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2026.3.) l 퀴어 공간과 지역
경계의 공간, 화장실
생물학적 자연화와 안전의 획득 방식을 가로지르며
서영
이 글은 필자의 석사학위논문 「공중화장실의 젠더 재/생산」(2024)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하였다. ‘퀴어 공간’이라는 이번 호의 주제를 접했을 때, 필자는 화장실 연구에서 은근하게 품어왔던 질문이 떠올랐다. 성별 분리 화장실은 가장 일상적이고 제도화된 방식으로, 동시에 가장 노골적으로 성별 이분법을 구현하는 장소인데. 이런 성별 분리 화장실에서 과연 트랜스젠더들의 존재는 새로운 관계성과 공간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성별 분리 화장실은 일시적으로나마 ‘퀴어 공간’이 될 수 있을까.
1. 경계의 모순, 동시에 견고함을 드러내는 협상의 틈
연구 과정에서 만난 여러 트랜스젠더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이 질문에 단순히 긍정이나 부정으로 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트랜스젠더들이 일시적으로 성별 분리 공간을 점유함으로써 경계의 틈을 여는 순간들이 있었으나, 결국은 경계와 협상하는 방식으로 존재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례 1.
체구가 작고 흰 피부를 가진 트랜스 여성 L을 만났다. L은 시스젠더 여성으로 곧잘 패싱되지만, 치마를 입지 않는 날에는 아무리 짧은 바지를 입더라도 남자 화장실에 간다고 말했다.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성범죄자로 오인되는 상황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 화장실에서 여성으로 패싱되어 다른 이용자에게 “여기 남자 화장실이에요”라는 말을 들으면, L은 당당한, 그리고 높은 목소리로 “저 남자예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정도의 뻔뻔함을 보이면 남자 화장실의 시스젠더 남성도 더 말을 걸지 않는다고 했다.
L은 자신이 당당함, 뻔뻔함으로 무장한 채 보호받아야 마땅한 예쁜 여성으로서 행동할 때, 남성들이 으레 당황하고, 소변기 사용을 미루며 L이 나가기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여자 화장실의 ‘싸는 몸’들이 칸막이 안에 가려지는 것과 달리 시스젠더 남성들이 소변기 앞에 노출되는 것은 일상적인 일임을 고려할 때, L의 존재는 시스젠더 남성들이 누려 온 시각의 주체로서의 위치를 잠시 전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왜 이렇게 행동했는가’에 대한 L의 설명은 이 관계와 공간을 단지 전복으로만 해석하기 어렵게 만든다. 왜냐하면 L은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밝히는 것이 “옷을 벗는 것과 같은 수치심”을 주는 행위이므로, 조금 이상한 ‘여성’으로 보이는 게 더 “싸게 먹힌다”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그날 그 순간의 남자 화장실을 트랜스젠더가 점유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인지, L이 성별 경계를 전복하는 행위성을 보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어려운 것이다. L의 동기에 대해 들으며, 나는 L의 행동이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였다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경계를 협상하는 전략에 가깝다고 느꼈다.
사례 2.
트랜스 남성 A, B, C는 남자 화장실을 이용하기 전 여자 화장실에서 혼란스럽고 적대적인 시선을 자주 받곤 했다고 이야기했다. A의 경우는 자신의 성별을 입증하라는 시스젠더 여성들의 “당당한” 요구로 인해 자신의 젠더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감정적 부담을 져야 했다. 그렇지만 그 감정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여자 화장실에서 시스젠더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트랜스 남성 B와 C 역시 여자 화장실에서 시스젠더 여성들을 두렵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B는 여자 화장실에 들어갈 때 자신의 가슴을, 역시나 “당당하게” 내밀고 들어가는 식으로 여성들을 배려했다고 말했다. C는 자신의 정체성과 반하는 말을 하는 것이 괴롭더라도, 자신이 여자라고 상냥하게 말하며 여성들을 안심시켰다.
