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2026.6.) l 지금 여기에서의 퀴어 미술
‘아시아 퀴어 미술’이라는 (흔들리는) 이름
이규식
1. 방콕, 2019년 여름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에 선정되어 이듬해 개막하는 전시 《뉴노멀》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준비의 일환으로 어쩌다 보니 첫 해외 출장을 하게 되었다.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지 햇수로 삼 년 남짓이었던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도 영어로 메일을 쓰는 데에는 그야말로 상당한 결심이 필요했다. 당시 나는 거의 무모한 심정으로 방콕 예술문화센터(Bangkok Art and Culture Centre, 이하 BACC) 측에 메일을 보냈다. 그곳에서 열릴 ‘스펙트로신테시스’ 전시의 두 번째 시리즈, 《스펙트로신테시스 II – Exposure of Tolerance: LGBTQ in Southeast Asia》의 수석 큐레이터였던 찻피차이 프로맛하타베디(Chatvichai Promadhattavedi)에게 인터뷰를 청하는 메일이었다. 개인 페이스북, 링크드인까지 전전하다 결국 BACC의 PR 부서 담당자를 통해 회사 메일 주소를 받고 겨우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거절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며칠 뒤 정중하고 다정한 답장이 왔다.
방콕은 더웠고, 전시는 아직 오픈까지 다섯 달 남짓 남아 있었다. 사무실 안에서 큐레이터는 작품 배치도와 함께 출품작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기획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동남아시아에 남은 식민의 흔적과 지역의 문화적 관습, 그리고 태국 사회가 자랑해 온 ‘관용(tolerance)’이라는 말을 들여다보려는 전시였다. 동남아시아 작가들을 주축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58명의 작가가 모인, 그때까지 이 지역에서 열린 가장 큰 규모의 퀴어 전시였다.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사실 전시에 관한 설명보다도, 방콕시의 행정과 긴밀하게 엮인 공공 전시 공간이 ‘퀴어’를 전면에 내건 대규모 전시를 자연스럽게 선보인다는 점이었다. 당시 한국의 상황에 비춰 보면 서울에서 이런 전시가 열리는 일은 요원하게만 느껴졌고, 한편으로는 그저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글은 그 부러움이 7년 뒤 어떤 모양으로 다시 서울에 도달했는지에 관한 메모에 가깝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는 달리 공공미술관에서 일하고 있는 큐레이터로서, 나는 제도를 둘러싼 긴장을 제도 ‘밖’에서 관찰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래서 이 글은 제도 안에 드리워진 그늘과 한계를 스스로 끌어안아 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2. ‘아시아 퀴어 미술’이라는 (흔들리는) 이름
편집팀은 ‘아시아 퀴어 미술이라는 범주의 상상(불)가능한 조건’에 대한 원고를 부탁했다. 이러한 표현 자체가 정확하다고 느꼈다. ‘아시아, 퀴어, 미술’ 세 단어가 모두 쉽게 고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자명한 구분이라기보다 유럽 중심의 근대 지역 인식과 지역연구가 만들어온 범주에 가깝다. ‘퀴어’는 영어권에서 형성된 말이지만 다른 문화권으로 옮겨갈 때마다 서로 다르게 번역된다. ‘미술’은 미술관·갤러리·비엔날레라는 근대 제도 안에서의 미술과, 일상생활과 문화 전반을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 사이를 횡단한다. 안잘리 아론데카르와 지타 파텔이 “불가능한 지역(Area Impossible)”이라는 개념으로 짚어낸 문제의식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서구, 특히 미국의 퀴어 이론이 아시아를 호출할 때, 그 호출이 상호 변용으로 이어지지 않고 자기 이론을 입증하기 위한 ‘사례 데이터’로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는 비판이었다.
실제로 거대 자본과 미술 제도가 아시아, 그리고 퀴어 미술을 호명하는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시아의 퀴어 미술을 하나의 깔끔한 데이터로 수집하고 분류하려는 시도들 속에서, 현장의 기획자들 역시 그러한 함정에 동조하곤 한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이 이름을 폐기할 수도 없다. ‘아시아/퀴어/미술’이라는 빈약한 이름 아래에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모이고, 전시가 열리고, 번역이 시도된다. 이름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도 접속의 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이러한 빈약함을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무언가 일어나도록 두는 일이, 이 다음을 도모하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에 가깝다.
결국 아시아 퀴어 미술이라는 이름은 어떤 실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기보다, 비슷한 막막함을 다른 자리에서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잠시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쓰는 호명에 가깝지 않을까. 무엇이 진짜 아시아인지, 어떤 작업이 진짜 퀴어인지를 가려내는 자격 심사의 도구로 쓰일 때, 이 이름은 무력해진다. 그러니까 이 글이 따라가 보려는 것은 '아시아 퀴어 미술'이 가능한가 아닌가라는 판정이 아니라, 그 헐거운 이름 아래에서 어떤 일들이 실제로 벌어져 왔는가 하는 쪽에 더 가깝다. 그 일들이란 대체로 선명한 선언의 모양을 띠고 있지 않다. 뒤이을 두 장은 그런 작은 장면들에 대한 기록이다.
