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26.6)]기획의 변: 지금 여기에서의 퀴어 미술

5호(2026.6.)  l  지금 여기에서의 퀴어 미술

기획의 변: 지금 여기에서의 퀴어 미술

최장락

 


올해 3월 20일 서울 소재 아트선재센터에서 동시대 아시아 퀴어 미술을 조명하는 전시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이 개최되었다.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이라는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전시는 대만, 태국, 홍콩에 이어 네 번째로 개최된 ‘스펙트로신테시스’ 전시이다.1 전시를 소개하는 홈페이지에서 눈에 띄는 것은 후원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다. 일명 ‘아르코(ARKO)’라고 불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예술진흥법」 제20조에 근거하여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공공기관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설립 목적은 “훌륭한 예술이 우리 모두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으로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모든 이가 창조의 기쁨을 공유하고 가치 있는 삶을 누리게 하는 것”2으로 소개된다.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자본이 투여되었다는 것은 한국에서 이 전시가 “가치 있는 삶”에 기여하는 “훌륭한 예술”의 하나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한국이라는 특정한 지정학적 위치 안에서 ‘퀴어 미술’이 어떻게 가시성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가와 연결된다.


『도착』 제5호는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지금 여기에서의 퀴어 미술”이라는 주제로 지금 한국의 예술 장에서 퀴어 미술이 어떤 위치에 있으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물질적, 제도적, 실천적 조건은 무엇인지 점검하는 네 편의 글을 실었다.

이준영은 퀴어 미술의 ‘저항성’이 제도와 맺는 긴장 관계에 주목한다. 여기서 ‘긴장’은 제도가 ‘저항성’과 단순히 대립하는 것이 아닌 ‘공공성’을 준거로 수용과 거부의 작용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음을 지시한다. 가시화된 작가/작품의 바깥에는 지연되고 유예되어 제도적 승인, 달리 말해 ‘정전화의 시간’을 기다리는 무수히 많은 비공식적 실천이 존재한다. 그는 이러한 시간성이 퀴어 미술과 제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핵심적임을 지적한다.

한편 김한민선은 퀴어 미술이 ‘화이트 큐브’로 수렴될 수 없는 비제도적 실천들로부터 시작했음을 환기한다. 제도 안으로의 편입을 요구받으면서도 계속하여 완전히 용해될 수 없는 잔여를 남기는 퀴어 미술 앞에서 그는 ‘제도’와 ‘퀴어 미술’을 매개하는 큐레이터의 윤리를 묻는다. 큐레이터의 어원인 ‘돌봄(curare)’은 이 잔여를 통해 제도의 문턱을 심문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단서가 된다.

‘퀴어 미술과 제도’라는 문제는 ‘아시아’라는 지정학적 구체성 안으로 이동한다. 이규식에게 ‘아시아 퀴어 미술’이라는 조어는 제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호명으로 의미화된다. 이 호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확정된 실체가 아니라 이 이름 아래 모인 느슨하고 취약한 공동체이다. 그는 아시아/퀴어/미술이라는 기표가 서로 다른 공간을 횡단하며 발생하는 의미의 불확정성을 현장에서 마주하였을 때의 경험을 고백하며 이 ‘서툰 접속’의 의미를 묻는다.

‘돌봄’ 혹은 ‘접속’으로 표현되는 타인과의 연루라는 문제는 황아림에게도 중요한 화두이다. 그는 창작그룹 우프(W/O F.)의 전시 《나의 동료들에게: I am writing to you》에 이르는 여정을 이 연루를 중심으로 되돌아본다. 갈등, 불화, 상처를 포함하며 항상 평화로운 것만은 아닌 연루는 ‘나’의 세계를 허물고 ‘다른 세계’와 서로 침투하는 경험이다.

 

신진 연구자 코너에서는 다양한 학제에서 성소수자/퀴어 연구를 수행하는 세 명의 연구자를 소개한다. 배지현은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주거 불안이 그들이 소수자로서 경험하는 구조적 차별과 얽혀 있다는 것에서 출발하여 성소수자에게 ‘집’이 갖는 의미를 탐색한다. 호규현은 심층 인터뷰를 통해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이주민, 성소수자와의 접촉 경험이 그들에 대한 비당사자의 인식과 태도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한다. 윤성진은 몸을 바라보는 과학기술학의 관점을 경유하여 트랜스 여성의 ‘목소리 트랜지션’을 단지 의료적 개입의 결과가 아닌 몸을 둘러싼 행위자들 간의 ‘끝나지 않는 감응의 과정’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1. 전시의 구체적인 정보는 아트선재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https://www.arko.or.kr/content/843