이들이 여자 화장실에 등장하는 순간은, 여자 화장실에 여성으로 보이고 들리는 사람만 있어야 한다는 경계의 규칙이 깨지는 때다. 그러나 A, B, C는 시스젠더 여성들이 기대하는 몸과 태도를 드러내어 성별 경계에 난 균열을 되도록 빨리 봉합하고, 그들처럼 수치심 아닌 당당함을 보여 공간에 있을 자격을 입증하고자 했다.
위의 두 사례를 통해, 화장실은 경계를 지키는 것에 대한 방어가 강한 장소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성별 분리 화장실에서 트랜스젠더들의 존재와 행위가 쉽게 ‘퀴어 공간’을 만든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도.
그렇다면, 화장실에서 퀴어 공간을 만드는 일의 불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과연 논의가 끝날 수 있을까. ‘여성들의 안전을 위해 화장실에서만은 성별 경계가 지켜져야 한다’라는 불안과 마주해 그 틈을 열고자 했기에, 나는 애초에 왜 안전이 경계의 선명함으로만 상상될 수밖에 없게 되었는가를 질문하게 되었다. 또, 트랜스젠더들이 경계 구분에 순응하는 것이 수치심 때문이라면 어째서 경계의 혼란은 수치심이 되는가를 함께 살펴보게 되었다.
2. 자연의 논리로 환원될 수 없는 경계의 역사
화장실은 성별 경계와 동시에, 근대적 경계를 생산하며 몸의 감각을 생산해 온 공간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수세식 화장실이 처음 등장했던 19세기 중반의 영국에서는, 산업화로 도시 인구가 급증하고 전염병이 확산하며 위생이 국가적 과제가 되었던 배경이 있었다. 당시 배설은 더 이상 사적인 문제가 아닌 공적 관리의 대상이 되었고, 공중화장실은 그 해결책으로 등장했다. 그 결과 거리와 강가 같은 공간에서도 쉬이 이루어지던 배설은 화장실 안으로 숨겨지게 되었고, 배설물은 물과 함께 씻겨 내려가 그 존재도 냄새도 다른 일상 공간들로부터 분리되었다. 이전까지 누구든 밖에서 ‘쌀 수밖에’ 없었기에 그리 부끄럽지 않았던 몸들도, 이때부터는 공적 공간에서 배설이라는 동물성을 보이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그리할 수 있는 것이 근대적 문명인의 조건으로 자리 잡으며, 수세식 공중화장실은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닌 문명과 비문명을 가르는 기술로서 작동하게 되었다.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가르는 공간이 된 화장실은 동시에 식민지와 제국, 인종과 계급의 위계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위생은 단순한 건강의 문제가 아닌 도덕성과 문명성의 지표로 기능했으며, 더럽다는 평가는 특정 집단을 열등한 존재로 위치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청결하지 못한 몸은 관리되지 않은 몸, 즉 야만적이고 미성숙한 몸으로 간주되었다.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에 ‘위생적 변소 개량’이라는 이름으로 재래식 화장실이 문제화되었고, 배설 공간의 정비는 근대적 통치의 일부로 추진되었다. 다만 수세식 화장실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지금의 화장실 질서가 시민성의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90~2000년대였다. 당시 한국관광공사에서 발간한 보고서 「화장실 문화 이렇게 달라졌다」에는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0년 ASEM 국제회의 등 대형 국제 행사를 거치며, 외국인들이 한국 화장실을 더럽고 불편하게 느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에 서구·일본과 같은 ‘깨끗한 화장실 만들기’는 문화관광부와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의 공동 과제가 되었다.
이때 해당 사업 언론매체 기사화 자료들에는, 재래식 화장실과 한국인들의 화장실 이용 행태가 “불쾌”하고 “한심”하다는 언급이 다수 등장한다. 민족적 수치심에 기반해 동력을 얻은 화장실 문화운동은 시설 개선을 넘어 시민의 태도와 행위를 교정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라는 당시의 슬로건과 칸막이 안 이용자를 비추는 거울은 그들을 ‘문명인’으로 호출하며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배설을 흔적 없이 관리하도록 요구했다. 이로써 화장실의 질서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는 감각에서 출발해 자기 감시의 감각으로까지 자리 잡았다.