3. 서울, 2026년 봄
2026년 3월, 아트선재센터에서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Spectrosynthesis Seoul)》이 막을 올렸다. 74명(팀)의 작가가 참여한 대규모 전시였고, 김선정 디렉터와 이용우 교수가 공동 기획했다. 김선정 디렉터가 맡은 1부 ‘양면의 조개껍데기’는 미술관의 외부부터 로비·복도·화장실 같은 변두리 공간까지 전시장으로 끌어들였다. 이용우 교수가 큐레이팅한 2부 ‘텐더: 언제든, 어디서든’은 익선동·낙원동·이태원이라는 서울의 퀴어 지리를 정면으로 호명했다. 방콕 이후 7년이 흐른 시점에서, 이번 서울 전시는 제도적으로 하나의 문턱을 넘은 장면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확히는 ‘어떤’ 문턱을 ‘어떻게’ 넘은 것일까. 지금까지 이 순회전이 도착한 장면은 도시마다 달랐다.
홍콩의 컬렉터 패트릭 선(Patrick Sun)이 설립한 선프라이드재단(Sunpride Foundation)이 2017년 타이베이 현대미술관(MOCA Taipei)에서 시작한 《스펙트로신테시스》 순회전은 각 도시의 정치적 타임라인과 매번 다른 방식으로 맞물렸다. 타이베이는 같은 해 5월 대만 사법원이 동성혼 위헌 결정을 내린 직후의 모멘텀과 함께였다. 방콕은 ‘관용’이라는 자기 이미지의 균열을 드러내는 자리였고, 6년 뒤인 2025년 1월 태국은 동남아시아 최초로 혼인평등법을 시행했다. 홍콩의 타이쿤(Tai Kwun)에서 열린 세 번째 에디션 《신화 창조자들(Myth Makers)》(2022)은 옛 식민지 경찰·사법·수감 시설의 장소성이 60여 명 작가의 신체정치 서사와 맞물리는 풍경을 만들었다. 그러나 2025년 9월 홍콩 입법회는 동성 파트너십 등록 법안을 부결했다.
그렇다면 서울의 상황은 어떤가. 2024년 7월 대법원이 동성 동반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지만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부재하고, 더 큰 제도적 진전은 멈춰 있다. 여기에 더해, 2024년 12월 3일에는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라는 정치적 충격이 있었다. 앞의 세 도시는 적어도 어느 시점에 법적 인정의 형태를 가졌거나, 가지려다 좌절했다. 그러나 서울 전시는 그 어느 쪽도 아닌 상황에서 열렸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제도화가 진전된 사회의 자기 성찰도 아니고, 좌절을 통과한 사회의 회복적 발화도 아니다. 그보다는 법제는 멈춰 있고, 미술관이 먼저 선언한 풍경에 가깝다. 서울에서의 전시는 다른 세 도시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퀴어가 제도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의 의미를 묻고 있다.
무엇인가가 진입에 성공할 때, 그 성공은 종종 ‘진입 가능한 모양새’로의 정제를 대가로 한다. 홍콩 타이쿤 전시에 대해 한 비평가는 전시가 관습적으로 매력적이고 젊은 남성 동성애자의 신체에 편중되어, 지역 퀴어 커뮤니티 내부에 또 다른 위계를 비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퀴어가 미술관에 들어오는 일은 해방의 사건일 수 있지만, 동시에 '어떤 몸'과 '어떤 욕망'이 더 쉽게 전시장에 걸리는가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서울 전시가 흥미로웠던 까닭은 이 질문을 우회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전시의 전략이 단순히 더 ‘다양한 몸’을 추가하는 식이었다면 미술관은 자신의 호명 권력을 의심하지 않은 채 외연만 넓히는 것으로 보였을 테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는 미술관의 매끈한 진열에 끝내 동화되지 않는 작업들이 상당수 있었고, 그러한 어긋남이 전시 전체의 톤을 흔들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업 중 하나는 이반지하의 대형 회화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살아 있다는 것 2025〉다. 이 작업은 매끈하게 정제된 퀴어 이미지를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화면에는 2024년 12월 그 밤을 통과한 뒤에도 집회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서로의 안부를 묻던 사회적 소수자들의 시간이 옮겨져 있다. 나는 이 회화를 일종의 역사화로 읽었다. 한국 미술사에서 현실에 맞서 온 민중미술의 계보 위에 놓여 있으면서도, 그것을 단순히 반복하지 않고 우리 사회와 역사에 새로이 응답하는 소수자들의 동시대적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퀴어가 거기 있었다는 사실 너머로, 광장에 함께 있던 이들의 자리를 역사 안에 새겨 넣는다. 선프라이드재단의 컬렉션을 포함한 여러 작업이 함께 놓인 전시장 한가운데에서, 이 회화는 아직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를 보여준다.
