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26.3)]‘건축’과 ‘도시계획’에 퀴어를 끼워넣기

 4호(2026.3.)  l  퀴어 공간과 지역  l  신진연구

‘건축’과 ‘도시계획’에 퀴어를 끼워넣기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도시 공간 감각의 변화와 서울규범성의 재구성 : 남성 동성애자의 위치기반 데이팅 앱 경험을 중심으로」 (2025)

김정민


신진연구 코너에서는 최근 출간된 성소수자/퀴어 관련 학위논문을 소개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퀴어연구에서 공간연구는 익숙하다. 학술적인 연구뿐만이 아닌, 에세이나 전시로도 익숙한 분야다. 그런데 건축과 도시계획에선 쉽게 와닿지는 않는다. 건축은 물리적인 건물로 인식되고, 도시계획은 행정의 영역으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특히 국내에서는 건물과 행정은 변화를 촉구하는 진보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유지와 보존에 힘쓰는 보수의 영역에 더 가깝다. 이러한 영역에 퀴어를 끼워 넣는 건 ‘굳이?’ 싶은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퀴어 연구를 하고 싶었고, 여전히 나는 건축과 도시계획이라는 학문에 속해있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졸업 설계를 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을 땐 한창 이쪽 생활을 시작했던 터였다. 자연히 자주 가던 동네는 종로나 이태원이었고, 이태원을 설계 장소로 정하고 졸업 설계를 진행했다. 이태원 게이 공간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더해 졸업 전시를 진행했다. 한 교수는 내 설계를 보며 자신이 런던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트랜스젠더를 본 경험을 혐오를 섞어 말했다. 설계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는 말은 아니었다. 도저히 할 말이 없어서 정말 아무 소리나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2018년에 진행한 내 졸업 설계는 그런 것이었다. 뭐라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아무 얘기도 못 하는 그런 것이 되거나 갑자기 너무나도 일반론적인 이야기로 환원되기 일쑤였다. 건축에서 퀴어는 다뤄질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룰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런 무언가 찜찜함으로 학부를 졸업하고 건축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동시에 서울퀴어콜렉티브라는 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서울퀴어콜렉티브 활동을 통해 몇 번의 전시를 했고, 책을 기획하고 글을 쓰기도 했다. 글을 쓸 때면 죄책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연구자가 아닌) 내가 글을 써도 될까?

지금도 신진연구자 세션에 글을 쓴다는 것이 영 어색하다. 그러니까 연구자라는 타이틀이 너무나도 어색하다. 그것은 내가 연구자를 너무나도 대단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연구자는 무언가 더 특별히 연구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도 있다. 나는 연구자보단 다른 것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 왔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건축회사에서 4년간 일을 했기에 건축가나 디자이너로 불리는 것이 더욱 익숙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아직도 어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어와 공간에 대해 함께 글을 쓸 기회가 몇 번 있었고, 이러한 글을 쓸 수 있는 알리바이를 얻고자 별안간 대학원에 들어왔다.

그 알리바이를 얻게 된 경험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2018년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라는 뜻의 퀴어라운드(queeround)였다. 퀴어가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은 어플만 열어봐도 알 수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 간 게이들은 언제나 그 지역에 친구가 있다며 밤에 혼자 나온다는 말은 게이 커뮤니티에서 흔하게 나오는 이야기다. 실제로 주변 친구들도 그랬던 경험들을 말하고, 나 또한 그러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 정말 게이들은 어디에나 있나? 그러면 어디서든 다른 퀴어를 만나고 연애도 하고, 커뮤니티도 만들어갈 수 있나? 그런데 퀴어는 왜 자꾸 서울로 가야한다는 말을 하는 걸까?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는 말과 동시에 퀴어는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 또한 같이 존재한다. 이것이 내 석사논문의 시작이었다.