화장실 근대화·문명화의 맥락 속에서, 여성 화장실 확충과 화장실 성별 분리는 화장실 문화운동을 주도하던 여성들의 필요에 따라 관심이 기울여지며 제도화되었다. 남녀공용 화장실을 이용하며 성추행을 경험했던 여성들의 이야기와 공공장소에서 여자 화장실이 현저히 부족했던 현실이 가시화되며 2004년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제정 과정에서 반영된 것이다. 이는 여성들이 더 이상 배설할 공간 없는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의 공간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분명 중요한 역사적 성취였다. 그러나, 과연 그래서 여성들을 보호한다는 성별 분리가 이들의 두려움과 불안을 해소해 주었는가. 오늘날까지 여자 화장실에서 성폭력과 불법 촬영이 반복적으로 발생해온 현실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이 두려움은 여성들을 둘러싼 현실이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에 더해, 여자 화장실에 공간적으로 구현된 보호의 언어가 항상 어떠한 전제를 동반한다는 점과도 관련되어 있다. 여성은 배설하는 모습을 숨기며, 위협을 상시 경계해야 한다는 전제다. 여성들은 온몸을 가려주는 칸막이 안에서 자신이 보일 가능성 자체를 위협으로 감각하고, 칸막이 위아래의 틈에서 도사릴 시선을 의식한다. 자신을 이성애·남성중심적 시선의 대상이 되는 몸으로 위치시키는 공간에서, 시스젠더 여성은 화장실에서 주변을 살피고 스스로를 보이지 않게 조정하는 몸으로 훈련된다.
또, 여자 화장실에서의 성폭력에 대한 대책으로 부착된 불법 촬영 경고문과 비상벨은 안전을 말하지만, 성폭력의 원인이 구조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저 위험을 상기시키는 표지만이 되기도 한다. 나아가 여자 화장실 문 앞에 설치된 ‘안심 거울’은 이용자가 뒤따라오는 사람을 직접 확인하도록 함으로써, 보이는 몸으로서의 위협을 피하기 위한 더욱 기민한 감각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화장실의 성별 위계는 단순한 공간 분리를 넘어, 성별화된 감각을 생산하는 장치로 작동하게 된다. 여자 화장실의 물적 조건 속에서 여성은 항시적인 불안을 관리하며 스스로를 조정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고, 안전은 그 안에서 최소한의 경계 구분을 통해서만 겨우 확보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이용은 경계의 폭력에 따른 문제로 이해되기보다, 경계를 혼란시켜 여성의 안전 확보를 실패하게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화장실이라는 공간에서 성별화된 감각이 반복적으로 체화될수록, 여성들은 역설적으로 경계를 더욱 매끄럽게 구분하는 일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면서 화장실 공간의 위험은 실제로 위험을 발생시키는 행위보다 경계를 불안하게 만드는 몸에 투사된다. 따라서 경계를 불안하게 하지 않기 위해 트랜스젠더는 전략적으로 자신을 조정한다. 자신이 그 공간에 부합하는 이용자처럼 보이고 들리게 하거나, 혹은 더 크게 선언하거나. 그 선택들은 개인의 의지라기보다는 강한 경계가 작동하는 공간의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3. 화장실이 ‘퀴어 공간’이 되려면
화장실은 단순히 성별을 구분하는 장소가 아닌, 경계에 대한 감각을 생산하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경계의 모순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교란된 경계는 곧바로 봉합되어 되돌아가곤 한다. 그렇다면 화장실을 ‘퀴어 공간’으로서 상상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 수 있을까.
이는 단순히 성별 구획을 철폐하고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하는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제도적인 변화는 중요하나, 근본적으로는 안전을 오직 경계의 선명함과 동일시해 온 기존의 감각을 재구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는 ‘경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몸’에 위험과 불안을 투사해 온 방식, 그리고 그 몸들을 통제함으로써 안전함의 감각을 확보해 온 질서를 다시 묻는 일이다.