다른 자리에는 오인환의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 서울〉이 있다. 작가가 2001년부터 이어 온 이 연작은, 전시가 열리는 도시의 게이 바와 클럽 이름들을 향 가루로 갤러리 바닥에 빼곡히 적는 작업이다. 전시 기간 동안 그것은 연기와 재로 흩어지고, 그 입자가 관객의 신체와 옷에 옮겨붙기도 한다. 기록되지만 오래 남지 않고, 분명 존재했지만 쉽게 사라지는 장소들의 감각이 작업 안에 존재한다. 종로의 어떤 골목, 이태원의 어떤 클럽이 그렇게 있다 사라졌고,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 역시 나타났다 사라진다.
물론 두 작업이 전시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은 동시대 한국 퀴어 작가들을 폭넓게 불러 모은 자리였고, 모인 작업들 각각이 가진 무게도 결코 가볍지 않다. 다만 그렇게 많은 작가들이 한자리에 놓였을 때 이들을 한국 미술의 어떤 흐름 위에 위치 짓는 시각이 함께 제시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럼에도 이 전시는 반드시 필요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한국에서 이만한 규모로 퀴어 미술이 미술관 안에 들어온 전례가 없는 만큼, 첫 자리는 매끄럽고 세련된 완결보다 폭넓게 부르고 나열해 나가는 편이 정직하다.
전시는 퀴어의 가시성을 확대하는 동시에, 바로 그 가시성이 놓치는 것들을 다시 드러냈다. 그렇기에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을 단순히 ‘제도화의 성공’이나 ‘신자유주의적 포섭’ 어느 한쪽으로 결론 내리기 어렵다.
4. 다시 서울, 2020년 여름
대형 전시가 한 도시에 도착하는 사건이 있다면, 작은 전시들이 도시들 사이를 더듬듯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2020년 여름, 서울의 탈영역우정국에서 열린 《작은 불화(Minor Infelicities)》는 후자에 가까웠다. 이 전시는 박진희 작가가 총괄 기획하고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출발한 프로젝트로, 그가 직접 방콕·홍콩·마닐라·싱가포르의 큐레이터들과 서울의 나를 섭외해 진행했다. 사실 여기서 나는 가장 늦게 합류한 사람이었고, 덕분에 이 프로젝트 전반을 한 발 떨어진 위치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전시는 ‘실패와 어긋남’을 출발점으로 삼고자 했다. 서구식 퀴어 이론을 아시아에 매끄럽게 이식하는 일, 다섯 도시의 문제의식을 하나의 깔끔한 서사로 봉합하는 일. 그 모든 시도가 사실은 실패로 돌아갈 것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일례로 마닐라의 식민 경험과 서울의 분단 경험은 같지 않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규제와 홍콩의 검열 역시 다른 방법으로 작동한다. 이 차이들을 억지로 묶지 않으면서도 함께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이 각자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돌이켜보면 그해 여름에 우리가 좇던 건 완성도 높은 전시보다도 일종의 ‘서로에게 연락할 이유’였던 것 같다. 팬데믹 탓에 다른 나라의 큐레이터들은 모두 현장에 올 수 없었지만, 화상 회의와 페이스북 메신저, 그리고 이메일로 소통을 이어 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전시에서 어떤 작업은 깊이 이해되기도 했고, 또 어떤 작업은 끝내 다 번역되지 않은 채로 남기도 했다. 우리는 준비하는 내내 좁혀지지 않는 불투명함을 안고 함께 일을 해나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치열하게 부딪히기도 했다. 그곳에 거창한 매니페스토 같은 것은 없었다. 전시가 끝난 뒤에는 가끔 인스타그램으로 근황을 나누기도 하면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이 느슨함이야말로 '아시아 퀴어 미술'이라는 이름이 권력화되지 않고 작동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형식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대표가 아니라 접속으로서의 아시아. 하나의 중심에서 모두를 대신해 발화하는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언어로 말하면서 우연히 서로의 말이 닿는 순간들. 그 순간들이 다음 만남의 조건을 조금씩 바꾸는 것은 아닐까.
5. 2019년과 2026년의 풍경 사이에서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갈 차례다. ‘아시아’라는 관점에서 퀴어 미술을 바라본다는 건 무엇인가. 7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도달한 (임시적) 결론은 이렇다. 그것은 어떤 고정된 지리적 범주를 받아들이는 일도, 그 범주를 거부하고 폐기하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도시들이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무엇을 가능하게 하고 무엇을 미루는지, 그 비대칭을 계속 비교하며 읽는 일에 가깝다.
