평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다시 말해, 퀴어는 여성 범주를 확장하는 보조선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범주를 만든 조건을 드러내고 해체하는 시선이다.

트랜스젠더퀴어의 시선으로 페미니즘 리부트를 읽는 일은, 광장의 미래를 상상하기 위한 사유의 전환이기도 하다. 페미니즘 리부트를 2015년의 순간으로만 이해하는 관점은 한국 여성운동의 긴 계보에서 발생해온 차이의 정치와 정체성 내부의 균열들을 충분히 조망하지 못한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여성운동은 이미 ‘여성’이라는 단일 주체를 전제하지 않고, 여성 내부의 차이를 둘러싼 질문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오김숙이는 이를 한국 여성운동이 보편적 여성 주체를 넘어 ‘여성들’의 차이와 그 정치적 조건을 탐색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여성주의 집단들은 성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여성, 비혼여성, 이주여성, 성적 실천의 차이를 의제로 끌어올리며, 여성운동 내부의 동질성 가정을 흔들었다. 이 흐름은 이후의 페미니즘 리부트가 급진적으로 폭발할 수 있는 정동적 기반을 이미 마련하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1

오김숙이는 2000년대 여성주의 운동의 공통된 맥락을 ‘소수자와 연대하는 여성주의운동’으로 요약하며 기존의 여성운동과 달리 여성 ‘공통’의 이해에 의문을 제기하고 여성들 사이의 다양성과 차이, 소수자 여성에 대한 식민화에 주목했다고 기술한다. 이들은 ‘소수자’라는 수사를 사용함으로써 단일한 범주로서의 ‘여성’을 해체하고자 했다. 즉, 2015년 이후의 페미니즘 리부트는 이전의 운동과 단절된 신생 사건이라기보다, ‘차이’라는 문제를 둘러싼 오랜 논쟁이 새로운 세대의 언어와 디지털 플랫폼에서 재점화된 것이었다. 2015년의 ‘리부트’는 돌연한 폭발이 아니라 누적된 발화의 촉발점이었다.2

따라서 퀴어 운동 또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 내부의 차이 논쟁과 나란히 축적되어 온 정치적 흐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흐름의 구체적 사례로 ‘드랙킹’을 위치시키면, 페미니즘과 퀴어 실천이 언제나 젠더 이분법을 전제하지 않는 몸의 정치를 통해 서로를 교란해 왔음이 드러난다. 박예지는 한국 드랙킹씬을 ‘퀴어페미니즘’의 맥락에서 분석하며, 드랙킹이 남성성/여성성의 경계를 패러디하고 수행적으로 전치함으로써 ‘여성’이라는 범주를 안정적인 실체가 아니라 다르게 구성될 수 있는 몸의 효과로 드러낸다고 말한다.3 드랙킹은 이분법적 젠더 규범을 드러내고 비트는 모방의 전략을 통해, 여성성과 남성성이 되풀이되는 수행 속에서만 유지되는 규범적 질서임을 노출해 왔다. 이때 중요한 것은 드랙킹이 공연 혹은 축제라는 문화적 주변부가 아니라, 페미니즘이 젠더 범주를 흔들어 왔던 역사 위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실천적 계보라는 점이다. 즉, 이는 페미니즘 리부트의 폭발 이전부터 축적돼 온 젠더 비규범성의 정동이 퀴어라는 언어를 통해 다시 표면화된 사건이며,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를 젠더 이분법에 대한 해체의 역사로 재정렬할 것을 요구하는 장면이다. 서로를 교란해 온 페미니즘과 퀴어의 접촉면은 2010년대 중반 이후 더욱 가시화되었고, 그 결과 페미니즘 리부트는 단일한 주체의 귀환이 아니라 범주의 재배열이 일어나는 문화적 변동의 장으로 읽힐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페미니즘의 역사는 중심/주류—주변/소수자의 이분법으로 정리될 수 없다. 퀴어는 배제가 아니라 동시대 내부의 균열로, 여성운동을 재구성해 온 힘이었다. 두 층위가 만났을 때 광장은 비로소 ‘여성들’의 광장이 아니라 ‘규범 바깥의 몸들’이 서는 광장이 되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 범주의 경계, 안전, 재현, 몸, 젠더 수행성을 둘러싼 질문들을 이전보다 더 뚜렷하게 드러냈다. 이 맥락에서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의 확장된 주체 형성을 추구했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트랜스젠더퀴어라는 존재는 운동 내부의 균열을 드러내는 가장 날카로운 매개가 되었다. 이는 운동이 가진 ‘여성성의 의미’를 시험하는 문제이며, 동시에 페미니즘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질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트랜스젠더퀴어를 둘러싼 담론은 페미니즘의 외부가 아닌, 오히려 가장 당면한 과제이자 미래를 묻는 질문 그 자체다. 이는 페미니즘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사유의 장을 열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보명은 변희수 하사 강제 전역과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합격생 입학 철회 사건이 한국 페미니즘 내부의 균열을 선명히 보여준 사건임을 지적한다. 두 사건은 서로 다른 제도인 군대와 여자대학교에서 발생했지만 모두 ‘여성/군인/시민’의 자격을 누가 갖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군은 변희수 하사를 ‘심신장애’로 분류하며 여성 군인의 자격을 부정했고, 숙명여대 트랜스여성 합격자는 여성이라는 자격의 불인정 속에서 입학을 포기해야 했다.4 이때 페미니즘을 흔든 진동은 트랜스젠더퀴어의 존재 그 자체라기보다, ‘여성’이라는 범주를 고정된 자격으로 봉합하려는 시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음을 드러낸 데서 발생한다.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철회 과정에 대한 이콴다의 내부자 기록5의 핵심은 충돌의 본질이 ‘트랜스젠더 혐오 vs 수용’이라는 단순 대립이 아니라 여대라는 공간이 오랫동안 겪어온 성범죄의 기억, 안전의 불안, 경계 설정의 정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때 트랜스젠더는 ‘새로운 타자’가 아니라 ‘기존의 위협 경험이 투사된 대상’으로 설정되었다. 즉, 트랜스젠더 배제 논리는 종종 ‘생물학적 여성 보호’라는 말로 포장되었지만, 실제 그 기저에는 국가/사회가 여성에게 안전을 보장하지 않은 구조적 맥락이 있었다.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논쟁과 차별, 폭력은 페미니즘 운동 내부에서 안전을 둘러싼 불안이 교차하는 지점을 드러내 왔다. 많은 경우 트랜스젠더는 ‘여성의 공간을 위협할 수 있는 타자’라는 기표로 호출되었고, 이때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여성의 안전 담론 속에서 불안의 투사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표화는 오히려 역으로 질문을 제기한다. “‘안전’은 누구의 안전이며, 어떤 몸은 보호의 대상이 되고 어떤 몸은 위험의 이름으로 불리는가?” 나아가 여성의 안전을 말할 때 트랜스젠더는 “여성은 누구인가”, “누가 말할 권리를 갖는가”라는 물음을 열어 보이며, 여성 범주의 경계가 어떻게 정의되고 유지되는지를 시험대에 올린다.

