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26.3)]행정학과에서 성확정 의료경험 연구하기

4호(2026.3.)  l  퀴어 공간과 지역  l  신진연구

행정학과에서 성확정 의료경험 연구하기

 「한국 성인 트랜스젠더의 의료접근성에 대한 사례연구: 성확정 의료서비스 이용 경험을 중심으로」 (2025)

전상현


신진연구 코너에서는 최근 출간된 성소수자/퀴어 관련 학위논문을 소개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꽃샘추위가 한창인 이월 어느 토요일, 서울 강동구 소재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국 트랜스젠더와 다양한 젠더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연구 발표회1가 열렸다. 감기 기운에 골골대느라, 달력에 적힌 일정을 몇 번이고 스크롤 해보다 지도 앱을 켜서 경로를 탐색했다. 경기도 서남부에 있는 집으로부터 약 36킬로미터가 떨어진 병원까지 마을버스 한 번, 광역버스 한 번, 8호선과 5호선을 차례로 환승해야 했고 두 시간은 잡아야 가까스로 닿을 수 있었다. 현장에서 2년 동안 축적된 연구 결과를 잘 듣고 이 글의 내실을 다지고자 하는 바람은 회복에 시간이 더 필요한 몸에 갇힌 채 문밖을 나서지 못했다. 문득, 성확정 의료서비스(Gender Affirming Healthcare)를 받기 위해 여정을 떠나야 하는 선택지밖에 없다면, 이를 감수하거나 아니면 끝내 진료받기를 포기하고야 말았다던 연구참여자들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내 몸에 필요한 의료가 없는 진료실’ 키워드는 거의 모든 인터뷰마다 포착되었다. 한국 의료현장에서는 다양한 젠더 정체성을 가진 개인에게 맞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호르몬 요법, 외과적 시술 및 수술을 통합하여 제공하는 의료기관과 정보가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의료전문가 인식과 지식 부족 탓에 진료를 거부당하거나 제대로 된 상담 없이 처방만을 요구했다는 경험을 반복하여 들었다. 더욱이, 시스젠더와 헤테로섹슈얼인 사람들만을 표준으로 삼은 법률·행정·의학 기준에서 과도하게 요구되는 몸에 대한 증명 서류와 심사 과정은 퀴어 당사자가 또 다른 자기 불화를 마주하게 하는 강력한 악순환의 기제로 작용하고 있었다.

터무니없이 높은 비급여 릴레이는 성확정 의료서비스를 받는 개인의 사회적 생존을 위협했다. 예컨대, 트랜스남성 및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가슴절제술의 경우 대학병원, 성형외과마다 많게는 500만 원 이상 수술비 차이가 크게 드러났다. 여성형유방증을 가진 남성은 일부 의학적 조건에 부합한다면 요양급여 혜택을 적용받지만, 같은 수술이 필요했던 트랜스남성 및 논바이너리 인터뷰 참여자들은 해당 금액을 모두 비급여로 지출해야 했으므로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수개월에서, 많게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소비 생활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고 돈을 모아야만 했다. 단순 미용이 아닌 신체적 불편 해소와 기능 개선2이라는 공통의 목적에도 불구하고, 공적 건강보장제도에서 특정 의료수요자만을 배제하는 제도적 장벽(institutional barriers)은 스페이드(Spade)가 지적했듯 폭력적이며 부정의한 차별이다.3

이 연구가 행정학 영역에서 논의되기에 적절한지에 대하여 내부 구성원들에게 소명해야 하는 상황은 지식생산자로서 맞이한 또 다른 장벽이었다. 다종다양한 행정 현상은 모두 행정학 연구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퀴어인 사람들과 건강권에 대한 논의는 철저히 주변화되어 있음을 실감하였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도, 내 연구를 마음 깊이 지지해준 지도교수를 만났지만 ‘행정학과에서 이런 주제로 논문을 쓸 수 있느냐’는 의구심 섞인 질문들은 매번 나를 해명의 자리로 소환했다. 이처럼, 퀴어 연구가 특정 학문에서만 가능한 논의라고 상정하는 경계 짓기는 단순한 학문적 보수성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주제가 '논의 가능한 것‘인지 결정하는 것 자체가 학문 권력의 작동 방식이며, 행정학 내에서 이러한 주제를 의도적으로 선택하지 않거나 주변화해 온 관행은 분위기보다는 부정의로 이해되어야 한다.