7년 전 방콕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단순한 부러움이었다. 그러나 지금 서울에 도착한 전시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그보다 복합적이다. 타이베이, 방콕, 홍콩, 서울은 전시의 개최 순서로 나란히 배열될 수 있지만, 실상 너무도 다른 길을 걸었다. 대만의 제도화와 태국의 진전, 홍콩의 후퇴, 한국의 부분적 진전과 현재까지 지속되는 공백은 '아시아 퀴어 미술'이 하나의 직선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그 시차와 비대칭이 ‘아시아 퀴어 미술’이라는 범주를 공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 있게 만드는 조건이다.
어떤 도시에서 가능했던 장면이 다른 도시에서 곧바로 재현되지는 않는다. 다만 누군가가 보낸 메일, 어떤 전시의 리플릿, 작은 모임에서의 대화, 다 번역되지 못한 채 남겨진 문장들이 느리더라도 조금씩 나아가게 만든다. 나는 7년 전 방콕에서 받아 적었던 인터뷰 노트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쓰며 그때 주고받은 이메일도, 출장에서 찍은 사진들도 찾아보았다. 그 시기를 펼쳐 보면 창피해 덮어버릴 만큼 미숙한 질문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미숙함 자체가 무언가의 시작이었다는 걸 지금은 알고 있다. 무엇이 될지 모르는 채로 어떤 도시로 떠나는 일. 거절당할지도 모르는 메일을 보내는 일. 영어로 하는 말을 다 알아듣지도 못한 채 고개를 끄덕이던 일. ‘아시아 퀴어 미술’이라는 흔들리는 이름 아래 우리가 해온 일이 있다면 결국 그런 서툰 접속들의 누적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규식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교육과 학예연구사로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20주년 기념전 《사랑의 기원》(서울시립미술관, 2026), 서울시립미술관×재외문화원 순회전 《세계의 저편》(도쿄, 홍콩, 오사카 한국문화원), 《플레어》(WESS, 2023), 《잠재감각》(배렴가옥, 2022), 《작은 불화》(탈영역우정국, 2020), 《뉴노멀》(오래된 집, 2020)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퀴어와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전시를 통한 예술의 실천적 전략에 대해 탐구해 왔으며, 근래에는 변화하는 국내외 미술 환경 속에서 레지던시의 역할과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Spectrosynthesis II – Exposure of Tolerance: LGBTQ in Southeast Asia》, 2019년 11월 23일–2020년 3월 1일, 방콕 예술문화센터(BACC). 큐레이터 Chatvichai Promadhattavedi.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작가 58명 참여. BACC 공식 홈페이지, “Spectrosynthesis II – Exposure of Tolerance”, (최종검색일 2026년 5월 22일).↩
Arondekar, Anjali, Geeta Patel (2016), “Area Impossible: Notes toward an Introduction”, GLQ: A Journal of Lesbian and Gay Studies, 22(2): 152.↩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 2026년 3월 20일–6월 28일, 아트선재센터. 1부 ‘양면의 조개껍데기’(김선정 기획), 2부 ‘텐더: 언제든, 어디서든’(이용우 기획). 선프라이드재단과 아트선재센터의 협력 사업. 참여 작가 74명(팀). 아트선재센터 홈페이지,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 (최종검색일 2026년 5월 22일).↩
대만 사법원 해석 제748호(2017년 5월 24일) 및 동성혼 시행법(2019년 5월 24일 발효). 태국 혼인평등법(2025년 1월 23일 시행). 홍콩 입법회 동성 파트너십 등록 법안 부결(2025년 9월 10일). 한국 대법원 전원합의체, 동성 동반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 인정 판결(2024년 7월 18일).↩
「ArtAsiaPacific」, 2023.03.14., “Reflections on Asian LGBTQ+ Art and Issues at “Myth Makers””, (최종검색일 2026년 5월 22일). 본 리뷰는 해당 전시가 매력적인 젊은 남성 동성애자의 신체 재현에 편중되어 동성애 규범성(homonormativity)을 재생산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오인환,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 서울(Where He Meets Him in Seoul)〉, 2001년부터 진행 중인 향 가루 가변 설치 연작. 작가 홈페이지, “Where He Meets Him”,↩
《작은 불화 Minor Infelicities》, 2020년 7월 18일–8월 2일, 탈영역우정국. 총괄 기획 박진희(서울문화재단 지원). 참여 큐레이터: 아비잔 토토(방콕), 빙 하오(싱가포르), 카를로스 키혼 주니어(마닐라), 젠스 청(홍콩), 이규식(서울). 탈영역우정국 홈페이지, “작은 불화 Minor Infelicities”, (최종검색일 2026년 5월 22일).↩
5호(2026.6.) l 지금 여기에서의 퀴어 미술
‘아시아 퀴어 미술’이라는 (흔들리는) 이름
이규식
1. 방콕, 2019년 여름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에 선정되어 이듬해 개막하는 전시 《뉴노멀》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준비의 일환으로 어쩌다 보니 첫 해외 출장을 하게 되었다.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지 햇수로 삼 년 남짓이었던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도 영어로 메일을 쓰는 데에는 그야말로 상당한 결심이 필요했다. 당시 나는 거의 무모한 심정으로 방콕 예술문화센터(Bangkok Art and Culture Centre, 이하 BACC) 측에 메일을 보냈다. 그곳에서 열릴 ‘스펙트로신테시스’ 전시의 두 번째 시리즈, 《스펙트로신테시스 II – Exposure of Tolerance: LGBTQ in Southeast Asia》의 수석 큐레이터였던 찻피차이 프로맛하타베디(Chatvichai Promadhattavedi)에게 인터뷰를 청하는 메일이었다. 개인 페이스북, 링크드인까지 전전하다 결국 BACC의 PR 부서 담당자를 통해 회사 메일 주소를 받고 겨우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거절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며칠 뒤 정중하고 다정한 답장이 왔다.