화장실이 퀴어 공간이 된다는 것은 그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정체성이 모두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기보다, 오히려 경계에 속하는 몸의 순수성을 전제하지 않아도 공간이 유지될 수 있다는 상상에 가깝다. 누가 이 경계 안에 속하는가를 끊임없이 가려내지 않아도 되는 상태, 경계의 혼란이 곧 위협이나 수치가 되지 않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따라서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뀐다. 경계를 강화할 것인가, 허물 것인가가 아니라, 경계에 기대지 않고도 안전할 수 있는 조건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우리가 성별화된 감각에 따라 몸을 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이 아닌 역사적 산물로 이해하고, 여성의 안전이 항시적 불안 속에서 공간적 경계를 통해 간신히 성취되는 것으로 조직되어 왔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우리는 젠더화된 시각 권력에 문제를 제기하며 안전의 조건 자체를 다시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서영
사회학을 전공하며 젠더와 퀴어가 만나는 지점에 관심을 가져왔다. 젠더 질서가 자연화되는 과정에서 특정 집단이 불평등하게 짊어지게 되는 감정적 부담과 규율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역사와 통치의 산물로서 현상을 읽어내려 한다.
이서영(2024), "공중화장실의 젠더 재/생산 : 남녀분리 화장실의 공간 배치와 트랜스젠더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석사학위청구논문.↩
Cavanagh, Sheila L.(2010), Queering Bathrooms: Gender, Sexuality, and the Hygienic Imagination, Toronto: University of Toronto Press.↩
Patel, N.(2017), “Violent cistems: Trans experiences of bathroom space”, Agenda, 31(1): 51-63; Mbatha, S., Zach Wilson, and Chris Buckley(2008), Zulu Indigenous Practices in Water and Sanitation: Preliminary Field Research on Indigenous Practices in Water and Sanitation Conducted at Ulundi, Water Institute of Southern Africa.↩
한국관광공사(2000), 『화장실 문화 이렇게 달라졌다』, 한국관광공사.↩
4호(2026.3.) l 퀴어 공간과 지역
경계의 공간, 화장실
생물학적 자연화와 안전의 획득 방식을 가로지르며
서영
이 글은 필자의 석사학위논문 「공중화장실의 젠더 재/생산」(2024)1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하였다. ‘퀴어 공간’이라는 이번 호의 주제를 접했을 때, 필자는 화장실 연구에서 은근하게 품어왔던 질문이 떠올랐다. 성별 분리 화장실은 가장 일상적이고 제도화된 방식으로, 동시에 가장 노골적으로 성별 이분법을 구현하는 장소인데. 이런 성별 분리 화장실에서 과연 트랜스젠더들의 존재는 새로운 관계성과 공간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성별 분리 화장실은 일시적으로나마 ‘퀴어 공간’이 될 수 있을까.
1. 경계의 모순, 동시에 견고함을 드러내는 협상의 틈
연구 과정에서 만난 여러 트랜스젠더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이 질문에 단순히 긍정이나 부정으로 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트랜스젠더들이 일시적으로 성별 분리 공간을 점유함으로써 경계의 틈을 여는 순간들이 있었으나, 결국은 경계와 협상하는 방식으로 존재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례 1.
체구가 작고 흰 피부를 가진 트랜스 여성 L을 만났다. L은 시스젠더 여성으로 곧잘 패싱되지만, 치마를 입지 않는 날에는 아무리 짧은 바지를 입더라도 남자 화장실에 간다고 말했다.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성범죄자로 오인되는 상황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 화장실에서 여성으로 패싱되어 다른 이용자에게 “여기 남자 화장실이에요”라는 말을 들으면, L은 당당한, 그리고 높은 목소리로 “저 남자예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정도의 뻔뻔함을 보이면 남자 화장실의 시스젠더 남성도 더 말을 걸지 않는다고 했다.