 그렇다면 상상해야 할 것은 트랜스젠더를 위험으로 표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트랜스젠더의 안전을 보장하는 상상력이다. 트랜스젠더의 안전을 중심에 둘 때, 안전은 더 이상 동일한 몸을 보호하기 위한 동일성의 논리가 아니라 위험과 보호, 주체와 타자의 구분 자체를 재구성하는 개념이 된다. 이는 ‘여성의 안전’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이 특정 몸에만 귀속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흔들고, 안전을 관계적이고 다종적인 것으로 재구성하는 실천이다. 이러한 전환은 트랜스젠더가 페미니즘의 문제를 야기하는 존재라는 오해를 넘어, 페미니즘이 다음 세대로 나아가기 위해 요청되는 사유의 조건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트랜스젠더퀴어라는 범주는 페미니즘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페미니즘의 ‘안전’ 자체를 다시 쓰게 만드는 질문의 형식이다.

 2015년 이후 전개된 한국의 페미니즘 리부트를, 단일한 ‘여성 주체의 귀환’으로 서술해 온 보편적인 서사가 설명하지 못하는 변화, 대표적으로 윤석열 퇴진 집회에서 커밍아웃하는 퀴어 시민들의 등장은 트랜스젠더를 중심으로 한 퀴어 주체를 분석의 중심에 위치시킬 때 설명이 가능해진다. 변희수 하사 강제 전역과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철회 사건은 페미니즘 리부트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발생한 균열의 표면이며, 이를 단순한 예외 사례로 배제하는 방식은 지난 운동이 남긴 질문을 은폐한다. 오히려 이 사건들은 2015~2025년 여성운동의 역사에서 여성 범주가 어떻게 구성되고 유지되었으며, 어떤 주체가 그 경계에서 끊임없이 협상되어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 자료로 읽힐 수 있다.

 따라서 트랜스젠더퀴어는 페미니즘 리부트에서 ‘추가적으로 포함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역사적 기록을 다시 정렬하는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 즉, 페미니즘 리부트를 다시 서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범주 확장의 윤리가 아니라, 여성 범주를 정의해온 장치—성별, 안전, 공간, 시민권, 국가폭력—의 작동을 분석하는 역사적 관점이다. 트랜스젠더퀴어의 위치는 그 장치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며, 따라서 페미니즘 리부트는 여성성의 회복이 아니라 젠더 범주의 재배열과 충돌이 촉발한 역사적 사건으로 재작성되어야 할 것이다.


연혜원

『퀴어돌로지』 기획 및 공저자, 퀴어예술매거진 『them』 발행인, 투명가방끈 활동가, 사회학 연구자. 2023년부터 <한국퀴어연극아카이브>에서 활동 중이다.

  1. 오김숙이(2010), “한국 여성운동과 차이 문제”, 『여/성이론』, (22), 106-129.

  2. 위의 글.

  3. 박예지(2021), “한국 드랙킹씬의 탄생과 퀴어 페미니스트 대항공중의 형성”, 『여/성이론』 (44), 74-97.

  4. 김보명(2020), “여성 공간과 페미니즘: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한 배제를 중심으로”, 『현대문학의 연구』 (71), 83-117.

  5. 이콴다(2020), “내부자 시각에서 고찰한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철회 과정, 그리고 그 후”. 『여/성이론』 (42), 106-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