방콕은 더웠고, 전시는 아직 오픈까지 다섯 달 남짓 남아 있었다. 사무실 안에서 큐레이터는 작품 배치도와 함께 출품작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기획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동남아시아에 남은 식민의 흔적과 지역의 문화적 관습, 그리고 태국 사회가 자랑해 온 ‘관용(tolerance)’이라는 말을 들여다보려는 전시였다. 동남아시아 작가들을 주축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58명의 작가가 모인, 그때까지 이 지역에서 열린 가장 큰 규모의 퀴어 전시였다.1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사실 전시에 관한 설명보다도, 방콕시의 행정과 긴밀하게 엮인 공공 전시 공간이 ‘퀴어’를 전면에 내건 대규모 전시를 자연스럽게 선보인다는 점이었다. 당시 한국의 상황에 비춰 보면 서울에서 이런 전시가 열리는 일은 요원하게만 느껴졌고, 한편으로는 그저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글은 그 부러움이 7년 뒤 어떤 모양으로 다시 서울에 도달했는지에 관한 메모에 가깝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는 달리 공공미술관에서 일하고 있는 큐레이터로서, 나는 제도를 둘러싼 긴장을 제도 ‘밖’에서 관찰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래서 이 글은 제도 안에 드리워진 그늘과 한계를 스스로 끌어안아 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2. ‘아시아 퀴어 미술’이라는 (흔들리는) 이름
편집팀은 ‘아시아 퀴어 미술이라는 범주의 상상(불)가능한 조건’에 대한 원고를 부탁했다. 이러한 표현 자체가 정확하다고 느꼈다. ‘아시아, 퀴어, 미술’ 세 단어가 모두 쉽게 고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자명한 구분이라기보다 유럽 중심의 근대 지역 인식과 지역연구가 만들어온 범주에 가깝다. ‘퀴어’는 영어권에서 형성된 말이지만 다른 문화권으로 옮겨갈 때마다 서로 다르게 번역된다. ‘미술’은 미술관·갤러리·비엔날레라는 근대 제도 안에서의 미술과, 일상생활과 문화 전반을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 사이를 횡단한다. 안잘리 아론데카르와 지타 파텔이 “불가능한 지역(Area Impossible)”이라는 개념으로 짚어낸 문제의식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서구, 특히 미국의 퀴어 이론이 아시아를 호출할 때, 그 호출이 상호 변용으로 이어지지 않고 자기 이론을 입증하기 위한 ‘사례 데이터’로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는 비판이었다.2
실제로 거대 자본과 미술 제도가 아시아, 그리고 퀴어 미술을 호명하는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시아의 퀴어 미술을 하나의 깔끔한 데이터로 수집하고 분류하려는 시도들 속에서, 현장의 기획자들 역시 그러한 함정에 동조하곤 한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이 이름을 폐기할 수도 없다. ‘아시아/퀴어/미술’이라는 빈약한 이름 아래에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모이고, 전시가 열리고, 번역이 시도된다. 이름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도 접속의 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이러한 빈약함을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무언가 일어나도록 두는 일이, 이 다음을 도모하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에 가깝다.
결국 아시아 퀴어 미술이라는 이름은 어떤 실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기보다, 비슷한 막막함을 다른 자리에서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잠시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쓰는 호명에 가깝지 않을까. 무엇이 진짜 아시아인지, 어떤 작업이 진짜 퀴어인지를 가려내는 자격 심사의 도구로 쓰일 때, 이 이름은 무력해진다. 그러니까 이 글이 따라가 보려는 것은 '아시아 퀴어 미술'이 가능한가 아닌가라는 판정이 아니라, 그 헐거운 이름 아래에서 어떤 일들이 실제로 벌어져 왔는가 하는 쪽에 더 가깝다. 그 일들이란 대체로 선명한 선언의 모양을 띠고 있지 않다. 뒤이을 두 장은 그런 작은 장면들에 대한 기록이다.
