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2025.12.) l 퀴어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페미니즘 리부트’ 10년 l 신진연구
기획의 변: 퀴어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페미니즘 리부트’ 10년
정성조
2015년 이후 한국 사회를 통과해 온 ‘페미니즘 리부트’는 성폭력 고발과 낙태죄 폐지를 비롯하여 페미니스트 정치의 가능성을 확인해 왔다. 그러나 이 역사가 흔히 ‘청년 여성의 등장’이나 ‘여성 주체의 귀환’이라는 단일한 서사로 기억될 때, ‘여성’이라는 범주는 종종 질문할 수 없는 고정된 실체로 전제된다. 이러한 서사는 여성 범주가 구성되는 과정의 권력 작용과 내부의 균열, 그 경계 밖으로 밀려난 이들에 대한 배제의 정치를 가릴 위험이 있다. 이는 여성의 경계를 확정 짓기 위해 동원된 안전과 시민권의 담론을 살피고, 그 기저에 깔린 배제의 정치를 직시해야 하는 역사적 독해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미 우리는 2024년 12월 이후 광장에서 사뭇 달라진 풍경을 목도했다. ‘여성’이라는 단어 하나로 묶이지 않는 퀴어한 존재들의 커밍아웃과 젠더 이분법을 가로지르는 몸짓들이 그곳에서 함께했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지난 10년의 궤적을 퀴어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자리를 마련했다. 먼저 연혜원은 "트랜스젠더퀴어를 중심으로 본 ‘페미니즘 리부트’의 역사적 재구성"에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의 역사를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여성의 권리 운동이 아닌, 젠더 이분법을 해체하는 정치로 재독해할 것을 제안한다. 여성 범주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차이와 불화, 배제의 흔적이 남은 논쟁적 장치로 파악하며, 특히 트랜스젠더·퀴어를 분석의 중심에 둘 때 리부트의 역사가 ‘규범의 경계가 협상된 사건의 연쇄’로 다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소수자를 포용하자는 윤리적 호소를 넘어, 여성 범주를 정의해 온 성별, 안전, 시민권 등의 장치가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 분석하는 역사기술 방법론의 전환을 제안한다.
비슷하게 나영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를 통해 되돌아보는 TERF의 한계와 현재"에서 신자유주의 통치성 아래 형성된 TERF의 한계와 현재를 짚어본다. 특히 2015년 이후 페미니즘 흐름 속에서 ‘생물학적 여성’만의 파이를 확보하려는 전략이 어떻게 신자유주의적 적자생존 논리 및 자기계발 담론과 결합했는지 분석한다. 트랜스젠더를 성공의 방해물이나 위험 요소로 규정하며 배타적인 힘을 조직하려 했던 TERF의 기획이 한계에 부딪힌 지금, 혐오에 대한 대응을 넘어 신체, 안전, 공간, 재생산권을 둘러싼 논의를 새로운 의제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한편 홍보람은 "페미니즘의 부정성과 마주하기"에서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대중화된 페미니즘이 마주한 부정성과 반동적 전환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가시성 자체가 목적이 된 ‘가시성의 경제’ 속에서 페미니즘이 개별화된 자기계발이나 브랜드로 소비되는 경향을 비판하며, 이것이 어떻게 트랜스 혐오나 우경화된 반동적 페미니즘으로 연결되었는지 진단한다. 나아가 비관주의와 마취적 정동에 기반한 미시 파시즘적 욕망을 경계하며, 피해자성 경쟁이 아닌 ‘취약성들의 연합’을 통해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균열을 내고 다른 형태의 삶을 향한 집합적 정치를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 강현정은 "넘쳐나는 혐오의 시대: 약자를 혐오하는 방법"에서 여성과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노골화된 혐오의 전략과 그 정당화 기제를 파헤친다. 특히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운동을 사례로, 도덕적·지적·성적 이탈의 프레임이 어떻게 성소수자 혐오를 생산하고 이를 ‘소외된 자를 돕는 것’처럼 세련되게 포장하는지 면밀히 분석한다. 혐오의 실체를 똑똑히 직면함으로써 막연한 공포와 고립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하며, 성소수자 혐오의 양상을 이해하는 것이 여성 등 다른 약자에 대한 혐오를 읽어내고 극복하는 중요한 단서가 됨을 강조한다.