본 연구가 행정학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한 지점은 법적 성별정정을 완료한 민원인이 마주하는 공무원 인식 미비와 업무 지침의 부재다. 성별이분법적 인구통치술의 상징인 주민등록번호 체계 안에는 당사자가 신분증을 재등록하는 과정에서 겪는 차별적 언행과 서비스 지연이라는 미시적 장벽이 상존했다. 이는 특정 시민에게만 행정 비용을 전가하는 행정 접근성 침해이자 개인의 사회적 신분과 직결된 문제이므로 행정서비스 형평성 차원에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이러한 현장 공백은 국가의 의도적인 침묵, 즉 바흐라흐(Bachrach)와 바라츠(Baratz)가 정립한 무의사결정(non-decision making)의 산물로 연결하고자 했다.4 국내 입법·행정가들은 소수자 인권 의제를 ‘논쟁적 사안 프레임’에 가두어 공적 논의를 고의로 지연시켜 왔으며, 이는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공고하게 지속되었다. 특히 성소수자를 전과자에 이어 ‘받아들일 수 없는 집단’으로 꼽으며 낮은 수용성을 드러낸 십수 년간의 『사회통합실태조사』5 결과는 사회적 합의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다수의 호오에 맡길 때 입법과 행정 부작위(inaction)로써 국가 책임을 방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행정학 영역에서 비판적 사유는 정체화 스펙트럼과 상관없이 존엄한 개인의 의료수요가 건강할 권리로부터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국가가 설정한 ‘성별이분법 정상성’이 무엇이 어떻게 문제인지 끈질기게 따져 묻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이태 전 세밑에 나는 한 교회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찾아가 원고 후반부를 완성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반대 깃발을 드는 사람들 정중앙에서 마음과 글을 제련하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문 앞에 ‘이단 출입 금지’ 종이가 눈에 띄었다. 닫힌 문은 시간과 존재, 공간 사이에 강하게 금을 긋는 경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 선을 넘어서겠다는 마음으로 오랜 시간 자리에 앉아 결론을 썼다.

논문 작업을 하면서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에 줄곧 사로잡혔다. 그럴 때마다 3평 남짓 진료실 문을 열어젖히려고 내밀한 의료경험을 들려준 연구참여자를 떠올렸다. 증언을 학술 언어로 바꾸어내고 제도 개선의 참조점을 마련함으로써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진료실을 만들 수 있게 된다면 ‘나라도 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연구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끝으로, 학위과정과 연구 내내 지혜와 경험을 기꺼이 나눠준 동료 연구자께 깊은 감사와 안녕을 기원하고 싶다. 무엇보다 퀴어연구가 ‘낯선 연구주제’로 납작하게 치부되는 학문세계에서 새로운 사유와 실천으로 길을 내어 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전상현

보건의료계열 노동자로 일하며 진료실에 오는 사람보다 진료실에 오지 못하는 사람과 그 구조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dneirf4@proton.me


  1. KITE(Korean Initiative for Transgender hEalth)(2025),  2025년 연구결과 발표회(2026.2.7).

  2. 보건복지부 고시 제2023-293호, 2024.1.1. 시행, 남성의 여성형 유방수술 급여기준

  3. Spade, Dean(2015), Normal Life: Administrative Violence, Critical Trans Politics, and the Limits of Law,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4. Bachrach, P., M. S. Baratz(1963), "Decisions and Nondecisions: An Analytical Framework",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57(3): 632-642.

  5. 국정데이터조사센터(2023), 『2022년 사회통합실태조사』, 서울: 한국행정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