3. 서울, 2026년 봄
2026년 3월, 아트선재센터에서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Spectrosynthesis Seoul)》이 막을 올렸다. 74명(팀)의 작가가 참여한 대규모 전시였고, 김선정 디렉터와 이용우 교수가 공동 기획했다.3 김선정 디렉터가 맡은 1부 ‘양면의 조개껍데기’는 미술관의 외부부터 로비·복도·화장실 같은 변두리 공간까지 전시장으로 끌어들였다. 이용우 교수가 큐레이팅한 2부 ‘텐더: 언제든, 어디서든’은 익선동·낙원동·이태원이라는 서울의 퀴어 지리를 정면으로 호명했다. 방콕 이후 7년이 흐른 시점에서, 이번 서울 전시는 제도적으로 하나의 문턱을 넘은 장면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확히는 ‘어떤’ 문턱을 ‘어떻게’ 넘은 것일까. 지금까지 이 순회전이 도착한 장면은 도시마다 달랐다.
홍콩의 컬렉터 패트릭 선(Patrick Sun)이 설립한 선프라이드재단(Sunpride Foundation)이 2017년 타이베이 현대미술관(MOCA Taipei)에서 시작한 《스펙트로신테시스》 순회전은 각 도시의 정치적 타임라인과 매번 다른 방식으로 맞물렸다. 타이베이는 같은 해 5월 대만 사법원이 동성혼 위헌 결정을 내린 직후의 모멘텀과 함께였다. 방콕은 ‘관용’이라는 자기 이미지의 균열을 드러내는 자리였고, 6년 뒤인 2025년 1월 태국은 동남아시아 최초로 혼인평등법을 시행했다. 홍콩의 타이쿤(Tai Kwun)에서 열린 세 번째 에디션 《신화 창조자들(Myth Makers)》(2022)은 옛 식민지 경찰·사법·수감 시설의 장소성이 60여 명 작가의 신체정치 서사와 맞물리는 풍경을 만들었다. 그러나 2025년 9월 홍콩 입법회는 동성 파트너십 등록 법안을 부결했다.4
그렇다면 서울의 상황은 어떤가. 2024년 7월 대법원이 동성 동반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지만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부재하고, 더 큰 제도적 진전은 멈춰 있다. 여기에 더해, 2024년 12월 3일에는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라는 정치적 충격이 있었다. 앞의 세 도시는 적어도 어느 시점에 법적 인정의 형태를 가졌거나, 가지려다 좌절했다. 그러나 서울 전시는 그 어느 쪽도 아닌 상황에서 열렸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제도화가 진전된 사회의 자기 성찰도 아니고, 좌절을 통과한 사회의 회복적 발화도 아니다. 그보다는 법제는 멈춰 있고, 미술관이 먼저 선언한 풍경에 가깝다. 서울에서의 전시는 다른 세 도시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퀴어가 제도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의 의미를 묻고 있다.
무엇인가가 진입에 성공할 때, 그 성공은 종종 ‘진입 가능한 모양새’로의 정제를 대가로 한다. 홍콩 타이쿤 전시에 대해 한 비평가는 전시가 관습적으로 매력적이고 젊은 남성 동성애자의 신체에 편중되어, 지역 퀴어 커뮤니티 내부에 또 다른 위계를 비추고 있다고 지적했다.5 퀴어가 미술관에 들어오는 일은 해방의 사건일 수 있지만, 동시에 '어떤 몸'과 '어떤 욕망'이 더 쉽게 전시장에 걸리는가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서울 전시가 흥미로웠던 까닭은 이 질문을 우회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전시의 전략이 단순히 더 ‘다양한 몸’을 추가하는 식이었다면 미술관은 자신의 호명 권력을 의심하지 않은 채 외연만 넓히는 것으로 보였을 테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는 미술관의 매끈한 진열에 끝내 동화되지 않는 작업들이 상당수 있었고, 그러한 어긋남이 전시 전체의 톤을 흔들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업 중 하나는 이반지하의 대형 회화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살아 있다는 것 2025〉다. 이 작업은 매끈하게 정제된 퀴어 이미지를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화면에는 2024년 12월 그 밤을 통과한 뒤에도 집회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서로의 안부를 묻던 사회적 소수자들의 시간이 옮겨져 있다. 나는 이 회화를 일종의 역사화로 읽었다. 한국 미술사에서 현실에 맞서 온 민중미술의 계보 위에 놓여 있으면서도, 그것을 단순히 반복하지 않고 우리 사회와 역사에 새로이 응답하는 소수자들의 동시대적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퀴어가 거기 있었다는 사실 너머로, 광장에 함께 있던 이들의 자리를 역사 안에 새겨 넣는다. 선프라이드재단의 컬렉션을 포함한 여러 작업이 함께 놓인 전시장 한가운데에서, 이 회화는 아직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를 보여준다.
