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26.3)]누구를 사랑하는가를 묻는 일

 4호(2026.3.)  l  퀴어 공간과 지역  l  신진연구

누구를 사랑하는가를 묻는 일

 「‘여성애자 여성’ 정체성에 대한 내러티브 연구」 (2025)

박은지


신진연구 코너에서는 최근 출간된 성소수자/퀴어 관련 학위논문을 소개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몇 살이든 어디에 있든, 사랑은 언제나 내 삶을 조직하는 중요한 경험의 축으로 작동해 왔다. 이 연구는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가를 알아차리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여성애자 여성에게 사랑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식하게 하는 정체성 구성의 핵심적인 계기이다. 이에,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하여 말하는 일의 시작이 된다. 그런데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는지 알아차리고, 자신에 대하여 탐구하고 말하는 순간부터 여성애자들의 섹슈얼리티 실천은 지속적인 고민의 과정으로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고민을 끊임없게 하는 것은 이들이 놓여 있는 사회적 배경으로, 이는 연구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여성애자들의 정체화 과정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 구조적 배경은 단연 이성애 규범성이다. 말하자면 이성애 규범적인 사회는 이성애가 아닌 모든 사랑의 재료와 이를 통한 실천을 비규범적이며 일탈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사회적 규정은 개인이 자신의 욕망과 실천을 이해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굉장히 고민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내가 관찰한 한국 여성애자들의 고민은 다만 여기서 그치지 않았고, 한국적 맥락의 페미니즘 지형을 관통하며 더욱 복잡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한국의 페미니즘 리부트1는 이성애 중심적인 성 각본 아래 여성을 향한 폭력을 인식하며 페미니즘을 한국의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재부상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폭력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그 구조를 남성-가해자 구도로 집중시키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그 결과, 기존의 성 각본을 재검토하거나 성소수자의 연애 규범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등의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다소 어렵게 된 측면이 있다. 성소수자의 성/연애 각본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의견도 있지만, 성소수자 또한 역사를 가지고 사회 속에 살아가는 존재인 만큼 널리 이해되는 이성애자의 성/연애 각본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 연구에서는 팸/부치가 성소수자들의 암묵적인 연애 각본으로 관찰되었다. 여성애자의 연애 각본이 이성애규범성의 영향권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팸/부치라는 하위문화가 이성애적 관계의 복사본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각본에 대하여 본 연구가 주목한 참여자들의 반응은 결코 한 가지로 귀결되지 않았다. 부치나 팸으로 여성애자들이 양분되는 현상을 전략적으로 채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는 이분법적 구도에 치열하게 저항한다. 뿐만 아니라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관계 문법을 끊임없이 조율해 나가는 이들도 있다. 결국 이들이 연애 경험을 통해 연애 시장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는 것은, 외부의 각본을 그대로 내면화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애자 정체성을 계속해서 재/인식하고 재/구성하는 역동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과정은 공통적으로 페미니즘을 경유하고 있었다. 여성애자들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래디컬 페미니즘과 정치적 레즈비어니즘, 터프(TERF) 담론이 혼재된 한국의 온라인 페미니즘 지형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받고 있던 것이다. 래디컬 페미니즘의 흐름 아래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의 선택적 여성애와 터프 페미니스트의 트랜스 배제성에 대하여, 나의 연구 참여자 모두가 각자의 개인적이고 윤리적인 이유에 의한 파편적인 감상을 가지고 있었다. 조각나고 강렬한 인상은 이들이 혼종적인 담론을 깊이 내면화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들은 고민하고, 생각을 번복하고, 번복한 생각을 다시금 번복할 가능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혼란, 모순, 불안이 뒤섞인 조심스러운 응답이 이들의 정서적 긴장을 대변했다.

요컨대, 한국의 여성애자들은 이성애 규범성과 거리감을 두면서도 관련되어 있었고, 정체성 구성은 페미니즘의 자장을 설명하지 않고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었다. 여성애자들의 성적 실천과 연애 각본에는 페미니즘이, 페미니즘의 지형에는 여성애자들의 고민이 아로새겨진다. 이에 여성애자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내 연구에서는 여성애자들의 연애와 사랑 서사의 세목까지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해졌다. 다만, 내가 들여다본 내러티브들은 세세히 뜯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추상적이고 모호한 채로 남아있기도 하다. 정리되기 어려운 연구 참여자들의 경험에 내재한 혼란과 불안은, 기존의 언어로 포섭되지 않는 여성애적 실천의 독특한 지형을 드러낸다. 본 연구는 이들의 서사를 매끄럽게 정돈하기보다, 그 모순적이고 애매한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여성애자 정체성을 획득하는데 있어서의 복잡한 긴장감을 기록하고자 하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니 아쉬운 점을 굳이 하나만 고르자면, ‘여성애자 여성’이라는 용어를 충분히 개념화하지 못한 한계이다. 초기 계획은 레즈비언이라는 용어가 트랜스젠더를 외부화하는 경향까지 함께 다루는 것이었다. 석사 논문으로서 주제에 대한 집중과 지면의 한계, 연구자의 부족함으로 이 부분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연구 참여자들 내면의 한 형태를 공유받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나는 논문을 완성하는 순간까지도 연구 참여자들의 서사를 연구의 목적에 따라 해석하는 작업에 부담을 가졌다. 그것이 진중한 작업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그 과정에서 나는 과도한 긴장을 경험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이 마냥 마뜩잖기보다는, 나의 현실이 연구 참여자들의 현실과 맞닿아있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자 한다. 팸/부치 문화나 이성애적 규범을 전유하고, 불안해하면서도 경계를 흐리는 실천을 해 나가는 연구 참여인들의 경험은 나의 경험과 교차하는 지점이 있었다.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이 연구가 어떤 독자에게는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어딘가에 계속해서 사랑의 경험이 어색하고 괴로우며 설명될 수 없다고 느끼는 여성애자가 있다면, 비록 논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 글이 그들이 혼자가 아님을 말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박은지

미술과 여성학을 전공하였다. 작업은 역시 혼자 하는 것이 아님을 배운다.


  1. 손희정(2015),  “페미니즘 리부트”, 『문화과학』 (83): 1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