스마트폰을 2011년에 처음 사용하면서 내 이쪽 생활은 잭디(Jack’D)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어떻게 잭디를 알았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나에게 데이팅 앱을 통해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실 다른 방법을 떠올리는 것이 더 부자연스럽고 어렵다. 이처럼 어플과 하나 된 몸으로 이쪽 생활을 하는 것은 공간을 대하는 레이어가 하나 더 있는 것과 같다. 종로에서 앱을 켜는 마음과 가족이 있는 집에서 앱을 켜는 마음, 그리고 혼자 살고 있는 서울의 집에서 앱을 켜는 마음, 여행을 가서 앱을 켜는 마음은 모두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상이한 장소와 공간에서 마주하는 데이팅 어플에서의 시각적인 위계의 차이는 실제 공간의 레이어와 앱 공간의 레이어를 겹치게 해, 사람들로 하여금 서울을 욕망하게 한다는 것이 내 석사논문의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지방에서 데이팅 앱을 켜면 마주하게 되는 ‘까만 화면’과 서울에서 앱을 켤 때의 ‘얼굴 가득한 화면’의 시각적 대비가 핵심이었다. 이 즉각적인 시각적 경험이 단순한 인구 밀도의 차이를 넘어 서울과 지방에 각각 다른 정동을 부착시킨다는 점을 분석했다. 서울에는 가능성과 설렘이, 지방에는 공허함과 좌절감이 연결되면서, 성소수자들이 서울에 있어야만 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서울규범성’이 강화되는 것이다.

나는 이를 주디스 할버스탐(Judith Halberstam)의 ‘대도시규범성’(metronormativity) 개념을 변형해 설명했다.1 서구의 경우 여러 대도시 중 선택할 여지가 있었다면, 한국에서는 오직 ‘서울’이라는 단일한 중심점으로 모든 욕망이 수렴된다. 어플은 이러한 서울규범성을 단순히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스케이프로 작동하며 서울에 대한 상상적 지리를 적극적으로 구성하고 재생산한다는 것이 내 논문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나에게 주된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것은 이 연구를 어디에 위치시키고 싶은지였다. 나는 이 연구를 퀴어 연구에 위치시키고자 하는지, 아니면 도시계획연구에 위치시키고자 하는지 쓰는 나조차 혼란스러웠다. 앞서 연구자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고 어색하지만, 어쨌든 연구를 하고 있으니 연구자라고 한다면, 나는 무슨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 호명되는가에 대한 고민과 욕망이 생겼다. 더군다나 논문을 지도받는 과정에서 이건 도시계획학 논문이 아니다, 이건 여성학에서 해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프로포절 과정에선 왜 이런 연구를 하냐는 다른 교수의 말도 들었다(내가 속한 학과에선 학과의 교수 대부분이 프로포절에 참여하기 때문에 각자의 연구 분야가 상당히 다르다). 그런 만큼 “내 논문이 도시계획학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움츠러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논문을 일정 부분 변경하기도 했다. 움츠러든 상태이지만 오리걸음을 해서라도 석사논문을 끝내고자 했고, 적절한 선에서 마무리가 된 듯하다. 아마도 퀴어 연구 어딘가에 속하겠고, 도시계획연구에서도 어딘가에 점처럼 찍혀있을 테다. 같은 대학 내에서 비슷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외롭기도 했지만, 덕분에 대학 밖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데이비드 벨(David Bell)의 글인 "Fucking Geography, Again"의 문장을 인용하고자 한다. “마지막 실험이자 도발로, 나는 내가 활자로 말할 수 없던 특정 단어들을 나열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호모, 자지, 씹, 보지, 그리고 당연히, 다시 한 번, 씹하기”.2 내 논문은 이만큼 도발적이지 않았고, 패기도 적었다. 그렇지만 졸업심사장에서 “게이, 섹스, 동성애”를 말하는 건 지루한 도시계획 학계를 오염시키는 짜릿함이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학계가 오염되길 바란다.


김정민

건축을 기반으로 공간을 구축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퀴어와 도시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와 전시로 보이고 있다.
jminutemaid@snu.ac.kr


  1. Halberstam, Jack(2005), In a Queer Time and Place: Transgender Bodies, Subcultural Lives, New York: NYU Press.

  2. Lim, Jason(2007), Geographies of Sexualities: Theory, Practices and Politics (K. Browne, Ed.) (1st ed.), Routle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