다른 자리에는 오인환의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 서울〉이 있다. 작가가 2001년부터 이어 온 이 연작은, 전시가 열리는 도시의 게이 바와 클럽 이름들을 향 가루로 갤러리 바닥에 빼곡히 적는 작업이다. 전시 기간 동안 그것은 연기와 재로 흩어지고, 그 입자가 관객의 신체와 옷에 옮겨붙기도 한다.6 기록되지만 오래 남지 않고, 분명 존재했지만 쉽게 사라지는 장소들의 감각이 작업 안에 존재한다. 종로의 어떤 골목, 이태원의 어떤 클럽이 그렇게 있다 사라졌고,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 역시 나타났다 사라진다.
물론 두 작업이 전시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은 동시대 한국 퀴어 작가들을 폭넓게 불러 모은 자리였고, 모인 작업들 각각이 가진 무게도 결코 가볍지 않다. 다만 그렇게 많은 작가들이 한자리에 놓였을 때 이들을 한국 미술의 어떤 흐름 위에 위치 짓는 시각이 함께 제시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럼에도 이 전시는 반드시 필요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한국에서 이만한 규모로 퀴어 미술이 미술관 안에 들어온 전례가 없는 만큼, 첫 자리는 매끄럽고 세련된 완결보다 폭넓게 부르고 나열해 나가는 편이 정직하다.
전시는 퀴어의 가시성을 확대하는 동시에, 바로 그 가시성이 놓치는 것들을 다시 드러냈다. 그렇기에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을 단순히 ‘제도화의 성공’이나 ‘신자유주의적 포섭’ 어느 한쪽으로 결론 내리기 어렵다.
4. 다시 서울, 2020년 여름
대형 전시가 한 도시에 도착하는 사건이 있다면, 작은 전시들이 도시들 사이를 더듬듯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2020년 여름, 서울의 탈영역우정국에서 열린 《작은 불화(Minor Infelicities)》는 후자에 가까웠다.7 이 전시는 박진희 작가가 총괄 기획하고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출발한 프로젝트로, 그가 직접 방콕·홍콩·마닐라·싱가포르의 큐레이터들과 서울의 나를 섭외해 진행했다. 사실 여기서 나는 가장 늦게 합류한 사람이었고, 덕분에 이 프로젝트 전반을 한 발 떨어진 위치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전시는 ‘실패와 어긋남’을 출발점으로 삼고자 했다. 서구식 퀴어 이론을 아시아에 매끄럽게 이식하는 일, 다섯 도시의 문제의식을 하나의 깔끔한 서사로 봉합하는 일. 그 모든 시도가 사실은 실패로 돌아갈 것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일례로 마닐라의 식민 경험과 서울의 분단 경험은 같지 않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규제와 홍콩의 검열 역시 다른 방법으로 작동한다. 이 차이들을 억지로 묶지 않으면서도 함께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이 각자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돌이켜보면 그해 여름에 우리가 좇던 건 완성도 높은 전시보다도 일종의 ‘서로에게 연락할 이유’였던 것 같다. 팬데믹 탓에 다른 나라의 큐레이터들은 모두 현장에 올 수 없었지만, 화상 회의와 페이스북 메신저, 그리고 이메일로 소통을 이어 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전시에서 어떤 작업은 깊이 이해되기도 했고, 또 어떤 작업은 끝내 다 번역되지 않은 채로 남기도 했다. 우리는 준비하는 내내 좁혀지지 않는 불투명함을 안고 함께 일을 해나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치열하게 부딪히기도 했다. 그곳에 거창한 매니페스토 같은 것은 없었다. 전시가 끝난 뒤에는 가끔 인스타그램으로 근황을 나누기도 하면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이 느슨함이야말로 '아시아 퀴어 미술'이라는 이름이 권력화되지 않고 작동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형식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대표가 아니라 접속으로서의 아시아. 하나의 중심에서 모두를 대신해 발화하는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언어로 말하면서 우연히 서로의 말이 닿는 순간들. 그 순간들이 다음 만남의 조건을 조금씩 바꾸는 것은 아닐까.
5. 2019년과 2026년의 풍경 사이에서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갈 차례다. ‘아시아’라는 관점에서 퀴어 미술을 바라본다는 건 무엇인가. 7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도달한 (임시적) 결론은 이렇다. 그것은 어떤 고정된 지리적 범주를 받아들이는 일도, 그 범주를 거부하고 폐기하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도시들이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무엇을 가능하게 하고 무엇을 미루는지, 그 비대칭을 계속 비교하며 읽는 일에 가깝다.