L은 자신이 당당함, 뻔뻔함으로 무장한 채 보호받아야 마땅한 예쁜 여성으로서 행동할 때, 남성들이 으레 당황하고, 소변기 사용을 미루며 L이 나가기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여자 화장실의 ‘싸는 몸’들이 칸막이 안에 가려지는 것과 달리 시스젠더 남성들이 소변기 앞에 노출되는 것은 일상적인 일임을 고려할 때, L의 존재는 시스젠더 남성들이 누려 온 시각의 주체로서의 위치를 잠시 전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왜 이렇게 행동했는가’에 대한 L의 설명은 이 관계와 공간을 단지 전복으로만 해석하기 어렵게 만든다. 왜냐하면 L은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밝히는 것이 “옷을 벗는 것과 같은 수치심”을 주는 행위이므로, 조금 이상한 ‘여성’으로 보이는 게 더 “싸게 먹힌다”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그날 그 순간의 남자 화장실을 트랜스젠더가 점유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인지, L이 성별 경계를 전복하는 행위성을 보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어려운 것이다. L의 동기에 대해 들으며, 나는 L의 행동이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였다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경계를 협상하는 전략에 가깝다고 느꼈다.
사례 2.
트랜스 남성 A, B, C는 남자 화장실을 이용하기 전 여자 화장실에서 혼란스럽고 적대적인 시선을 자주 받곤 했다고 이야기했다. A의 경우는 자신의 성별을 입증하라는 시스젠더 여성들의 “당당한” 요구로 인해 자신의 젠더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감정적 부담을 져야 했다. 그렇지만 그 감정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여자 화장실에서 시스젠더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트랜스 남성 B와 C 역시 여자 화장실에서 시스젠더 여성들을 두렵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B는 여자 화장실에 들어갈 때 자신의 가슴을, 역시나 “당당하게” 내밀고 들어가는 식으로 여성들을 배려했다고 말했다. C는 자신의 정체성과 반하는 말을 하는 것이 괴롭더라도, 자신이 여자라고 상냥하게 말하며 여성들을 안심시켰다.
이들이 여자 화장실에 등장하는 순간은, 여자 화장실에 여성으로 보이고 들리는 사람만 있어야 한다는 경계의 규칙이 깨지는 때다. 그러나 A, B, C는 시스젠더 여성들이 기대하는 몸과 태도를 드러내어 성별 경계에 난 균열을 되도록 빨리 봉합하고, 그들처럼 수치심 아닌 당당함을 보여 공간에 있을 자격을 입증하고자 했다.
위의 두 사례를 통해, 화장실은 경계를 지키는 것에 대한 방어가 강한 장소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성별 분리 화장실에서 트랜스젠더들의 존재와 행위가 쉽게 ‘퀴어 공간’을 만든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도.
그렇다면, 화장실에서 퀴어 공간을 만드는 일의 불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과연 논의가 끝날 수 있을까. ‘여성들의 안전을 위해 화장실에서만은 성별 경계가 지켜져야 한다’라는 불안과 마주해 그 틈을 열고자 했기에, 나는 애초에 왜 안전이 경계의 선명함으로만 상상될 수밖에 없게 되었는가를 질문하게 되었다. 또, 트랜스젠더들이 경계 구분에 순응하는 것이 수치심 때문이라면 어째서 경계의 혼란은 수치심이 되는가를 함께 살펴보게 되었다.
