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26.6)]성소수자들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5호(2026.6.)  l  지금 여기에서의 퀴어 미술  l  신진연구

성소수자들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성소수자의 주거불안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 내러티브 방법을 중심으로」 (2026)

배지현


신진연구 코너에서는 최근 출간된 성소수자/퀴어 관련 학위논문을 소개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성소수자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학부생 때부터였다. 교수님의 추천으로 김지혜 작가님의 『선량한 차별주의자』1를 읽으면서, 선의라는 포장지 뒤에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을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그 고민의 끝에는 늘 성소수자들이 있었다. 사회복지학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모두가 평등한 사회, 모두가 사람답게 살 권리'가 이들에게도 보장되어 있는가. 그 근본적인 의문이 석사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연구는 주거 불안을 경험한 성소수자의 삶과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였다. 많은 테마 중 '주거'를 고른 데는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대학원 입학 후 학술대회에서 들은 “성매매 종사 경험이 있는 트랜스젠더의 일 경험 연구”2였다. 가정 내에서 성 정체성이 수용되지 못한 트랜스젠더들이 갑작스럽게 집 밖으로 내몰리고, 불안정한 소득 속에서 즉각적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성매매 진입을 고민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 노동 속에서도 이들은 꾸준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주거가 불안정하면 생활 전체가 흔들리는 것은 물론, 정체성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다.

두 번째 계기는 석사 과정 중 노인종합복지관에서 했던 현장 실습이었다. 재가노인복지사업팀에 배정되어 어르신 주거 실태 조사를 과제로 받았고, 20가구를 직접 방문했다. 그분들의 집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었다. 추억과 기억이 켜켜이 쌓인 그 공간이 삶을 생기 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집이 삶의 연속성을 만들어 낸다는 걸 그때 몸으로 알게 됐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큰 걸림돌은 없었다. 프로포절 심사, 연구 참여자 모집, 인터뷰 과정까지 모두 감사하게도 순탄하게 흘러갔다. 다만 막연히 '집'이라고 생각했던 공간을 삶의 의미로 확장해 해석하는 작업, 그리고 참여자들의 말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는 과정이 낯설고 힘들었다. 내가 던지는 질문이나 단어 선택이 참여자분들께 불편함을 줄까 속으로 많이 걱정하기도 했다. 겉으로 드러난 위기는 없었지만, 혼자 안고 있던 고민의 무게가 꽤 무거웠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지도해주신 교수님과,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나눠주신 연구 참여자분들 덕분에 연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 연구의 핵심 주장은 여섯 줄기로 나뉜다. 첫째, 성소수자 주거 불안의 출발점은 가족 안에서 정체성이 수용되지 않는 것이다.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원가족은 가정 폭력과 사상 검열로 집을 감시와 통제, 폭력의 공간으로 만든다. 둘째, 성소수자의 주거 불안은 경제적 취약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임대인의 의심과 퇴거 압박, 시설 내 차별, 공공주거 지원 배제 등 생활 반경 전체를 위협하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 셋째, 민간 임대시장은 성소수자에게 자기검열의 공간이 된다. 외모, 목소리, 연인관계, 생활 흔적을 철저히 관리해야 하고, 임대 계약부터 우편, 일상적인 대면 상황 하나하나가 정체성 노출의 위험 지점이 된다. 집이 안식처가 아니라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넷째, 주거 불안은 학업·진로·인간관계 등 삶 전반을 재구성한다. 안정적인 거처가 없어 학업을 포기하거나, 기숙사를 제공하는 직장에만 종속되거나,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식으로 생애 연속성이 무너진다. 다섯째, 주거 불안이 해소된 이후에도 불안의 잔재는 남는다. 과거의 감시·폭력·이동이 내면화되어, 물리적으로 안정된 공간에 있어도 경계심과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 참여자들은 주거 불안 속에서 주체적으로 삶을 이어 나갔다. 일상을 유지하는 생존형, 더 나은 주거로 나아가는 전환-지향형, 삶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재구성형.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감동과 활력을 함께 받았다. 자신이 놓인 환경이 녹록지 않아도 절망에 머물지 않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날갯짓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연구의 함의는 네 가지다. 첫째, 정체성 요소를 주거 불안의 핵심 원인 변수로 재정립하는 이론적 틀을 제시한다. 둘째, 성소수자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자기 삶을 서술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 서술에 사회적 낙인이 깊이 개입해 있음을 밝힌다. 셋째, 집은 정체성과 관계가 얽힌 공간으로,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지를 확인하는 관계적 차원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로젠탈(Rosenthal)의 생애사 분석이 이야기된 생애와 체험된 생애를 분리·비교함으로써 성소수자의 복잡한 경험을 체계적으로 드러내는 데 효과적임을 확인했다.

지금은 석사 학위를 받고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한 채 고민의 기로에 서 있다. 학위 과정 동안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비전을 갖고 살아갈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걸 졸업 후에야 실감했다. 다만, 기회가 생긴다면 이 연구를 더 세밀하게 발전시켜 박사 과정을 밟고 싶다는 마음은 있다.

처음 원고 부탁을 받았을 때 논문을 읽고 긍정적으로 봐주셨다는 말에 놀라고 감사했다. 부족한 글을 꼼꼼히 읽고 연락을 주셔서 내심 기쁘기도 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나를 드러내는 자리가 수줍고 낯설기도 하지만, 이 과정이 새로운 연구로 나아갈 도약점이 되리라 믿는다. 『도착』을 읽는 독자분들에게도 연구의 생생함이 잘 전달되길 바란다. 이 연구를 통해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주거 불안의 구조적 문제를 꼬집는 동시에, 눈앞의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으로 느껴지더라도 결국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우리 모두 안에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사회는 쉽게 바뀌지 않지만,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고, 그 흐름을 바꾸는 주체는 우리다. 우리는 이미 그 흐름 한가운데서 세상을 바꿔온 사람들이니까. 우리는 단단하고 강하다!


배지현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성소수자의 주거불안 경험을 질적 연구로 학위논문을 제출했다. 연구 관심분야는 성소수자, 노인, 주거다. 현재 한국사회복지교육협의회 간사로 소속되어 있다.


  1. 김지혜(2019), 『선량한 차별주의자』, 파주: 미디어창비.

  2. 김종빈, 양세정(2024), “성매매 종사 경험이 있는 트랜스젠더의 일 경험 연구”, 『한국사회복지연구회』, 55(4): 275-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