7년 전 방콕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단순한 부러움이었다. 그러나 지금 서울에 도착한 전시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그보다 복합적이다. 타이베이, 방콕, 홍콩, 서울은 전시의 개최 순서로 나란히 배열될 수 있지만, 실상 너무도 다른 길을 걸었다. 대만의 제도화와 태국의 진전, 홍콩의 후퇴, 한국의 부분적 진전과 현재까지 지속되는 공백은 '아시아 퀴어 미술'이 하나의 직선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그 시차와 비대칭이 ‘아시아 퀴어 미술’이라는 범주를 공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 있게 만드는 조건이다.
어떤 도시에서 가능했던 장면이 다른 도시에서 곧바로 재현되지는 않는다. 다만 누군가가 보낸 메일, 어떤 전시의 리플릿, 작은 모임에서의 대화, 다 번역되지 못한 채 남겨진 문장들이 느리더라도 조금씩 나아가게 만든다. 나는 7년 전 방콕에서 받아 적었던 인터뷰 노트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쓰며 그때 주고받은 이메일도, 출장에서 찍은 사진들도 찾아보았다. 그 시기를 펼쳐 보면 창피해 덮어버릴 만큼 미숙한 질문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미숙함 자체가 무언가의 시작이었다는 걸 지금은 알고 있다. 무엇이 될지 모르는 채로 어떤 도시로 떠나는 일. 거절당할지도 모르는 메일을 보내는 일. 영어로 하는 말을 다 알아듣지도 못한 채 고개를 끄덕이던 일. ‘아시아 퀴어 미술’이라는 흔들리는 이름 아래 우리가 해온 일이 있다면 결국 그런 서툰 접속들의 누적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규식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교육과 학예연구사로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20주년 기념전 《사랑의 기원》(서울시립미술관, 2026), 서울시립미술관×재외문화원 순회전 《세계의 저편》(도쿄, 홍콩, 오사카 한국문화원), 《플레어》(WESS, 2023), 《잠재감각》(배렴가옥, 2022), 《작은 불화》(탈영역우정국, 2020), 《뉴노멀》(오래된 집, 2020)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퀴어와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전시를 통한 예술의 실천적 전략에 대해 탐구해 왔으며, 근래에는 변화하는 국내외 미술 환경 속에서 레지던시의 역할과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Spectrosynthesis II – Exposure of Tolerance: LGBTQ in Southeast Asia》, 2019년 11월 23일–2020년 3월 1일, 방콕 예술문화센터(BACC). 큐레이터 Chatvichai Promadhattavedi.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작가 58명 참여. BACC 공식 홈페이지, “Spectrosynthesis II – Exposure of Tolerance”, (최종검색일 2026년 5월 22일).↩
Arondekar, Anjali, Geeta Patel (2016), “Area Impossible: Notes toward an Introduction”, GLQ: A Journal of Lesbian and Gay Studies, 22(2): 152.↩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 2026년 3월 20일–6월 28일, 아트선재센터. 1부 ‘양면의 조개껍데기’(김선정 기획), 2부 ‘텐더: 언제든, 어디서든’(이용우 기획). 선프라이드재단과 아트선재센터의 협력 사업. 참여 작가 74명(팀). 아트선재센터 홈페이지,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 (최종검색일 2026년 5월 22일).↩
대만 사법원 해석 제748호(2017년 5월 24일) 및 동성혼 시행법(2019년 5월 24일 발효). 태국 혼인평등법(2025년 1월 23일 시행). 홍콩 입법회 동성 파트너십 등록 법안 부결(2025년 9월 10일). 한국 대법원 전원합의체, 동성 동반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 인정 판결(2024년 7월 18일).↩
「ArtAsiaPacific」, 2023.03.14., “Reflections on Asian LGBTQ+ Art and Issues at “Myth Makers””, (최종검색일 2026년 5월 22일). 본 리뷰는 해당 전시가 매력적인 젊은 남성 동성애자의 신체 재현에 편중되어 동성애 규범성(homonormativity)을 재생산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오인환,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 서울(Where He Meets Him in Seoul)〉, 2001년부터 진행 중인 향 가루 가변 설치 연작. 작가 홈페이지, “Where He Meets Him”,↩
《작은 불화 Minor Infelicities》, 2020년 7월 18일–8월 2일, 탈영역우정국. 총괄 기획 박진희(서울문화재단 지원). 참여 큐레이터: 아비잔 토토(방콕), 빙 하오(싱가포르), 카를로스 키혼 주니어(마닐라), 젠스 청(홍콩), 이규식(서울). 탈영역우정국 홈페이지, “작은 불화 Minor Infelicities”, (최종검색일 2026년 5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