2. 자연의 논리로 환원될 수 없는 경계의 역사
화장실은 성별 경계와 동시에, 근대적 경계를 생산하며 몸의 감각을 생산해 온 공간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수세식 화장실이 처음 등장했던 19세기 중반의 영국에서는, 산업화로 도시 인구가 급증하고 전염병이 확산하며 위생이 국가적 과제가 되었던 배경이 있었다. 당시 배설은 더 이상 사적인 문제가 아닌 공적 관리의 대상이 되었고, 공중화장실은 그 해결책으로 등장했다. 그 결과 거리와 강가 같은 공간에서도 쉬이 이루어지던 배설은 화장실 안으로 숨겨지게 되었고, 배설물은 물과 함께 씻겨 내려가 그 존재도 냄새도 다른 일상 공간들로부터 분리되었다.2 이전까지 누구든 밖에서 ‘쌀 수밖에’ 없었기에 그리 부끄럽지 않았던 몸들도, 이때부터는 공적 공간에서 배설이라는 동물성을 보이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그리할 수 있는 것이 근대적 문명인의 조건으로 자리 잡으며, 수세식 공중화장실은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닌 문명과 비문명을 가르는 기술로서 작동하게 되었다.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가르는 공간이 된 화장실은 동시에 식민지와 제국, 인종과 계급의 위계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위생은 단순한 건강의 문제가 아닌 도덕성과 문명성의 지표로 기능했으며, 더럽다는 평가는 특정 집단을 열등한 존재로 위치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했다.3 청결하지 못한 몸은 관리되지 않은 몸, 즉 야만적이고 미성숙한 몸으로 간주되었다.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에 ‘위생적 변소 개량’이라는 이름으로 재래식 화장실이 문제화되었고, 배설 공간의 정비는 근대적 통치의 일부로 추진되었다. 다만 수세식 화장실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지금의 화장실 질서가 시민성의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90~2000년대였다. 당시 한국관광공사에서 발간한 보고서 「화장실 문화 이렇게 달라졌다」에는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0년 ASEM 국제회의 등 대형 국제 행사를 거치며, 외국인들이 한국 화장실을 더럽고 불편하게 느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에 서구·일본과 같은 ‘깨끗한 화장실 만들기’는 문화관광부와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의 공동 과제가 되었다.4
이때 해당 사업 언론매체 기사화 자료들에는, 재래식 화장실과 한국인들의 화장실 이용 행태가 “불쾌”하고 “한심”하다는 언급이 다수 등장한다. 민족적 수치심에 기반해 동력을 얻은 화장실 문화운동은 시설 개선을 넘어 시민의 태도와 행위를 교정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라는 당시의 슬로건과 칸막이 안 이용자를 비추는 거울은 그들을 ‘문명인’으로 호출하며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배설을 흔적 없이 관리하도록 요구했다. 이로써 화장실의 질서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는 감각에서 출발해 자기 감시의 감각으로까지 자리 잡았다.
화장실 근대화·문명화의 맥락 속에서, 여성 화장실 확충과 화장실 성별 분리는 화장실 문화운동을 주도하던 여성들의 필요에 따라 관심이 기울여지며 제도화되었다. 남녀공용 화장실을 이용하며 성추행을 경험했던 여성들의 이야기와 공공장소에서 여자 화장실이 현저히 부족했던 현실이 가시화되며 2004년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제정 과정에서 반영된 것이다. 이는 여성들이 더 이상 배설할 공간 없는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의 공간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분명 중요한 역사적 성취였다. 그러나, 과연 그래서 여성들을 보호한다는 성별 분리가 이들의 두려움과 불안을 해소해 주었는가. 오늘날까지 여자 화장실에서 성폭력과 불법 촬영이 반복적으로 발생해온 현실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이 두려움은 여성들을 둘러싼 현실이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에 더해, 여자 화장실에 공간적으로 구현된 보호의 언어가 항상 어떠한 전제를 동반한다는 점과도 관련되어 있다. 여성은 배설하는 모습을 숨기며, 위협을 상시 경계해야 한다는 전제다. 여성들은 온몸을 가려주는 칸막이 안에서 자신이 보일 가능성 자체를 위협으로 감각하고, 칸막이 위아래의 틈에서 도사릴 시선을 의식한다. 자신을 이성애·남성중심적 시선의 대상이 되는 몸으로 위치시키는 공간에서, 시스젠더 여성은 화장실에서 주변을 살피고 스스로를 보이지 않게 조정하는 몸으로 훈련된다.