"페미니즘 리부트 10년, 한국학 돌아보기"라는 주제로 DKSC가 개최한 라운드테이블(김진숙, 권정민, 정민우, 정성조)은 해외 학계에서 한국의 페미니즘과 퀴어 연구가 논의되는 방식에 내재한 지식 생산의 비대칭성을 해부한다. 패널들은 퀴어 이론이 가진 미국 중심성을 경계하며, 한국의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이 초국적 맥락에서 이론화될 때 발생하는 번역의 난제와 이론적 마찰을 핵심 쟁점으로 제기한다. 이는 한국 페미니즘 지형을 단순히 외부에서 관조하는 것을 넘어, 어떠한 지식이 ‘보편성’을 획득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끌어올리는 시도다.
신진연구 소개 지면에서는 퀴어와 페미니즘의 접점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세 연구자의 목소리를 담았다. 박재승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활동해 온 페미니스트 단체들을 추적하며, 이들이 운동의 정체기 속에서도 ‘여성’ 범주를 반문하고 유동적인 집합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등 미래의 실천을 위한 거점이 되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정윤영은 1990년대 서사 속 퀴어 섹슈얼리티 연구를 통해 연구자 자신의 ‘정체성 트러블’을 고백한다. 오픈리 퀴어 연구자로서 겪는 재현의 강박을 내려놓는 과정을 서술하며, 연구가 곧 지식 생산을 넘어 자기 해방과 자기 돌봄의 실천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정빈은 HIV/AIDS 감염인 커뮤니티의 자조 돌봄을 연구하며 타인의 고통을 기술하는 연구자의 윤리적 책무를 묻는다.
3호(2025.12.) l 퀴어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페미니즘 리부트’ 10년 l 신진연구
기획의 변: 퀴어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페미니즘 리부트’ 10년
정성조
2015년 이후 한국 사회를 통과해 온 ‘페미니즘 리부트’는 성폭력 고발과 낙태죄 폐지를 비롯하여 페미니스트 정치의 가능성을 확인해 왔다. 그러나 이 역사가 흔히 ‘청년 여성의 등장’이나 ‘여성 주체의 귀환’이라는 단일한 서사로 기억될 때, ‘여성’이라는 범주는 종종 질문할 수 없는 고정된 실체로 전제된다. 이러한 서사는 여성 범주가 구성되는 과정의 권력 작용과 내부의 균열, 그 경계 밖으로 밀려난 이들에 대한 배제의 정치를 가릴 위험이 있다. 이는 여성의 경계를 확정 짓기 위해 동원된 안전과 시민권의 담론을 살피고, 그 기저에 깔린 배제의 정치를 직시해야 하는 역사적 독해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미 우리는 2024년 12월 이후 광장에서 사뭇 달라진 풍경을 목도했다. ‘여성’이라는 단어 하나로 묶이지 않는 퀴어한 존재들의 커밍아웃과 젠더 이분법을 가로지르는 몸짓들이 그곳에서 함께했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지난 10년의 궤적을 퀴어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자리를 마련했다. 먼저 연혜원은 "트랜스젠더퀴어를 중심으로 본 ‘페미니즘 리부트’의 역사적 재구성"에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의 역사를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여성의 권리 운동이 아닌, 젠더 이분법을 해체하는 정치로 재독해할 것을 제안한다. 여성 범주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차이와 불화, 배제의 흔적이 남은 논쟁적 장치로 파악하며, 특히 트랜스젠더·퀴어를 분석의 중심에 둘 때 리부트의 역사가 ‘규범의 경계가 협상된 사건의 연쇄’로 다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소수자를 포용하자는 윤리적 호소를 넘어, 여성 범주를 정의해 온 성별, 안전, 시민권 등의 장치가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 분석하는 역사기술 방법론의 전환을 제안한다.