또, 여자 화장실에서의 성폭력에 대한 대책으로 부착된 불법 촬영 경고문과 비상벨은 안전을 말하지만, 성폭력의 원인이 구조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저 위험을 상기시키는 표지만이 되기도 한다. 나아가 여자 화장실 문 앞에 설치된 ‘안심 거울’은 이용자가 뒤따라오는 사람을 직접 확인하도록 함으로써, 보이는 몸으로서의 위협을 피하기 위한 더욱 기민한 감각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화장실의 성별 위계는 단순한 공간 분리를 넘어, 성별화된 감각을 생산하는 장치로 작동하게 된다. 여자 화장실의 물적 조건 속에서 여성은 항시적인 불안을 관리하며 스스로를 조정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고, 안전은 그 안에서 최소한의 경계 구분을 통해서만 겨우 확보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이용은 경계의 폭력에 따른 문제로 이해되기보다, 경계를 혼란시켜 여성의 안전 확보를 실패하게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화장실이라는 공간에서 성별화된 감각이 반복적으로 체화될수록, 여성들은 역설적으로 경계를 더욱 매끄럽게 구분하는 일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면서 화장실 공간의 위험은 실제로 위험을 발생시키는 행위보다 경계를 불안하게 만드는 몸에 투사된다. 따라서 경계를 불안하게 하지 않기 위해 트랜스젠더는 전략적으로 자신을 조정한다. 자신이 그 공간에 부합하는 이용자처럼 보이고 들리게 하거나, 혹은 더 크게 선언하거나. 그 선택들은 개인의 의지라기보다는 강한 경계가 작동하는 공간의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3. 화장실이 ‘퀴어 공간’이 되려면
화장실은 단순히 성별을 구분하는 장소가 아닌, 경계에 대한 감각을 생산하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경계의 모순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교란된 경계는 곧바로 봉합되어 되돌아가곤 한다. 그렇다면 화장실을 ‘퀴어 공간’으로서 상상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 수 있을까.
이는 단순히 성별 구획을 철폐하고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하는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제도적인 변화는 중요하나, 근본적으로는 안전을 오직 경계의 선명함과 동일시해 온 기존의 감각을 재구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는 ‘경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몸’에 위험과 불안을 투사해 온 방식, 그리고 그 몸들을 통제함으로써 안전함의 감각을 확보해 온 질서를 다시 묻는 일이다.
화장실이 퀴어 공간이 된다는 것은 그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정체성이 모두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기보다, 오히려 경계에 속하는 몸의 순수성을 전제하지 않아도 공간이 유지될 수 있다는 상상에 가깝다. 누가 이 경계 안에 속하는가를 끊임없이 가려내지 않아도 되는 상태, 경계의 혼란이 곧 위협이나 수치가 되지 않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따라서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뀐다. 경계를 강화할 것인가, 허물 것인가가 아니라, 경계에 기대지 않고도 안전할 수 있는 조건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우리가 성별화된 감각에 따라 몸을 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이 아닌 역사적 산물로 이해하고, 여성의 안전이 항시적 불안 속에서 공간적 경계를 통해 간신히 성취되는 것으로 조직되어 왔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우리는 젠더화된 시각 권력에 문제를 제기하며 안전의 조건 자체를 다시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서영
사회학을 전공하며 젠더와 퀴어가 만나는 지점에 관심을 가져왔다. 젠더 질서가 자연화되는 과정에서 특정 집단이 불평등하게 짊어지게 되는 감정적 부담과 규율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역사와 통치의 산물로서 현상을 읽어내려 한다.
이서영(2024), "공중화장실의 젠더 재/생산 : 남녀분리 화장실의 공간 배치와 트랜스젠더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석사학위청구논문.↩
Cavanagh, Sheila L.(2010), Queering Bathrooms: Gender, Sexuality, and the Hygienic Imagination, Toronto: University of Toronto Press.↩
Patel, N.(2017), “Violent cistems: Trans experiences of bathroom space”, Agenda, 31(1): 51-63; Mbatha, S., Zach Wilson, and Chris Buckley(2008), Zulu Indigenous Practices in Water and Sanitation: Preliminary Field Research on Indigenous Practices in Water and Sanitation Conducted at Ulundi, Water Institute of Southern Africa.↩
한국관광공사(2000), 『화장실 문화 이렇게 달라졌다』,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