비슷하게 나영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를 통해 되돌아보는 TERF의 한계와 현재"에서 신자유주의 통치성 아래 형성된 TERF의 한계와 현재를 짚어본다. 특히 2015년 이후 페미니즘 흐름 속에서 ‘생물학적 여성’만의 파이를 확보하려는 전략이 어떻게 신자유주의적 적자생존 논리 및 자기계발 담론과 결합했는지 분석한다. 트랜스젠더를 성공의 방해물이나 위험 요소로 규정하며 배타적인 힘을 조직하려 했던 TERF의 기획이 한계에 부딪힌 지금, 혐오에 대한 대응을 넘어 신체, 안전, 공간, 재생산권을 둘러싼 논의를 새로운 의제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한편 홍보람은 "페미니즘의 부정성과 마주하기"에서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대중화된 페미니즘이 마주한 부정성과 반동적 전환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가시성 자체가 목적이 된 ‘가시성의 경제’ 속에서 페미니즘이 개별화된 자기계발이나 브랜드로 소비되는 경향을 비판하며, 이것이 어떻게 트랜스 혐오나 우경화된 반동적 페미니즘으로 연결되었는지 진단한다. 나아가 비관주의와 마취적 정동에 기반한 미시 파시즘적 욕망을 경계하며, 피해자성 경쟁이 아닌 ‘취약성들의 연합’을 통해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균열을 내고 다른 형태의 삶을 향한 집합적 정치를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 강현정은 "넘쳐나는 혐오의 시대: 약자를 혐오하는 방법"에서 여성과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노골화된 혐오의 전략과 그 정당화 기제를 파헤친다. 특히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운동을 사례로, 도덕적·지적·성적 이탈의 프레임이 어떻게 성소수자 혐오를 생산하고 이를 ‘소외된 자를 돕는 것’처럼 세련되게 포장하는지 면밀히 분석한다. 혐오의 실체를 똑똑히 직면함으로써 막연한 공포와 고립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하며, 성소수자 혐오의 양상을 이해하는 것이 여성 등 다른 약자에 대한 혐오를 읽어내고 극복하는 중요한 단서가 됨을 강조한다.
"페미니즘 리부트 10년, 한국학 돌아보기"라는 주제로 DKSC가 개최한 라운드테이블(김진숙, 권정민, 정민우, 정성조)은 해외 학계에서 한국의 페미니즘과 퀴어 연구가 논의되는 방식에 내재한 지식 생산의 비대칭성을 해부한다. 패널들은 퀴어 이론이 가진 미국 중심성을 경계하며, 한국의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이 초국적 맥락에서 이론화될 때 발생하는 번역의 난제와 이론적 마찰을 핵심 쟁점으로 제기한다. 이는 한국 페미니즘 지형을 단순히 외부에서 관조하는 것을 넘어, 어떠한 지식이 ‘보편성’을 획득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끌어올리는 시도다.
신진연구 소개 지면에서는 퀴어와 페미니즘의 접점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세 연구자의 목소리를 담았다. 박재승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활동해 온 페미니스트 단체들을 추적하며, 이들이 운동의 정체기 속에서도 ‘여성’ 범주를 반문하고 유동적인 집합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등 미래의 실천을 위한 거점이 되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정윤영은 1990년대 서사 속 퀴어 섹슈얼리티 연구를 통해 연구자 자신의 ‘정체성 트러블’을 고백한다. 오픈리 퀴어 연구자로서 겪는 재현의 강박을 내려놓는 과정을 서술하며, 연구가 곧 지식 생산을 넘어 자기 해방과 자기 돌봄의 실천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정빈은 HIV/AIDS 감염인 커뮤니티의 자조 돌봄을 연구하며 타인의 고통을 기술하는 연구자의 윤리적 책무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